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멸망 전 글리제 차원은 풍요로웠다.
차원의 연결을 통한 과학과 마법의 결합,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상상하는 것은 모두 다 이루어졌다.
물론 부작용도 있는 법.
AI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해 인간의 직접 노동력이 배제되면서 실업자들이 늘어났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화되었다. 이건 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부록처럼 딸려 온 저출산 고령화 사회, 발전된 과학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구조적 모순으로 망하게 생겼다.
그래서 글리제 국가 연합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전 국민 기초 수당으로 실업자들을 구제하고 사회 복지 정책을 강화해 한쪽으로 편중된 부를 재분배했다.
성공적이었다. 인구의 대폭발, 글리제는 또 한 번의 부흥기를 맞이했다.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경제력에 비해 영토가 지극히 좁은 한 국가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지구로 따지면 싱가포르쯤 되는 나라. 그곳도 인구가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더 이상 건물을 올릴 땅이 부족했다. 지을 수 있는 곳은 다 지었다. 남은 것은 농경지와 그린벨트로 묶인 녹지인데, 집을 짓자고 그곳을 다 밀어 버릴 수는 없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오르는 부동산 가격, 사람들은 미개척지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던전 주거화 사업.
던전 안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자.
일반인들이 마나가 가득 찬 던전에서 살아가려면 시스템 가이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당시로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시스템 가이드야 일종의 예방 백신처럼 취급되는 것. 수량도 흘러넘쳤고 가격도 쌌다.
사실 던전 주거화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던전의 물리적인 크기, 비교적 크기가 큰 던전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 하나 제대로 못 지을 만큼 협소했다. 이왕 지을 거면 클수록 좋은 것.
그럼 어떻게?
키워야지.
그 필요성으로 글리제 인류는 던전 코어를 발명해 냈다.
던전은 불안정하다. 내부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면 마나가 역류해 던전은 소멸하고 만다. 뭐, 던전이 소멸할 정도의 폭발이면 던전 밖이나 안이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만.
폭발과 마나 역류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실험이 진행되었고, 그리하여 소멸 직전의 던전 에너지를 압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던전 코어 장치를 던전 내부에 꼽고 시한장치를 이용해 위력을 조절해 폭발시키면 던전은 소멸되지 않고 압축되어 코어에 저장된다.
운호는 글리제 차원에서 던전 코어를 재현해 지구로 왔다.
던전은 다 세지 못할 만큼 많다. 그중 대영 길드의 소유로 있는 작은 던전을 압축해서 집어넣었다.
이 길쭉한 막대기 하나에 던전 하나가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온다!”
“끼그그극.”
마침내 망령의 신, 혈모가 제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냈다.
혈모라는 인간 또한 신을 가두는 봉인의 일종, 적정한 조건이 맞춰지지 않는 한 해제는 쉽지 않지만, 어쨌거나 껍질이 찢어지면 무방비로 풀려나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끔찍한 존재가 될 터.
망령의 신은 이미 폭주 직전이었다.
운호가 레이저를 이용해 2만 구가 넘는 혈강시들을 소멸시킬 때부터 폭주는 시작되고 있었다.
‘혈마 놈이 봉인을 해제시켰구나.’
그렇다면 곧 망령은 풀려날 것이다.
누군가 도와주면 더 빠르게 일어난다.
혈마가 운호에게 기대한 것이 바로 그거겠지. 혈강시를 소멸시킨 힘으로 혈모를 죽여 버리는 것.
서둘러야 한다.
어차피 망령은 신성도, 이지도 없는 존재, 서로 나눌 대화도 없고, 전투를 벌일 일도 없다.
던전 코어를 작동시켜 던전 게이트를 열고 놈을 그 안에 가둔다.
“꺄드득!”
혈모의 몸이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미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형상.
“메이린!”
“봉인진 작동합니다!”
쿠쿠쿵!
마계에서 공수해 온 망령 봉인의 비석에서 찬란한 오망성의 빛이 솟아올랐다.
“캭!”
일순 모든 동작을 멈춘 혈모, 그녀의 뒤에서 던전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지이잉.
“끄긱?”
그리고.
후두두두두둑!
쉴 새 없이 운호의 아공간에서 튀어나오는 사이보그 전투용 보병들, 나오자마자 혈모의 몸에 붙었다.
“집어넣어!”
드드득.
혈모를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는 사이보그들.
가녀린 혈모의 몸이지만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인간의 몸에 갇혀 있기 때문에.
“끼기기기…….”
뿐인가? 여전히 아공간에선 사이보그들이 쏟아지면서 그 수를 더해 갔다.
후두두둑.
턱턱턱턱!
망령의 신은 점점 던전 게이트 쪽으로 밀려났다.
물론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어찌 된 일인지 권능의 힘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고.
급기야.
“끅!”
쑤욱!
혈모는 사이보그 병사들에 의해 던전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됐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 던전 소멸.
사이보그 보병 한 기가 운호의 앞에서 차렷 자세로 대기했다.
“부탁한다.”
아공간에서 핵배낭 하나를 건네자 그걸 받아 들고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올려붙이는 사이보그 병사.
척!
운호는 자살 폭탄 테러를 명령하고 있었다.
“…왠지 미안하네.”
사람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니다. AI로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 그럼에도 감정 이입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잉.
용감한 사이보그 병사는 핵배낭을 들고 던전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잠시 후.
이이이이이잉…….
던전 게이트가 사정없이 요동치더니.
뚝!
일렁임을 멈추고.
파아아아아앗!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던전 소멸! 당연히 망령의 신도 그와 같았다.
* * *
천마는 기분이 좋다.
혈마 새끼가 모든 혈사의 원흉이었다.
이놈 때문에 수많은 무인이 피를 흘렸고, 이놈 때문에 강호인들이 마계로 끌려갔으며 이놈 때문에 사지를 잃고 금속 의수와 의족을 달았다.
무엇보다도 악독한 행위.
무릇 무림인이라면 최소한 일반 백성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혈교 새끼들이 그런 것들을 신경이나 썼겠나?
오히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죽였다. 순박한 농민들, 여자, 노인, 어린아이들… 그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턱! 쩌어어억!
천마는 혈마의 턱관절을 찢었다.
“어떠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느냐?”
“으가가가…….”
“오! 안 한다고? 그럼 계속하지.”
뿌드득!
무자비했다.
그걸 보는 퍼미셀카사와 그림워커가 팝콘 집어 먹는 것을 멈출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으웩!”
“…쩝,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오신 드래곤께서도 저런 광경은 처음인가 봅니다?”
“뭐,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이 죽는 건 많이 봤지. 하지만…….”
“뭔데요?”
“저걸 보게. 리치도 재생이 저렇게 빠르진 않아.”
“냥…….”
과연 그랬다.
찢어졌던 턱관절이 스스로 아물었고, 분리된 목을 몸체 가까이 가져가자 스스로 붙어 버린다.
“놈의 심장을 찾아서 파괴하면 간단한 일인데…….”
“천마 놈이 그렇게 하겠어?”
“그러네요.”
천마는 단단히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그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여기서 풀어 버리려 하는 듯 그의 손속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 주마! 네놈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 간 원혼의 숫자만큼 죽여 주마!”
“끄억!”
육체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혈마, 하지만 정신은 아니었다. 혼이 붕괴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
이쯤이면 망령의 신이 풀려났어야 했다.
불멸성을 획득한 존재, 그가 죽을 리 없는 노릇. 폭주 상태로 전 강호를 집어삼켜야 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설마 마계에서처럼 이곳에서도 봉인되었나?
그건 불가능하다.
신을 봉인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인가?
“자자! 이제 조립해 보자.”
천마는 흩어진 혈마의 몸을 한군데 모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붙어 버려 이전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혈마.
“재미있구나, 정말 재미있어. 그러면 또 찢어야지.”
그런데 바로 그때!
사막 저편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
이이이잉.
파아아앗!
“음?”
“허?”
“뭐지?”
“냥?”
혈마는 움찔했다.
‘드디어…….’
신이 풀려났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운호라는 놈이 혈모를 죽여 그릇을 부숴 버렸거나, 아니면 스스로 폭주하여 깨고 나왔겠지.
그래서 혀와 턱이 재생되자마자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킬킬킬, 이제 강호는 멸망이다.”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는 천마.
“뭐?”
“망령이 그릇을 깨고 풀려나… 큭!”
무슨 일이지?
순간 혈마는 깨달았다.
혼력의 힘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
“…어?”
툭.
애써 붙었던 팔이 다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왜?’
데굴데굴.
머리도 어깨 위에서 분리되어 굴러갔고.
‘…설마.’
신이 풀려난 게 아니라… 소멸?
‘이런!’
그게 혈마의 마지막이었다.
그를 버티게 했던 망령의 권능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컥!”
혈마의 죽음에 천마는 광분했다.
“이, 이 새끼가?”
그대로 주먹을 들어 혈마의 머리를 부숴 버리는 천마.
“죽어? 누구 맘대로 죽어? 엉? 정신 차려, 개새끼야! 안 그럼 죽여 버린다!”
퍽퍽퍽퍽!
바싹 마른 혈강시의 강맹한 주먹에 바스러져 먼지가 피어올랐지만 천마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그림워커는 결국 질려 버렸다.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네요. 차원의 절대자란 놈이 품위가 없어.”
“이제 알았나? 마족 새끼들보다 더한 놈들이야. 심심하면 때려 부수는 게 일이지.”
“냥!”
“아무튼 저놈이 재생을 멈춘 걸 보니 망령이 소멸되었나 보군.”
“나 참, 설마설마 했는데…….”
아무리 망령으로 전락했지만 신은 신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신을 소멸시켜?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다.
“짐 쌀까요?”
“그러지. 넘어갈 준비나 하자고.”
“그럼 에론 대륙으로?”
“…지구에서 조금 쉬다가.”
“일단 허락을 받아야죠.”
* * *
던전 게이트가 소멸되었음에도 운호는 한참 동안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돌아오면?
‘혹시 모르니까 며칠만 있다가 가자.’
이제 혈강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혈강시가 아니니 신의 소멸과 함께 그것들도 힘을 잃었을 터.
슬슬 정리해야지.
운호가 강호에 뿌린 물건 중에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도 다 회수하고.
‘제갈명과 의논해 볼까?’
천마는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놈이니 제외하고, 강호인 중 가장 말이 통하는 것이 바로 제갈명.
그래서 운호는 일행과 함께 중원으로 돌아갔다.
제갈명을 호출하여 만난 자리에서 혈마와 망령의 소멸을 전해 주었더니.
“오! 그, 그럼?”
“네,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마계에 있는 동안 망령에 대해서 제갈명도 들은 것이 있다.
불멸의 존재, 그래서 그곳의 신도 어찌할 수 없는 망령, 그런데 그것이 강호에서 소멸되었다고?
하지만 제갈명은 곧 수긍했다.
그가 그랬다면 그런 거다.
“하오면 언제 떠날 예정이옵니까?”
“며칠 머물러 보고 아무 일 없으면요.”
“…네.”
제갈명은 직감했다.
망령의 소멸을 알리는 것 말고 자신을 부른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짐작은 가는데…….
“물건들을 회수해야겠습니다.”
“아!”
낙담해 버린 제갈명.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모, 모두 다요?”
“일단 제트 드론과 커스텀 권총은 무조건 회수입니다.”
“…….”
아쉽다. 정말 아쉽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몇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최고의 탈것 제트 드론, 그 고고한 맹주 남궁천상마저도 노골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물건.
그리고 권총이라는 암기통. 운호가 무공이 약한 자신을 걱정해 빌려준 물건이다. 사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었으니까.
“아, 아공간 가방은요?”
“으흠, 그건 선물로 드리죠.”
“오! 정말 감사하옵니다.”
제갈명은 서둘러 제트 드론과 커스텀 권총을 운호에게 반납했다.
그것 말고도 아공간에는 에론 대륙의 마법 아티팩트와 지구의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들에 대해선 달리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꺼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오면 ID 워치의 처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옵니까?”
“지금 그게 가장 고민이긴 합니다.”
싹 다 수거할까?
아니면 그대로 남겨 둘까?
대부분 수거하고 몇 개만 남기는 건?
수거는 어렵지 않다.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쉽다. 자폭 명령을 입력하면 모조리 쓰레기가 될 터.
그러나 하나라도 남겨야 한다면 AI 위성도 하나쯤은 강호의 궤도에 띄워 놓아야 한다.
“공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글쎄요, 반반입니다만. 그래서 조언을 들어 보려고요. 강호인의 시각에서.”
그제야 제갈명은 운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았다.
그는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강호가 워치라는 통신기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것이 악용되지 않을 확신이 있는지.
하지만 제갈명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제, 제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