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3
03화 불장난
혼자 들어온 자유 던전.
운호는 던전 중심부로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던전 풍경은 단순했다. 울창한 숲,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입장했는데 보상은 왜 안 주지?’
하긴, 입장만으로 보상받으면 그건 너무 거저먹기지.
그럼 좀 더 들어가 보자.
숲으로 난 꾸불꾸불한 오솔길,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
숲을 헤맨 지 한참, 운호는 드디어 평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세상에…….”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놀라는 건 어쩔 수 없다.
현대 지구의 도시. 군데군데 움푹 파인 아스팔트, 쪼개진 보도블록, 기울어진 가로등,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던전 탑이라 부르는 반쯤 무너진 직육면체의 건물, 곳곳에 부서진 자동차들, 망가진 자전거, 깨진 유리창의 커피숍, 떨어져 내린 편의점 간판, 파괴된 도심 한가운데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간판의 글씨. 한글, 한글이었다.
‘유성… 다방, 계룡…반점, 성심……. 여기 대전 같은데!’
숲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시 형태의 던전이다. 도시, 대전, 운호의 고향, 그러나 처참하게 파괴된 풍경.
“하아…….”
지구가 망하면 아마 이런 모습일 터. 종말, 아포칼립스.
기억을 잃은 그 3년 동안 무슨 사건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원래 이곳의 던전 배경이 지구인 걸까, 종이가 생산되는 던전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후자일 가능성이 커. 던전 배경이 지구일 거야.’
지구에서 출입했던 던전은 어땠나? 중세 시대의 성곽, 해자, 농경지, 황폐화된 숲, 그곳에서 출몰하는 마물과 몬스터, 에론 대륙의 모습과 비슷했다.
운호는 그저 얼어붙어 있었다. 이 기막힌 곳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바로 그때!
킁킁, 킁킁.
앞쪽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기척.
‘응? …마물?’
운호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들어 앞으로 뻗었다.
스슥, 쿡! 스으윽, 쿡!
무언가 움직인다.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
바짝 긴장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운호, 그러나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모습이 보인다.
무너진 건물 뒤편에서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역시 마물. 좀비, 언데드였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하다.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한 허리, 머리카락도 백발, 그리고 걸어오는 모습도 꼭.
‘노인이구나.’
보통 언데드 마물의 능력은 놈의 본체와 비례한다. 노인은 약하다. 노인 좀비도 그렇다.
노인의 모습을 한 언데드라도 방심하면 금물, 게다가 운호에게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크르르르륵, 크으으…….”
놈이 쏟아 내는 살기가 피부를 파고들어 온다. 멈칫, 물러나면서 천천히 창대를 들어 올리는 운호.
‘이거 장난이 아닌데…….’
기초 창술을 배웠다지만 실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과 실제 마물을 때리는 것은 차원이 다를 터,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은 압박감이 전해 왔다.
흰자위 하나 없는 까만 눈의, 군데군데 피부가 벗겨져 벌건 속살과 뼈까지 드러나 보이는 몸체, 그리고 기이하게 꺾여 있는 팔다리. 그러면서도 용케 걸어온다.
‘아마 느리겠지? 빠른 놈은 아닌 것 같고…….’
얼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용병이다. 노인 좀비 한 마리 처리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아무리 새끼 용병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배운 대로만 하자.’
파앗!
운호의 신형이 바람의 흐름을 타며 나아갔다. 창날이 빛살처럼 번뜩인다.
인위적이지 않았다. 찌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창대가 스스로 날았다. 그냥 창대 끝에 운호가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푸욱!
창 대가리는 좀비의 이마에 닿았고, 그 접촉은 좀비 대가리를 풍선처럼 터뜨려 버렸다.
펑!
“아!”
간결한 도약, 그리고 찌르기!
솔직히 운호도 놀랐다. 그냥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위력은……?
하지만 자신의 뛰어난 실력에 대해 감탄을 표할 새도 없었다.
좀비는 한 마리가 아니다.
등 뒤에서.
“크르륵!”
오른편에서.
“크크크크크크.”
왼편에서.
“캬악!”
소름 끼치는 괴성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런…….”
하나둘씩 폐허 도시의 잔해에서 머리를 내미는 좀비들. 언뜻 보아도 수백 마리는 넘어 보인다. 거의 노인들 같은데…….
“씨발!”
일단 튀고 보자.
운호는 미친 듯이 달렸다.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돌진해 왔다. 그야말로 좀비 떼들이었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다리 한 짝이 없어도 절룩거리며 거리를 좁혀 오는 좀비, 머리통을 옆구리에 끼고 달려오는 좀비, 지팡이 두 개로 나는 듯이 다가오는 좀비. 그러나 생각보다 속력이 빠르지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포위되면 끝!
“으아아악!”
게이트가 보인다. 일단 나가면 놈들이 밖으로 나올 일이 없으니 탈출하기만 하면!
그러나 이미 늦은 것 같다.
“크르르륵!”
“크륵, 크륵.”
던전 출입구 쪽에도 이미 좀비들이 괴기한 소리를 내며 진을 치고 있었다.
“젠장!”
퇴로가 막혔다.
‘옆쪽으로!’
가까운 곳에 허름한 5층 건물이 보인다. 군데군데 무너졌지만 아직까지는 건물의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운호는 그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입구가 보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옥상으로 도망치면…….
입구 문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방화문인 듯했다. 운호는 간발의 차이로 철문의 손잡이 자물쇠를 돌려 잠갔다.
철커덩!
“후… 죽을 뻔했네.”
쿵쿵쿵! 쿵! 쿵!
좀비들이 강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지능이 어린아이 정도만 됐어도 열고 들어왔을 건데.
5층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을 통해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는 운호. 그리고 고개를 빠꿈이 내밀어 밑을 내려다보았다.
바글바글.
“숫자가 왜 이렇게 많아?”
건물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놈들.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강철문과 건물 외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쿵쿵! 우지끈! 콰쾅!
‘이거 얼마 못 버티겠는데?’
빨리 수를 내야 한다. 문이 부서지고 놈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면 도망갈 곳도 없다.
“어떡하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어후! 미치겠네. 노인들이 왜 저래 난폭해? 좀비라서 그런가?”
혹시나 벽을 타고 올라올 수도……?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침착하자, 침착해! 방법을 찾아야지.”
때마침 옥상 구석에 지어진 작은 가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창고?”
열린 문 틈새로 여러 물건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혹시 아나? 쓸 만한 거라도 찾을 수 있을지.
여러 가지 공구들, 사다리, 높게 쌓인 페인트, 시너가 들어 있는 통, 그리고 선반 위에 올려진 낯익은 물건.
“어? 저건…….”
어떻게 모를 수 있나?
담배다. 그리고 라이터도 있다.
꿀꺽.
갑자기 맹렬한 흡연 욕구가 생겼다. 저걸 한 대 꼬나물고 불을 땡기면 얼마나 좋을까?
지구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길드장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지시를 거부하는 길드원들.
욕도 하고 언제 F등급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탄하면서 한 개비씩 피워 물었던 스트레스 해소약.
하지만 저건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이템’뿐.
던전에 존재한다고 다 아이템이 아니다. 마물을 죽여 드랍되든, 상자를 까든, 보상으로 받든, 아무튼 특정 상황을 충족시킨 물건이어야 비로소 아이템으로 판정된다.
종이 생산 던전에서 김 부장이 날린 종이가 그와 같은 것.
“하아, 이걸 만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접촉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운호는 홀린 듯 담배와 라이터에 손을 뻗쳤다. 그만큼 흡연 욕구를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헉!”
만져진다!
“마, 맙소사! 아, 아이템? 아이템이었어?”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아이템의 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건 만져진다는 거고.
“피울 수도 있나?”
이미 손은 담배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한 가치 입에 문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운호.
철컥!
그리고 피어오르는 불꽃.
후우.
폐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연초의 맛.
“하아, 미친… 죽여주는구나.”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 던전 물건이 손에 만져진다니! 아이템도 아닌데 말이다.
운호의 던전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 그것도 용병이 되고 나서다. 첫 번째는 그냥 따라만 가서 아이템으로 판정된 종이만 주워 담았으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확인이 필요하다.
창고 안에 들어가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운호.
만져진다. 집을 수 있다. 생생한 촉감이 느껴진다.
금속으로 된 공구도, 녹슨 못도, 대걸레, 플라스틱 고무 대야, 형형색색의 페인트통,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시너통도.
그런데 어떤 미친놈이 인화 물질과 라이터를 같이 둔 거야, 불나면 어쩌려고…….
“…가만 불? 시너? 불!”
그렇다. 불이다.
운호는 창고 안에 놓인 시너통을 잡고 흔들어 보았다. 꽉 차 있다. 몇 통이나 있지? 하나, 둘, 셋, 넷… 일곱 통? 충분하다.
“끙차!”
운호는 창고 안에서 시너통들을 꺼내 옥상 난간 위에 올렸다.
“카카카카칵!”
“크르르륵!”
“쿠오오오오!”
좀비 떼들의 괴성은 여전했다.
시너만 가지고는 금방 꺼진다. 페인트와 섞으면 효과는 더 좋아진다.
그렇게 섞은 통을 이쪽에, 또 한 통은 저쪽에 조심스럽게 잡아 멀리 던지고, 간격을 띄워 가며 투하! 골고루 뿌리는 것이 가장 중요!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액체가 공중에서 분사되자 좀비들의 난동은 더더욱 심해졌다.
이제 마지막 화룡점정.
“빈 병 없나? 아, 저기 있네.”
마지막 시너통에서 일정량을 병에 따른 후, 운호는 입고 있던 속옷을 찢어 병 입구를 틀어막았다. 잠시 기다린 뒤 불을 붙이니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불이 붙는다.
조잡하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한 화염병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든 화염병이 세 개.
시너가 뿌려진 장소를 가늠해 힘껏 화염병을 던지는 운호.
“씨발, 다 죽었어!”
슈우우우웅.
퍽!
화르르르륵!
시뻘건 화염이 좀비 무리 한가운데서 솟아올랐다.
“키애액!”
“끄아악!”
“키킥? 키키킥?”
하나 더!
쓩!
퍽!
콰콰콰콰쾅!
화르르르르륵!
끔찍한 불바다였다.
“와, 쩐다.”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 옥상까지 열기가 올라온다.
원래 좀비들은 불에 약하다. 그것도 젊은 좀비가 아닌 나이 든 좀비, 그래서 원체 앙상한 몸뚱어리, 기가 막히게 잘 타올랐다.
몸에 수분이 없어 한번 붙으면 꺼질 때까지 탄다. 시너에 적셔지고 불을 당기니 마른 장작이 우스울 정도.
불붙은 좀비들은 버둥대다가 알아서 옆의 다른 좀비에게 불을 옮겼다.
하나 더 던지고!
콰앙!
“하, 생각보다 화력이 강하네.”
예상 밖의 위력. 비행기에서 투하된 네이팜탄.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살아 있는 뱀처럼 요동치는 불의 기운. 마치 전염병처럼 옮겨지고 저절로 번진다. 던전 전체로 번졌다.
활활, 화르르륵.
불길이 치솟는 위력에 반비례해 좀비들의 괴성도 점점 잦아들었다. 죽은 놈들은 셀 수도 없고 도망친 놈들도 엄청 많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순식간에 조용해진 던전 내부.
‘끝났나?’
그런 것 같다. 옥상 밑은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는 잔불과 연기만이 남아 있었다.
운호는 서둘러 밑으로 내려갔다.
“오!”
던전에서 언데드 좀비들을 사냥했다. 그것도 수백 마리를 단숨에 말이다.
그럼 남은 건 뭘까? 당연히 전리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