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56
56화 방송개시
한바탕 열풍이 지나갔고 미오 론티아의 얼굴은 자신의 머리 색깔만큼이나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독특한 연주, 음유 시인들의 다채로운 음색, 노래도 소설만큼이나 충격이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미오는 운호의 질문에 대한 마법적 자문을 시작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어 변환 마법은 가능해요. ‘트랜스 랭귀지’ 아티팩트도 있고. 물론 그대로 번역되진 않아요. 노랫말의 의미가 사람들의 심상에 전달되는 식이죠. 하지만 이건…….”
“하지만? 문제가 있나요?”
“사람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변환이 가능하지만 이 물건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아…….”
그렇다. MP3 플레이어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도 없고 언어 체계도 배우지 않았다. 그냥 저장된 파일을 재생할 뿐, 그래서 인간에게 적용해야 하는 언어 변환 마법이 소용없다.
“그래도 방법은 있어요.”
“어떻게?”
“노랫말을 에론 대륙의 공용어로 번역만 할 수 있다면…….”
“끙.”
번역? 된다. 왜 안 되겠나. 두 차원의 언어를 동시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운호인데.
다만 귀찮을 뿐이다. 소설 번역에 이젠 노랫말 번역까지.
“그렇게만 되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요.”
미오 론티아는 자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수정구를 통한 음악의 전달은 돼요. 같은 식별 인챈트 마법진으로 묶인 수정구가 10개 정도 있어요. 현재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던 거고요.”
“전달 가능한 거리는?”
“손실되지 않고 원음 그대로 전달한다 치면 약 5큐빗정도.”
큐빗, 거리를 표시하는 단위, 1큐빗은 10미터 조금 안 된다. 그럼 45미터에서 50미터 사이.
“시연부터 해 볼까요?”
“네! 해 봐요! 우리.”
그 자리에서 운호의 공용어 번역 작업이 진행되었다. 가사는 MP3 플레이어의 화면에 그대로 나오니 즉시 번역해서 적으면 된다.
운호가 기계를 다루는 모습을 미오 론티아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러나 조금도 이상해하지 않았다. 그는 던전의 기이한 물건을 마음대로 가지고 나오는 신탁자니까!
다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할 수 있지?’
통신 수정구의 활용, 그 발상의 전환, 어찌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그 어떤 마법사들도 그런 식으로 통신구를 활용하는 건 생각 못해 봤을 것이다.
미오가 운호에게 느낀 감정은 경외감이었다. 신탁자로서의 그가 아니라 인간 자체로서 운호.
더불어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이 순간순간 그녀에게 영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창의적인 발상은 마법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7클래스가 멀지 않았어.’
스스로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앙트 시 지탑주가 된 것이 평생에 다시 못 올 행운이었다 여기고 있었다.
운호가 번역한 노랫말은 미오가 룬 문자로 변환해 트랜스 랭귀지 인챈트 마법진에 적용시켰다. 그 과정이 꼬박 5시간 정도.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저녁.
둘은 바로 골드리안 상단으로 갔다.
윌리엄은 상단 핵심 장인들을 이끌고 수도 리안 시로 출발한 지 오래. 남은 사람은 직원들과 카렌, 용병단 몇 명.
시간이 없다. 운호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했다.
“음악이라고… 요? 으흠, 여기서 그게 나온단 말이지… 요?”
카렌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운호를 바라보았다. 음악이라니! 악단을 데려오지도 않았는데.
귀족들이야 개인 저택에 악단을 초청하여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흔한 유희라 하지만 사실 일반 평민, 하층민들과 음악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먹고살기 바쁜데 음악은 무슨!
백작 작위를 받더니 이제 유희에 마음을 두고 있나?
평민들에게도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있긴 하다.
1년에 많아 봐야 고작 두 번? 축제일이나 큰 행사가 벌어질 때 악단을 초청하여 거리 연주를 벌인다. 그러나 큰 감흥은 없다.
그래서 카렌과 상단 직원들, 그리고 용병들은 운호가 수정구 하나씩 손에 쥐여주며 5큐빗의 간격을 유지해 상점가 곳곳으로 흩어지라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작해 볼까요?”
“준비됐어요. 이 메인 수정구는 소리만 전달하고 나머지 아홉 개는 듣는 기능밖에 못하도록 바꿨어요.”
운호는 먼저 미오 론티아가 그려 온 언어 변환 마법진을 책상 위에 깔았다. 진은이 포함된 얇은 금속판. 물론 결정석으로 작동되고.
그리고 그 위에 MP3 플레이어를 놓았다. 앞엔 메인 통신 수정구.
먼저 신나는 노래로!
그러자 땅거미 가득한 앙트 시 상업 지구에서, 앙트 시 시민들은 지금까지 결코 들어 보지 못했던 기묘한 박자 리듬의 ‘음악’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빵집에 온 손님들도.
“이 소리는 뭐야?”
“어…….”
“무슨?”
잡화점의 주인도.
“축제일인가? 한참 남았는데.”
“그러게요. 이건 피리? 북소리도 들리고.”
여관 주점의 취객들도.
“어우야! 내가 술이 많이 취했네.”
“나도,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만 먹을까?”
용병단에서 훈련받던 젊은 용병들도.
“오오오! 뭐야? 이거!”
“야! 안에 들어가 있는 얘들 다 나오라고 해! 희한한 소리가 들린다.”
앙트 시 시민들이 처음 음악을 듣고 느낀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허공에서 노랫말이 울리는 것도 그렇고, 이제껏 접해 보지 못했던 이상한 박자와 리듬도 그렇다.
노래는 그 날 밤이 새도록 울려 퍼졌다.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상업 지구로 몰려왔다.
그리고 음악을 즐긴다! 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날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앙트 시민들과 하층민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10,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시험 방송은 앙트 시 전역을 뒤흔들었다.
3일 정도 지나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통신 수정구에 완전하게 익숙해진 사람들. 취향도 극명하게 나눠졌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 랩뮤직에 흥분하는 사람, 락 스피릿에 취한 이들, 댄스 음악에 미치는 사람들.
물론 음악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
그래서 운호는 중간에 한 번 더 지구에 다녀와야 했다. 에론으로 가지고 온 MP3 플레이어는 USB 재생 기능도 있다.
[성일 USB 메모리 128GB 1,065pt]에 장르별 히트곡 100개씩 담았다. 클래식, 재즈까지 포함해 종류별로 10개, 동일한 곡을 두 개씩 담았으니 모두 합해 20개.두 개씩 담아야 하는 이유는 있다. 앙트 시에서 진행한 사업을 수도 리안 시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거니까.
USB에 든 포인트만 21,300점. 또한 노래가 2,000곡이 넘으니 이번 통신 수정구 라디오 사업을 통해 쓴 포인트는 이래저래 약 30만 점을 넘었다.
하지만 걱정 없다.
[앙트 시민들이 발라드 음악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4,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앙트 시민들이 댄스 음악을 듣고 묵힌 감정을 해소합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4,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또 5만을 찍었다. 지금도 갖가지 명목으로 메시지가 울리며 포인트가 쌓이고 있고.
처음엔 찔러나 보자, 라는 식이었는데 느낌이 온다. 이 라디오 사업은 차원 기여도 점수가 가득 담긴 저수지였다.
에론 대륙으로 온 지 일주일째.
앙트 시 개인 저택에서 운호는 가지고 온 신간 번역 작업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가요 번역도 틈틈이 하면서 말이다.
“어이쿠! 우리 돼지 잘한다, 잘해!”
“냐앙!”
엎드린 운호의 등 위로 올라가 두 발로 번갈아 가며 꾹꾹이를 시전하는 짬타, 그런데 이놈의 힘이 만만치 않다.
어떨 땐 오러 마스터인 운호조차 살짝 아프다
“너 이거 나한테만 해야 해? 지훈이에게도 해 주면 큰일 나!”
“냥?”
조금 쉬었고, 사람들도 수정구에 적응했으니까.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네.”
“냥!”
많은 걸 시도해 볼 생각. 그리고 경험이 쌓이면 차후에 제국에서 활동할 때 소중한 자산이 되어 줄 것이다.
지구에 가서 USB에 음악을 담아 왔던 날, 지훈이를 만나 완성된 극본도 하나 받아 왔다. 50회 분량의 라디오 드라마.
짬타에게 츄르 몇 개 던져 주고 운호는 홀로 상단 본부 윌리엄의 집무실로 갔다. 이곳은 메인 수정구가 있는 곳. 카렌이 황급하게 제지했다.
“쉿! 지금 음악 나가고 있어요.”
“알아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MP3 플레이어 작동을 멈추는 운호.
“아이! 백작님, 지금 뭐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난리 날 텐데.”
“아! 잠시 전하는 말이 있어서.”
“전할 말요?”
통신 수정구 앞에선 조심해야 한다. 이 대화도 여과 없이 전달될 터, 잡음이 들어가지 않으려면 방음 부스도 필요하다.
그 부분은 미오 론티아가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다음에 올 때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해 줘야지.
운호는 통신 수정구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잠시 안내 말씀 있겠습니다.”
카렌은 대체 운호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앙트 시에 살고 계시는 음유 시인들을 매우 좋은 조건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계시거나 과거에 경험이 있으신 분 누구나 괜찮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골드리안 상단으로 와 주십시오.”
아하, 이해했다. 통신 수정구가 가진 원래 기능을 활용한 것인데.
신선하다.
저 방법을 쓰면 하고 싶은 말을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사랑받는 악녀로 사는 법 완결편 3권과 대상인의 망나니 막내아들 단행본이 곧 출간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순간!
‘어머?’
옆에서 운호의 안내 멘트를 듣던 카렌의 머리에서 대앵! 하며 커다란 종이 울렸다.
‘판매 예정인 상품을 저런 식으로 알린다고……?’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래서 카렌의 머릿속에선 통신 수정구를 통해 시도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사람을 모집하는 내용을 수정구를 통해 알릴 수도 있어.’
‘또 신제품 소개를 하는데 저만한 게 없네. 노래 몇 곡 끝나면 중간에 한 번씩 집어넣으면 되잖아!’
‘상품의 가격변화에도 빨리 대응할 수 있고. 재고 상품 떨이할 때도…….’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반면 운호는
[에론 대륙 최초로 방송 광고의 가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10,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이번 사업은 대성공이네.’
몇 번 더 음유 시인 모집 광고를 하고 난 후 운호는 MP3 플레이어를 작동해 곡을 선별했다.
그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전.
“다음 노래는 ‘밤에 쓰는 편지’입니다. 연인에게 전하는 소녀의 감성 깃든 고백을 떠올려 보세요. 그럼 노래 나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멘트 치고 버튼 누르기.
스스로 생각해도 느끼하고 손발이 오그라지지만 참자. 대의를 위해!
보라! 벌써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나!
카렌은 그저 입만 딱 벌렸다. 그녀의 눈엔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면서 멘트를 치는 운호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도 해 보고 싶어!’
역시 에론 대륙 최초의 라디오 DJ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이것도 모조리 포인트로 환산된 것은 물론이고.
*
이야기꾼 음유 시인 네드는 대낮부터 주점에서 하릴없이 술만 먹고 있었다.
한때 앙트 시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네드, 그러나 소설책이 나오자 그 인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골드리안 상단에서 출판된 소설책을 대신 읽어 주는 일로 근근이 먹고는 살았지만 학교가 생기고 사람들이 글을 배우려 하자 이젠 그 일도 점점 없어졌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미.
가수 음유 시인으로 유명한 마들렌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부르는 일이 천직이었던 그녀는 그나마 소설책의 여파를 비껴 나갔는데, 엄청난 후속타가 터졌다. 요 며칠 그녀의 노래를 찾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당연했다. 지금 식당 안에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여자가수의 노래, 그녀로선 흉내 낼 수도 없는 기교와 음색을 지녔으니까.
게다가 이별의 아픔을 담은 서글픈 가사, 음유 시인인 자신조차 가슴이 저릴 정도였다.
“이젠 끝장난 거 같아요. 어떡하죠? 네드?”
“후우, 아무래도 이 도시를 떠야 할 것 같군요. 저 빌어먹을 통신 수정구 때문에라도.”
“하아, 저도 같이 가요.”
“마들렌은 아직…….”
그런데 바로 그때!
음악이 끊기면서 통신 수정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자의 음성.
-아아! 잠시 안내 말씀 있겠습니다.
뭐지?
-앙트 시에 살고 계시는 음유 시인들을 매우 좋은 조건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골드리안 상단으로 와 주십시오.
‘이건…….’
네드와 마들렌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때요? 가 볼까요?”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어요. 가 봅시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는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