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9
09화 보따리 풀고
운호는 곧바로 상단주를 만나러 갔다. 그 전에 카렌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우노야, 정신 바짝 차려! 골드리안 상단주 윌리엄 골든이야. 능구렁이. 이 큰 상단을 도박해서 세웠겠니? 자칫하다간 네 배 속 쓸개까지 홀딱 빼 먹힐 수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래? 으흥, 그러고 보니 우노, 너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달라지긴요!”
우노는 상단주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
“들어 와.”
자! 협상 시작.
상단주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앉아 있는 윌리엄. 아쉬울 것 없는 표정, 그러나 내심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운호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십니까. 견습 용병 우노입니다.”
“어서 오게나, 우노 군. 내 지나가다가 자네 얼굴을 몇 번 봤네. 우리 상단이 자넬 구해 준 건 기억나나? 어느덧 시간이 3년이나…….”
벌써 압력이 들어왔다.
던전에서 구해 주고 일자리도 제공해 주고… 고맙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흘러간 이야기 쭉 늘어놓다가 은혜 운운하며 치고 들어오겠지.
운호는 말을 잘랐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응? 뭐가 그렇게 급한가?”
“시간이 곧 금이죠.”
먼저 일반 본차이나 자기 10개를 순서대로 꺼냈다. 평범한 크기의 접시다.
“호오.”
살짝 삐져나온 감탄사, 그러나 그뿐이다. 윌리엄은 여전히 태연했다.
하지만 그 태연함은 곧 무너질 것이다.
“이건 하급입니다.”
“하급?”
화려한 꽃무늬, 표면에 흐르는 광채 이 하나 나간 데 없는 완벽한 원형의 접시, 그런데 하급이라고?
그러고 보니 저 배낭도 범상치 않다. 저런 스타일의 가방도 본 적이 없는데.
개미 눈곱만큼 약간 동요하는 윌리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슴이 두근두근.
“중급 물건도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이것들보다 더 좋은 게 있단 말인가?”
“네.”
운호는 고급 본차이나 다섯 피스를 꺼냈다. 이건 접시가 아니다. 주전자 하나와 고풍스러운 컵 두 개, 컵 받침 두 개.
자! 반응을 보여 주시죠?
“아!”
나왔다. 윌리엄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마디 탄성.
“…찻잔, 찻잔 세트로군.”
영국풍 본차이나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귀족풍의 물건.
윌리엄은 평정심을 잃었다.
자신의 손에 든 찻잔을 보니 너무 추레해서 그냥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저 세트에 차를 따라 마시면 차 향부터 다를 터, 품격도 올라가고.
“허허.”
말문이 막힌 월리엄. 하지만 운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꺼낸 물건은 최고급 본차이나. 지름이 30센티가 넘는 대형접시 두 개, 그리고 접시 전체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는 찬란한 금빛 문양, 형형색색의 꽃들. 이곳에 벌이라도 날아다닌다면 단번에 내려앉을 것이다.
당연하다. 이 접시는 지구에서도 개당 30만 원 이상 가는 최상품이다.
“……!”
윌리엄은 충격받았다. 이런 물건은 들은 적도 없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나? 왕실에서 사용하는 황금 식기도 이것 앞에서는 초라한 개밥그릇이 될 터.
“이, 이거… 어, 어떻게? 아, 아니, 대체 어디서……?”
떨리는 손으로 운호가 건넨 대형 본차이나 접시를 손으로 쓸어 본다.
이미 눈은 풀렸다. 완벽한 무장해제, 애초에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려고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제발, 제발 말해 주게. 자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지. 이걸 어디서 구했는지만…….”
윌리엄이 운호의 소매를 잡고 매달렸다.
그때!
[식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에론 대륙에 보여 주었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80pt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사용 가능 점수 126pt.]‘오! 벌써?’
점수가 제법 많다. 지구로 따지면 8천만 원짜리 기부점수.
운호는 만족했다. 그럼 좀 더 나아가 볼까?
“상단주님!”
“으, 으응? 어, 흠흠. 마, 말해 보게.”
“이 자기들이 공방에서 생산 가능하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어허헉!”
윌리엄의 입이 딱 벌어진다.
공급이 아니라 생산! 생산! 생산이라니!
“새, 생… 산?”
“물론 제가 가지고 온 물건엔 미치지 못하겠지만 첫술부터 배부를 수 있나요?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언젠간 이것들보다 더 월등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아아아!”
처음엔 살살 구슬려 출처를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예상을 훨씬 벗어난 품질에 놀라고, 지금은 공방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에 완전히 넉다운.
‘정말 사실이라면…….’
윌리엄은 기회가 왔다 싶을 땐 저돌적인 사람이다. 정말 그대로 실현된다면 망설일 이유가 있나?
잡아야 한다. 상단의 미래가 바로 저기 있었다. 뭘 재고 있나? 윌리엄은 상인답게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무엇을 원하나? 조건을 맞춰 보세.”
“전 이 물건의 제작 방법을 제공하겠습니다. 그 외 실제 제작과 상품 유통은 상단에서 전담해 주십시오.”
“제작만 가능하다면야…….”
순간!
[식기 제작과 유통에 대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50pt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사용 가능 점수 176pt.]제안한 것뿐인데? 개꿀이다.
복잡한 과학기술은 설명이 어렵지만 도자기 만드는 방법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에론 대륙에도 손기술 좋은 명장들이 널리고 널렸다. 재료가 뭔지 어떤 방식인지만 알려 주면 자기들 스스로 연구해서 재현해 낼 터.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지분을 나눠야겠지?”
“7 대 3으로 하죠. 당연히 제가 3입니다.”
“호오, 정말인가?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비율을 더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운호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시점에서 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계의 능력과 아이템! 그리고 그걸 온전하게 지구로 가져갈 수 있는 관세!
“그런데 시간이 문제네요. 제작 방법을 정리하는 데 약 20일 정도가 필요하거든요. 더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겠고.”
“그 정도야 무슨 문젠가. 기다리지.”
“또 하나 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운호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천천히 입술을 뗐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강해진다라.”
윌리엄 골든은 운호의 눈에 자신의 눈빛을 맞추며 생각했다.
납득했다. 현재 눈앞에 이 청년은 상인이 아니라 용병이니까. 전사가 무(武)를 추구한다는 건 당연하니까.
“혹시 마법사가 되고 싶은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 집단은 지극히 폐쇄적인 곳이야.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지. 내 최대한 힘을 써 보겠지만…….”
“마법사는 아닙니다.”
“그럼?”
에론 대륙 최고의 무력집단, 마법사. 그러나 운호도 안다. 마법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재능이나 금력, 또는 권력, 이런 거로 비빌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 먼저 마탑에 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적합해야 하고, 돈이나 권력은 차후 문제. 마탑에 가입하지 않은 마법사들은 없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독점.
“제가 원하는 건 ‘오러’입니다.”
“오러? 기사가 되고 싶은 거로군. 그건 충분히 가능하네만.”
“상급의 오러 심법과 체술, 무기술, 스승이 있으면 더 좋고…….”
“문제없네. 그 정도야 돈이면 되지. 이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네.”
오러홀은 심법과 영약이면 단번에 생성된다. 노련한 기사가 도와주면 더 수월하다.
“약속은 문서화시켜 주십시오. 또한 계약은 반드시 마법 계약서로!”
“알겠네. 이런 중차대한 계약에 일반적인 계약으론 성에 안 차지.”
마법사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현 가능성도 적다. 오러! 오러 마스터!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지구로 가면 충분히 통한다.
“그럼 계약 진행하면서 세부 사항을 조율해 볼까나?”
윌리엄은 급했다. 육감으로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앙트 시 최고, 아니 바리안 왕국을 넘어 에론 대륙 최고의 상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윌리엄은 책상 안에서 마법 계약서 한 장을 꺼냈다. 양면이 모두 백지인 최고급 종이로 사파이어 마탑 앙트 지부에서 제작한 ‘상인용 마법 아티팩트’.
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누구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아 시름시름 앓다 죽으니까.
“당장 쓰지!”
“그럴까요?”
윌리엄은 그 즉시 하피 깃펜과 잉크통을 꺼냈다.
그러나 운호는 아직 한 발 남았다.
깃펜은 쳐다보지도 않고 배낭 안에서 곱게 포장된 보급형 만년필 하나를 꺼내는 운호.
“그건……?”
윌리엄은 운호의 행동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건 또 뭘까? 저 가방은 드래곤의 보물 주머니라도 되나?
‘철펜? 아니야. 그거하고는 달라? 아아아, 저 광택은…….’
운호는 천천히 보여 주었다. 사용 방법을 말이다.
딸깍.
뚜껑을 열고 잉크통에 살짝 담가 손가락으로 누르니 쪽 빨려 오는 검은 액체.
“음, 어… 무, 무슨?”
“만년필입니다.”
“마, 만년필?”
홀린 듯 운호가 준 만년필 겉면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보는 윌리엄.
“글씨를 쓰도록 만들어진 건가?”
“네, 시험해 보시죠.”
윌리엄은 책상 안에서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평소 일이 잘 안 풀릴 때 낙서하듯 사용하는 종이.
슥슥슥.
“어허!”
부드럽다. 잘 써진다. 필기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매끄럽다. 게다가 한참 써 내려가도 잉크가 닳지 않는다. 깃펜이라면 이 시점에서 잉크에 한 번 적셔 줘야 하는데.
“이래서 만년필?”
써도 써도 잉크는 마르지 않았다. 손에 착 감기는 몸체는 또 어떻고! 맙소사! 이것도 보물이다.
“만년필, 이거 혹시……?”
“더 있냐고요? 물론이죠. 그것도 다양한 품질로.”
운호는 고급 포장지로 된 만년필을 모두 다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네 개의 보급형, 두 개의 고급형, 그리고 두 개의 명품.
“만년필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합니다. 솜씨 좋은 상인이면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요. 샘플도 여러 개 있으니까 분해해서 연구하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으허허헝!”
웃음 반, 울음 반, 기묘한 소리를 내는 윌리엄 골든.
또 떴다!
‘대박이네.’
* * *
신화 그룹은 주로 유통과 금융, 던전 사업에 특화된 기업이다. 제조업 분야는 거의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생겼다.
신화 길드와 신화 광업이 합작하여 세운 ‘신화 마나 철광산.’
최소 30년 이상 꾸준하게 이익을 남겨 줄 알짜배기 회사다. 최소 매장량 5천만 톤, 노천 광산이라 땅만 파도 광석이 나온다.
4년 전, 우연히 대전의 한 던전 안에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였다.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다. 던전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일이 수포가 되기 때문이다.
던전의 소유자인 오룡 길드 길드장 정운호. 던전 매입을 위해 꽤 비싼 가격을 제시했지만 넘어오지 않았다.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어떡하나? 금액을 파격적으로 올려야 하나? 아니면 권리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합작을 제의할까?
그러던 찰나, 난데없이 오룡 길드의 부길드장이 역제안을 해 왔다. 길드장 정운호를 치워 줄 테니까 자신과 협상을 하자고, 그것도 헐값에 말이다.
그리고 뜻대로 이루어졌다. 오룡 길드 길드장은 죽었고, 소유권은 허영심 많은 미망인에게 넘어갔다.
그 미망인은 부길드장 김경일과 불륜 관계고… 적당한 돈과 명예를 안겨 주고 던전을 인수했다. 말썽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바로 오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채굴 중지… 가처분 신청?”
쫘악!
신화 길드 길드장 신형섭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찢어 버렸다.
“후우… 김경일과 최혜정 그 둘, 제 앞에 데리고 오세요. 지금 당장!”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차디찬 신형섭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