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눈을 떴을 땐…….
“…….”
몬스터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죽은 시체인 것을 확신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몬스터의 산 옆으로 형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흩어졌어.”
또 이 패턴인가.
‘결과적으론 시련을 통과했다는 거겠지.’
주변을 둘러보자 여러 짙은 색으로 뒤죽박죽 이루어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몸은?”
“어? 아. 괜찮은 거 같은데. 기력도 회복됐고.”
“그럼 움직이자.”
“입구는?”
“이제 찾아야 해.”
“여태 안 찾아봤어?”
“몬스터가 또 언제 나올지 몰라서.”
다시 말해,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깨어나기 전까지 지켜 줬다는 건가.
“고마워.”
“…왜…….”
형이 무언갈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리다 기어코 말을 뱉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했잖아.”
최후의 수단. 형이 말하는 건, 탑주의 분신체를 처리하며 썼던 꽃밭 능력일 터였다.
“…충분히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정말 죽을 것 같다 싶을 때 쓰라 한 거였어.”
“아깐 그렇게 말 안 했잖아? 나는 정말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하라는 건 줄 알았지. 그래서 도저히 다른 파훼법이 생각이 안 나길래 사용한 거였고.”
“…앞으로 그 능력 얼마나 사용할 수 있어?”
“글쎄, 이 능력에 대해선 나도 잘 몰라. 죽기 전까지 쓸 수 있겠지, 뭐.”
정말, 이 능력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게 없었다. 푸른 장미를 이용해 능력을 사용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푸른 장미를 꺼내지 않고도 사용이 가능했다. 게다가 능력의 범위가 넓어졌다.
‘뭐가 조건이었던 거지.’
감정? 아니, 내 감정은 똑같았다. 그렇다면 주변 환경?
“잘 모르면서 계속 사용한 거야?”
“효과는 확실하니까.”
“그거, 이제부터라도 사용하지 마.”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사용하지 말라는 건데.”
“만약 수명을 깎아 쓰는 거면 어쩌려고?”
“사용한 이후에 몸은 건강했어.”
“계속 쓰러졌잖아.”
“그건 너무 많은 기력을 흡수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 많은 기력 때문에 몸에 이상이 온 거잖아. 너무 위험해. 지금부터라도 사용하지 마.”
“이게 마석보다 기력을 회복하기 더 좋은데? 그리고 형이 대신 쓰라고 했던 마석도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니잖아.”
“마석은 적어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용했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 하지만 네 능력은 아니잖아.”
“이상이 있든 없든, 사용 여부는 내가 결정해.”
“내 말은, 몸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용하라는 거야. 저번에도 그래. 상처를 계속…….”
형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이 정말 이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는 건지 의문인 말, 쓸모없는 말투성이였으니까.
‘또 뭐가 문제인 거지.’
내가 멀쩡하다는데. 왜 간섭일까.
“형.”
“어?”
“소설의 등장인물이, 꼭 소설에 빙의한 사람을 따르라는 법칙은 없잖아?”
“…뭐?”
생글 웃으며 말하자,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 정도 말을 가지고 충격을 받을 줄이야.’
강하디강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꼴인데, 과연 저런 형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이변의 중심이 약해도 너무 약했다.
아니, 어쩌면 원래 그 정도였던 걸 수도 있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자신의 위치는 빙의자임을 잘 알면서, 왜 저렇게 충격을 받는 걸까.
‘가족을 아낀다 해도, 저 정도면 병인데.’
형이 검을 꽉 쥐며 짓씹듯 물었다.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별 뜻 없어. 근데…….”
나는 형이 꽉 쥐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검날에서 미세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려 형을 바라봤다. 그늘진 얼굴엔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왜, 싸우게?”
“…….”
만약 형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톡 까놓고 말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차라리 거하게 다쳐서……. 아니, 그런다면 더 간섭하려 들 수도 있었다.
‘이참에 간섭도 못 하게 피를 철철 흘릴까.’
오히려 간섭해서 이 꼴이 났다! 이런 식으로.
나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형을 바라봤다. 정말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의, 몸을 낮추고 적을 응시하는 맹수 같았다.
‘뭘 어떻게 하든, 시간은 날리겠네.’
그렇게 싸움이 일어날 것 같던 상황,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가족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죠. 두 분 도대체 언제 화해하실 거예요?”
지화연 씨가 나와 형 사이에 구경하듯 쭈그려 앉아 있었다.
“지화연 씨.”
“네, 접니다. 혹시 타이밍이 안 좋았나요? 이따 끼어들까요?”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타이밍 좋게 잘 끼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저 인간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여기서 싸우는 건 시간과 힘, 둘 다 잃는 꼴이니.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지화연 씨가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 형을 응시했다.
“왜 그렇게 무섭게 서 있으세요?”
형이 잠시 지화연 씨를 응시하다, 그대로 휙, 몸을 돌려 갈 길을 갔다.
“저희도 가죠, 한지언 씨.”
지화연 씨는 우리가 싸웠든 싸우지 않았든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탑을 클리어해야 했기에 앞장선 형을 뒤따랐다.
그렇게 별말 없이 걷던 와중, 지화연 씨가 물었다.
“한지언 씨, 그래서 이번엔 무슨 잘못을 하셨나요?”
“끼어들 생각은 없다면서요?”
“네, 없어요. 그냥 한지운 헌터를 저런 모습으로 만든 게 대단해서 그래요.”
“…하하…….”
떨떠름하게 웃는 내 모습을 잠시 응시하는 듯싶던 지화연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한지언 씨, 많이 달라지셨네요?”
“그런가요?”
“문양 발현을 한 직후에 만났을 당시에는 감정이 꽤 다채로웠던 것 같은데, 요즘엔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회사에서 자주 볼 것 같은 웃음이에요.”
“…그냥 이 일에 익숙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요?”
사실은 지화연 씨의 말이 얼추 맞았다. 문양 발현 직후, 내 감정이 다채로웠다는 거 말이다.
‘그땐 감정이 완벽하게 가라앉은 게 아니었으니…….’
회귀의 기억만 머리에 남은 게 아니었다. 기억이 없던 시절의 감정과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던 때였기에 지화연 씨의 말처럼 그때는 지금보다 감정이 더 다채로웠다. 지금은 그 감정과 기억이 다 가라앉았기에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고.
“아, 입구네요.”
홀로 새하얗게 빛나는 입구였다. 누가봐도 나 입구에요 하는 모습에 형이 곧장 입구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지화연 씨가 예나 지금이나 막무가내라며 중얼거리곤 형을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한지언 씨도 어서 오세요.”
“네.”
마지막으로 내가 입구로 들어가고, 새로운 장소에 들어섰다. 그 직후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지화연 씨였다.
“이번엔 저희밖에 없나 보네요.”
―그래. 너희밖에 없지!
텅. 터더덩. 텅.
각양각색의 구슬이 허공에 생겨났다.
―왜냐하면! 너희는 이번 시련에 당첨된 유일한 것들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시련을 공략 중이려나.
―어서 와, 내 공간에! 나는 꿈을 꾸는 마음의 대리인이야!
솜 인형 같은 모양새의 인간형 대리인이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이했다. 우리 셋은 아무런 말 없이 대리인을 응시했다.
―…이렇게 조용할 줄은 몰랐는데. 반응 좀 하라고!
하필 걸려도 우리 셋인 걸 어쩌냐. 한 명은 속을 모르겠는 무감정 인간에, 한 명은 비즈니스 웃음에 특화된 인간, 한 명은 만사에 흥미라곤 없는 인간이라 미안하네.
―에잇. 설명이나 들어! 이곳에서 너희가 할 일은 간단해! 나를 처치하면 되거든!
“이 구슬들은 뭐지?”
형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이 구슬들은 바로바로, 짠!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이지롱!
대리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온갖 중얼거림이 귀에 흘러들어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거는…….
―이 길로 가서 다행이야.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대리인이 손을 휘두르자, 중얼거림이 뚝 끊겼다.
―이 구슬들에 잠들어 있는 마음들은, 너희가 아는 사람의 것일 수도, 모르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어! 부수든 말든 큰 영향은 없어!
과연 아무런 영향도 없을까.
―아, 정말! 너무 조용하잖아! 몰라, 몰라! 그냥 시작할 거야!
펑! 돌연 대리인이 사라졌다.
잠깐의 침묵 끝에, 지화연 씨가 입을 열었다.
“뭘 어쩌라는 걸까요.”
“글쎄요. 숨바꼭질 같은 거 아닐까요?”
“문제는 어디 숨어 있느냐, 겠네요. 구슬이 괜히 생긴 건 아닐 텐데… 구슬을 부숴야 할까요?”
“그렇―”
말을 끝내기도 전, 쫑긋 세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숙하지도 않고 앳되지도 않은 애매한 목소리. 그건, 분명.
―나는, 형이―
콰장창! 나는 단숨에 형 앞에 생겨난 새하얀 구슬로 달려들어 그것을 낫으로 부서뜨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두 사람이 이유를 물으려던 찰나.
―하하핫!
대리인의 목소리와 함께, 하얀 구슬에서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대로 내 몸속에 스며들었다.
“…컥.”
“한지언 씨?! 이게 무슨……. 한지언 씨!”
“빨리 대리인을―”
형의 말이 끝내 들리지 않았다. 몸속을 휘젓는 고통에 나는 손에 쥔 낫을 떨구었다.
‘함정인 건 알았지만 이런 걸 줄이야.’
하지만 부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건, 내 마음이었으니까. 그것도 하필, 형에 관한 내용의 속마음.
‘망할…….’
시야가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온 것처럼 캄캄해졌다.
♧♣♧
―아하핫!
내 능력은 마음을 침식해 조종하는 능력!
―조금만 더 가면! 이것의 마음도 곧이다!
흥미로운 게 있어서 만들어 뒀을 뿐인데, 그게 바로 효과를 거둘 줄이야!
―난 천재야! 꿈님도 분명 칭찬해 주시겠지!
신이 나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
―응?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마음의 길이 쭉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내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줄이야! 하, 참!
사방이 검었다.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했다. 칭찬받을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린 게 죄다, 죄야.
―하여튼……. 그래도 성과를 냈으니 꿈님이 더 좋은 능력을 주시겠지. 그걸 생각하면 이런 실수쯤이야……. 응?
검은 안개로 된 내 몸이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무언가에 붙잡힌 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무언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뭐지? 하찮은 생명이 제 속에 들어간 나를 인식할 수 있을 리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숨이 콱 막혀 왔다.
―…컥.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저건… 무엇인가.
―어째서, 이딴 몸에…….
나는 죄이는 몸을 겨우 움직여 거대한 무언가를 바라봤다.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 역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뿐인데, 왜, 못 움직이겠는 거지?
―움직여, 멍청아!
그러나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거대한, 검은, 하얀 눈이…….
―나가, 나가야 해!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빨리 움직이라고, 망할 몸뚱어리야!
그 순간, 하얀 눈이 눈을 휘어 웃었다.
―…흐억.
내가 겁에 질렸다. 내가, 하찮은 것의 마음에.
아니,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죽는다. 반드시.
♧♣♧
―죽는, 죽는다아아아!
퍼엉! 대리인이 일순간 막대한 힘을 사용해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한지언이 제 몸에서 튀어나온 검은 안개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죽어, 이, 망할 자식아!”
―어?
콰드드득! 하얗게 빛나는 낫이 검은 안개를 베었다.
―끼아아악!
온몸이 갈려 나가는 고통에 대리인이 비명을 내지르는가 싶다가.
훅. 주변이 암전됐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