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바다로】
이후, 겔탄은 정말 훈련장에 가만히 있었다. 나오지도 않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으며, 아무것도 없는 훈련장에서 몇 날 며칠을 지냈다. 창문마저 작아 바깥을 구경하기도 힘든 훈련장에서. 때로는 훈련장 안을 빙글빙글 돌기도, 때론 가만히 앉아 있기도, 때로는 꼬리로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소란을 피우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난동을 피울 만도 한데.’
몸만 구속 안 했지, 거의 감옥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 감옥에선 시간마다 하는 일이라도 있지, 겔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유주한이 말해 줬다.
유주한은 훈련장 CCTV라도 봤는지, 겔탄의 행동거지에 대해 자세히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알고 있나 의문이었다만, 내 생각에는 그냥 궁금해서 알아본 것 같았다. 유주한은 요릴리아 이후 그런 것들과 접촉한 적이 없으니. 호기심 많은 나이이니 그럴 수 있지.
나는 훈련장의 문을 열었다. 무언가 가벼운 물체가 바스락거리며 문에 밀려 나갔다. 물체를 확인하니 뜯지 않은 과자 봉지였다.
‘…웬 과자?’
고개를 들어 올리자, 사방이 과자 봉지 천지였다. 그 사이에 앉아 있던 겔탄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시선이 닿자 방긋 웃었다.
“웃지 마.”
“왜? 정들어?”
“…….”
주둥이가 멀쩡한 걸로 보아 겔탄은 그다지 변한 게 없는 듯 보였다. 그저, 말을 좀 잘 듣게 됐지.
나는 과자 봉지로 가득한 훈련장엔 들어가지 않고 문틀에 기대어 물었다.
“들어 보니까 잠도 안 자는 것 같은데, 안 지루하냐?”
“지루하지.”
“그런데 용케 가만히 있네.”
“언약했잖아.”
“그래서, 내 탓이다?”
“아니. 언약한 건 나니까.”
“잘 아네.”
나는 천장에 설치된 CCTV를 잠시 바라봤다. 그러곤 벽, 창문, 문틈, 하나하나 세세하게 확인했다.
‘…도청 같은 건 없고.’
확인을 끝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문을 닫았다. 그 모습에 겔탄이 물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저번 대화에서 궁금한 게 생겨서.”
“뭔데?”
“나에 관한 거. 다 말해 봐.”
“되게 뜬금없다!”
“나도 아니까 말해 봐.”
“으음.”
겔탄이 조금 고민하는 듯하다 담백하게 답했다.
“왕을 죽일 수 있는 사람!”
“그거 말고.”
“한지언?”
“누가 이름 물어본 줄 알아?”
“키는 181cm?”
“그걸 왜 알고 있는……. 아니, 그런 정보 말고. 능력에 관한 거 말이야.”
“능력? 아까 말했잖아. 왕을 죽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그 정도는 말해 줄 때도 됐지 않아?”
“음.”
겔탄이 고개를 저었다. 나와 관련된 건 전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왕과 조금이라도 관련되면 말하지 못했다.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그러면―”
툭. 그때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기척에 곧장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린 순간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유아한 씨?”
“아. 한지언 씨, 오래간만이네요.”
의사 가운을 입은 유아한 씨가 자연스레 훈련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째 좀… 피곤해 보였다. S급 헌터라 어지간한 정도로는 피곤을 느끼지 않을 텐데.
유아한 씨가 제 주머니를 뒤지다 휙, 겔탄의 근처로 무언가를 던졌다. 날아가는 물체를 따라 자연스레 시선을 옮긴 나는 곧 물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젤리?”
“당뇨로 병원 들락날락하는 환자한테서 압수한 거예요.”
“그 말은, 여기에 있는 과자 전부 유아한 씨가 가져오신 건가요?”
“네. 병원 곳곳에 숨겨진 과자들 다 찾아다가 여기다 뒀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먹네요.”
겔탄이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너희 음식이랑은 안 맞는다고!”
“편식하지 마.”
“싫어! 너야말로 올 때마다 내려오는 다크서클이나 없애시지!”
유아한 씨가 보기 드물게 혀를 찼다. 나는 그 모습을 모른 체하며 물었다.
“요즘 일이 바쁘신가요?”
“한창 휴가철인데, 세 번째 탑의 영향으로 해변에 몬스터가 자주 출몰해요. 그리고, 휴가철이죠.”
휴가철이란 말을 굳이 두 번이나 한 이유는, 아마 휴가를 즐기려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뜻이겠지. 그게 지속돼서 유아한 씨도 일이 는 것일 테고.
나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힘드시겠네요.”
“제 일이니까 별수 없죠.”
그러며 유아한 씨가 이번에는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걸 겔탄에게 던졌다. 겔탄이 뭔지도 모른 채 일단 받고는 받은 물체를 이리저리매만지며 물었다.
“이게 뭐야? 판?”
직사각형의 얇고 검은 것. 유아한 씨가 겔탄에게 던진 건, 다름 아닌 태블릿이었다.
“저걸 왜 주시는 건가요?”
“불쌍하잖아요.”
그러며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유아한 씨는 그대로 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나가는 유아한 씨를 바라보다 다시 겔탄을 바라보았다. 겔탄이 태블릿을 몇 번 만져 보다가 문득 깨달은 듯 그것을 번쩍 들며 외쳤다.
“알았다! 이거 태블릿 컴퓨터지?!”
“그걸 네가 왜 아는데?”
“우리는 너희 세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으니까! 그러니 언어도 통하지.”
“모양새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우리 세상의 속담이나 말장난 같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 적어도 몇몇 정보는 가지고 있겠구나 싶었다.
처음 태블릿을 만지면서도 겔탄은 능숙하게 이리저리 앱을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웬 OTT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당분간 안 찾아와도 되겠네.’
혹시 계속 버려두면 마음이 바뀔까 봐 와 봤다만, 유아한 씨가 태블릿을 주고 갔으니 그럴 걱정은 없어 보였다. 나는 말없이 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리플 길드 밖으로 나오자 문득 근처에 협회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물론 협회는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서울에 있는 협회는 조금 달랐다.
‘생각해 보니, 감정해야 할 게 있었지.’
서울 협회는 높은 등급의 기술직들이 출근하는 곳이었다. 어차피 시간도 여유가 있겠다, 이 일 저 일 하느라 깜빡했던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걸음을 협회로 옮겼다.
협회에 들어서며 느껴지는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층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바에야 계단을 오르는 게 빠르다. 계단을 타고 10층에 금방 도달했다.
10층. 기술직 중에서도 대장장이들이 있는 곳. 그리고 이곳에는, 저번에 납치될 뻔했던 S급 대장장이가 있었다. 대장장이가 어디에 있나 둘러보고 있는데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반갑게 달려왔다.
“한지언 헌터! 오래간만이에요!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아. 박우윤 헌터. 오래간만이네요.”
첫 번째 탑 이후로 만날 일이 잘 없던 박우윤이었다. 박우윤이 여기 있는 이유? 간단했다. 서울 협회 소속이니까. 직장인이 제 직장에 있는 건 당연했다.
나는 박우윤의 물음에 답했다.
“S급 대장장이를 만나고 싶어서요.”
“아, 그분! 한지언 헌터가 구하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분 지금… 예약이 꽉 차 있으셔서 만나는 건 힘들 텐데…….”
이건 예상외인데.
‘그러고 보니 그랬지. 예전에 친했을 적에, 예약이 줄지를 않아서 미쳐 버리겠다고 했던가. 딱히 갈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나는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별수 없겠네요…….”
“…….”
박우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듯하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제 우선 예약권 드릴게요!”
“네? 아뇨,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협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는 우선권이 아니었다. 큰일을 해야 얻을까 말까 한 우선권일 텐데, 그걸?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따라오세요! 길 안내해 드릴게요!”
그러며 박우윤이 기운차게 걸음을 돌렸다. 웬 횡재인가 싶어서 나는 얌전히 박우윤의 뒤를 따랐다.
걷던 박우윤이 조용히 말했다.
“한지언 헌터랑 있으니까 시선이 굉장히 쏠리네요.”
“하하……. 어.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씨를 붙여서 부르시지 않았나요?”
“앗, 음. 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헌터로 바꾸셨네요.”
“아무래도 협회에서 일하다 보니까 헌터가 더 입에 붙어서요. 그리고 첫 번째 탑에 갔을 때 윤시아 헌터와 같이 있다 보니, 윤시아 헌터가 한지언 헌터라고 부르는 데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아. 윤시아 헌터는 이제 한지언 헌터의 팀이었죠!”
소심했던 박우윤은 어디 가고, 주절주절 말이 끝나지 않는 박우윤이 길을 안내했다. 덕분에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박우윤이 걸음을 멈췄다.
“아! 여기예요!”
예전 화장실과 달리, 멀끔한 외관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없던 문 근처도 지금은 헌터들로 붐볐다.
“…서성이지 말라니까 그새 모여들었네요.”
박우윤이 성큼 나서 헌터들을 물리려 했지만 고집 센 헌터들은 꿋꿋이 서 있었다. 박우윤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다가왔다.
“먼저 들어가 계실래요? 제 이름을 말하면 아마 해 주실 거예요.”
“그러죠.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제 일인걸요.”
박우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 모습이 흡사 당당한 흰머리오목눈이와 닮아 있었다.
나는 박우윤의 말을 따라 작업실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바깥과 달리 조용했다. 안쪽에서 깡깡거리는 소리를 따라 좀 더 걸어간 나는 탁상을 두 번 탁탁 두들겼다. 이어지던 소리가 멎으며, 천막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뭐야. 너냐?”
대장장이가 흐트러진 꽁지머리를 다시 묶으며 다가왔다.
“안 오길래 개좋았는데. 예약하러 온 거면 다른 데 알아봐. 다 찼어. 다음에 와. 한 100년 뒤에.”
나는 다가온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박우윤 헌터 우선권 받았어.”
“…박우윤 헌터 쓰라고 준 우선권을 왜 네가 받냐.”
“준 걸 어떡한담.”
“하……. 그래서, 의뢰할 건?”
“우선은 감정.”
“어떤 건데.”
대장장이의 물음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하얀 날개를 쑤욱 빼냈다. 첫 번째 탑에서 얻은 것이었다.
대장장이에게 날개를 건네자, 대장장이가 날개깃 하나하나를 만지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다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이거 어디서 구했냐?”
“탑에서.”
“탑에서? 어째 탑에서 가져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질이 좋냐.”
“좋은 거야?”
“그냥 좋은 게 아니야. 깃털 하나하나마다 힘이 깃들어 있어. 깃털 하나와 다른 아이템을 조합하면 낙하 예방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좋아.”
“이거째로 만들 수 있는 건?”
“이 정도면… 비행 마석도 가능하겠는데?”
“그 정도라고?”
끽해야 일회용을 생각했거늘. 비행 마석은 예상외의 수익이었다.
비행 마석. 말 그대로 쥐고 있으면 비행을 할 수 있는 마석을 뜻했다. 쉽게 말해 마석에 능력을 부여하는 것과 같았는데, 아이템 재료로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건 재료에 그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비행 능력은 소수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이템 역시 일회용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다회성 비행 마석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날개를 살피던 대장장이가 말했다.
“어. 잠깐만.”
그러곤 깃털 하나를 뽑으려 하자 퉁! 대장장이의 손이 튕겨 나갔다.
“이거 반항이 좀 심한데.”
“…아. 이 날개 주인이 성격이 좀 더러워서.”
“비행 마석은 제작이 가능하긴 한데… 끽해야 세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네. 다른 거 만들래?”
“아니. 세 번 정도면 충분해.”
“그래? 그렇다면야.”
“한 번당 비행시간은 어느 정도지?”
“네 기력에 따라 다를걸. 이 정도 아이템은 마석의 기력으로 못 움직여.”
“괜찮네.”
“그럼 비행 마석으로 제작해?”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장이가 손을 내밀었다.
“S급 마석 두 개. 이번엔 안 통해!”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실소하며 대장장이에게 마석을 건넸다.
뿌듯하게 마석을 받은 대장장이가 메모장에 이것저것 적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나는 문득 떠오른 것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감정 한 번 더 가능해?”
“당연하지. 뭔데?”
나는 인벤토리에서 푸른 장미를 꺼내 들어 그에게 보여 줬다. 변한 뒤에 감정해야 했던 것을 깜빡하고 미뤄 뒀었다. 온 김에 해야지.
대장장이가 장미를 이리저리 살피다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그냥 장민데?”
“그냥 장미라고?”
“왜? 뭔 일이라도 있어?”
“아냐.”
장미의 능력은 감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탑의 보상이니 그럴 수 있겠거니 싶었다.
이후 장미 감정은 특별히 공짜로 해 주겠다는 대장장이와 헤어진 뒤, 나는 훈련을 하려 걸음을 옮겼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