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다음 날. 던전 클리어를 끝낸 뒤 나오자, 유주한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지화연 헌터가 리플 길드에 잠시 와 달라고 했어요.”
“나?”
“네. 형이요.”
“이유는 알아?”
유주한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잠시 침음을 내뱉으며 지화연 씨가 나를 부른 이유를 생각했다.
‘생각해 봤자… 하나밖에 없지.’
리플 길드. 승현 헌터가 있는 곳. 그리고, 다음 탑에 가는 사람은 승현 헌터. 간단히 말해서, 다음 탑에 관한 얘기를 위해 오라는 것일 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주한에게 물었다.
“너는?”
“전 학교 가려고요.”
“지금? 끝날 시간 아니야?”
“아뇨, 아직 몇 교시 남아서 그거라도 들으려고요.”
“열심이네.”
“지금껏 한 게 있으니까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래. 수업 열심히 들어.”
“다들 내일 봬요!”
나는 팀원들과 해산한 뒤 리플 길드로 걸음을 향했다.
본래는 던전을 이리 자주 공략하진 않는데, 탑이 생긴 뒤로 게이트의 수가 급증해 자연스레 하루에 두세 번씩 던전을 공략하게 됐다.
턱. 어느새 리플 길드에 도착했다.
‘응접실로 가야겠지.’
길드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응접실은 정해져 있었다. 보통은 가장 구석진 응접실. 혹시나 싸움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가장 구석진 응접실에서 모인다. 물론 그래 봤자 싸움의 규모가 크면 말짱 헛일이지만.
익숙하게 리플 길드로 들어서자, 왠지 평소와 달리 조금 소란스러웠다. 시장통까지는 아니고 술렁이는 정도. 그러나 술렁임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나는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화연 씨.”
“아. 오셨네요.”
지화연 씨가 로비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보통 높은 등급의 헌터는 응접실로 안내되기 마련인데 로비에 떡하니 앉아 있어 그게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지화연 씨가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나는 다가온 지화연 씨에게 물었다.
“계속 여기 계셨던 건가요?”
“설마요.”
내 등장에 주변이 조금 더 술렁였다.
‘아.’
다른 길드의 길드장이 남의 길드에 와서 프리 헌터를 만나는 꼴이 뭔가 이상했다. 보통 제 길드에서 만날 테니까.
조금 이상한 상황에 나는 지화연 씨에게 물었다.
“저, 승현 헌터는요?”
“승현 헌터요? 일하고 있죠?”
“…그럼 왜 리플 길드에서 만나자고 하신 건가요?”
“아. 따라오세요.”
지화연 씨의 말에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왜 리플 길드에서 지화연 씨가 나를 안내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만, 승현 헌터가 허락한 거겠지.
‘탑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날 부른 이유는 아마 그거겠지.’
현재 리플 길드에 있으며, 나와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겔탄 말이다.
지화연 씨를 따라 걸을수록 예상은 점점 확실해졌다. 가는 길이 익숙했으니까.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겔탄을 보러 가시는 건가요?”
“정확히는 한지언 씨가 보러 가는 거죠.”
“지화연 씨는요?”
“굳이 둘이서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한지언 씨가 가서 할 일은 간단해요. 세 번째 탑에 관한 정보를 물어보는 것. 혹시 불가능하실까요?”
“불가능할 것 같은―”
아니, 전적으로 내 편이 되겠다는 말을 스스로 한 겔탄이었다. 언약까지 했고. 그렇다면…….
“우선은 해 볼게요. 다만 겔탄이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일 것 같아요.”
“어지간해선 하나라도 뭔가 아는 게 있지 않을까요? 없으면 별수 없겠지만.”
툭. 어느새 출입 금지 팻말이 달린 훈련장 앞에 도착했다. 지화연 씨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이윽고 열린 문에 지화연 씨가 들어가라는 듯 웃으며 날 쳐다봤다.
“먼저 응접실에 가 있을 테니, 대화 후에 올라와 주세요. 만약 정보가 없다면 그냥 올라오셔도 돼요. 굳이 캐내려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장 안은 저번과 같았다. 아니, 과자 봉지가 조금 더 추가됐나. 무엇보다 맨바닥에서 태블릿을 보던 겔탄이 좌식 테이블 위에 태블릿을 올려 두고 보고 있었다.
뭔, 올 때마다 뭐가 자꾸 추가돼.
들어올 때부터 날 보던 겔탄이 눈이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어서 와! 오늘은 무슨 일?”
“물어볼 게 있어서.”
“저번과 같은 질문이야?”
“아니.”
겔탄이 테이블 위에 둔 태블릿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 받침대를 두어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네가 내 아들을 넘봐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내 시선이 태블릿을 향해 있다는 걸 눈치챈 겔탄이 말했다.
“같이 볼래?”
“됐어.”
“음, 그랭. 그래서 질문은?”
“세 번째 탑에 관한 정보를 원해.”
“세 번째 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겔탄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그쪽에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지 않아?”
“…무슨 소리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줬다는 뜻인가? 아니면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신서하를 말하는 건가?’
신서하의 능력, 그리고 신서하가 속한 길드의 모든 능력을 이용해 탑에 관한 정보를 유추할 수도 있을 터.
겔탄이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어 말을 바꿨다.
“아! 내가 착각했다.”
“…뭐야.”
겔탄이 멍청하게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세 번째 탑에 관한 건?”
“음……. 나도 잘 몰라.”
“도대체 아는 게 뭐야?”
“타박하지 마.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 인형일 뿐인걸. 애착 인형도 아닌데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 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우리도 새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고.”
“최근에 태어났어? 근데 왜 반말이지?”
“새로 태어난 거라고! 본래 살았던 생이 있거든?! 너보다 나이 많아! 존댓말은 네가 하라구!”
“싫어.”
“나도 싫어!”
“그래서?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가벼운 거라도?”
“음……. 바다?”
“배경이 바다라는 거?”
“응.”
“그건 당연히 알지.”
“그래? 그럼 없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건 너도 알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털듯이 매만졌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었다.
겔탄의 말이 맞았다. 내가 언약에 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적어도 언약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알았으니까. 첫 번째 탑의 주인도 어기지 못한 약속. 그만큼 약속을 단단하게 묶는 게 언약이었다. 완벽한 내 편이 되겠다는 겔탄의 언약이 있으니 저 말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었다.
“그래. 드라마나 마저 봐라.”
“가게?”
고개를 끄덕이자 겔탄이 잘 가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시하고 응접실로 향했다.
‘탑에 관한 정보는 나도 필요한데.’
첫 번째 탑과 두 번째 탑을 클리어하며 만난 보스를 보고, 세 번째 탑에 대한 정보는 얼추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딱 세 가지였다. 보스의 이름, 외형, 공격. 전부 보스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이전엔 탑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래도,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보스였다.
‘크라폰 가이오젠.’
본인을 바다의 왕이라 칭하며 바다를 거느리던 군주. 덕분에 익사를 꽤 했다.
간단히 말해서, 바다의 왕이 세 번째 탑의 주인이었기에 세 번째 탑의 배경이 바다라는 건 나도 알고 있는 정보였다. 결과적으로 새로 얻은 정보는 없었다.
어느새 도착한 응접실 문을 열었다. 응접실 안에는 지화연 씨와 승현 헌터가 있었다. 눈이 마주친 승현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인사했고, 지화연 씨는 고개를 돌려 내게 가운데 소파에 앉으면 된다고 말했다.
지화연 씨의 말에 따라 소파에 앉자, 지화연 씨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뭐 얻으신 정보 있으신가요?”
“아뇨. 없어요. 아무것도 모른다던데요.”
“하나도 모른대요?”
“네. 배경이 바다라는 것만 알려 줬어요. 근데 그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뚝. 태블릿을 두드리던 지화연 씨의 손가락이 멈추고, 마찬가지로 노트북을 두드리던 승현 헌터의 손마저 멈췄다. 그 모습에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나는 곧장 응접실에 들어온 순간부터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잠깐 사이에 무언갈 잘못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문제라는 건데, 역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뭐지?’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그러다 지화연 씨가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곤 다리를 꼬았다. 이윽고 시선이 마주치자, 지화연 씨가 생글 웃으며 물었다.
“아뇨. 배경이 바다라는 게 확실하게 됐으니 물과 관련된 아이템만 챙기면 돼서 준비가 더 순활해졌죠. 저흰 세 번째 탑의 배경이 바다라는 사실을 몰랐으니까요.”
아?
나는 당황한 기색을 조금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분명, 저번에 승현 헌터가 배경이 바다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저는 탑의 외형이 물과 관련되어 있으니 물 능력을 갖춘 헌터를 모집한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탑이 바다에 생겨났으니 바다가 배경일 거라고 대부분이 확실시해서…….”
“워싱턴에 생겨난 탑의 테마는 워싱턴과 관련 없이 게임이었죠. 하늘에 생겨난 탑도 하늘과는 관련이 없었고요. 그렇기에 바다에 생겨났다고 해서 바다와 관련됐다곤 확신할 수 없었을 텐데요?”
“…무엇보다, 바다에서 몬스터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한지언 씨, 그거 아세요?”
“뭘요?”
“저희는 한지언 씨가 세 번째 탑의 배경이 바다라는 사실을 확신했다는 걸로 딱히 한지언 씨를 추궁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저 준비가 순활해졌다고만 말했지. 변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아.
‘멍청한 놈.’
지화연 씨의 시선의 온도가 묘하게 낮아졌다. 깊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의심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건 오롯이 내 잘못이었다. 단 한마디 때문에, 혼자 당황해서 별 변명을 다 했다.
이 상황을 회피해야 했다. 나는 시선을 굴리지 않고 지화연 씨를 응시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또 어찌 변명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자, 지화연 씨가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어차피 한지운 씨가 가르쳐 주신 거겠죠?”
“…예?”
“저번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한지운 씨가 가르쳐 주셨다고. 한지운 씨도 그렇게 말했고요.”
“…….”
형이 말을 지킨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긴장을 풀면 안 됐다.
내가 말을 한 뒤 멈춘 것, 그리고 묘한 시선. 그건 분명 나를 향한 의심이었다. 형이 말했구나 싶었으면 바로 형의 이름이 나와야 했을 터인데 인제야 나온 것. 무엇보다 승현 헌터마저 멈칫한 것.
‘안일했다.’
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알고 있는 보스를 가지고 혼자 확정 짓고 혼자 당연시하며 말해 버렸다. 이 사람들에겐, 당연한 게 아닌데.
나는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의심 안 하시네요?”
“애초에 의심한 적 없는걸요?”
“저도 사람이라 눈치란 게 있어요. 의심하셨잖아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유감스럽네요.”
“예예, 마음대로 의심하세요.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지금도 그냥 혼자 바다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였고요.”
“그럼 이번엔 한지운 씨가 알려 준 게 아니었나요?”
“네. 이번 탑에 대해선 딱히 말 없던데요.”
흐름이 가벼워졌다. 이젠 의심이 귀찮다는 듯 행동한 게 다행히 통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의심의 싹이 도려진 건 아니었다. 단지 평소처럼 가라앉았을 뿐, 그것은 언제 다시 올라와 그 크기를 키워 갈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