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시간의 기억】
휴대폰을 다시 건네자, 박우윤이 돌려받은 휴대폰을 꽉 쥐며 나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곤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것도 모함인 거죠?”
“모함 아니라고 하면요?”
“…그럼…….”
“모함이에요.”
“자세한 조사는 도착해서 하겠다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억울한데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부모님이 납치돼서 구하러 간 거뿐인데.”
“이전에 말했던 거? 이게 그 상황이야?”
“네.”
“보통은… 숨어서 들어가지 않아?”
“형이랑 저 이렇게 둘이서 갔는데 굳이 숨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건 그렇긴 해도, 너무 무모했잖아. 부모님을 인질로 잡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글쎄요.”
“너… 괜찮은 거지?”
“뭐가요?”
“그냥 지금 상황들.”
“모르죠? 상황 자체는 그다지 좋진 않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네요.”
“정말 괜찮은 거야?”
고개를 끄덕였으나 백미러로 보이는 김서영 선배의 눈은 의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나는 당장에 살인죄로 긴급 체포 되는 인간인데, 걱정하는 건 나중으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속 좋은 인간들.’
이제는 지긋지긋한 협회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들이 일제히 렌즈를 들어 올려 나를 찍었다.
‘왜 나일까.’
만만해서일 수도, 가장 먼저 완벽히 떨구어 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형도 같이 가세한 상황에서 나만 뚝 떨어뜨린 건, 아무래도 어딘가 어색했다.
S급은 사람을 죽이기 쉽다. 이런 생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 S급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은 듣기 어려웠다. 있어도 한국과는 접점이 없는 이야기였고. 이유야 간단했다. 정말 죽이지 않았거나, 던전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나.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데 사람을, 그것도 방해될 리 없는 일반인을 헌터들이 죽일 이유는 없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적어도 한국 S급 헌터들 중에는 그런 사이코패스가 없었다. 그러니 살인을 저질렀다는 뉴스도 안 떴고. 그런데 최초로 떴다? 그것도 형제가 쌍으로? 그것보다 좋은 먹잇감이 없는데 나 홀로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걸 보면 저들의 목표는 나였다.
‘다 나왔네.’
저들이 나를 노리는 이유. 왕의 죽음 때 곁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저쪽이 던전과 손을 잡고 있다는 증거들이 많으니, 알아낼 방법이야 많겠고.
나는 계란이나 온갖 것을 던지는 사람들을 지나 협회로 들어왔다. 무언가를 맞지는 않았다. 전부 막혔으니까. 물론 내가 막은 건 아니고, 협회 측에 의해서.
물론 막았으니 욕을 먹겠지만, 안 막아도 욕은 먹었을 거다. 왜 범죄자를 보호해 주냐. 왜 그거 하나 못 지키냐. 이런 식으로.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자 구석구석 설치된 CCTV가 나를 반겼다. 또 여기다. 이번 회차에는 안 오리라 생각하였던 곳.
‘…증거 불충분이라 무혐의로 나가겠지만.’
저들이 노리는 게 이거겠지. 협회도 같이 싸잡아 욕할 수 있으니까. 덤으로 정부도. 증거도 다 나온 마당에 살인마를 사회로 내놓을 것이냐, 일반인을 손쉽게 공격하는 S급을 멀쩡하게 거리를 나돌아다니게 할 것이냐 등, 뭐 그런 거로 말이다. 이럴 때만 S급이지.
‘정보가 너무 부족해.’
대응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연구실에 대한 사진 자료가 있다 한들, 합성이니 조작이니 떠들어 댈 가능성이 크고.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건 자료 조사가 오래 걸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방법 말고 효과적인 건 없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영상에는 영상.’
♧♣♧
내가 무거운 쇠창살로 이루어진 문에서 벗어나는 건 금방이었다. 영상 말고 특별한 증거가 없으니까. 물론 그 금방의 시간 동안, 나에 대한 루머가 퍼졌겠지만 말이다.
기자 회견을 통한 루머 반박? 오히려 역효과만 날 가능성이 컸다. 또 조작이겠거니 하겠지. 차라리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서 쓸어버리는 게 최고였다. 문제는 그걸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거고.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
나는 발아래 밟히는 몬스터를 사뿐히 넘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도 아무것도 없나.
‘내 신세도 참 처량하다, 처량해.’
쇠창살 바깥으로 나온 나는 던전만 뺑뺑 도는 중이었다. 사회의 적이 된 상황에서 거리를 누비기도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엔 인력 낭비고. 그렇기에 정해진 최적의 선택이 던전 돌기였다. 물론 사이비들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던전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구 정도의 크기라면 더욱 찾기 어려울 터. 하물며 던전이 열리는 것도 랜덤이니.
몸을 쭈그려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템을 주웠다.
‘뭐 어쩌겠냐. 그래도 돌아야겠지.’
내 죄다, 내 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밝게 오로라가 펼쳐진 밤하늘 아래, 땅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여기다 뭘 숨겼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있어도 저 소복이 쌓인 눈 밑에 있을 것 같고. 물론 만약 그렇다면 내게 그걸 찾을 능력은 없었다. 그냥 보이는 거나 찾지, 뭐. 반쯤은 유배된 거니까.
푹. 푹.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들어갈 만큼 쌓인 눈을 바라보다가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그냥 여기 사람 있어요 하는 수준으로 발자국이 진하게 남은 상태였다.
어차피 몬스터도 별로 없어서 상관은 없겠지. 뭐, 여기 사이비가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있으면 진즉 도망쳤겠고.
이번 던전을 클리어해도 다음 던전으로 향할 뿐이니 차라리 이번 던전에 오래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시간을 끌고 있는데, 여긴 볼 것도 없었다. 눈, 나무, 오로라. 끝이었다. 그나마 오로라가 볼만했으나 내가 감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금세 관심이 식은 상태였다.
‘최종 보스는 또 어디 있는 거래.’
C급 던전이니 금방 나오리라 생각했던 최종 보스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천천히 걸은 감이 있긴 하다만, 이건 너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슬슬 지루하다고.
툭. 툭. 나는 낫을 어깨에 짊어진 채 잠시 자리에 서서 주변을 바라봤다. 눈을 걷어 봐야 하나? 아니면 나무를 잘라야 하나.
뽀드득.
뒤쪽에서 무언가가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종 보스가 직접 행차했나.’
그렇다기에는 발걸음 소리가 너무 작았다. 뽀드득, 뽀득, 하며 작게 눈이 밟히는 소리를 보아 보통 최종 보스가 거대하다는 인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뭐, 작은 최종 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C급 정도에선 다 거대하지 않았나.
‘어찌 됐건 더 찾아다닐 필요도 없으니…….’
체력 손실은 덜 하겠네, 하며 고개를 돌린 찰나, 발목에 무언가가 닿았다.
갑작스러운 촉감에 순간 놀라 낫을 휘두를 뻔하였으나, 가장 먼저 움직인 시야에 살기 하나 없는 몬스터가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뽀득뽀득 눈을 밟고 다가와 눈 속에 다리가 푹 들어간 상태로 서 있는 존재는, 여우였다. 분홍색의.
여우가 눈을 고이 접어 웃는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내 발목에 비볐다. 체구가 작아서인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털에 눈이 묻어나는 게 훤히 보였다. 안 춥나.
‘…아니.’
나는 여우의 목덜미를 집어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들어올렸다. 여우는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말똥말똥한 눈을 나에게 집중했다.
“…….”
말똥말똥한 눈은, 어디선가 많이 본 호박빛 눈이었다. 여우가 주둥이를 벌리며 소리를 냈다.
―끼야웅.
“…끼야웅 같은 소리 하네.”
제 몸만 한 꼬리를 붕붕 흔드는 꼴에 혈압이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여우를 바라봤다. 분홍색 털만 보고 혹시나 하였는데,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겔탄.”
―끄웅?
여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에 갸웃거리는 것부터가 이미 말을 알아듣는다는 뜻이잖아. 연기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해야지.
내가 팔을 휘적이자 손에 잡힌 여우가 따라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여우가 이렇게 긴가?
“야. 모르는 척하지 말고. 말할 수 있잖아, 너.”
―끄웅, 끄웅.
“10초 준다. 10―”
―이 모습으로 말하는 건 안 어울리잖아. 나름대로 배려를 해 줬거늘, 참.
“너인 걸 아는데 끄웅거리는 게 더 소름 끼치거든?”
―이 모습으로는 당연한 소리 아니야? 봐. 귀엽잖아. 그러니 귀여운 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보통은 못 알아보는 게 정상 아니야?
“헛소리 말고.”
푹.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왜 나타났어. 도망 다니는 거 아니었어?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그랬는데…….
휙. 겔탄이 내 손을 뿌리치고 바닥으로 착지하더니 제 목을 뒷다리로 파바박 긁었다.
―네가 죽였잖아?
“뭘.”
―왕 말이야, 왕.
똘망한 호박빛 눈이 나를 쳐다봤다. 얼마나 크고 맑은지, 눈에 투영되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게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거랑 뭔 상관인데.”
―언약했잖아? 평생 네 편. 왕의 명령이 없는 한. 그 언약을 했을 때의 왕이 죽었으니, 이젠 완전한 네 편이라 볼 수 있지. 지금의 왕과 영혼도 다르고 말이야. 관리자와 비슷해졌지.
“너 강해?”
―아니. 이제 너 같은 모습으로는 못 변해. 말하는 것도 누구의 도움이 있어서 말할 수 있는 거야.
“도움이라니? 널 도와주는 녀석이 있는 거야?”
―아. 끄웅?
“…….”
―농담~ 오늘, 네 앞에 나타난 건 부탁을 받아서 온 거야. 누가 널 만나고 싶어 하거든.
“…날?”
겔탄은 내가 왕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강한 것들은 어지간해선 다 알 테고. 겔탄에게 부탁을 했다는 존재는 겔탄에게 도움을 준 존재일 터.
‘…죽이려고 부르는 거 아니야?’
물론 관리자라면 죽일 확률은 낮아진다만, 그건 모르는 거지.
나는 시선을 조금 내려 겔탄을 바라봤다. 겔탄은 분홍색 털과 달리 검은 다리로 내가 답하길 기다리는 듯, 바닥에 쌓인 눈을 밟고 있었다.
겔탄의 언약이 풀렸을 가능성은? 윤시아가 사라지고 몬스터들이 잠깐 사라졌을 때를 생각하면 모든 게 초기화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누군데.”
겔탄이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곤 휙,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작은 다리로 총총 걸어 속도는 느렸다. 따라오라는 것임을 안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따라가기로 결정지었다.
‘간 큰 놈 얼굴이나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