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코웃음을 쳤다. 이 사람과 몇 번, 훈련차 경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누구와 붙든 선생님을 이길 자는 없다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한 번도 선생님을 이기지 못한 것도 있고, 선생님이 보여 준 강함도 이유가 됐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왕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오늘 다시 본 선생님은 왕만큼이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날 도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졌지만, 이분이라면 날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욕망이 계속 올라왔다. 선생님에게는 동족을 살해하라는 것과 같은 부탁일 수 있겠지만, 제자가 원하는데 한 번쯤은, 이라는 욕망이 계속 튀어 올랐다. 나도 별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선생님은, 나약하지 않으세요. 군주들보다 훨씬 강하시니까요.”
―그런 나약함이 아니다.
째깍째깍. 시계의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시끄러웠나 느낄 정도로 소리가 꽤 컸다.
―관리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그냥, 공간을 지배하고, 싸움을 싫어하거나 하지 못하는 종족이라고 들었어요.”
선생님의 긴 속눈썹이 아래 내려앉았다. 날 내려다보는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불쑥 손이 올라와 내 머리 위로 다시 안착했다. 그러곤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머리칼을 매만졌다.
―나는, 싸움이 불가한 존재다. 정확히는 살(殺)이 금지된 자다. 내가 나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부터 그런 존재였으니, 그래서 나약하다는 거다.
“살인을 할 수 없는 거면, 그 직전까지 내몰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동족의 길을 보는 이로서, 동족을 지켜보는 이로서, 동족에게 해악이 되는 모든 행동이 금해진 것이지.
그 말에 문득, 어느 한 생각이 떠올랐다.
동족. 선생님의 동족은 몬스터이다. 그리고 몬스터는, 내가 처리해야 할 존재이고. 하나 선생님은 몬스터를 처리하는 내게 힘을 다루는 법을 알려 줬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렇기에 너를 돕는 것은 섭리에 어긋났다. 그래서 몸이 아스러지려 했지. 그 탓에 여태 만나지 못한 거다. 너도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않으냐. 회복 좀 하느라 만나지 못한 건데 제자라는 놈은 원망이나 하고.
“…아무것도 설명 안 해 주셨잖아요.”
―모든 설명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어림도 없다. 퍼즐의 그림이 무엇인지 알려면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야 하듯 지식도 그러한 거다.
“전, 제가 잘못을 저질러서… 미워지셔서 그러신 줄 알았어요.”
―그것도 없잖아 있지.
“…….”
―뭐, 누구나 실수는 하니까. 그래서, 의문은 좀 풀렸더냐.
“의문은 애초에 없었어요. 선생님의 뜻이겠거니 했죠.”
―그래서 문제다. 모든 걸 그냥 내려놓은 거나 다를 바 없잖냐.
“때로는 의문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 법이죠.”
―무슨 늙은이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얼마 살지도 않은 녀석이.
“저희 쪽으로 따지면 엄청 산 거예요, 저.”
―나한텐 아직도 꼬맹이다.
“유감이네요.”
…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동족에게 피해가 갈 것을 알면서 날 도운 것인지. 왜 동족을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길을 택한 것인지.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날 도왔던 건 정말 단순히 내가 불쌍해서였던 건지.
그러나 입은 열지 않았다. 물어도, 답해 줄 것 같진 않았으니까.
내 편이라고 확신하고 싶지만, 결국 선생님도 적군의 편이었다.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도 세상이 선생님을 던전의 편이라고 묶어 둔 거나 다름없었으니. 선생님이 살려면, 내가 선생님을 포기하여야 했다. 난 결국 싸워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묻지 않았다.
난 던전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던전이 없어지면 높은 확률로 선생님도 소멸한다. 그런데 내가, 무슨 이유든 선생님이 나를 도운 이유를 듣게 된다면, 던전을 없앨 마음이 식어 버릴지도 모를 거 같았다.
선생님은 그만큼, 내게 거대한 존재였다.
―이제 정말 시간이 다 되었다.
“도대체 무슨 시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와 있을 수 있는 적정 시간 말이다.
“…그럼 이번 회차에서는 이제 끝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선생님이 제 어깨에 올라타 있던 겔탄을 툭툭 쳤다. 그러자 겔탄이 하품을 하며 내 머리 위로 올라오더니 똬리를 틀어 버렸다. 내 머리 위는 둥지가 아니야.
―그 애를 데리고 가라. 그 애가 필요할 때 문을 열어 줄 테니까.
필요할 때라는 말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곧장 물었다.
“그럼 맨날―”
―열 번. 그 위로는 불가능해.
“…….”
―정말 필요할 때만 와라.
“…꼭 얘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
“거짓말.”
―거짓말 아니니고, 불쌍하기도 하니 데리고 다녀라.
“…….”
툭. 툭. 위에 있는 겔탄이 꼬리를 흔들어 내 머리를 쳤다.
“아무리 그래도 얘는 너무 눈에 띄잖아요. 저희 세상에는 분홍색 여우 같은 거 없어요. 몬스터를 들고 다니는 짝인데, 저는 소환수 능력도 없고.”
―새로운 능력이라 하면 되잖냐.
“통하겠어요?”
―통하지.
“…안 통해요.”
―사실 딱히 상관없다. 그 아이는 네 그림자에서 살 테니까.
“…얘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어요?”
―내가 주었다.
“도대체 얘가 뭐라고…….”
―친하게 지내라. 도움은 될 거다. 똑똑한 녀석이니.
목덜미에 털 감촉이 느껴졌다. 겔탄이 어느새 어깨로 내려와 목을 빙 두르고 있었다. 무거워. 비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어떤 때예요?”
―글쎄다. 그건 네 생각에 달렸지.
“그러면―”
―시간이 되었대도. 자꾸 시간 끌지 마라. 티 난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거잖아요.”
―열 번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때 말해라.
“…그러죠, 뭐.”
퉁.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까 있었던 설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 있었다.
“가 볼게요.”
―그래. 이번엔 성공해라.
나는 대답 대신 웃음을 보이며 통로 너머로 향했다. 자박이는 눈을 밟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통로가 굳게 닫혀 시계가 가득했던 방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사라진 통로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겔탄. 넌 언제부터 선생님을 알고 있었던 거야?”
―응? 아. 나도 얼마 안 됐어. 말했다시피 도움을 받았던 거뿐이니까.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데.”
―보다시피 왕이 죽은 뒤로 난 더 이상 너희 같은 모습을 할 수 없게 됐어. 왕의 능력으로 유지하던 모습이었으니까. 이 모습으로는 딱히 강한 능력도 내지 못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보니 눈앞에 새로운 길이 나 있지 뭐야. 그래서 갔더니 저 시계가 있었고.
“시계?”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 시계라 불렀어. 시계 많잖아.
꼭 개미핥기 같은 작명법이로군.
…아까 대화할 때는 신경 쓰지 않던 겔탄이 인제야 신경이 쓰였다.
선생님이야 내가 회귀하는 걸 처음부터 알고 계셨으니 대화가 막힘없이 흘렀지만, 겔탄은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터. 이 녀석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수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어.”
―뭘?
“나.”
―너에 대해?
“어.”
―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정도?
“다 알고 있네. …선생님이 알려 주신 건가.”
―아니?
“…그럼 어떻게 아는데.”
―우연히 봤거든.
“봤다니?”
―시계의 방에서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되게 낡은 시계가 있어서 건드려 봤더니 웬걸, 무슨 이상한 기억이 들어왔어.
“이상한 기억?”
―뭐겠어. 네 기억이지.
“그래서 알게 됐다 이 말인가.”
그리고 그게, 선생님이 관리하는 공간이라는 건가.
…어째서 거기에 내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은, 그리고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곳은 몬스터의 땅인데. 왜 몬스터도 아닌 반대편 적군의 것이 선생님에게 있는 거지. 선생님은 대체…….
됐다. 의문을 가져 봤자 스트레스만 쌓인다. 어차피 모르는 거 그냥 잊는 게 낫다. 그저 선생님은 대단한 존재니까, 그 정도 능력이 있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자. 그런 존재이니 가엾은 존재를 거두는 것도 어쩌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거겠지.
“근데 왜 하필 너냐.”
―내가 뭐 어때서? 귀엽잖아.
“헛소리 말고. 애초에 너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잖아.”
―어떻게 해야 네 마음에 들 수 있는데? 나 뭐든 준비됐어.
“나 대신 싸워 줄 정도로 강해져 봐, 그럼.”
―그건 좀 힘들지도? 아니, 근데 이렇게 귀여운 존재한테 어떻게 싸움을 시키려 들 수가 있어?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하지만 귀엽잖아. 봐 봐. 너희 세상에서도 사람을 홀리는 존재라면서.
“그건 말이 안 통하는 동물일 때의 이야기고. 말이 통하는 데다가 이상한 헛소리만 줄줄이 읊는데 귀엽다고 느끼겠냐?”
―그건 모르지. 나중에 봐라. 내가 너보다 더 인기 있을 거다!
“헛소리 그만하고, 네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게 한번 할 수 있는 걸 말해 봐.”
―음……. 잠입 수사?
“그건 내가 해도 되는 거잖아.”
―심부름?
“시킬 것도 없는데.”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해.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진짜 너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