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둘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조각난 대리인 중 한 명이니, 또 조각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면 과거에 죽은 옛 연인의 형상일 필요가…….’
…아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만약 둘 다 메리라는 가정을 한다면, 맨 처음 만났을 때 제 옆에 있던 저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자기 자신이니 그런 걸 터.’
대리인의 인생을 택하면서 과거를 버려 분리된 걸 수도 있었다.
아니, 버렸다기에는 애지중지하지 않았나.
‘…지금 상황에선 불필요한 생각이려나.’
쾅! 어느새 싸움에 가세한 유아한 씨와 데이비드가 저 멀리서 나뒹굴었다. 곧이어 화염이 거대해지고, 나를 뒤덮으려 들었다. 화염에 휩쓸리는 내게 다른 사람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화염엔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어쩌면 다가오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그렇다고 안 다가올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번번이 기사의 공격에 저지되었다.
거대한 검이 나를 향해 내리쳐졌다. 곧장 막으려 팔을 움직이려던 순간.
“아.”
류천화 씨가 한쪽 팔이 안 움직인다고 말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기사의 화염에 장시간 노출된 두 팔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쥔 낫도 바닥에 박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대한 검이 머리에 닿으려는 찰나, 검은 대검이 기사의 검을 가로막았다. 뒤에서 몸을 받쳐 준 형이 말했다.
“…탑에서 나가 있는 동안, 잠시 생각을 해 봤어. 너는 이곳 능력이 내게 통하니 위험해서 나를 내보내는 거라고 했었지. 내겐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어찌 그리 정확히 알고 있는지, 온통 의문투성이였어.”
“탑의 주인이 말해 줬다고 했잖아.”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그러냐.
“네가 헌터가 된 이후로 줄곧 궁금한 게 많아. 그리고 지금도 많아지고 있지. 묻고 싶은 게 많아졌어.”
텅! 기사가 밀려났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을게.”
“…궁금하다며?”
“그럼 반대로, 너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아니.”
“하지만 너는 묻지 않잖아. 처음부터 빙의했다는 이유로, 그저 형이기에, 굳이 묻지 않았잖아.”
…꼭 그런 이유는 아닌데. 내가 형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건 단순히 이 회차의 시작점에서 빙의한 형이 회귀 전 일을 알 리가 없으니 뭘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없어 그런 거였다. 소설의 내용은 궁금하긴 하다만 한편으론 또 알고 싶지 않아서 묻지 않은 거고.
…그래도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니 부정은 하지 말아야지.
“그러니, 안 물어볼게.”
“…….”
“모든 게 끝나는 시점에 서로 얘기해 주기로 하자. 그건 괜찮지?”
“…마음대로 하든가.”
그 끝나는 시점은 웬만해선 오지 않을 테니.
형이 기사와 싸우는 틈을 타, 유아한 씨가 나를 빼내 상태를 확인했다.
“마비네요. 그리 심하지 않아서 곧 풀릴 것 같긴 한데… 그 곧이 현 상황에선 좀 길 것 같아요.”
그러며 유아한 씨는 해독제를 뿌리고 화염에 그슬린 피부를 치료했다.
팔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내가 곧장 다시 근원으로 가려 하자 유아한 씨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다 안 나으셨어요. 근데 어딜 가려고요.”
“…근원을 부술 수 있는 건 저뿐이잖아요.”
“그렇다고 당장 부숴야 하는 건 아녜요. 아직 싸울 수 있는 사람도 많으니,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어요.”
“시간을 너무 끌면 다음 층을 클리어하는 게 힘들어질 거예요.”
“그건 맞지만……. 알았어요. 아까처럼 무리만 하지 마세요.”
“노력해 봐야죠.”
고개를 돌려 기사를 바라봤다. 형과 지화연 씨가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지만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 상태.
‘지금까지 관찰한 바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니, 강희민과 마허윤을 이용해 발을 묶는 건… 이제 안 통할 테고.’
남은 희망은…….
나는 기사와 멀찍이 떨어진 것들을 바라봤다. 초록 머리 대리인과 아이였다.
‘형체는 뚜렷해졌다만… 상태는 그대로이니.’
너무 많은 걸 바랐나.
‘그래도 하나 추측할 수 있는 건.’
저 대리인은, 자신을 기사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를 공격하는 저 기사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는 그런 기사 말이다. 다만, 대리인이 되면서 꿈을 잃은 것 같은데.
‘과거에 꿈을 얘기할 때, 그 꿈만 쏙 뺀 것처럼 안 들렸었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걸음을 옮겼다.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 아닌, 대리인에게로. 이윽고 나는 대리인에게 다다라 입을 열었다.
“꿈을 이뤘는데, 어째서 그렇게 방황하는 거지?”
―아니, 이건… 내가 바란 게 아니야.
“네가 바란 게 뭐였는데.”
―내가… 바랐던 건… 소중한 걸 지키는 그런…….
“그럼 지금이라도 바뀌어 봐.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아니, 너무 늦었―
“메리!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아! 깨달았을 때 바뀌면 되는 거니까! 너무 멀리 왔다고 해도, 다시 바뀌면 되는 거잖아! 바뀌는 데에 시간이 들어도, 바뀌고 있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아이의 몸이 아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키고 싶은 것을 지금이라도 지키자.”
―그런 건 이제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왜 없어.”
아이의 하반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 있잖아.”
―아니야. 사라지고 있어. 없어지고 있다고.
“되찾고 있는 거잖아. 꿈은 원래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으니까.”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지켜 내자. 잃은 꿈을 다시 이뤄 내자.”
―…내가, 할 수―
“할 수 있어. 그야 넌, 꿈을 잃을까 봐 소중히 보관했잖아. 그만큼, 꿈에 대한 진심은 아직 남아 있잖아.”
―…….
“넌 너니까. 너대로 해.”
마지막 말이 끝나고, 아이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진 아이의 모습에 대리인이 잠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한 모습을 보였네.
“뭐든 고민이 없는 생명은 없으니까, 그럴 수 있지.”
―…나는, 꿈을 이루고 싶은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
“뭐를?”
―내가 정말 할 수 있을지.
“…진짜 질기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
―…그래. 역시 그렇지.
대리인의 손에 거대한 검이 쥐어졌다. 우리를 공격하기사가 든 것과 같은 검이었다.
―…도움은 주겠으나, 나 역시 저걸 이기긴 어려워.
“발을 묶을 순 있고?”
―잘 모르겠어. 난 단순 조각이니. 다만, 그래도…….
대리인이 입고 있던 망토의 모습이 변했다. 조각이 빠져나와 기사의 형체를 잃은 저것과 달리, 완벽한 기사의 모습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이 꿈을, 기사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낼 거야. 그것이 배신의 길이라 하더라도.
대리인이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의 형체를 잃은 것이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곧장 대리인에게 달려들었다.
‘지금이 기회다.’
자리를 박차 근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나를 예의 주시 하고 있던 것인지, 근원에 닿기 직전 내 앞에 거대한 화염 벽이 생겨났다. 뛰어넘기에는 불이 더 솟구칠 수도 있었다.
그걸 예측했음에도, 나는 몸을 던졌다.
화염 벽 위에 몸이 다다르자, 예상대로 불이 더욱 높이 솟구쳤다. 몸에 불이 붙기 직전, 꾸드득, 높이 솟아오른 나무가 내 몸을 보호하며 대신 타올랐다.
곧장 나무를 박차고 화염 벽 너머로 향했다. 무수히 많이 자라난 근원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향해 소리치듯 파드득 가시를 돋쳤다.
나는 가시에 몸이 베이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에 생겨난 낫을 쥐었다. 이윽고, 낫이 하얗게 빛났다.
“결국, 누군가가 지켜 주는 게 아닌 이상 아무것도 못 하나 보네.”
스걱. 휘두른 낫에서 하얀 기가 뻗어 나가, 근원을 무너뜨렸다.
―끄아아악!
화염 벽이 무너져 내리며 소리친 것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사였던 것이 제각기 다른 형체들로 분리되며 불에 타 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초록 머리 대리인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담당하고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그 속도는 느렸지만, 그렇다고 불에 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
근원이 무너진 자리. 그리 크지 않은 구멍이 생겨났다. 아마 다음 층으로 가는 입구인 듯한데.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 순간 들려온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에 뒤로 돌자, 불에 타고 있는 몬스터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입구! 입구로 가야 해! 난 안 죽을 거야!
내 바로 밑에 생겨난 입구로 빠져나가려 달려드는 것인 듯했다.
“빨리 모여요! 몬스터들이 몰려오기 전에 가야 해요!”
내 말에 모두가 모였지만, 비슷한 속도로 모여드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초록 머리 대리인이 외쳤다.
―이곳의 것들이 다음 층으로 가면 안 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구멍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쳐 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몬스터를 처리했으나, 몬스터들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도중에 불에 타 없어지는 몬스터도 많았지만 불에 타기 전에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몬스터들이 훨씬 많았다.
쿠르릉! 초록 머리 대리인의 검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밀려나고 죽었다.
―가!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몬스터들의 행동으로 보아 다음 층으로 가면 불에 타는 게 멈추는 듯했다. 그렇다면 초록 머리 대리인도 다음 층으로 가는 게 살길일 터.
“차라리 너 먼저 들어―”
―기사로서, 난 이곳에서 죽을 거야. 그러니 가! 이곳의 대리인으로서, 책임지고 이곳을 끝내고 싶으니까.
“…그래.”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인솔해 다음 층으로 보냈다. 마지막으로 나까지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갑옷은 으스러지고, 길었던 머리는 불에 타 짧아졌다. 그런데도 초록 머리 대리인은 계속해서 몬스터를 막아 냈다. 꿈을 지켜 냈다. 그 모습은 어느 기사보다 기사다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 역시 다음 층으로 향했다.
♧♣♧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기척도, 그 어느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거라곤, 바람이 부는 소리와 감각.
눈이 떠졌다. 느껴졌던 대로 바람이 꽤 세게 불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여기는…….’
왠지 익숙했다. 높이 솟아오른 건물. 풍경을 꾸미는 조명. 그 어느 것 하나 뜨지 않은 검은 하늘.
옥상인 듯한 주변 모습에 걸음을 옮겨 바닥의 끝으로 향했다. 훤히 보이는 아래를 살피자.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검은 것들이 북적이며 움직이고, 차로 추정되는 것이 도로를 지났다. 대충 봐도 확실했다. 여기는, 전에 클리어했던 미래 도시 풍경의 던전이었다.
‘…왜 여기로 온 거지?’
이미 클리어한 던전이니 없어졌어야 할 터인데, 그대로 다시 가져온 건가?
“일단 내려가 봐야겠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서둘러서 사람들을 찾아야 했다. 혼자는 아무래도 위험할 테니까. A급 사람들도 있고.
가뿐히 옥상에서 내려왔다. 컴컴한 골목은 여전했다.
‘비슷한 모습일까 싶었지만, 이건 너무 똑같은데.’
골목 밖에서 지나가는 것들은 예전에 보았던 것들과 똑같았으며, 현재 내가 위치한 골목 역시 익숙했다.
‘여기서는 뭘 해야 하는 거지.’
슬슬 대리인이 나타날 때도 된 것 같은데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벽을 건드리면 글이 생길까 싶어 건드려 봤지만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
‘뭘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사람들부터 찾아야겠다.’
그렇게 한 걸음, 검은 것들에 끼어 이동하려던 찰나.
“오래간만이네.”
휙. 고개를 돌렸다. 아득히 검은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아직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 특유의 목소리가 있었으니.
“예전이랑 비슷한 상황이네. 그렇지?”
“…글쎄.”
골목 안쪽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회분홍색 머리카락과 꼬리. 검은 수면 안대.
겔탄이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