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5화
메이와 클로드는 할 말을 잃고 사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이는 얄밉게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는 클로드를 보면서도 사랑스럽다는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라가 무서웠다.
클로드는 자신이 이토록 울며 격렬하게 거부하는데도 태연한 사라의 태도가 놀라웠다.
사라가 지금 클로드를 입에 넣고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메이와 클로드가 저도 모르게 서로에게 더욱 바짝 붙던 순간이었다.
“클로드!”
저 멀리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뛰어오는 여러 사람의 묵직한 구두 굽 소리가 요란하게 복도를 울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클로드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공작님께서 오십니다.”
순식간에 사용인들 사이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클로드의 방을 깔끔하게 만들어 놓는 것에 집중했다.
“어, 어떡해……!”
“클로드 님, 일단 진정하시고……!”
“메이! 어서 나 좀 어떻게 해 줘! 빨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그 순간부터 클로드는 안절부절못하며 헝클어진 머리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만졌다.
눈물 자국이 그득한 얼굴을 이불을 끌어다 벅벅 닦고, 주름진 옷을 쭉쭉 잡아당기며 주름을 펴 보려 애썼다.
갑자기 부산스럽게 제 모습을 점검하는 클로드를 보던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이의 눈에 당혹감과 동시에 희미한 두려움이 스쳤다.
클로드는 유모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클로드가 지금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거구나.’
아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아직 부모의 사랑을 바라고, 그걸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는 건 그녀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클로드 암브로시아!”
공작의 목소리는 이제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사라는 새하얗게 질린 채 굳어 버린 클로드 옆에서 같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메이의 옷자락을 잡고 슬쩍 뒤로 밀어냈다.
“뭐, 뭐 하는 거야? 유모는 저리 가! 필요 없어!”
클로드는 사라를 경계하며 바락 소리를 질렀다.
마치 아기 고양이가 경계하며 하악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를 유모라고 부르는 클로드의 모습에 사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고개를 숙여 클로드와 눈을 마주한 사라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어떻게?”
“공작님이 오시기 전에 클로드 님을 말끔하게 만들어 줄게요. 물론,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하고요.”
“정말?”
사라의 말에 아이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눈물로 짓무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물론이죠. 다만 조건이 있어요.”
“뭔데?”
사라는 뒤를 돌아 가만히 서 있던 사용인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사용인들은 지척까지 다가온 공작을 막기 위해 우르르 방 밖으로 나갔다.
아주 약간의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요. 클로드 님이 날 유모로 받아 주기만 하면 된답니다.”
“…….”
클로드는 잠시 멈칫하며 망설였다.
고집을 꺾는다는 건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공작님, 오셨습니까?”
“비켜, 클로드를 봐야겠다.”
“아, 안에 계십니다. 그보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시다고…….”
방 밖에선 사용인들이 시간을 끌기 위해 억지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클로드는 여유를 잃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할게! 빨리 날 깨끗하게 해 줘. 아버지가 날 더 미워하시면 어떡해!”
“……공작님이 클로드 님을 왜 미워하시겠어요.”
“그걸 유모가 어떻게 알아!”
클로드는 울먹이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단호한 불신을 보며 사라는 먹먹하게 웃었다.
그러곤 아이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마력을 불어 넣었다.
청색의 마력이 클로드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 어어!”
아까 방문을 날려 버릴 때와 비슷한 상황에 메이가 당황한 듯 작게 비명을 질렀다.
‘설마 내가 이번엔 클로드를 날려 버리기라도 할까 봐?’
사라는 순간 어이가 없어 황당한 시선으로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가 모시는 주군이라고 클로드 걱정을 하긴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사라는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클로드의 방 안으로 암브로시아 공작이 들이닥쳤다.
“클로드!”
거친 숨, 흐트러진 머리카락, 두어 개 풀어 헤친 앞 단추 사이로 보이는 쇄골. 다급한 표정,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제복.
평소 굉장히 이성적이고 온화하여 쉽게 흥분하지 않기로 유명한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
그런 공작이 이토록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용인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찬란한 백금발의 머리칼을 흩날리는 공작의 눈부신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클로드는?”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급히 클로드부터 찾았다.
정처 없이 방 안을 맴돌던 시선이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클로드를 발견했다.
군청색 눈동자에 단정한 차림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긴 클로드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누가 보아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거친 숨으로 들썩이던 공작의 가슴이 안심한 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훅하고 꺼졌다.
“하……. 다친 곳은 없구나.”
그는 땀으로 젖은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암브로시아 공작은 뒤늦게 사라를 발견했는지 작게 탄식했다.
지금 이 방에서 클로드가 누구와 함께였는지 이제야 떠올린 눈치였다.
“밀런 소백작.”
암브로시아 공작은 흐트러진 제복을 대충 정리한 뒤에야 사라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에단 암브로시아입니다. 이렇게 뒤늦게 인사를 청하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그는 정중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하며 곧은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어머나.”
사라는 순간 안타까움에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탄성을 내질렀다.
‘디엘린은 저 암브로시아 공작을 두고 왜…….’
저 얼굴에 눈이 안 돌아간 것이 용했다.
박혜연과 사라 밀런의 삶을 모두 더해도 저만한 미남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사라는 새삼 제 친우의 사랑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라 밀런입니다. 이미 클로드 님이 열렬하게 환영을 해 주신 덕에 무례는 잊었답니다.”
“그렇습니까?”
에단 암브로시아의 미심쩍은 시선이 클로드에게로 가닿았다.
그 시선에는 마치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다고 쓰여 있는 듯했다.
그런 아버지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았을까.
클로드는 긴장으로 움찔 몸을 떨었다.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던 아이는 슬금슬금 움직여 사라의 등 뒤에 제 얼굴을 숨겼다.
‘얼굴만 숨긴다고 저 몸이 다 숨겨지나?’
사라는 클로드의 귀여운 행동에 잠시 숨을 참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성을 잃고 클로드를 끌어안고 뺨을 비빌 것 같았다.
“그럼요, 클로드 님이 이토록 의젓하시니 앞으로 굉장히 즐거워질 것 같아요.”
“다행이군요.”
에단 암브로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릎을 살짝 굽혀 클로드와 시선을 마주하려 했다.
그러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꼼 내밀고 공작을 마주 보았다.
“잘했다, 클로드. 오늘처럼 네가 암브로시아의 후계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이제 의젓하게 굴 줄도 알아야지.”
“……네, 아버지.”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칭찬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클로드의 두 뺨에 빨간 홍조가 예쁘게 올라왔다.
사라의 마법으로 갈아입혀진 옷자락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칭찬이 퍽 기쁜 것이다.
“저 방문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방문이요?”
“예. 폭발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에단 암브로시아는 그때 느낀 섬뜩함을 떠올리며 목 뒤를 쓸어내렸다.
기사단으로부터 저택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감지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그는 급히 마차의 방향을 틀어 돌아가고 있었던 참이었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아 저택에 도착할 때쯤에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클로드의 방에서 유리창을 깨고 날아가는 방문을.
체면도 예법도 그 순간만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미친 듯이 달렸다.
전날 울다 지쳐 잠든 클로드의 얼굴을 수도 없이 생각하며 말이다.
“그게…….”
사라는 곤란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마법사인 사라가 곤란해할 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