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5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65화
* * *
사라는 서둘러 스테니아 홀에 들어섰다. 수상한 인물이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홀에는 파티를 즐기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귀족들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황궁의 모든 문과 스테니아 홀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길목이 황실 기사단에 의해 막혔지만 눈치챈 자들은 없었다.
황제가 자리한 파티에서 먼저 자리를 뜨고 싶은 귀족은 없었으니 말이다.
‘황실의 보안이 뚫렸다는 걸 황제도 알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생각보다 혼란스럽지 않은 상황에 사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밀런 소백작, 암브로시아 공자와 함께 휴게실로 갔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오셨군요.”
“첫 춤을 마지막으로 춤을 추지 않았다지요?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암브로시아의 휴게실은 어떻던가요? 소문대로 화려하기가 황후 궁 못지않던가요?”
사라를 발견한 귀족들은 하나둘씩 모여 그녀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서둘러 에단을 찾아야만 하는 그녀에게는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황제가 그녀를 발견했는지 큰 소리로 사라의 이름을 부르며 반겼다.
“오, 밀런 소백작이 아닌가.”
황제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파티를 순식간에 침묵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두의 시선이 일순 황제의 호명을 받은 사라에게 와 꽂혔다.
“폐하.”
사라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귀족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 주었다.
눈치가 빠른 황제 덕에 편안하게 상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사라는 무릎을 굽혀 예를 표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밀런가의 사라 밀런이 크롬벨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간 잘 지냈는가?”
“예, 폐하의 은혜 아래 평안히 보냈습니다.”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안부를 묻고 있었으나, 간간이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잠시 머물렀다.
그곳에는 2황자와 3황자 그리고 에단이 황실 기사단과 함께 진지하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사라가 익히 알고 있는 마력석의 빛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대의 작위를 인정해 주었을 때, 나는 사교계가 좀 더 재밌어질 거라 여겼는데, 바로 칩거를 하다니. 퍽 섭섭하군.”
황제는 웃는 얼굴로 농을 던지며 사라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대화가 오고 갈까 귀를 쫑긋하고 듣던 귀족들은 황제의 손짓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라는 것은 사적인 이야기를 할 테니 엿듣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사라는 드레스 자락을 쥐고 살짝 들어 올리며 예를 취한 뒤 황제의 뜻에 따라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황실 기사단이 사라와 황제의 앞을 막아서며 귀족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렇게 단둘이 이야기할 상황이 되자 황제의 얼굴에서 온화했던 미소가 사라졌다.
“상황에 대해선 들었는가?”
“예, 폐하.”
“황실은 저것을 마력석이라고 결론지었네.”
“맞습니다.”
사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알아내 주게.”
황제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으나 은은한 분노가 녹아 있었다. 감히 크롬벨 제국의 보안이 뚫린 것이다.
황제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음을 깨달은 사라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사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황제는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황제는 그제야 여유를 찾은 얼굴을 하고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1황자 말이야. 정말 안 되겠는가?”
“무엇이요?”
“카제르, 그 녀석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을 좀 차리지 않을까 싶어.”
이러한 상황에서 1황자를 감싸려 드는 황제를 보며 사라는 미간을 모았다.
“폐하께서는 정말 1황자께서 제국을 이끌기에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2황자와 3황자가 있지 않나. 저 둘이 마음을 고쳐먹고 제 형을 잘 따라 준다면 나는 걱정 없네.”
“…….”
사라는 황제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래’에서도 보았고, ‘어둠의 꽃’에도 서술했었다.
1황자가 황제로서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자, 황제는 2황자와 3황자를 1황자의 조력자로서 키우고자 했다.
황후가 죽은 뒤, 후비를 들여 자식을 더 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크롬벨 제국을 온전히 1황자 손에 넘기기엔 불안하니 그를 헌신적으로 도와줄 핏줄이 필요해서.
그것을 후비인 현 황후도, 2황자도, 3황자도 알고 있었다.
“폐하께서 살아 계실 때에나 가능할 그림입니다.”
“……역시 그러한가.”
황제는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미련이 남았으나 어느 정도 단념한 모습이었다.
사라는 그저 2황자와 3황자를 도구, 그 이상 취급하지 않는 황제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저는 이만 마력석을 확인해 보러 가야겠습니다, 폐하.”
“그리하게.”
자식이 여럿인데, 자신의 자식은 하나뿐인 줄 아는 황제에게 사라는 무릎을 굽히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폐하의 말씀 항상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눠 보는군, 밀런 소백작. 밀런 백작에게 안부 전해 주게.”
“예, 폐하. 아버지께서도 영광스러워하실 겁니다.”
황제와 사라 밀런의 독대가 끝났다. 귀족들은 그제야 그쪽으로 시선을 모으며 눈을 빛냈다.
겉으로 보기에 꽤나 유쾌한 대화를 나눈 것처럼 황제의 얼굴은 푸근해 보였다.
“밀런 백작가가 칩거 중임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서 신경을 쓰시는군.”
“이제부터 밀런 백작가도 다시 가문의 문을 활짝 열겠다는 뜻 아닐까요.”
“폐하로서는 환영할 일이지. 암브로시아가 어느 황자님의 손을 들어 주든 균형을 잡아 줄 가문이 생기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밀런 백작은 중립을 지키던 인물이었죠. 오직 폐하께만 충심을 바치는 인물이니까요.”
귀족들은 사라와 황제의 대화를 두고 많은 것들을 추측했다.
황제의 옆에서 물러나 자연스럽게 2황자와 3황자 그리고 에단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사라 밀런을 보며 그들의 시선은 더욱 짙어졌다.
“앞으로 사교계에 큰 바람이 불겠어요.”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
에단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라를 보며 그녀를 막아섰다.
“어째서 여기 있는 겁니까. 분명 클로드와 함께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요.”
“공작님…….”
“돌아가십시오.”
“그럴 순 없어요. 저것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게 저예요. 오히려 위험한 건 공작님이라고요.”
사라의 말에 에단의 얼굴이 굳었다.
황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에단 또한 어렴풋하게 저 마력석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가 만들어 드린 반지, 상태가 어때요?”
“……좋지 않습니다.”
에단은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마력석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힘을 억누르는 사라의 힘이 조금씩 깨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 봐요.”
에단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 사라는 반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반지 안에서 느껴지는 박혜연의 마력이 상당히 옅어져 있었다. 클로드와의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소모되는 마력이 많아진 탓이었다.
“안 되겠어. 저것만 처리하고 아티팩트를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
에단은 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지는 사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얽어 꽉 쥐었다.
“이상하게, 당신이 이 힘을 제어해 줄 때마다 거슬립니다.”
“네?”
“이 힘이 절대 간단히 숨을 죽일 리가 없는데. 당신에겐 이토록 간단하다는 게.”
사라가 힘을 불어 넣어 줄 때, 암브로시아의 힘은 크게 만족해하며 배가 부른 것처럼 잠들어 버린다.
마치 그 힘이 원하는 것을 내어 준 것처럼.
사라 덕분에 힘을 제어하는 데 여유가 생길수록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단이 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려는 찰나였다.
“……잠깐 여기서 지금 빛이 이상하게―.”
마력석을 살펴보던 일레온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사라의 고개가 빠르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눈에 마력석의 빛이 무언가에 자극을 받은 것처럼 크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헉!”
두 황자가 갑자기 마력석에 비치는 일렁이는 빛에 놀라 마력석을 떨어뜨렸다.
마력석이 파삭, 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라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빛이었다.
“……안 돼.”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는 에단의 손을 뿌리치고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사라를 보며 에단이 다시 손을 뻗었다.
섬뜩한 빛이, 사라를 삼키려는 것처럼 순간 크게 번졌다.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