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64화
녹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는 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파티에 어울리는 차림은 아니었다.
“귀하신 분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남자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동작으로 팔을 가슴께에 대며 고개를 깊게 숙여 보였다. 마치 광대처럼 말이다.
일리오르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 명단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일레온에게 남자의 얼굴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대, 가문이 어디…….”
그가 남자의 가문을 물어보려던 그때, 툭 하고 그의 발치에 무언가가 굴러와 걸렸다.
무심코 발밑을 내려다보자 신비로운 색이 가득 차 있는 돌이 반짝이고 있었다.
“……!”
그 남자에게서 떨어진 보석일까 싶어 다시 고개를 드는데, 일레온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던 남자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수상한 자였다. 일레온은 그런 남자가 떨어뜨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돌을 집어 들어 품에 넣었다.
일단 황제에게 보고한 뒤 황실 기사단을 움직여 찾아내야만 했다.
“황실 문을 전부 걸어 잠가. 방금 수상한 자가 스테니아 홀에 들어왔다.”
* * *
에단은 클로드와 사라가 부둥켜안고 있는 휴게실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인지 둘 다 눈이 부어 있는 모습에 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둘이 혹시 싸웠습니까?”
“네? 아뇨! 저랑 클로드 님 완전 사이좋은데요!”
“맞아요, 저 유모랑 사이좋아요!”
에단의 물음에 클로드와 사라는 서로 더 바싹 붙었다.
누가 보아도 사이좋음을 어필하는 몸짓에 에단은 입매가 풀어지는 것 같아 주먹으로 입술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지금 그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라.”
“네?”
“지금 파티장에 수상한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잠깐 클로드와 여기 있어 줄 수 있겠습니까.”
“수상한 인물이라뇨? 황궁에서 열린 파티에 어떻게…….”
에단의 말에 사라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궁에서 열리는 파티에 수상한 인물은 들어올 수가 없었다.
시종들부터 잡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특별히 더 엄선하고 엄격하게 검열하여 들여오기 때문이었다.
암브로시아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대동하는 시종과 시녀는 몸 검사부터 신원 확인까지 꼼꼼하게 거치게 된다.
“3황자께서 직접 목격하셨으니 괜한 소리는 아닐 겁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사라의 염려 섞인 목소리에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녹안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는 제 옆에 있던 제이드를 툭 하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퍼 경이 함께 있어 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하퍼 경에게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네, 주군. 최선을 다해서 제가 클로드 님과 밀런 소백작님을 지키겠……!”
“경은 연락책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사라의 뒤에 잘 숨기나 해.”
“흑.”
매정하게 잘라 내는 에단의 말에 제이드는 눈물을 삼켰다.
육체적인 능력보다 두뇌가 뛰어난 제이드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는 잘할지는 몰라도 누군가를 보호해 주기엔 나약했다.
차라리 사라의 옆에 바짝 붙어서 짐이나 되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제가 안전하다고 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절대, 나오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여기서 하퍼 경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사라의 대답에 에단은 안심을 했는지 크게 숨을 내쉬며 클로드에게 말했다.
“다녀오마. 사라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네에…….”
클로드에게까지 단단히 약속을 받아 낸 에단은 그제야 뒤를 돌았다.
“유모, 어떻게 된 거야? 위험한 거야?”
클로드는 휴게실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에단의 뒷모습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혹시 위험한 상황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괜찮아요, 여긴 황궁이잖아요. 황실 기사단도 있고, 암브로시아 기사단도 공작님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비록 황실 기사단과는 달리 암브로시아 기사단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지만, 개개인의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니 칼이 없어도 충분히 적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의 꽃에서는 애초에 언급하지도 않은 사건들이니까, 종잡을 수 없네.’
어쩐지 감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클로드가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달갑지 않기도 했다.
“하퍼 경, 수상한 사람을 3황자님이 직접 목격하셨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3황자님의 말씀으로는 오늘 참석 명단에 없는 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예. 녹색 머리에 로브를 뒤집어썼다고 합니다. 확실히 연회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차림이죠.”
“……녹색 머리에 로브?”
사라의 머릿속에 사람 하나가 휙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하며 미간을 좁히는데 제이드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말을 보탰다.
“그자가 뭘 떨어뜨리고 갔다는데, 안에 빛을 품고 있는 돌이랍니다.”
“……네?!”
사라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녹색 머리, 로브, 빛을 품고 있는 돌.
‘올리븐!’
그제야 사라의 머릿속에서 떠오를 듯 말 듯 하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언제나 사고 치기를 좋아하던 올리븐, 그 말썽꾸러기가 기어코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만 것이다.
“위, 위험한 겁니까?”
“위험하고 말고요!”
사라는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다가 턱, 하고 드레스가 당겨지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클로드의 얼굴이 보였다.
“유모, 가?”
“클로드 님…….”
“위험하다며, 그런데 갈 거야?”
겁을 집어먹은 표정에 사라는 아차 하며 클로드의 앞에서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금방 다시 돌아올게요. 여기 하퍼 경과 함께 계세요.”
“가지 마, 위험하다고 했잖아. 그럼 가면 안 되는 거잖아.”
“이건 제가 가야 해요.”
“왜?”
“……제 실수니까요. 제가 바로잡아야 해요.”
올리븐이 흘리고 간 물건은 그녀가 암브로시아의 힘을 연구하던 시절에 임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생명력을 흡수하는 힘을 봉인해 놓은 것으로 조금만 주먹에 힘을 주어도 깨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깨뜨리며 그녀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받아 내는 방법과 없애는 방법 등을 연구했었다.
‘내 연구실의 봉인 마법구를 풀어냈다 이거지?’
이건 제자들의 집착을 우습게 본 대가였다.
예전부터 조금씩 미친 구석이 있는 아이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사고까지 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밀런 소백작님, 혹시 그자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십니까?”
제이드의 물음에 사라는 가슴 어딘가가 콕콕 찔리는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네, 아마도요.”
“그게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 제자일 거예요.”
“제자?”
“마탑에 있을 때, 제가 곁에 두고 가르치던 아이예요. 아마 제가 말도 없이 떠나서 화가 좀 난 것 같아요.”
사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라도 그 마력석을 잘못 건드려서 깨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참사가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그것도 황제와 2황자, 3황자를 포함해 주요 귀족들이 다 모여 있는 자리였다.
그것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했다. 올리븐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사라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일을 만드는 것.
“그리고 지금 위험한 건 제가 아니고 공작님이세요. 오늘 그렇지 않아도 반지가 아슬아슬해 보이긴 했는데…….”
에단이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사라가 그녀답지 않게 초조한 모습을 보여 주자 제이드는 물론이고 클로드의 얼굴까지 굳어 버렸다.
“제가 함께 가야겠습니다.”
“아뇨, 하퍼 경은 여기서 클로드를 지켜 주세요. 그 돌에 클로드 님이 가까이 다가가게 해선 안 돼요.”
에단에게는 사라의 반지가 있었고, 힘을 제어해 온 세월이 있었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힘이 폭주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클로드는 달랐다. 사라가 억눌러 주고 있지만 클로드의 힘은 이제 갓 피어나는 단계였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품은 마력석에 닿기라도 하면 아이의 몸 안에 잠자고 있던 힘이 반응하며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다.
“클로드 님, 부디 나오지 말고 여기 꼼짝 말고 있으셔야 해요. 아셨죠?”
“응……, 알았어.”
아버지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클로드는 힘없이 사라의 드레스 자락을 놓았다.
“유모는 강하니까, 대마법사니까 괜찮을 거지?”
불안하게 흘러나오는 클로드의 목소리에 사라는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