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63화
“마법사의 맹약?”
“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 있다면 마법사들은 맹약을 맺곤 해요.”
사라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선명한 푸른빛 실이 클로드의 새끼손가락과 이어져 있었다.
“이 맹약을 지키지 않으면, 마법사들은 힘을 잃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죠.”
“……유모!”
클로드는 크게 놀라 사라를 불렀다.
사라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저는 방금 클로드 님과 맹약을 맺었어요. 클로드 님이 행복해질 때까지 곁에 있어야 하는 맹약이에요.”
“유모…….”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클로드 님이 정말 행복해지기 전까지 저는 늘 옆에 있을 거니까.”
다정하게 울리는 사라의 목소리에 클로드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처럼 가짜로 우는 것이 아닌 진짜 눈물이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클로드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물었다.
“유모는 엄마 친구였다며. 나는 엄마를 죽게 했는데……, 내가 안 미워?”
아이의 목소리는 두려움을 담아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라는 그에게 정말 한없이 많은 애정을 퍼부어 주었다.
저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라가 클로드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행복해지려고 할수록, 사라의 애정이 너무 좋을수록…….
클로드는 불안해졌다.
‘저러다가 내가 다시 미워지면 어떡하지.’
‘유모가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나를 원망하면 어떡하지.’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무언가를 온전히 손에 넣어 본 기억이 없었다. 그것도 소중한 사람이면 더더욱 그러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클로드는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언젠가 클로드 님에게 말해 주고 싶은 사실이 있어요.”
“뭐?”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클로드 님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라는 거예요.”
“…….”
“잘못은……, 어른들이 저질러 버렸으니까. 그 잘못을 클로드 님의 탓이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사라의 얼굴이 아프게 흐려졌다. 언제까지고 그 사실을 클로드에게 숨기고 살 수 있을까.
사실 그녀도 두려웠다. 클로드가 사실을 전부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디엘린을 미워하게 될까, 원망하게 될까? 아니면 살아 있다는 것에 기뻐하게 될까?
아니면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게 사라인 걸 알게 된다면.
‘날 미워할지도 몰라. 증오할지도 몰라.’
클로드가 날 선 눈으로 그녀를 보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라는 최선을 다해 클로드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더 이상 디엘린의 부재가, 어린 시절 닥친 불행이 그를 흔들 수 없게 됐을 때.
그때 사라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사라가 제자들과 나눈 맹약을 깨는 날이 될 것이다.
“뭔가 잘못했어? 유모?”
클로드의 물음에 사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평생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잘못이에요.”
사라의 말에 클로드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라가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유모가 자신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고, 무엇보다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럼 그때 내가 용서해 줄게.”
“……!”
“유모가 나한테 무슨 잘못을 했든, 내가 용서할게! 나는 유모를 좋아하니까.”
클로드의 말에 사라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냥 내뱉은 말일지도 몰랐지만, 사라는 어쩐지 그 말에 구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클로드 님…….”
“나한테 미안한 만큼 내 옆에 오래오래 있어 주면 되잖아. 나는 그게 좋아.”
투둑, 하고 사라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클로드는 사라가 자신처럼 울기 시작하자 그 눈물을 작은 손을 들어 훔쳐 주며 말했다.
“유모도 우는구나.”
“네……, 이게 다 클로드 님 때문이에요.”
“왜 나 때문이야? 유모가 우는 거면서!”
“몰라요, 클로드 님 때문이니까 안아 줘요.”
“……히히.”
클로드는 웃으며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사라의 품에 뛰어들었다.
* * *
“크롬벨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들어오십니다!”
스테니아 홀에 있는 모든 귀족들은 하던 것을 전부 멈추고 고개를 숙여 보이며 예를 갖추었다.
이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자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 카일로스 드 크롬벨.
늙고 노쇠한 몸이었지만 스테니아 홀을 가로질러 가장 상석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선 힘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아직 권력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아 귀족들은 서로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크롬벨 제국의 세 번째 광영, 3황자 전하께서 들어오십니다!”
황제의 뒤를 이어서 3황자, 일레온 드 크롬벨이 스테니아 홀로 들어섰다.
그는 황제를 닮은 금발을 길게 길러 대충 묶어 늘어뜨려 놓았는데, 그 모습이 청순하게 느껴지는 미남이었다.
하지만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일자로 꾹 다문 입술은 그의 인상을 흐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무슨 일로 3황자 전하와 함께 들어오실까요?”
“그러고 보니 3황자 전하께서 이번에 폐하께서 내리신 밀명을 수행하셨다고 하더군.”
“폐하의 관심이 완전히 2황자께 기운 것이 아니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귀족들은 눈치 빠르게 황제의 의중을 꿰뚫어 보았다.
비록 2황자가 주최하는 파티였고,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는 하였으나 3황자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과연.”
황위를 두고 황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황제의 권위와 권력은 더욱더 힘을 얻게 된다.
비록 양위를 선언했다고는 하나, 아직 황제는 권력을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일리오르는?”
스테이아 홀 상석에 앉은 황제는 그가 입장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2황자, 일리오르를 찾았다.
“형님께서는 암브로시아 공작과 독대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아 공작과? 흠…….”
암브로시아라는 말에 황제의 눈썹이 흥미로운 듯 크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는 제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일레온을 향해 물었다.
“네 형이 암브로시아 공작과 독대를 하고 있다는데.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황제의 물음에 일레온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다시 다물었다.
그러곤 황제가 원하는 대답을 무미건조하게 내놓았다.
“신경 쓰입니다.”
“……쯧.”
황제는 그런 일레온이 못마땅하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혀를 찼다.
“네놈이 진짜 원하는 것이 황위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저 형님과 피를 보며 다투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그것은 이미 카제르 형님과 충분히 하였습니다.”
“카제르는, 그저 조금 겁이 많을 뿐이다. 너와 일리오르가 옆에서 잘 보필해 주면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
아쉬운 소리를 하는 황제에게 일레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황제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었을 뿐이었다.
1황자를 향한 저 노골적인 편애와 사랑은 몇 번을 들어도 질렸다.
황위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동생들에게 번갈아 암살자를 보냈던 카제르의 행위를 그저 겁이 많을 뿐이라고 일축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와 일리오르는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기며 살아남았다.
하지만 황제의 눈에는 그저 동생을 경계하고 위협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큰아들에 대한 안쓰러움만이 가득해 보였다.
“일리오르 형님께서는 곧 돌아오실 겁니다. 폐하께서 여기 계시니까요.”
“그렇겠지. 제 형을 내몬 승리를 만끽하고 싶을 테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일레온은 조용히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황제는 1황자를 완전히 놓지 못했다.
그런 노골적인 편애가 1황자에게 희망과 절망을 반복해서 겪게 했다는 것을 황제만 몰랐다.
“저기서 잔 하나만 가져오거라. 목이 마르구나.”
“예.”
일레온은 조용히 제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며 꽉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파티장에 참석한 귀족들의 얼굴을 한 번씩 촥 훑었다.
‘암브로시아 공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군.’
오늘 암브로시아 공자의 모습을 똑똑히 봐 두려고 했던 일레온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일렉사는 암브로시아 저택에 다녀온 날 크게 혼이 났다.
일레온은 일렉사에게 앞으로는 절대 외출을 하지 못할 거라는 엄포를 놓았고, 그 대가로 아들이 처음으로 제게 대드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싫어요! 아빠는 나랑 놀아 주지도 않으면서……. 클로드랑 노는 건 재밌단 말이에요! 여긴 싫어, 유모도 싫고,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던 제 아들의 말을 떠올린 일레온의 어깨가 축 처졌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제 아들을 구워삶아 놓았는지, 일단 그 유모라는 자를 찾기 위해 그가 다시 한번 파티장을 둘러볼 때였다.
그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하고 치고 지나갔다.
“앗, 죄송합니다, 3황자 전하.”
“괜찮…….”
비틀거렸던 몸의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든 일레온의 눈앞에 녹색 잔상이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