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
019 비밀 병기
“공장장님, 이것 좀 보세요!”
“이건 또 누가 보내 준 거야? 저번에 그 도와준다는 사람이야?”
“네. 자동권선기라는데, 대충 봐서 그런지 도통 모르겠네요.”
공장장이 상의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디 보자. 음……. 지 사장, 이거 출력 좀 해 줘. 난 컴퓨터 화면이 영 익숙지가 않어. 종이로 넘겨 가면서 봐야 눈에 확 들어오지, 화면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어.”
“이거 양이 좀 많은데요?”
“아이 쫌, 뽑아 봐. 나이 든 사람 배려 좀 해 달라고.”
프린터가 피를 토하듯 도면을 출력했다. 얼마나 뽑아내는지 종이가 뜨거워 만지기 힘들 정도였다.
“이거 한참은 들여다봐야겠는데? 우리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공장장님께 숙제 드리겠습니다. 아마 완전 자동으로 권선을 감게 해 주는 설비 같은데요. 꼭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까 공장장님이 꼼꼼히 보고 와꾸 좀 재 주세요.”
“자네도 최현아처럼 나 설계로 돌려서 팽할려고 하는 건가? 이거 서글프구만. 허허.”
“조만간에 설계 인원도 뽑을 테니까 당분간만 고생 좀 해 주세요. 잘 만드는 것도 좋지만, 결국 설계가 잘 나와야 물건이 제대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김 상무가 사장하고 눈 마주치면 일이 쏟아진다고 도망 다니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구만. 허허.”
이 도면 보면 볼수록 모르겠다. 나야 뭐 변압기는 모르지만, 서당에서 하늘천 땅지 할 때 옆에서 3년간 듣고 있던 서당 개였기에 변자 정도는 안다고 자신해 왔다. 그러나 이 도면은 도통 모르겠다.
이 바닥에도 자동권선기라는 것이 있다. 구리나 알루미늄 판과 선을 자동으로 감아 주긴 하지만, 실상은 수동이나 마찬가지이다. 설비마다 사람이 붙잡고 앉아서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전부 다 자동으로 하게 해 준다고? 가능할까? 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요새 계속된 대박에 대박이 대박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대박이다! 사람 손을 안 거치고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면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절약은 따 놓은 당상이다.
급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저 설계가 어떻게 구현될지, 구현되면 생산량이 얼마나 될지 전혀 모르겠지만, 러프하게 계산해 봤다.
원하는 전압으로 변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권선은 수백 바퀴를 감아서 만드는데, 이게 다 사람이 손으로 잡아 가면서 해야 한다. 권선을 얼마나 빨리 감아 내냐에 따라 회사 경쟁력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2차를 감고 1차를 덧씌우는 공정이니까 권선공 두 사람이 한 팀이다. 하루 8시간이면 평균 5~6대분이 나온다. 낱개로 치면 11~12개 정도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뽑아내면 진이 빠진다고 하니 하루에 5대로 잡자.
기계는 하루 24시간 작업이 가능할 것이니까 단순 계산해도 하루에 15대분은 나올 것이다. 속도가 얼마나 나올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람과 크게 차이 없다고 가정하지 뭐.
하루 15대분 나오니까 자동권선기 10대면 하루에 150대분. 어휴야. 이거 월 4천 대 생산도 가능하겠는데?
어디 보자. 딱딱딱딱.
계산기 버튼에 숫자가 지워질 정도로 정신없이 두들겼다. 이리 계산해 보고, 저리 계산해 봤다. 걸려 오는 전화 받아 가면서, 덕준이 개소리 들어 가면서 계산에 몰두하니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결론은? 잘만 운영한다면 원가 10퍼센트쯤은 절감될 것 같다. 대! 박!
한참이 지나서야 공장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침한 눈으로 도면 보느라 골머리 좀 앓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지 사장, 이거 진짜 놀라운데.”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맞장구부터 쳐 주자. 그래야 뭔가 아는 것처럼 보이잖아! 나중에 시간되면 설계도 좀 배워 놔야겠구만.
“그렇죠? 장난 아니죠? 이거 설계대로만 만들면 큰일 하겠더라고요.”
“지 사장, 역시 대단하구만.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먹고산 나도 잘 모르겠더만, 역시 지 사장 보통내기가 아니여. 허허.”
“뭐, 서당 개가 풍월 읊는 정도죠. 어때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휴. 우리는 못 만들지. 설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에다 맡겨야지. 박 사장 그 사람이면 가능할라나? 그런데 그 사람 믿기가 어려워서 말이야.”
“박창준 사장요? 믿기 어렵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이거 만들려면 도면을 넘겨야 할 것 아니야? 그 돈 욕심 많은 사람이 가만있겠어? 몰래 만들어서 여기저기 팔면 어떻게 할라고? 나중에 알고 나서 소송하네 뭐 하네 해 봐. 얼마나 골치 아픈데. 송사라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여. 선고까지 하세월이지, 돈은 돈대로 들지, 품은 좀 많이 드나?”
역시 공장장은 박창준 사장한테 이를 갈고 있다. 물건 팔고 나면 AS는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니 이를 갈 수밖에…….
“그래도 이 바닥에서 박 사장만큼 설비 아는 사람도 없잖아요? 뭐 좀 비싸긴 해도 물건 좋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난 그놈 못 믿어. 얼굴 봐. 족제비처럼 생겨 가지고, 뭐 수리 좀 해 달라 치면 세상 아쉬운 소리는 다 하고 말이여. 니미럴. 내가 진짜 30년 전이었으면 그 새끼 뒤지게 팼어. 나도 사람 됐지 뭐. 허허.”
“그럼 저도 여기저기 알아볼 테니까, 공장장님도 이거 만들 만한 사람 알아봐 주세요. 나주 공장 세워지기 전까지는 만들어 보자고요.”
“그래야지. 이게 가능하냐에 따라 뽑는 사람이 달라지니까.”
“그렇죠! 역시 공장장님은 핵심을 아시네요.”
“이 사람아! 내가 짬밥이 몇 년인가! 척하면 척이지. 허허허.”
결론이 났으니 재빨리 움직이자. 역시 시작은 덕준이다.
“한 과장님?”
“네, 사장님!”
“왜 부들부들 떠는데! 그만 떨고 담배나 피우러 가시죠. 후훗.”
“웃으면서 담배 피우러 가자고 하는 것이 어째 더 불안한데……. 그래서 또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요. 사장님아. 인간적으로 지금 하는 일도 너무 많아. 나 좀 살려 주세요.”
“특허 하나 더 내자. 최대한 빨리.”
“갑자기 무슨 특허?”
“쩐주가 뭐 하나 보내 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박이거든. 누가 뽀려 가기 전에 특허 등록부터 해 놔야지.”
“쩐주? 대체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야? 돈도 주고 저번에 고효율인가? 그 설계도 주고. 그런데 이번에 또 뭘 보내 줬다고?”
진짜 예리한 놈. 개떡같이 말해도 알아서 찰떡같이 알아먹고 말 것이지. 너무 예리해도 좋지 않아!
“쩐주야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지. 우리는 쩐주가 하라는 대로 해서 돈 많이 벌어 주면 되는 것 아니냐.”
“무슨 큰 비밀이길래 쩐주를 그렇게 꽁꽁 숨겨 놓는다냐. 하여간 수상해. 그 쩐주 진짜 남자 맞어?”
“남자 맞다고오!”
예리한데, 역시나 헛방이다. 그래, 계속 그렇게 헛방 치라구. 헛방이라 다행이긴 한데 진이 빠진다.
하긴 그러니까 친구지. 친구가 옆에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하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연주자들이 이미 다 외웠음에도 굳이 악보를 펼쳐 놓고 연주하는 이유랄까? 그래, 넌 악보 같은 존재야.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아니, 엄청나다. 내 업보이려나.
“아! 맞다. 또 하나 생각났다.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했네. 이 도면 말이야, 캐드로 좀 옮겨 주라. 솔직히 이런 일 시키면 안 되는데, 공장장님이 캐드를 못하잖아. 양이 좀 많던데…….”
“하아. 사장님아, 이럴라고 담배 무한 제공한다고 그런 것이냐! 나 좀 살려 주라고!”
미안하다 덕준아. 온갖 잡일을 시키려고 널 데려온 것은 아닌데 말이야. 조금만 참자. 조금이 아니겠구만. 1년만 참자!
덕준이의 외마디 비명이 담벼락을 맞고 메아리치는 것을 애써 모른 체하고 급히 남동공단 기계 제작 공장을 찾아 헤맸다.
“어휴. 우리는 이런 것 못해. 무슨 마찌꼬바가 이런 설비를 만들어?”
“허허허. 이거 대충 보니까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바빠서 안 돼.”
온 동네를 쏘다니며 여기저기 찔러 봤는데, 거절의 뜻만 확인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만들 만한 기술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만들 곳을 찾지 못하니, 예산이 얼마나 들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예산이 확정되면 계산기 부숴 가며 정확한 원가 절감액을 뽑을 수 있는데…….
“공장장님, 좀 알아보셨어요?”
“다들 절레절레하더라구. 딱 보니까 쉽지 않다는 걸 아는 것이지. 괜히 덥석 맡았다가 고생만 하고 손해 볼까 봐 그러는 것이겠지. 이거 큰일이네.”
“공장장님! 자동권선기요. 저희가 직접 만들어 보죠! 자재야 설계대로 주문해서 받으면 될 것 같은데요. 한번 해 보시죠?”
괜히 남한테 맡겨서 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획기적인 기술 유출하느니, 고생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다. 이 복잡한 설비만 만들어 낸다면 다른 설비도 척척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자네 말대로 조립만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사람이 없잖아, 사람이. 다음 달이면 변압기 짝짝 나갈 텐데. 자동권선기 그거 만든다고 사람 붙잡혀 있으면 일이 안 돼.”
“사람이 없으면 뽑아야지요. 공장장님도 있고, 유 과장님도 장난 아니잖아요? 공장장님이랑 과장님 둘이 힘 합치면 어찌 만들 것 같은데요? 해 봅시다. 이거 뭔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옵니다. 괜히 남한테 맡겨서 소문나느니, 우리가 직접 해 보자고요.”
“사람 뽑아 준다면야 어찌어찌 해 봐야지. 생산이야 이 부장한테 맡기면 알아서 잘할 것이고……. 뭐 까짓것 해 보자구! 권선공 구하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 설비가 진짜 자동으로 권선 뽑아 준다면야 일도 없지.”
공장장은 이상철 부장에게 현장을 맡기고 자동권선기 제작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이상철 부장은 공장장 심복으로 공장장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할 사람이다. 입만 열면 덕준이 저리 가라 하는 개소리 드리퍼에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천상 한량이었지만, 일 하나는 끝내주는 자였다. 가끔 뭐 하나씩 빼먹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현장이야 이 부장이 충분히 잘할 것이니, 걱정할 건 없다. 자동권선기를 직접 만들 사람인 유재준 과장과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과장님!”
“사장님! 이거 사장님 소리가 아직도 어색하네. 미안합니다.”
대부분 태양전기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인지라 부르기는 사장님이라고 하지만, 말투는 여전히 과장 시절 그대로이다.
나쁘지 않다. 사장도 결국 직원인데, 직원끼리 편하게 지내면 좋은 것이지. 권위라는 것이 세우겠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적일 필요가 없지.
사장과 직원이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회사. 그게 진짜 가족 같은 회사이지! 성과란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난 그렇게 만들고 싶다.
“나중에 부장 달면 익숙해질 것입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부장? 난 지금도 만족해. 일이야 똑같지만 월급도 많이 올랐고, 사람들도 손발이 딱딱 맞고. 역시 우리 사장님이 인물은 인물이야.”
“아이고, 너무 띄워 주네요. 부장 되기 전에 맛보기로 일 좀 시키려고 하는데요. 공장장님?”
유 과장 동공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사장까지 현장에 달려와 무언가를 시키겠다고 하니 괄약근에 힘이 팍 들어갔을 것이다.
잡기에 능한 사람으로 관리 쪽에 덕준이가 있다면, 생산 쪽은 단연코 유재준 과장이다. 그야말로 만능맨으로 현장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설비 고장 날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바로 안 오는 박창준 사장 때문에 열려 버린 공장장 뚜껑을 닫는 사람이기도 했다.
“재준이 너 나랑 설비 하나 만들어야 쓰겄다.”
공장장이 채찍을 휘두르며 유 과장 앞에 섰다.
“무슨 설비요? 제가 뭐 기술이 있다고 설비를 만들어요?”
“나랑 같이 한 두 달만 빡세게 해 보자. 어때? 막 힘이 나지?”
유 과장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공장장이 두 달 작업을 예상한 것을 보면 자동권선기가 보통 설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과장님, 제가 부품은 다 구해 놓을게요. 공장장님이랑 같이 도면대로만 만들어 주세요. 프라모델 한다 생각하면 되겠네요. 한 과장한테 도면 캐드로 옮기라고 해 놨으니까 공장장님이랑 같이 도면 연구 좀 해 주시고요. 자재랑 부품은 바로 준비해 둘게요.”
“한 과장한테 그런 일까지 시켜? 우리 한 과장 친구 잘 만났네그려. 허허. 내가 어서 캐드를 배워야지. 이거 원.”
우리의 비밀 병기! 이거 작동하면 이 업계 씹어 먹을 수 있다!
아그작아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