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01)
201 가는 길
언제부턴가 대한전력 가는 길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동승자는 매번 바뀌었지만, 갈 때마다 좋은 선물들을 두둑하게 받아 왔다.
최윤근 상무가 동행하는 이번 방문도 즐거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상무님. 뭐 하나 여쭤 봐도 됩니까?”
“허허. 뭘 허락을 맡으십니까? 그냥 편하게 얘기하세요.”
“나주혁신산단 입주기업에 지역 우선배정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올해로 2년차라 내년 입찰이 혜택 마지막인데, 기간을 늘린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혹시 알고 계신 것 있으십니까?”
“그게 상생협력처에서 하는 건데, 저도 연장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확실치는 않네요. 뭐 처장한테 전화 한번 해 보죠. 친한 후배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시죠.”
조수석에 앉은 최 상무가 말 끝나기 무섭게 바로 전화를 건다. 이 사람 너무 의욕적이야. 맘에 들어, 아주.
“어, 이 처장. ……그래, 나야 잘 있지. 아니 뭐 하나 물어보려고. 그 지역 우선 배정 말이야. 기간 늘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확정됐나?”
서론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친한 사이인 것이 확실하다. 대한전력 출신을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인가 보다.
“아, 그래? 그렇구만. 그래, 고마워. ……뭐? 술 언제 사냐고? 허허. 내가 지금 본사 들어가는 길인데, 일 때문에 가는 거라 얼굴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나도 일해야 먹고살지. ……허허, 그래그래. 내가 이번 주 내로 시간 낼 테니까 한잔하자고. ……알았어. 그래, 또 통화하자고.”
결론까지 깔끔한 소논문 같은 전화 통화가 끝났다. 대화 한번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네.
“상생협력처장이 뭐라고 하십니까?”
“네. 그 5년까지 늘리는 걸로 결론이 났는데, 급한 건 아니라서 사장님 결재까지는 아직 안 올라갔다고 하네요.”
“아휴, 감사합니다. 앞으로 3년간 물량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기간은 확정됐는데, 배정량을 30프로로 늘리는 것은 검토가 걸린다고 합니다. 업체는 늘어나는데 20프로 나눠 봐야 얼마 안 되니까 배정 퍼센티지도 조정하려는 것 같은데, 이건 좀 더 기다려 보시죠.”
20퍼센트를 11개 업체가 나눠 가지니 2퍼센트도 안 되는 물량이래도 연간 70억 원은 넘는 금액이라 굶어 죽지는 않겠다 했는데, 30퍼센트로 늘려 준다면 아주 땡큐다. 꿀 정보가 아낌없이 들어오는구나.
“이야, 역시 상무님. 모시고 오길 잘했습니다.”
“허허. 뭐 이런 건 일도 아니죠. 대기업들은 이 정도로 안 끝냅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해 달라고 하고 아주 극성이지요. 그것에 비하면 친분 있는 직원들한테 물어보는 것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최 상무가 전혀 부담을 안 느끼는 표정이다. 대한전력 출신이 가지는 장점을 얼마든지 활용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저는 불법적인 청탁은 안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대한전력 직원들 자주 만나면서 좋은 소식 많이 좀 알려 주십시오.”
“아, 그럼요. 본사, 아니, 이거 자꾸 입에 익어서 그렇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32년을 일하셨는데, 입에 안 익은 것이 더 이상하죠.”
“허허. 여튼 제가 종종 대한전력 찾아가겠습니다. 전우회도 있고, 후배들도 자주 만나니까 좋은 소식 있으면 바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우회가 퇴직자들 모임 말씀하시는 거죠?”
역사가 오래된 공기업들이 그렇듯 대한전력도 퇴직자 모임이 그저 동아리 수준이 아니다. 전우회라는 퇴직자 모임은 돈 꽤 굴리는 중견기업이다. 발전소 관리도 하고, 전기 검침도 하고, 변압기도 만들고, 이것저것 많이 한다.
“전우회라고 해 봐야 뭐 별거 없습니다. 리조트나 싸게 이용하는 거 말고는. 회관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서 바둑도 두고 골프도 치고 그런다는데, 그것도 저들끼리만 해 먹고 그러죠 뭐.”
“그래도 퇴직해서도 동료들 꾸준히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전우회 하는 일에 불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고 있지요. 덕분에 정기적으로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오죠. 우리 회사에 도움 되는 얘기 좀 많이 하고 오겠습니다. 허허.”
“모임 있으면 시간 구애받지 마시고 언제든 다녀오세요.”
20분 걸리는 대한전력 본사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온 것 같다. 말하다 보면 이리 시간 가는 줄 모른단 말이야.
“형님. 상무로 영전하신 거 축하합니다.”
“영전은 무슨.”
대한전력 배전기획처 멤버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본론을 꺼내자 살짝 누그러졌다.
“우리야 뭐 규정대로 하니까 상관없지만, 프라임일렉트릭이 너무 많이 받아 간다고 다른 업체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시끄러운 일 생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지 않습니까?”
박윤찬 처장이 우려를 꺼내 놓는다.
올해 입찰에서만 우선배정으로 20퍼센트가량 받아 갔고, 내년에는 컴팩트 지상변압기와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로 해당 품목 20퍼센트를 먹는다. 거기다 지역 배정도 파이가 커질 예정이다.
당장 실행할 것은 아니지만, 10퍼센트씩 두 건으로 20퍼센트를 또 가져간다는 것이 알려지면 시끄럽긴 하겠지. 처장급 되는 직급이면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규정이 그러면 규정대로 가야지.
“박 처장, 일단 등록만 해 놓자고. 지금 알려지면 당연히 시끄럽겠지. 사장님께서도 당장 신청할 생각 없다고 하시니까, 좀 지켜보다가 말 안 나오게 잘 얘기해 둘게. 그건 걱정 말라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최 상무가 매조지해 버렸다. 선배가 걱정 안 하게 해 주겠다니, 박 처장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뭐, 형님이 잘하시겠죠. 사장님도 어련히 잘하시는 분이고 하니까. 알겠습니다. 우선배정 신청 당장 안 하겠다는데, 제가 뭐라고 이러쿵저러쿵하겠습니까?”
“신청만 안 하지, 기술적용은 등록되는 대로 바로 할 생각입니다. 성능개선으로 대한전력에 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좋지요. 어디 보자, 코아 개량은 효율이 약간이긴 해도 개선이 되네요? 저희야 효율 0.1프로 높이는 것에도 혈안이니, 위에서도 많이 좋아할 겁니다.”
소음개선에 대해 얘기하려는데, 최 상무가 또 치고 들어왔다.
“박 처장. 이 소음개선은 당분간은 아몰퍼스에만 적용할 생각이야. 박 처장도 잘 알잖아? 아몰퍼스 소음 때문에 민원 엄청 들어오는 거. 이거면 10프로 넘게 감소하니까 지역본부 사람들 아주 살맛 날 거야.”
“왜, 할 거면 다 하지 그래요?”
“허허. 이게 공정이 추가되는 거라 번거롭긴 해. 코아 개량이야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지만, 소음개선은 일단 그렇게 가자고. 우선배정 신청하면 그때부터는 당연히 전 품목에 다 적용해야겠지.”
“그래요. 뭐 우리야 아몰퍼스 소음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땡큐지.”
껄끄러운 얘기까지 최 상무가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우리에게 득 되는 것만 우선 적용하겠다는 것이 잇속만 차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최 상무가 알아서 처리해 주니 아주 편하구만.
“사장님. 이 소음개선 기술이 고효율 아몰퍼스 개발에 적용된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소음기준 안으로 넉넉하게 들어온 것입니다.”
“역시 프라임일렉트릭은 대단합니다. 하하. 참, 패드랑 아몰퍼스는 12월에 구매 규격이 공표됩니다. 아휴, 저번에 고효율주상변압기 때문에 욕 많이 먹었습니다. 개발기간이 너무 짧네, 기준이 너무 높네 어쩌네. 그래서 이번엔 넉넉하게 개발하라고 좀 서둘렀습니다.”
“패드야 다들 어렵지 않게 개발하겠지만, 고효율 아몰퍼스는 소음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사장님만 가져가는 것이겠죠. 내년에도 돈 많이 버시겠습니다. 하하.”
대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 상무가 박 처장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지 않았다면 10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준비한 자료와 특허, 중소기업청 인정서만 내면 그만이니,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뭐 하나 꼬투리 잡으려는 기미조차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최 상무의 존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한전력의 든든한 로비 창구가 생겼다. 최 상무, 맘에 들어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회사에 복귀했다. 딱딱 자리가 잡혀 가고 있어서 딱히 할 일도 없다. 오후에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만 만나고 나면 오늘 하루가 널널하게 지나갈 것 같다.
이제 나도 여유가 생기는구나. 난 이제 돈만 잘 쓰면 되겠다.
거액을 쓰겠다는 내 약속을 잊지 않고 박 사장이 먼 길을 달려 나주까지 찾아왔다. 전화가 아니라 직접 찾아온다는 것은 내 투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일 테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이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전국 돌아다니는 것이 일인데요 뭐. 그나저나 날씨가 많이 시원해져서 다행입니다.”
“아휴, 올 여름 정말 더웠죠? 이제 좀 살 만해졌으니까 또 정신없이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화를 자연스럽게 본궤도 올려놨다. 여기까지 온 것은 큰 결심을 했다는 징표일 것이다. 우리 사이에 굳이 빤한 얘기 하면서 빌드업 할 필요는 없지.
“그래야지요. 제가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제안드린 것에 대해서 결론을 내셨습니까?”
박 사장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는 표정을 보니 물어보나 마나일 것 같다. ‘내 것’이라는 애착보다 사업을 키우겠다는 욕망이 이겼다는 표정이다.
“사장님 투자 제안을 받겠습니다. 투자 받아서 공장도 여기로 옮기고 원자재 수입도 해 보고, 설비도 늘리고, 뭐든 제대로 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코일은 기존대로 하실 거고, 시트랑 각선만 하시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 코일이야 스케일이 커서 하던 대로 유통만 할 생각입니다.”
“사장님, 저야 말 그대로 엔젤투자자입니다. 사장님 사업이 잘돼서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아니면 뭐 어떻습니까? 진심으로 사장님이 지금보다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안드린 것이니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아휴, 감사합니다. 이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주절주절 미사여구 붙이지 않고, 감사하다로 끝내는 것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도와주는 것만큼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도 있다. 부디 사업 키우고 성장해서 돈 많이 벌게 해 다오.
“그래서 자금은 어느 정도 필요하십니까? 공장 이전하는 것은 지원금이 많아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군요. 알아보니까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이 많더라구요. 그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자재 수입은 아무리 쥐어짜도 제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겠더라구요.”
“유통도 그런데, 수입이야 더하겠죠. 원하시는 대로 다 해 드릴 테니까 말씀해 보시죠. 참, 공장 이전하면 직원들 숙소도 마련해야 하고 들어갈 돈이 꽤 필요할 겁니다. 그것도 염두에 두시고.”
박 사장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거액을 불러도 기꺼이 내놓을 생각인데, 머뭇거리는 것이 살짝 불안하게 한다. 몇백억 얘기하면 어쩌나.
“저, 그…… 은하무역 김 사장님하고 많은 얘기를 했는데,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사장님이 물량을 받쳐 주시니까 부담이 없긴 합니다. 하하.”
하여간 소시민이야. 그냥 화끈하게 얼마 필요하니까 달라고 얘기하면 될 것을 말이다.
서로 다른 성향이었기에 지금까지 잘 어울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 성향이 너무 다르면 거리가 느껴지고, 너무 같으면 경계하기 마련인데, 박 사장과는 딱 적당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건 그거고, 그래서 얼마가 필요하냐고!
“사장님, 저 돈 빼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네. 하하. 제가 말을 좀 끌었지요?”
그나마 알아서 다행이다.
“알루미늄이랑 구리 두 가지라서 들어갈 돈이 크긴 합니다. 넉넉하게 90억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이제야 필요 금액을 들었다는 후련함과 생각보다 액수가 크다는 쫄림이 공존했다. 아무리 많아도 50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더니만…… 뭐 남는 것이 돈인데!
“네, 알겠습니다. 90억 원 투자하겠습니다. 저랑 우리 조합 회원사들이 확실하게 물량 받쳐 줄 테니까 어디 한번 시원하게 해 보시죠.”
지분 대부분을 넘겨야 한다는 아쉬운 표정이 살짝 보였다. 그래도 그것보다 자신의 딸 이름으로 지은 도연테크라는 회사가 도약할 것이란 기대 섞인 표정이 더 많이 보인다.
박민창 사장! 사업 시원하게 하면서 소시민에서 벗어나 자본가의 길을 가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