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00)
200 신입 사원
월요일. 우리 회사의 질적인 성장을 가져다줄 새 인재가 출근을 시작했다.
“상무님, 오셨습니까?”
“네, 사장님. 첫 출근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허허.”
“대한전력에 비해서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불편해도 조금 참아 주세요.”
“제가 뭐 편하자고 여기 왔습니까? 그런 염려 마시죠. 보니까 의자도 좋고 컴퓨터도 빠르고 좋습니다. 허허.”
대한전력에서 정년퇴직한 최윤근 상무. 거대 공기업 출신에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꼰대 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
저 경력으로 중소기업에 들어왔으면 라떼를 연발하며 거들먹거리기 십상인데 말이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사람 자체는 아주 좋아 보인다.
“출근하기 힘들진 않았죠?”
“혁신산단 진입하기 직전에 살짝 막히긴 했는데, 그 정도야 양반이죠. 좀 적응되면 자출해도 되겠습니다.”
“자출요? 자전거 말씀이세요?”
“허허. 제가 자전거 좀 탑니다. 나이 먹을수록 운동하면서 몸 챙겨야지요.”
하체가 좀 탄탄해 보인다 싶더니 자전거단이었군. 저 나이 먹으면 대체로 상체는 풍성해지는 반면, 하체는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위태위태해지기 마련인데, 서 있는 자태가 꽤 안정적이다. 역시 운동이 정답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보기 좋습니다. 자출하신다면, 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 회사도 나름 임원 대접한다고 차량을 제공하는데요. 뭐 그것 말고는 혜택이 없습니다. 양해해 주시죠.”
“차요? 뭐 회사에서 해 주신다면 감사하게 받아야지요. 허허. 좋긴 한데, 제가 뭐 오자마자 새 차 받고 으스대는 꼴 같아서 좀 저어하긴 합니다.”
최 상무도 회사 처음 와서 점령군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많이 쓴다.
고인물이 많은 중소기업은 초반에 길 잘못 닦으면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생 이모작으로 귀농을 선택했는데,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환도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여기 나주도 부푼 꿈을 안고 정착했다가 다시 광주로 도로 떠난 사람들 적지 않다.
“편하실 대로 하시죠. 임원이면 꼭 차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니깐요.”
“안 그래도 제가 사장님 몇 번 뵈면서 느낀 건데, 사장님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저 주시고, 새로 좋은 차 한 대 뽑으시죠?”
“제 차요? 아직 새 차나 다름없긴 해서 상무님이 타셔도 상관없긴 한데, 번거롭게 그럴 필요 있습니까?”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일해 보니까, 차가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더군요. 현실이 그렇습니다. 지금 사장님 차가 별로란 것은 아닌데, 더 좋은 차면 낫겠다 싶네요.”
차에 관심이 높지 않아서, 회사 세웠을 때 법인차로 구입한 산타나에 만족하며 잘 타고 있다. 주변에서 차 바꾸란 얘기는 많이 듣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요새 눈에 들어오는 차가 있긴 하다. 바야흐로 가까운 미래는 전기차 시대가 될 것이다. 다른 차들은 그냥 그랬지만, 요 근래 미국에서 난리라는 그 전기차, 모델 S는 혹한다.
요즘 애들에게는 타요가 대세라지만, 나 때 말하는 차 최고봉은 단연코 ‘전격 제트작전’에 나오는 키트였다. 키트가 재현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 차를 사 버릴까? 좀 비싸다고 하는데, 벌 만큼 벌었는데 그 정도쯤이야!
사장은 비싼 차를 타야 한다는 여러 압박. 옆에서 부추기니 지름신이 내 뇌를 간지럽힌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한테 전화 좀 해 봐야겠구만.
“상무님. 그럼 제가 차 새로 뽑으면 그때 제가 타던 차 받아 가시죠. 주변에서 좋은 차 타란 얘기가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돈 번 티 좀 내죠. 하하.”
“제가 주제넘은 얘기를 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말이란 건 자유롭게 하는 것이죠. 설령 주제 넘는다고 해도 앞으로도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배울 점도 많습니다.”
“허허. 감사합니다. 이게 차가 말이죠…….”
인사차 들렀던 상무실에서 난데없이 차 강의를 들어야 했다.
지금이야 안 그런 회사가 많지만, 직급에 따라 차 배기량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곳이 많았다. 회사의 급에 따라 사장 차도 정해졌다.
마찌꼬바 사장이 억 소리 나는 육중한 차를 끌고 다니면 손가락질을 하고, 알짜회사 사장이 나처럼 SUV 타고 다니면 수전노라고 손가락질하고 말이다. 오지랖 넓은 한국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차 강의가 끝나자 최 상무가 또 거침없이 화두를 꺼낸다. 말하기 참 좋아하는 사람일세.
“사장님은 다른 분야는 관심 없으십니까?”
“변압기 말고 다른 쪽 말씀이시죠? 글쎄요. 우리 회사도 언젠가 성장에 한계가 오긴 할 테니, 새로운 분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전문 분야도 아닌 새 영역에 뛰어드는 것이 괜찮을까 싶기도 합니다.”
“요즘 친환경 에너지라고 하면서 신재생 쪽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대한전력도 그것 때문에 돈 아주 많이 쓰죠. 나라 정책이 그렇다고 하니 예산을 많이 배정하긴 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ESS 쪽은 앞으로 꽤 유망하긴 합니다.”
“ESS면 에너지 저장하는 분야죠?”
안성파워가 나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ESS라 불리는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부 지원제도가 마련되면서 대기업들이 ESS 도입에 나서기 시작했고, 전력분야 중소기업들도 발을 담구고 있다.
앞으로 잘나가는 분야일 것은 확실하다. 올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엄청나게 시장이 커질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과장하기 좋아하는 언론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지만, 성장할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내가 뛰어들기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변압기 쪽은 포화 상태라 새로운 분야도 일찌감치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ESS라면 변압기랑 아예 관련 없는 것도 아니니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공부가 필요할 것 같네요.”
“사장님께서 생각이 있으시면, 제가 어떻게든 준비를 해 보겠습니다. 대한전력에 인맥이 살아 있을 때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오늘까지 세 번을 만나면서 여러 얘기를 나누고 친분을 쌓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출근 첫날부터 거대 담론을 던져 주는 최 상무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우리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인지, 사짜인지, 감이 안 온다. 천천히 생각하자고.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아직 변압기 쪽도 발 담그지 못한 분야가 많아서 장기 과제로 올려놓죠.”
“이거 제가 또 주제넘었던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여러 가지 말씀해 주시니 좋네요. 앞으로도 전력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많이 알려 주세요.”
“제가 아는 한에선 다 말씀드려야지요. 이게 ESS라는 것이 말입니다…….”
가볍게 인사 나누자고 들어갔던 상무실에서 한 시간 만에 풀려 나왔다. 말이 많다는 단점은 있지만, 의욕이 넘치는 모습은 맘에 든다. 기존 직원들과 잘 어울리면서 좋은 성과 내길.
사장실로 돌아와 한숨 돌리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네, 들어오세요.”
또 최 상무. 한 시간 얘기하고 헤어진 지 1분도 안 지났는데…….
“사장님. 갑자기 생각나서 그러는데, 왜 저번에 박 처장한테 기술 개발한 것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 우선배정 받는 것 끝나면 성능 개선 우선배정 신청할 생각입니다.”
“그럼 특허는 받아 두셨겠군요. 어떤 것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그게 코아 성능개선이랑 변압기 소음절감 기술, 두 가지인데요. 먼저 코아부터 말씀드리면, 코아 손실이랑 동손이 개선됩니다. 개선 수치는 크지 않는데, 코아 제작이랑 조립이 훨씬 용이해 져서 생산성이 높아지죠.”
코아 성능개선이란 선물을 가져온 공장장의 작품, 각진 코아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 줬다.
아직 대한전력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수출품에만 적용하고 있지만, 시제품 테스트까지 다 마친 상태라 관수 변압기에도 언제든 적용할 수 있다.
“허허, 아이디어가 좋으십니다. 역시 잘나가는 회사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소음절감도 꽤 그럴싸하게 들리는데요?”
“소음절감이 생각지도 못하게 대박입니다. 이것 때문에 고효율 아몰퍼스 개발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걸로 소음을 크게 낮췄습니다.”
고무 패킹을 활용한 변압기 소음 절감 기술. 이 역시 아직 적용하지 않고 있다.
소음개선 폭이 크기 때문에 무조건 성능개선 인정이 확실하다. 각진 코아가 아몰퍼스에는 적용이 안 되지만, 소음절감은 전 품목에 다 적용되는 것이라, 똑같은 10퍼센트 우선 배정이라도 규모에서 차이가 난다.
“허허. 정말 그걸로 소음이 그렇게 줄어듭니까? 이거 참, 저도 전깃밥 먹은 지 꽤 됐는데도 놀랍습니다. 특허는 다 등록하신 거죠?”
“그럼요. 저흰 할 만한 것은 다 특허 출원해 놓고 봅니다. 그렇게라도 보호 안 해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특히 대기업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좋은 기술을 개발해 놓고, 왜 우리 회사, 아니, 대한전력에 등록을 안 하셨습니까?”
대한전력을 우리 회사라고 하는 걸 보니 아직 32년 묵은 짬밥을 못 벗어 낸 모양이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우리 회사가 지금 우선배정으로 받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내후년까지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로 20프로 가져가고, 지역 우선배정도 있고, 내년에는 아몰퍼스랑 패드 개발로 또 가져갑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는데, 기술 개발했다고 더 가져가면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물량 마냥 늘어나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죠.”
“허허. 대한전력이 우선배정 절차를 잘 얘기해 주지 않았나 봅니다?”
최 상무가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다른 회사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다 먹으란 소린가? 황금알 낳는 오리를 오래오래 기르고 싶다는 소망이 잘못됐나?
“제가 모르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성능 개선이건 기술 개발이건, 우선배정은 조건만 부합하면 미리 등록해 놓고 아무 때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등록한 지 10년 이내로만 신청하면 되니까, 우선배정으로 많이 받아 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대한전력에 등록해서 성능개선 인정받아서 바로 상용화하고, 우선배정은 나중에 신청하면 된다는 것이죠?”
“그렇지요. 이게 우선배정 관련해서 말들이 많아서 절차를 잘 얘기 안 하는 모양이네요. 그 프로세스를 제가 만든 것이라 확실합니다. 당장 대한전력 가서 등록부터 하시죠. 아니, 이 좋은 기술이 있으면 바로 적용해야지 왜 묵혀 둡니까?”
이거 좋은 소식이로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긴 대한전력 사람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 그 사람들도 오지랖 부리며 먼저 얘기해 줄 리가 없지.
각진 코아 적용하면 공정이 한나절은 줄어드는데, 바보같이 묵혀 두고만 있었네.
혹시나 기술 유출될까 봐 꽁꽁 숨겨 둘 생각만 했다. 두 건 성능개선 인정받으면 우선배정 800억짜리라, 안전빵으로 쓰려는 생각도 있었다. 역시 회사 경영 잘하려면 많이 알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이 바보.
당장 대한전력 달려가야겠다.
“그렇다면 당장 가야죠. 우선배정 관련 조항에 그런 얘기가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상생협력 관련 내규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 내규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모르죠. 대한전력이 적극적으로 알려 주지 않으면 중소기업들은 알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 나온 김에 자료 정리해서 내일 당장 가야겠습니다. 상무님도 같이 가시죠?”
“당연히 그래야지요. 아직 끗발 살아 있을 때 후배들한테 도움 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대한전력 출신을 뽑으니 이런 것이 좋구나. 이것만으로 이미 연봉은 벌었다. 우리 신입사원 맘에 들어,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