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9)
199 소확수
토요일이라 함은 전날 늦게까지 놀다가 네발로 기어 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날을 말한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이게 주말의 맛이지’라고 외쳐야 한다.
그게 직장인의 삶이라면 사장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주말?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빨리 필드 나가자는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의 성화를 겪지 않으려면 골프 연습장에서 부지런히 허리를 돌려야 하고, 봉사 활동도 빠질 수 없다.
월급쟁이일 때 토요일에 출근하라고 하면 그렇게 싫었는데, 사장이 되고 나서 주말에 쉬지 못한다는 것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행사 여부일 것이다.
악명 높은 포괄연봉제 때문에 죽어라 야근을 해도, 주말에 나와서 일해도 보상 한 푼 없으니 오버타임 자체가 짜증으로 다가왔다. 회사가 내 노고와 성과를 인정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면, 1년 내내 일해도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사장이 되고 나서는 내 의지가 행동을 결정하는 일차 동력으로 작용한다. 토요일에 늦잠 좀 못 잤다고 구시렁거릴 일이 없지.
나만 팔자 좋게 살 수 없어서, 직원들에게도 야근과 주말 특근을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1.5배를 받아도 싫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전 직원 오버타임이 결정되면 충분히 설득하고, 넉넉한 보상을 쥐여 주고 있다. 태양전기 시절당했던 것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니까. 이런 걸 보면 나도 참 좋은 사장이겠지?
오늘은 로타리클럽 정기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봉사활동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두 달 정도 못 나갔다. 거액 기부도 좋지만, 직접 몸으로 뛰는 것도 필요하겠지.
“아이고, 형님들. 잘 지내셨습니까?”
“지 사장, 어서 와. 얼굴 보기 힘드네?”
“하하. 요새 좀 바빴습니다.”
“이제 좀 숨 쉴 만해진 거야? 창립기념일이라고 기부도 시원하게 하고, 아주 스타가 됐어? 내후년에 지방선거 준비해야지? 하하.”
오늘도 변함없이 골프웨어 패션을 선보인 나주시 일자리창출과 윤재호 과장이다. 나주시와 전남도의 여러 가지 소소한 지원정책을 물어다 준 고마운 사람이다. 청탁이 아닌 서로 정당하게 도움 주고 도움 받는 관계로 말이다.
“사업하는 사람이 정치권 기웃거리면 그게 사업갑니까 사기꾼이지. 전 그냥 돈이나 벌면서 이렇게 봉사활동이나 하고 살렵니다.”
“하하. 나 퇴직하고 나면 생각해 보라고. 내가 팔 걷어붙이고 선거운동 해 줄라니까.”
“넌 인마. 우리 지 사장 붙잡고 아침부터 뭔 설교를 하고 있냐?”
개량 한복 형님인 이봉수 사장이다. 저번 이앙기 기부 미션을 잘 이행해 준 사람이다. 좋은 일 한다고 수고비도 안 받더라. 이런 게 좋은 인맥의 힘이지.
“형님은 왜 또 아침부터 갈구고 그랴. 앞길 창창한 지 사장한테 좋은 얘기 해 주고 있구만. 근데 오늘은 회장님은 안 나오시나?”
“오늘 병원 진료 때문에 시간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이따 저녁 먹을 때 오겠다고 하니까, 미리 숙취해소제라도 마셔 놔. 회장님 오면 술 오지게 마실 것 아녀.”
“아따, 오늘도 죽어나겠구만. 어제도 진탕 마셨는데. 여튼 다 모였으면 갑시다. 후딱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오늘 봉사는 독거노인이 살던 집을 치워 주는 활동이다.
나주가 대도시 밑에 붙어 있지만, 도농복합도시라서 홀로 사는 노인들이 참 많다.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근황을 살피고 있지만, 행정이 다 아우를 수 없으니 봉사 단체들이 서포트해 주는 것이다.
현장으로 가려고 차에 타는데, 누가 나를 찾는다.
“아이고,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고조선대학 강호원 교수다. 표정이 아주 밝다. 석 달 전 처음 봤을 때는 학생 모집에 지쳐 교수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말이다.
이게 다 내 덕이다. 매년 20명씩 대학 진학시키기로 한 것만으로도 나한테 큰절할 사람이다.
내년 3월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10월부터는 2주에 한 번씩 공장에서 전기공학 특강을 열기로 했다. 나는 직원 교육시켜서 좋고, 강 교수는 두둑한 강의료 받아서 좋고. 난 강 교수한테 큰절 두 번 받아야 한다. 아니지, 절은 한 번만 받아야지.
“사장님 덕분에 요즘 아주 맘 편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활동도 안 빠지고 계속 나옵니다. 하하.”
“뭐 서로 돕고 사는 것이죠. 우리 직원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 마시죠. 최고의 강의로 다들 전기 박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가며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로타리클럽 조끼를 껴입고, 빨간 코팅 목장갑 끼고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시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독거노인 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새마을운동 하던 시절에 씌웠을 만한 빨간 슬레이트 지붕,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기둥과 겨울 추위 대비를 위해 만들었을 조악한 새시. 시멘트로 덮어 버린 자그만 마당엔 골동품인 작두펌프도 보인다. 저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니.
문제는 낡아 버린 파란 대문을 열자마자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 것이다. 여기도 저장강박이구나. 길에서 눈에 보이는 족족 주워서 집에다 차곡차곡 쌓아 놓는 노인들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집주인은 안 계신가 보네요?”
“사회복지사가 억지로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갔대. 나이가 아흔이 다 돼 가는데, 혼자 살다가 뭔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 청소라도 잘하고 살면 모르는데, 이런 데 살면서 뭔 고집을 그리 부렸는지 원.”
“이번에도 쉽지 않겠습니다.”
“하하. 뭐 그래도 그 언제야? 그 반지하 방 청소했던 것보다는 수월해 보이는데?”
윤재호 형님이 끔찍한 기억을 소환했다.
로타리클럽 가입하고 가진 첫 봉사활동이었다. 저장강박이 극에 달했던 60대 할머니가 살던 집을 치우기 위해 1톤 트럭이 네 번이나 쓰레기를 버리고 와야 했다. 냄새도 아주 끔찍했고, ‘죠의 아파트’도 놀랄 정도의 곤충들의 향연을 목격해야 했다.
“자, 청소 시작해 봅시다. 일단 봐서 아니다 싶은 것들은 다 버리세요. 쓸 만한 것들은 내다 팔아서 할아버지 드릴 건데, 딱 봐도 팔 만한 것은 없어 보이네. 자, 레츠고.”
처음엔 할 만했다. 잡다한 수집품들을 들어내 트럭에 싣기를 반복하다 보니, 슬슬 냄새가 진하게 올라온다. 정체불명의 검은 물이 굳어 버린 장판 위로 6개 다리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린다.
“어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국민소득 3만 불이고 이제 선진국 됐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악취를 참고 뿜어낸 내 투정에 강 교수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 길거리 나가 보면 태반이 외제차일 정도로 그렇게 부자들이 많은데, 이 집에 살았던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벌어서 좋은 일에 쓰도록 기부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많이 뽑고 월급 잘 주는 것일 테다. 난 그게 기업가 정신이라고 배웠다.
우리 직원들한테도 노후를 힘들게 보내지 않도록 개미가 되라고 얘기해 줘야겠다. 예전에야 열심히 일해도 일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 회사는 일한 대가는 확실히 치르니깐.
서너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집 치우기가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켰지만, 입맛도 없더라.
땀을 진탕 흘리고 났더니 사우나 생각이 간절해졌다. 보아하니 대충 세수만 하고 본격적으로 들이켜러 갈 모양이다.
“자, 고생들 하셨습니다. 회장님이 딱 끝날 시간 맞춰서 오고 있다고 하네요. 고생했다고 한잔 거하게 사겠다고 하니까 오늘 민정이네 가서 홍어에다가 아주 제대로 마셔 봅시다.”
‘난닝구’ 차림의 이봉수 형님이 역시나 이 노고를 술로 풀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난 도망을 택하겠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미팅이 있어서 오늘 끝까지 같이 못하겠습니다.”
“지 사장, 갈라고? 무슨 일을 주말에도 하고 그래? 좀 쉬엄쉬엄하지그래.”
“바삐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먼저 들어가게 돼서 죄송합니다.”
“일이 있으면 보내 줘야지. 참, 아는 형님이 이번에 농산물 가공공장 하나 세우는데, 변압기 하나 해 줄 수 있지? 용량 300짜리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럼요. 업계 최저가로 모시겠습니다.”
봉사활동도 보람차지만, 이렇게 변압기도 팔았다.
이봉수 형님은 나주 바닥에서 건재상 20년 넘게 하면서 구축한 인맥으로 변압기 꽤 팔아 준다. 그래 봐야 몇 대 안 되고 실상 돈도 안 되지만,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로타리클럽 회원들. 역시 가입하길 잘했어.
보여 주기식 체험이 아니라 리얼로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채로 단체사진 한 장 박고 나서 집으로 복귀했다. 오자마자 악취가 스며든 옷을 모조리 빨고, 몸도 때밀이로 빡빡 문질러 닦아 냈다.
그 지독한 공간에서 일상을 보냈던 아흔 살의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일제시대 때 태어나 해방정국과 전쟁이라는 대혼란 시기에 20대를 보내고, 하루 16시간씩 일했다던 고도성장 시기를 보냈을 그 사람.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는 대학생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거나 혹은 응원하면서 국뽕 최절정기인 88올림픽을 지켜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 온 할아버지는 왜 힘든 노후를 보내야 했을까? 지금 요양병원에서 편히 쉬고 있을까?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이겨 내지 못했던 아버지도 살아 계셨다면 불우한 노후를 보냈을 수도 있다.
동정의 시선이 아닌 그저 좀 벌었으니까 나누자는 생각으로 돈 좀 써야겠다. 어차피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할 돈이니, 살아생전에 펑펑 써야지. 근데 이 냄새는 왜 씻어도 안 없어지나.
모처럼 데이트하는데, 냄새가 걱정일세.
박준희 사장과 체육대회 때 했던 내기에 지면서 밥 사 주기로 한 약속을 오늘에야 이행하기로 했다. 이것도 미팅이니 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 거짓말한 것은 아니다. 진짜 약속이 없었더라도 술이 무서워 도망칠 생각이었겠지만.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박 사장 뜻에 따라 혁신도시 호수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작살나는 레스토랑으로 약속을 잡았다.
“정수 씨! 먼저 왔으면 들어가 있지 그랬어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코디 좋네요. 이 동네 패션피플답습니다.”
늦여름과 초가을 중간쯤에 자리 잡은 옷차림으로 등장한 박 사장은 같이 다니기 참 좋은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과 같이 다닌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연예인 얼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주문과 함께 일상의 얘기를 주고받으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호감을 확인했으니 강하게 밀어붙여도 될 것 같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조심스럽다. 압력밥솥이 아니라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 느낌이다.
“웬일이에요? 오늘 향수도 뿌렸네요?”
몸에 뭘 바르고 뿌리는 행위를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박 사장이 은은하게 풍겨 오는 풀 향기를 맡았다. 봉사활동의 깊은 체취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서 평소보다 두어 차례 더 뿌렸는데,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오해 받겠네.
“누나랑 데이트하려고 신경 좀 썼습니다.”
뱀의 혓바닥.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려면 이 정도 구라는 용인되는 수준이지 뭐.
“참. 중전기조합 얘기 안 들었죠?”
“네. 또 무슨 일 있어요?”
중전기조합 운운한 박 사장의 표정이 꽤 밝은 것을 보니 기분 좋은 소식이렷다.
“일반형 주상변압기 말이에요. 대한전력에 재고품 처리해 줘야 한다는 의견서 보냈다고 하네요.”
“하하. 뭐 또 중소기업 죽이니 어쩌니 하겠네요?”
“맞아요.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때까지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했다네요.”
“이거 또 저번처럼 대한전력 본사 찾아와서 시위라도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대한전력이 없어진 품목 재고품을 구입해 줄 것이란 기대감에 재고 물량 잔뜩 만들어 둔 중전기조합 회원사들이 환장하기 직전인 모양이다. 대한전력이 그렇게 하겠다는 공식 발표도 없었는데, 깽판 부리는 꼴이라니. 그렇게 역린 건드려 봐야 좋을 것 없는데.
중전기조합 난리 블루스 추는 꼴 구경하다가 재고품 헐값에 사들이면 되겠군. 오늘 이래저래 소소하지만 확실한 수확이 꽤 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