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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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229화>229 중전기조합
망할 회사는 하루라도 빨리 망해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자 지론이다.
나와 회사를 괴롭힌 태양전기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중전기조합과 그 회원사들도 그 길을 걷길 기대했다. 조합을 새로 차리고, 대한전력 입찰에서 밟아 주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태양전기처럼 멍청하지 않으니 더 섬세하게 자근자근 밟아 줬어야 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덕준이에게 권하는 담배가 늘어났다. 덕준이의 잔소리도 늘어났다.
“너 요새 아주 피웠다 하면 두 대는 기본이네? 이제 몸 생각 좀 해라.”
“그러게 말이다. 생각할 것이 많아서 습관적으로 그렇게 되네.”
“그러다 뼈 삭아 인마.”
“뼈 삭는 건 다른 거 아니냐? 암튼. 중전기조합 얘기 계속해 보자고. 그쪽 회사들 다 힘든 건 아니지? 살 만한 회사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조합 끌고 가는 회사들 있잖아? 광진이니 동서니 두성이니 이런 회사들 말이야. 걔네들은 진짜 그동안 돈 엄청 벌어 놨나 봐. 말 들어 보면 짱짱하다고 하더라고. 그런 데 말고는 워낙 힘들어서 내년 입찰까지 버티기 힘들 거야.”
덕준이가 내년에 새롭게 펼쳐질 판도에 신이 났다. 중전기조합 회원사들 절반 가까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어깨춤이 절로 날 것이다.
덕준이 기대와 달리 공장장 걱정이 더 와 닿는다. 중전기조합 놈들이 늘 말하던 대로 사업 일이 년 한 것이 아니니, 입찰에서 두 번 연속으로 물 먹었다고 백기 들 놈들이 아니다.
“문제는 조합 이끄는 회사들이야. 걔네들은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단 말이지.”
“그건 무슨 소리래? 회원사들 문 닫아서 조합이 쭈그러드는데 좋을 게 뭐 있어?”
덕준이가 신 난 사람 앞에서 왜 장송곡 부르냐는 표정이다.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으니 저런 표정 지을 만하다. 역시 공장장처럼 이것저것 따져 보고, 걱정도 사서 해 볼 필요가 있다.
“자, 자, 생각해 봐. 조합으로 낙찰을 받았으니까, 엔빵이잖아? 회사가 줄어들면 나누는 몫이 많아지는 거잖아. 오히려 살 만한 회사들은 다른 회사들 빨리 망하라고 기도하고 있을걸?”
“그렇군. 아, 그래서 그런 건가?”
덕준이가 뭔가 깨친 바가 있다는 표정이다. 그래, 너도 뭔가 얘기해 봐.
“뭐 이상한 게 있어?”
“아니, 내가 요새 재고 떨이한다고 중전기조합 쪽 찔러 보고 다니잖아. 근데 이상하게 좀 잘나간다 싶은 업체들은 재고가 거의 없어. 그래서 어려운 업체들만 돌고 있는데, 거기야 뭐 이삼백 대씩은 기본으로 깔고 있지.”
덕준이가 음모론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자기 살겠다고 같은 조합 회원사 죽이려는 짓. 진짜라면 천인공노할 짓이다.
“혹시 그놈들이 재고 구매계획 나가리 난 거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을까?”
“설마 그랬을까 싶은데,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잖아? 같은 조합이라고 해도 어차피 경쟁사인데, 네 말대로 숫자가 줄어들면 그놈들한테는 좋지 않겠어?”
가볍게 담배 한 대 피우자고 시작했던 대화가 묵직한 무게로 바뀌어 갔다.
나와 우리 조합의 계획대로 중전기조합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와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 와해가 중전기조합 핵심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고 있다. 이것들이 힘을 회복한다면? 골이 아파 온다.
“너 요새 아시아전기 얘기는 들은 거 있어?”
“아시아전기? 뭐 없는데? 네가 중전기조합 쪽 움직임 살펴보래서, 아시아전기는 신경도 안 썼지.”
“시간 나면 아시아전기도 염탐해 봐.”
“이거 뭐 자재 했다가, 잡일 하다가, 영업까지 하다가, 이젠 국정원 일에 몰빵해야 하는 거냐?”
덕준이가 한숨을 내쉬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연기같이 느껴진다. 첩보 활동에 흥미 가득한 표정이 감춰지지 않는다. 연기력이 부족해.
“그냥 느낌이 안 좋아. 너 알잖아? 내가 느낌 안 좋다 싶으면 여지없는 거.”
“우리 사장님 신내림 받았으니 어련하겠어. 근데 염탐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 업체 찾아간다고 속내를 드러낼 리 없잖아.”
“알지. 그래서 너한테 특별히 부탁하는 거야. 너 그런 거 아주 좋아하잖아.”
“이게 거래처 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나오는 것들이라 정보라는 게 정확하지는 않아. 그나마 중전기조합 회사들 몇 군데 다니니까 거기서 나오는 얘기랑 아귀가 맞는 게 몇 개 있는 정도지, 그냥 소문인 것도 많아. 뭐가 됐건 들쑤셔 볼게.”
대답에 맞춰 담배 한 대가 끝이 났다. 자연스럽게 한 대 더 권했다.
덕준이가 네발 달린 짐승 보듯이 쳐다보면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흥미진진하단 뜻이렷다. 염탐과 계략을 즐기는 녀석다워.
“가만가만, 그러고 보니까 재고품 사들이는 거 속도를 낸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은데?”
“그렇지, 그렇지. 우리가 빨리 사 줘야 망할 회사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으니까.”
연말을 앞두고 재고품 구매를 서둘렀다. 회사들 죽는소리에 속도를 냈던 것이지만, 전략적으로 잘한 선택 같다. 덕준이 말대로 재고품 생산이 같은 조합 회원사 죽이려는 술책이었다면 잘 막아 낸 것이다.
중전기조합을 나눠 볼 필요가 있다. 힘들어하는 업체들 일단 살려 놓고 우리 편으로 만들고, 진짜 망하게 만들 업체만 정밀 타격할 필요가 있겠다.
“중전기조합에서 어떤 놈들이 못된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움직일 것 같긴 해.”
“광진이랑 동서는 확실할 거야. 그놈들이 지네 회원사 죽여서 체력 회복한 다음에 우리한테 지랄할 것이라 이거지? 개새끼들이 개 짖는 소리 내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지.”
“나도 여기저기 정보 좀 캐 볼 테니까 너 좀 당분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정보 수집해 봐.”
“예썰! 일단 중요한 게 있어. 아, 이거 큰일 났네.”
덕준이의 갑작스러운 호들갑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또 있나? 찰나에 온갖 생각이 떠돌았다.
“왜 그래? 뭔데? 또 뭐 있어?”
“내가 퇴근할 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거지. 남들 다 퇴근했는데 이러고 있으니 큰일이지! 난 퇴근할 테니까 내년부터 또 빡세게 해 보자고. 악덕 사장님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래, 빨리 가라. 너 윤경이랑 결혼할 거지?”
“결혼? 해야지. 내년 가을쯤?”
“그래, 결혼해라. 윤경이가 널 살렸다.”
“흐미, 무서운그.”
잽싸게 내빼는 덕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저놈도 내 가족이다. 중전기조합이 최후의 발악을 하며 나와 우리 회사, 우리 가족을 해할지 모르는데, 따뜻한 연말을 즐길 수만은 없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
그나저나 저녁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이제 뭐 하나. 내 방에 앉아서 대충 시간 때우다 나갈 생각으로 사무실로 발길을 돌리는데, 상무 방 불이 켜져 있다.
퇴근한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네?
“상무님.”
“아, 네, 사장님. 들어오세요.”
최윤근 상무는 직원들이 퇴근하건 말건 여전히 일에 파묻혀 있다.
1차 과제로 경영, 품질, 생산 시스템을 정비한 이후에는 ISO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한전력 입찰자격 획득을 위해 급한 대로 ISO9001만 받았는데, ISO14001도 받아 두는 것이 좋다며 저리 열심이다.
“다들 퇴근했는데, 일찍 들어가시지 그러세요.”
“허허. 그래야지요. 만날 보고서만 보고 결재만 하다가 이렇게 실무까지 하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잘됐네. 상무 방 들어온 김에 수다나 떨고 가자. 여기 있으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갈 것이다.
“상무님. 이제 회사 들어오신 지 석 달 지났는데 지내보니까 어떠세요?”
“좋고말고요. 허허. 이것저것 손볼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허허.”
“상무님께서 회사 시스템 업그레이드해 주셔서 어수선했던 것이 자리를 잡아 가는 느낌입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손사래를 치며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보니, 저렇게 겸손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문자님이 보내 주신 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인복, 진짜 예술이다.
“아이고, 아닙니다. 솔직히 이 정도도 못 갖춘 회사 수두룩합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신생인데도 갖출 것은 다 갖춰 놔서 제가 뭐 딱히 한 것도 없습니다.”
최 상무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거대 기업 정년퇴직자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기업 퇴직자의 채용. 이것도 일종의 전관비리이다. 원하면 전화 한 통 걸어 줄 테니 월급만 넉넉하게 챙겨 달라는 의도로 오는 경우가 많다. 최 상무는 월급 루팡하겠다는 냄새가 전혀 없다.
처음에 우리 회사 오겠다고 했을 때 많이 의아했다. 편하고 돈 많이 주는 대기업 내버려 두고, 사서 고생하려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가 오로지 돈 때문에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것을 최 상무 덕에 알게 됐다. 그저 일이 하고 싶어서, 회사가 크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더라. 참 고마운 사람이다.
“상무님, 대한전력 계실 때 중전기조합은 평판이 어땠습니까?”
최 상무가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려놨다.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 생각인가 보다.
“중전기조합요? 대한전력에서 조합 정도가 입에 오르내릴 일은 별로 없죠. 제가 배전 쪽에 있을 때 생각해 보면 평이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네요.”
“아, 그런가요? 어떤 점이 안 좋게 보게 했을까요?”
“뭐, 아무래도 입찰 때문에 그렇죠. 다른 조합은 눈치라도 보는데, 변압기는 규모가 좀 있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귀찮게 했죠. 거기다 입찰 때마다 매번 99프로 대로 받아 가니까 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지요.”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이 변압기혁신조합 만들어지자 반겼던 것이 생각났다. 적자 줄이라는 사장 압박을 덜 수 있겠다는 기쁨과 환희. 변압기 업계로서는 손해 보는 것이지만, 대한전력에 도움 준 대가를 잘 누리고 있으니 공정 거래했지 뭐.
“우리 조합 회원사들이 중전기조합에 있을 때 핍박을 받다가 결국 따로 조합을 차린 것은 알고 계시죠?”
“네. 뭐 그렇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작년 입찰도 그렇고, 올해 입찰에서도 중전기조합에 한 방 먹였는데, 그것 때문에 저쪽에 힘 좀 있는 몇 개 회사들이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최 상무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업체들끼리 쌈박질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얘기가 돌아다닙니까? 처음 듣는 얘긴데, 친한 업체나 후배들한테 전화해서 좀 알아봐야겠군요. 해코지를 하면 우리 회사가 타깃 되는 게 아닙니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제가 조합에서 맡은 역할도 있고, 우리 회사가 이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군요. 으음…….”
최 상무가 사색에 빠졌다.
내가 생각했을 때 해코지할 수 있는 방법은 내년 입찰 때 덤핑 치면서 동귀어진하는 것밖에 없다. 내가 모르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해서 최 상무에게 물어본 것인데,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을 보니 살짝 안심된다.
이윽고 최 상무가 입을 열었다.
“뭐 별거 없을 겁니다. 조합이라는 것이 그럴 힘이 있는 조직도 아니고. 해코지한다고 해 봐야 직접생산이나 필수설비 점검하라고 신고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긴 한데요…….”
“우리야 규정대로 하니까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죠.”
“치졸하게 하자면 탈세혐의 있다고 찌르는 것도 있긴 하겠군요. 그런 거야, 뭐…….”
“그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멍청하다는 소리 들으면서까지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혁신산단 입주기업 혜택으로 나라에 내는 돈은 지방세와 부가세밖에 없다. 그럼에도 행여나 생트집 잡힐까 봐 FM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저승사자라는 조사4국이 쳐들어와도 하나도 겁날 것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동태를 살필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우려되는 점이 있긴 합니다…….”
계속 말끝을 흐리던 최 상무가 우려되는 점이 있다며 운을 확 띄워 버렸다. 귀에 온 신경이 쏠렸다. 뭔데?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