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0)
230 불쾌한 동맹
최윤근 상무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고 있다니, 애가 닳다 못해 타들어 간다.
“중전기조합 해코지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뭐가 우려되십니까?”
최 상무가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더니, 생수병 하나 들고 왔다. 목이 마른 건 알겠는데, 뜸은 그 정도면 충분히 들였을 것 같은데요?
“성호 말입니다. 김성호 본부장요.”
“김성호 해외영업본부장 말씀입니까?”
“네. 그 녀석이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중전기조합 이사장과 친분이 좀 있거든요.”
김성호가 중전기조합과 손을 잡는다? 최 상무가 저번 대한전력 인사 이후로 김성호 본부장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하더니, 계속 찝찝한 모양이다.
“상무님. 그 김성호 본부장이 기술혁신본부장이었을 때 기술기획처장이셨죠?”
“맞습니다. 제가 성호보다 세 기수 선밴데, 걔는 딱딱 올라갔고, 저는 많이 뒤처졌죠 뭐. 허허.”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긴 하시겠네요?”
“잘 알죠. 걔도 참 열심히 살았지요. 본부장까지 올라가는 거, 아무나 못합니다. 근데,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걔가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경우가 있어요.”
나 때문에 이춘배 부사장에 밀린 데다, 이제 해외파트로 넘어갔으니 승진은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이판사판으로 같이 죽자고 덤빌 수 있다는 말인가?
“중전기조합이야 저한테 악감정이 있으니 이해가 되지만, 김 본부장이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말로야 이춘배 부사장이 저 때문에 승진했다고 하지만, 그저 호사가들 얘기 아닙니까?”
“호사가들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SPRD, 그거 아니었으면 춘배가 역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성호도 대충 돌아가는 판을 알 테니 사장님에 대한 감정이 좋진 않을 것이고, 이를 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내 영향력이 그 정도였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김성호가 무슨 짓을 하겠다는 것인지 초조해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뭐 할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최근에 이슈도 없고, 김성호 본부장이야 이제 해외파트라 힘쓰기도 애매하지 않습니까?”
“성호가 작년 승진인사에서 물먹고 나서 독이 바짝 올랐어요. 부사장 승진도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횐데, 해외파트로 발령이 났으니, 끝났다고 봐야죠. 해외파트도 예전에야 부사장급 대우였지만, 지금은 주력사업이 원전사업본부로 빠지면서 이빨 다 빠졌죠 뭐.”
“그렇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장님께서 성호를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승진이 안 될 것 같으면 조용히 있다가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성호는 성격상 그걸 못 받아들여요. 그러다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또 그럴까 봐 걱정이죠.”
최 상무가 안심하지 말라며 경고를 쏟아 낸다. 임기 끝나면 나갈 일만 남은 김성호 본부장이 똥을 거하게 쌀 수도 있다는 말인가?
“무리수라면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부 시험을 봐야 차장 달 수 있는 것을 알고 계시죠?”
“네, 얘기는 들었습니다. 간부시험 안 보고 과장으로 퇴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허허. 맞습니다. 그거 때문에 골치가 아프긴 하죠. 여튼, 차장 달고 나면 그때부터는 승진에 불을 켜고 삽니다. 각오하고 간부 됐으니까 정점까지 올라가자 이거죠. 그래서 라인이니 뭐니 하면서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만년 과장으로 편하게 정년 채우고 나오느냐, 월급은 거의 차이 없지만 권력을 누리며 사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전자를 택하는 직원이 많아서 억지로 간부시험 보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상무님도 처장까지 올라가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저야 뭐 운 좋아서 그런 거죠. 성호가 본부장 달고 나서 라인 챙긴다고 아주 열심이었어요. 자기 라인이 승진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회사를 아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애들 시켜서 내부 고발도 하게 하고…… 아주 시끌시끌했죠.”
“그러던 사람이 본인이 물먹었으니 난리 칠 것이라 이 말씀이죠?”
“네, 그래서 제가 신경이 계속 쓰입니다.”
무슨 짓을 할지 윤곽이라도 잡히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살짝 답답하다. 경고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귀로 빠져나간다.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최 상무가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저번에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고 나서 좀 알아봤는데, 중전기조합 이사장이 성호와 종종 만났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말씀입니까?”
“기술혁신본부장일 때도 보긴 했는데, 최근에 자주 보긴 한 모양이에요. 본사가 나주라 누가 오거나 서울 출장 간다고 하면 대번에 알지요. 예전에야 그냥 술이나 얻어먹었겠구나 생각했을 텐데, 좀 찝찝하긴 하네요.”
최 상무 말대로라면 중전기조합 최웅민 이사장과 대한전력 김성호 본부장이 손을 잡았다고 봐야 한다. 그 동맹이 썩 기분이 좋진 않다.
“중전기조합 이사장이 김성호 본부장과 손잡고 무슨 짓을 할 수도 있다라…… 뭐 딱히 할 만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찝찝합니다. 지금이야 춘배가 있으니까 안심이 되긴 해도, 성호 그 성격에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말이죠. 춘배도 성호한테 많이 당했죠. 그걸 다 이겨 내고 부사장까지 올라갔으니 그 녀석도 난 놈이죠. 허허.”
이춘배 부사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긴 해도, 본부장급이 움직이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수 있겠다. 상대인 중전기조합은 악만 남은 놈들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죽이려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은 지켜보시죠. 저도 마냥 마음 놓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제가 일단 성호가 무슨 짓을 벌이나 잘 살펴보겠습니다.”
별것 아닌데, 공장장 걱정 한마디에 괜한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공장장 말 듣고 나니 일상적인 모습도 음모로 느껴지는 확증 편향은 아닐까? 최고의 뒷배인 문자님도 아무 말이 없으시니 더 그렇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별 얘기 안 한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삼총사 모임에 앞서 준희 누나와 일찍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그 시간이다. 최 상무와 작별할 때군.
“상무님께서 본부장까지 하셨다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봤을 때 상무님은 본부장까지 거뜬히 가고도 남으신 분인데, 제가 속이 다 상하네요.”
“허허. 본부장 아무나 합니까? 저 같은 샌님들은 어림도 없지요. 승진이 월급쟁이들의 꿈이긴 하지만,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맘 편하게 일만 하면서 가족하고 시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가족하고 시간 보내신다는 분이 퇴근도 안 하고 이러고 계시면 됩니까? 하하. 일 많이 안 하셔도 되니까 일찍 일찍 들어가세요.”
“퇴근할 참이었는데 사장님께서 붙잡은 겁니다. 허허.”
핀잔주듯이 내던진 농담이 참 편안하게 들린다. 나와 상무 사이가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최 상무와 작별하고는 다음 행선지로 몸을 움직였다. 연말이라 오지게 바쁜데, 괜한 불안감에 맘이 썩 편치 않다. 나에게 힐링을 선사할 사람을 찾아 나섰다.
집에 차를 놓고 건너 단지에 사는 준희 누나를 찾아갔다. 회사에서 노가리 까다 온 나와 달리 이제 막 퇴근한 얼굴이다.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악덕 사장님, 어서 오세요. 마지막 날까지 무슨 일을 그리 시킵니까!”
“하하. 그래도 3시에 끝낸 것이 어딘데요. 우리 회사는 정수 씨네만큼 여유가 있지 않잖아요.”
회사에서 직원들 퇴근 못하게 수다를 떤 덕에 누나와 보기로 한 4시를 맞출 수 있었다. 두 시간가량을 애매하게 보낼 뻔했다.
집돌이들은 하루에 일정을 여러 개 잡지 않는다. 일정도 없이 집에 있으면 할 것이 그리 많은데, 누굴 만나기로 약속하는 순간 그 시간까지 아무것도 못한다. 멍 때리며 시간 허비하지 않게 해 준 공장장, 덕준이, 최 상무. 참 고맙다.
“더 악덕 사장인 강 사장님은 5시 넘어서 오시는 거죠?”
“거긴 우리보다 더해요. 하하. 안성파워가 요새 일이 엄청 많대요. 내일도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던데요?”
“아니, 내일은 진짜 말일 아닙니까? 거기다 토요일인데! 직원들 입이 댓발 나오겠는데요? 우리 회사는 2일도 대체 휴일로 쉽니다. 하하.”
연말만 되면 월급쟁이들은 이듬해 달력을 분석한다. 공휴일이 주말에 겹치면 탄식을, 금요일이나 월요일이면 탄성을 뱉는다.
희비가 엇갈리는 달력 분석. 우리 회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빨간 날은 무조건 보장이다. 하루 쉬면 타격이 적지 않지만, 그까짓 거 돈 잘 벌면 되지.
그리고 힘든 공장일수록 많이 쉬게 해 줘야 한다. 체력이 받쳐 줘야 생산량이 높아진다. 직원들이 매일같이 출근해 일하는 모습을 봐야 안심하는 사장은 오히려 돈 벌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누나가 또 부럽다는 표정이다.
“우리 회사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만들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히잉.”
언제부턴가 누나가 말속에 애교를 살짝 집어넣는다. 가식 없고 호방한 모습만 보였던 누나가 저러는 것은 살인미수이다. 아, 쓰러질 것 같아. 덕분에 살짝 불안했던 감정도 싹 누그러졌다.
“대한전력이 연말에 물량 쏟아 내는 거야 예정된 일 아닙니까? 우리 회사는 재고도 넉넉하고 생산도 쭉쭉 뽑아내고 있어서 거뜬합니다. 하하.”
“은근 잘난 체야. 어휴, 못됐엉.”
정말 못된 사람은 누나다. 저런 표정으로 저 대사를 날리는 것은 나를 녹여 버리겠다는 심산 같은데? 해가 저물어 어두웠다면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그냥 껴안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팜므파탈.
“시간도 넉넉한데 천천히 걸어가시죠.”
“푸하하. 새 차라고 대리 운전 맡기기 불안해서 그렇죠?”
“에이, 누나랑 같이 걷고 싶어서 그렇죠. 오늘 운동도 못하는데 운동 겸해서요.”
속내를 들켜서 살짝 부끄럽다. 새 차 산 사람이 비닐도 함부로 뜯지 않는 심리가 이제야 이해됐다. 하물며 남의 손에 차를 맡길 수는 없지!
“하하. 그렇게 믿을게요. 슬슬 걸어가면 시간 딱 맞겠네요.”
그렇게 혁신도시 산책이 시작됐다. 힐링하는 산책인데도 머릿속에서 중전기조합이 떠나지 않는다.
“누나, 혹시 아시아전기 얘기 들으셨어요?”
“아뇨? 아시아전기가 왜요? 무슨 일 있대요?”
공장장이 소식을 전했을 때 내가 지었던 것과 유사한 표정이다. 꽤 마당발인 누나조차 모르는 얘기를 공장장은 대체 어디서 주워 들었던 것인가?
“저도 전해 들은 얘긴데, 요새 연체 때문에 중전기조합으로 들어가서 물량 반납할 것이란 얘기가 있더라고요.”
“아, 진짜요? 지금 안 그래도 그쪽 몇 개 회사가 문 닫을 것 같다고 하던데, 아시아전기까지 붙으면 버티는 회사는 재미 좀 보겠네요?”
예리한 사람답게 중전기조합이 겪는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바로 캐치해 낸다.
“맞아요. 살아남은 회사들이 체력 회복하면 가만 안 있을 것 같아요. 최웅민이니 김익환이니 그 사람들이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잖아요?”
누나가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옆이라 얼굴이 잘 보이진 않지만, 평온한 느낌이 충분히 전해졌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솔직히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요? 강 사장님도 있고, 무엇보다 정수 씨가 있잖아요? 믿음직한 정수 씨도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호호.”
외이도를 타고 고막으로 전해진 누나의 웃음소리가 신경을 타고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나를 녹이는 저 웃음소리. 이것이 진정 힐링이로구나.
몸이 녹은 채로 황홀경에 빠진 기분으로 산책을 이어 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문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체감이 된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이야. 걸어서 20분 거리도 눈 깜짝할 새로군.
누나가 놓아 준 진정제 탓인지 평온해졌다. 진정하고 나니 살짝 화가 났다. 이 기분 좋은 연말에 고작 허접한 놈들 때문에 내 머릿속이 찝찝해졌다는 것이 불쾌했다.
나를 신경 쓰게 만든 중전기조합 이놈들. 진짜 걸리기만 해라. 이 동네 말로 아주 지대로 조사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