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1)
231 조력자의 걱정
회사 세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돈 다음으로 필요했던 것이 조력자였다. 내부는 공장장과 김희철 사장 영입으로 해결됐다.
고민은 외부 조력자였다. 회사가 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인간 재해와 파고를 만나는 법이다. 그때 외부 조력자들이 도움을 준다면 위기를 거뜬히 넘을 수 있다.
운이 좋았다. 이 바닥에서 새로운 전설로 떠오르던 박준희 사장이 먼저 찾아와 손을 내밀었고, 최고 실력자인 강호창 사장은 내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그들을 기꺼이 도왔고,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린 그렇게 삼총사가 됐다.
삼총사의 만남은 대화하기 좋은 일식집으로 잡았다. 튀김이 나오는 것 빼고는 횟집과 다를 것이 없어도 많이 비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식당. 오늘 내가 시원하게 쏘겠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하.”
준희 누나와 나란히 앉아 꽁냥꽁냥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호창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회사가 너무 잘나간다고 하더니, 연말까지 아주 바쁘십니다?”
“대한전력 그놈들이 연말부터 쏟아 내는 거 알지 않나? 아휴, 아주 죽겠어. 대충 알아서 하라 그러고 그냥 나와 버렸지. 하하. 그나저나 박 사장 아주 얼굴이 좋아 보여. 요새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강 사장이 누나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우리 관계를 알고 있으니, 확답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좋은 일요? 글쎄요. 강 사장님하고 지 사장님하고 이렇게 만나는 것이 좋은 일 아닐까요?”
“하하. 그래그래. 아무튼 올해 고생들 많았고, 내년에는 진짜 좋은 일들만 가득하자고.”
눈치가 있는 사람들의 대화라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둘이 무슨 사이냐고 집요하게 묻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발뺌하는 진부한 대화가 아니라 다행이다.
잘 플레이팅 된 맛깔나 보이는 회가 나왔고, 너무도 당연하게 회 먹기 전 의식인 술잔 채우기가 시작됐다. 술을 안 좋아해도 회를 보고도 술 생각이 안 난다면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크으. 술맛 좋구만. 오늘은 지 사장이 사는 거지?”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술잔을 털어 버린 강 사장이 대뜸 계산서를 떠밀었다.
“아, 그럼요. 얼마든지 사야지요.”
“하하. 나주 바닥에 소문이 파다해. 직원들한테 성과급 엄청 줬다고 말이야. 나도 술 한잔 얻어먹어도 될 것 같어.”
“맞아요. 억 단위로 받아 갔대요. 우리 직원들 귀에 안 들어가게 하려고 당분간 프라임일렉트릭 직원들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하하.”
누나도 맞장구를 쳐주며 무전취식의 의지를 내보였다. 숙성회 정도야 몇천 번이라도 사지!
“올해 다들 회사 엄청 키우시지 않았습니까? 저야 뭐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고, 진짜 실력자는 사장님들 아닙니까?”
“우리 지 사장님, 또 시작이네요.”
누나가 겸손 그만 부리라는 뉘앙스로 대꾸하고는 술잔을 들이밀었다. 벌주 마시라는 뜻인가? 얼마든지 마셔 줘야지.
“뭐, 굳이 얘기하자면,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가 올해진짜 바쁘지 않았습니까? 직원들 그 고생을 했으니 돈 몇 푼 쥐여 줬습니다. 저도 많이 벌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드시지요. 하하.”
“잘했네, 잘했어. 내가 자네를 남다르게 보긴 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다른 사장들도 자네 보고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
강 사장이 술병을 들었다. 냉큼 빈 술잔을 대령했다.
술잔을 가득 채운 술. 나를 생각하는 강 사장의 마음 같다.
매년 수확의 결실을 나누는 두 사장에게서 배운 것에 불과한데, 과찬을 해 주니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나를 좋게 봐주는 내 편과 함께한다는 든든함이 더 크다.
회 몇 점으로 배가 적당히 찼고, 술도 기분 좋게 할 정도로 흡수됐다. 오늘 막 생긴 송년회 목적을 꺼낼 때가 됐다.
원래 계획은 든든한 내 편인 포르토스와 아라미스에게 대접하면서 삼총사의 우정을 다지고, 한 해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한 해였고, 연말도 대미를 장식하는 듯 여러 이벤트로 성대하게 마무리됐다.
기뻐서 상모를 돌려도 모자랄 판에 중전기조합과 대한전력 움직임 때문에 기분이 깔끔하지 못하다. 오줌 눴는데 베이지색 면바지에 한 방울 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강 사장님, 요새 중전기조합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린 강 사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들을 자세를 갖춘 강 사장에게 공장장이 전해 준 소문, 덕준이와 최 상무에게 확인한 정보를 조합해 흘려보냈다.
“그래. 나도 얼핏 듣긴 했어.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조합 이 상무가 아시아전기가 불합격 연속 두 번 맞고, 이번 달부터 연체 걸렸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해 넘어가면 불합격 카운팅 새로 들어가는데, 운 좋네요. 불합격 연속 세 번이면 납품 자격 박탈인데요.”
누나가 아쉬운 표정으로 술잔을 홀짝였다. 나도 그렇다.
아시아전기 상황이 그렇다면 중전기조합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확정됐다고 봐야 한다. 대한전력 시험관한테 연속으로 불합격 맞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내다니.
문제는 아시아전기가 아니다. 기사회생할 중전기조합의 발악을 막아야 한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중전기조합이 34개인데, 위장회사 빼면 26개입니다. 이 중에서 열 곳 정도는 많이 어렵답니다. 우리 회사에서 영업하는 친구 말로는 여섯 곳은 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버틸 수 있는 회사들이야 빨리 망하길 기대하고 있을 거야. 가만 보자. 열 개가 문 닫고, 아시아전기가 들어간다 치면…….”
“저번 입찰로 업체당 45억 안 되게 가져가는 건데, 그렇게 되면 75억 정도로 늘어나요.”
누나가 재빨리 계산을 끝내고 답을 내렸다. 암산 능력 죽인다. 도대체 누나는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강 사장이 술잔을 들어 홀짝였다. 원샷이 아니고 목만 축일 정도였다는 것은 생각할 것이 많다는 뜻인가?
“음, 75억이면 1년은 어떻게든 먹고살 만큼은 되겠군.”
“맞습니다. 저희가 중전기조합 우두머리들을 밟는 것으로 갔어야 했는데, 그게 아쉽습니다. 우두머리들이 오히려 회원사들 희생으로 체력을 회복하게 생겼습니다.”
내 말에 강 사장이 술잔을 말끔히 비웠다. 빈 술잔을 채우려 술병을 집었는데, 누나가 한발 빨랐다.
술잔이 다시 차자 강 사장이 말없이 손만 내밀며 짠을 요구했다. 골치 좀 아픈 모양이네.
“그러니까 지 사장님 말은 광진이니 동서니, 두성이니, 중전기조합 이끄는 몇몇 회사들이 살아나서 우리랑 한판 붙겠다고 나설 수 있다는 뜻이죠?”
짠과 함께 술잔을 비우고 나자 누나가 술잔을 채워 주며 대화를 정리했다.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제가 되겠죠. 저쪽에서는 저를 원흉으로 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지 사장님 은근히 겁이 많으시네요. 프라임일렉트릭이 이 바닥에서 제일 크고 탄탄한 회사로 컸는데, 중전기조합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겠어요?”
바닥에 내려놓은 왼손이 따뜻해졌다. 옆에 앉은 누나가 걱정 말라는 느낌으로 손을 잡아 준다. 젓가락을 집기 위해 금방 올라갔지만, 그 순간이 남긴 잔상이 오래간다.
“자, 자. 연말을 기분 좋게 보내셔야죠. 지 사장님이 비싼 대접 하겠다고 이렇게 모였는데, 그깟 중전기조합 때문에 걱정하면서 보낼 필요 있어요?”
잔상을 붙잡느라 안간힘 쓰는데, 누나가 청량한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만으로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가 업된 느낌이다. 움직일 때마다 거래처를 뒤집어 놓는다는 전설의 사장. 목소리가 주는 매력이 엄청나다.
“하하. 그래, 준희 너, 말 잘했어. 뭐 좀 찝찝한 것이 있긴 한데, 일단 오늘은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고.”
사실 셋 다 기분이 엄청 좋아야 했다.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안성파워와 금성전기 모두 엄청난 고성장을 이뤄 낸 한 해이기 때문이다.
안성파워는 ESS 운빨을 타고 매출 2천억을 돌파했고, 금성전기는 민수와 수출 선전으로 600억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우리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리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허접한 놈들 때문에 심각해해야 하는 것이 웬 말인가! 예전에 강 사장이 했던 말대로, 매출 백억도 안 되는 회사들은 잠시 잊어 두자고.
잠시나마 걱정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내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지난 2년의 즐거웠던 추억을 안주 삼으며 하염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하하하. 처음 봤을 때 지 사장님 표정 어땠는지 아세요? 어찌나 긴장을 하던지, 면접 보러 온 줄 알았어요.”
준희 누나가 우리 첫 만남을 안주로 만들어 주안상에 올렸다. 강 사장이 술 한 잔 마시고는 그 안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지 사장이 그랬단 말이지? 내 앞에서는 안 그러더니, 준희 앞이라고 긴장한 것 아닌가? 이거 좀 서운한데? 하하.”
“제 미모에 반한 것이 아닐까요? 푸하하.”
“네, 뭐…….”
어떤 말을 해도 되받아칠 것 같다면 얼버무리는 수밖에.
솔직히 반하진 않았다. 연예인과 밥 먹었다고 연애를 생각하진 않듯이, 지금처럼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강 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시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낸다.
“강 사장님, 또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강 사장이 말없이 또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오늘은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고 맘먹는데도 잘 안 되는구만.”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중전기조합이야 뭐 그렇다 치지만, 김성호 얘기가 계속 걸린단 말이지.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한전력이라 그런지, 나 원 참.”
역시나 강 사장은 대한전력 역학관계에서 생각이 계속 머물러 있었다.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불쑥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김성호 본부장이 이춘배 부사장님이랑 라이벌이었다고 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나야 속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춘배가 성호 때문에 스트레스 꽤 받았어. 성호가 수완이 좋은 놈이라 수족처럼 부리는 회사들이 몇 있어. 그 회사들 이용해서 재미 좀 봤지. 한때는 능력 있다는 평가도 받았고.”
순간 안성파워가 이춘배 부사장에게 그런 회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가, 재빨리 지워 버렸다. 불온한 생각은 말자고.
“춘배랑 친하다고 해서 나도 득 보지 않았냐 싶겠지만, 억울하고 답답해. 춘배가 성호 같은 놈이었으면 나도 아주 크게 재미를 봤을 텐데 말이야. 춘배가 그런 놈이라 결국 성공한 거겠지. 꼼수는 정수를 이길 수 없는 법이야.”
강 사장이 독심술로 내 생각을 읽어 냈다는 듯이 먼저 자기 고백을 해 버렸다. 30년 사장 짬밥이 무시무시하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저는 사장님께서 누구 도움 없이 안성파워를 키워 내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좀 아쉽다는 거지. 사업 쉽게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성호 그놈이 최웅민이랑 손잡고 무슨 짓을 할지 잘 지켜봐야 해.”
“강 사장님! 또 걱정이세요? 그래요. 이참에 그 걱정 다 털고 가세요.”
강 사장의 계속된 걱정에 누나가 끼어들었다. 누나도 별수 없다는 듯이 판을 깔아 준다. 판 깔아졌으니 패라도 돌려야지.
“박 사장님, 이게 그냥 걱정이라고 볼 수 없어요. 저희 최 상무님도 김성호 본부장을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대한전력 돌아가는 사정 잘 아시는 분이잖아요.”
“최윤근이 그랬단 말이지?”
강 사장의 되물음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강 사장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는 표정이다. 저러니 나도 괜히 심란해지네.
금세 분위기가 우중충해졌다. 고구마 5개와 물고기 2마리 정도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찾아왔다. 오병이어의 기적은커녕 괜한 얘기로 이 자리에서 걱정을 배불리 먹인 것 같다.
이거 데스노트에 꼼꼼하게 적어 놓자. 든든한 내 편들 믿고 위역류, 속쓰림, 소화불량에 좋은 음식이나 챙겨 놓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