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2)
232 전우산업
중전기조합. 회사를 차린 이후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들이다.
우선배정 포기하라고 한바탕 지랄하더니, 신제품 개발로도 한참을 시비를 걸었다. 중전기조합의 지랄을 우습게 넘긴 것은 대한전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랄이 안 통하니 이제는 대한전력 본부장과 손을 잡았다. 어떻게든 나를 죽이겠다는 심산일 테다.
그 전의 독자적인 지랄은 웃으며 넘겼지만, 이번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무슨 지랄을 할지 모르겠지만, 지랄의 강도가 셀 것이란 느낌 때문에.
강호창 사장은 여전히 근심 가득한 얼굴이다.
“자, 들어 봐 봐. 춘배가 부사장으로 승진했어. 그냥 부사장도 아니고 사업총괄부사장이란 말이네. 거기에 이번 인사 때는 국내파트를 장악했지 않았나? 그걸로 끝났구나 싶었다고. 근데 그게 또 아니야.”
“근데 본부장도 부사장급 아니에요? 직위만 다르지 직급은 같다고 들었는데요. 김성호 본부장도 이미 부사장급인데 거기서 더 오르겠다고 무리할까요?”
준희 누나는 콘셉트를 힐러로 잡은 것 같다. 나에 이어서 걱정이 가득한 강 사장에게도 힐을 쏴 주고 있다. 힐 양이 부족했던지 강 사장이 계속 걱정을 쏟아 냈다.
“똑같은 부사장이라도 서열이라는 것이 있어. 춘배가 서열 3위까지 올라갔는데, 더 치고 올라가야 한다고. 내년이면 임기 다 채우는데 기획부사장까지는 찍어 줘야지 말이야.”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은 내년 부사장 공모에서 김성호 본부장이 올라설 수 있단 의미인가요?”
“그렇지. 성호 그 녀석이 다시 이쪽으로 복귀할 수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아예 아싸리판 만들자고 깽판을 칠 수도 있다는 거지.”
이번엔 내가 힐을 쐈다.
“저희 상무님은 김성호 본부장의 부사장 승진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긴 했습니다. 그쯤 되면 조용히 임기 채우고 퇴직하는 수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모를 일이야. 성호가 아니더라도 그쪽 라인이 치고 올라올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나나 지 사장 자네가 좀 곤란해질 수도 있겠지.”
나도 그렇지만, 강 사장도 매출 대부분을 대한전력으로부터 받아 내는 상황이라 머릿속이 개운하지 않았으리라. 강 사장이 이춘배 부사장 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누나가 전면에 나섰다. 모든 걱정을 없애 주는 걱정 인형이라도 되겠다는 심산 같다.
“대한전력이 우리가 상대 못할 정도로 큰 회사이긴 해도 어차피 다 전자입찰이고,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희야 납품하는 거 말고는 엮일 일이 없고요.”
“그거야 그렇지. 근데 말이야, 작년에 대한전력 인사 이뤄지고 나서 어떤 얘기가 돌았는지 아나?”
“이춘배 부사장님 승진이 변압기 업체들 덕분이라고요?”
“그렇지. 춘배가 나나 지 사장이 서포트해 줘서 승진했다는 말이 많았다고. 성호 그 녀석이 지 사장 말대로 승진 물 건너갔다고 해도 얌전히 물러나진 않을 거야. 중전기조합 이용해서 뭔가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제 말은 그 뭔가라는 게 딱히 없다는 것이에요.”
“중전기조합 놈들이 무슨 짓이든 못하겠어!”
걱정 말라는 누나와 그래도 걱정된다는 강 사장이 티격태격했다. 나도 걱정을 하긴 했지만, 강 사장이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도 같다. 진정제를 놔줄 필요가 있겠어.
“사장님, 근데 생각해 보면 박 사장님 말씀처럼 중전기조합이 딱히 할 만한 짓이 없습니다. 제가 중전기조합 얘기를 드린 것은 우리도 미리 알고 조심하자라는 취지입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저렇게 말하니 괜히 더 불길해진다. 입찰할 때 귀신같은 감과 적중력을 선보인 사람이 찝찝하다고 하니 마냥 한 귀로 흘릴 수도 없고 말이다.
강 사장이 다시 평온한 표정을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지 사장. 자네, 회사 쪼개 놨지?”
“중소기업 우선업종 혜택 말씀하시는 거죠? 중소기업 인정 유지하려고 미리 분사시켜 놨습니다.”
강 사장이 잘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회사가 커서 쪼개는 상황이 마냥 부럽다는 표정이다.
“잘했어. 준희 말대로 딱히 할 짓도 없지만, 그래도 시비 걸기 시작하면 온갖 걸로 다 시비를 걸 수 있으니까, 사전에 차단을 해 놔야 해.”
“맞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는 중전기조합이 시비 걸고 나올 만한 것이 입찰자격 문제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입찰자격 정지시키려고 온갖 짓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봐야 걸릴 것 하나도 없지만,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죠.”
오늘의 결론을 얘기했다. 지피지기는 해 놨으니, 남은 것은 유비무환뿐이다. 강 사장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준희, 너도 혹시 모르니까 준비 잘해 놔. 회사 커지는 것 금방이야. 법인 미리 나눠 놓고.”
“그런 상황이 오면 좋겠네요. 천억 매출 찍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하하.”
“그런 소리 마러. 여기 지 사장이랑 수출도 하잖아? 내가 관상가는 아니지만, 지 사장 얼굴에 돈복이 가득해서 옆에 붙어만 있어도 돈이 찾아오게 돼 있어.”
“하하.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사장님 다시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이거 뭐 나이 먹어서 그런지 감정 변화가 커. 지 사장 얼굴 보고 있자니 올해 사업 잘된 것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졌지 뭔가. 하하하.”
이 삼총사 모임에서는 잘되면 무조건 내 덕이다. 그냥 그렇게들 믿는 것 같다. 이러니 내가 이 사람들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 사장님, 우리 회사도 많이 도와주실 거죠오?”
누나가 시크릿쥬쥬의 샤샤 같은 깜찍한 표정으로 내 심금을 잔뜩 긁어 버렸다.
“저야 사장님들 편 아닙니까? 언제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빠르면 다음 달에 부싱체결기 전량 납품하니까 돈이나 두둑하게 준비해 주세요. 하하.”
강 사장이 불과 몇 분 전 걱정은 다 잊은 듯 아주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안성파워에는 자동권선기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부싱체결기라 그럴 것이다. 내년 사업에 긍정적 희망을 심어 주는 것처럼 좋은 일이 또 없지.
“참, 강 사장님. 다음 주에 지역본부 입찰 또 나오니까,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놈들이 확 치고 들어온다면 내년에 한판 붙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래야지. 이거 참, 지 사장이랑 손잡고 편하게 따먹나 싶었는데, 쉽지 않겠어.”
강 사장이 쓴웃음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혼자 원샷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자마자 잽싸게 움직였다.
“아이고, 사장님. 뭐 맛있다고 혼자 드십니까. 같이 짠 하시죠.”
“뭐 술도 못 마시는 양반이 오늘은 제법 잘 따라오는데? 하하.”
회엔 소주라지만, 연달아 서너 잔을 들이켰더니 식도는 물론이고 위장까지 뜨겁다 못해 불타오른다.
제법 심각한 얘기들이 오고 갔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라 그런지 술 마시는 것이 아주 편하다. 속은 불편하지만.
누나도 원샷 하고 말을 이어 갔다.
“강 사장님. 생각해 보니까 중전기조합이 힘 못 쓰게 하려면 일단 전우산업을 우리 조합으로 데려와야 할 것 같아요. 전우산업이야 배정만 잘 받으면 그만인데, 굳이 중전기조합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전우산업을 데려오자? 오호라. 그거 좋은 생각이야!”
강 사장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태연하게 있었지만, 속으로는 강 사장 못지않게 격하게 움직였다.
일반 제조법인이지만, 대한전력 퇴직자 모임이 만든 회사. 그 특수한 위치를 가진 회사를 잡아 놔야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우리가 중전기조합과 명운을 걸고 싸울 일이 생긴다면, 그건 필히 대한전력과 관련된 일이 될 것이다. 심판자로 나선 대한전력이 누구 편을 들어 주느냐가 관건인데, 전우산업의 존재가 오심을 야기할 수도 있다.
“우리 박 사장님, 말씀 잘하셨습니다. 전우산업이 계속 중전기조합에 있으면 우리도 대한전력 눈치 봐야 할 수도 있죠.”
“그렇지. 대한전력이야 아무 관계 아니라고 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 그래, 내가 배 상무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 봐야겠어. 어차피 올해는 그대로 가겠지만, 내년 입찰 때는 우리 조합으로 넘어오라고 해야겠네.”
전우산업은 대한전력 전우회가 만든 회사답게 일반회사 같지 않다.
사장, 부사장, 전무 다 있지만, 실제 운영은 배소열 상무라는 전기쟁이가 맡고 있다. 윗급은 퇴직자들이 돌아가면서 이름만 걸어 놓고 월급 받아 가는 허수아비이다.
“저는 조용히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에서 제 이미지가 안 좋으니까, 제가 나서 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뭐 나는 안 그러나? 하하. 그래, 아무래도 자네보단 기름밥 몇십 년 같이 먹은 내가 낫겠지. 내가 배 상무한테 잘 얘기해 보겠네.”
강 사장이 든든한 목소리로 호언장담했다.
대한전력 부사장이라는 버팀목이 있다고 마냥 의지할 수는 없다. 중전기조합이 체력 회복해서 우리 죽이겠다고 달려들기 전에 우리도 할 수 있는 조치를 미리 해 놔야 한다.
나야 위기 상황이 되면 문자님이 도와줄 것이란 강한 믿음이 있지만, 역시 마냥 의지해서는 안 된다.
“아이쿠야. 시간이 벌써 이리 흘렀나? 이거 자네들이랑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하하.”
10시도 안 됐는데, 새벽녘이라도 된 듯 강 사장이 급한 척을 한다.
딱 느낌이 왔다. 빠져 줄 테니 누나와 오붓하게 시간 보내라는 강 사장의 배려 말이다. 서른 살 가까이 차이 나지만, 남자들 세계에서 통하는 텔레파시라는 것이 있다.
“슬슬 일어나시죠. 오늘은 제가 사기로 했으니까 괜히 계산할 때 내가 내니 마니 하지 마시죠. 하하.”
“그거 좋지. 오늘은 맘 편히 얻어먹겠네. 내년에는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님한테 얻어먹어야겠어. 하하하.”
강 사장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삼총사의 송년회가 마무리됐다.
나주호 인근에 멋진 전원주택 지어 사는 강 사장은 대리 기사가 오자마자 떠났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
“누나, 택시 타고 가죠?”
“아니에요. 술도 깰 겸 같이 걸어가요.”
“추울 텐데요.”
“정수 씨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래요. 하하.”
누나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행군이 시작됐다.
“정수 씨. 아까 이런저런 얘기 많이 나왔는데, 미리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가 먼저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힐링의 손잡이라 그런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별것도 아닌 걸로 걱정하는 것 자체가 좀 짜증 나서 그러네요.”
“지금까지 그 어려운 일들 잘 헤쳐 나갔잖아요. 중전기조합이 대한전력 본부장과 손을 잡았다고 해도 별일 없을 거예요.”
“그렇게 믿어야죠. 지금은 중전기조합을 어떻게 밟아 줄까, 그 생각만 하고 있어요.”
“잘 생각했어요. 중전기조합이 어떤 짓을 하건 잘 이겨 내고, 앞으로 그런 짓 못하게 싹을 잘라 버리자고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아니지, 저도 앞장설게요.”
추울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날이 덥나 했다. 누나의 따뜻한 말. 아따 덥네.
“고마워요. 누나랑 저랑 강 사장님은 역시 삼총사입니다. 하하.”
“삼총사? 그럼 제가 아라미스인가요?”
“역시…….”
“역시 뭐요? 아라미스가 남장 여자 아니에요?”
“하하. 여자 맞습니다. 전 아토스 할게요.”
뒤마의 소설보다, 오후 5시 TV 앞으로 오게 만든 ‘달타냥의 모험’에 익숙한 세대가 맞다. 아라미스를 여자로 알고 있었다가 원작은 남자였다는 걸 알고 얼마나 속상했던지.
“그래도 겨울이라고 날이 춥긴 하네요. 누난 괜찮죠?”
“그럼요. 코트라도 벗어 줄까요?”
대답 대신 목도리를 풀어 누나에게 채워 줬다. 목도리 푼 것만으로 추위가 확 느껴졌다.
추워서 누나한테 바짝 붙게 되더라. 손이 자연스럽게 누나의 허리를 감쌌다.
“정수 씨 손 안 시려워요?”
누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리를 감찬 채로 누나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내 왼손과 누나의 왼손이 겹쳐졌다. 따뜻하다. 캐러반 텐트에 들어가는 낙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