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3)
233 회장님
새해가 밝았다. 내 생애 가장 바빴던 해가 지나갔고, 작년보다 더 바쁠 한 해가 찾아왔다. 바쁨에 비례해 찾아오는 돈의 양도 커질 것이다.
새해 첫 출근. 회사는 여느 때처럼 활기가 넘쳤다.
시무식에서 올해 전체 매출 3천억 돌파를 선언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다들 계산기 두들겨 봤을 것이다. 1년 빡세게 보내고 나면 통장에 얼마가 꽂힐 것인지.
벌써부터 연말의 기쁨을 상상하는 직원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많이 쉰 탓에 쌓여 버린 일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시원하게 변압기 뽑아내며 올해 물량전도 거뜬할 것이란 든든함을 선사했다.
연말회식 전 회의가 돈벼락을 안겨 주는 것이라면, 새해 첫 회의는 월급쟁이들의 자존심을 살펴보는 회의이다. 누가 승진의 기쁨을 안을지, 월급이 얼마나 오를지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회의.
“하하. 이건 또 뭐야? 이제 사무실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나?”
“호호. 아니에요. 그냥 들어오셔도 돼요. 좀 일찍 나와서 대청소 좀 했어요.”
번쩍번쩍 광이 나는 사무실에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공장장에게 김지연 대리가 뿌듯한 미소를 선사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무실 직원들끼리 1시간 일찍 나와서 때 빼고 광을 냈다고 한참을 자랑했다. 그런 건 일과 시간에 해도 될 텐데…….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더 고생해 주세요.”
엄포로 새해 첫 회의 시작을 알렸다. 일에 관해서만큼은 널널하게 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은 기본이다. 돈도 만족할 만큼 주고, 휴가도 많고, 출퇴근 시간도 칼같이 지키게 해 주니, 단내 정도는 괜찮잖아?
“자, 자, 올해도 다들 죽었다 생각하고 일에 파묻혀 살아 보자고! 우리 사장님이 돈 많이 벌게 해 줄 테니까 입 삐죽 내밀지 말고!”
내 엄포에 공장장이 양념을 가미했다.
두둑한 목돈 만졌다고 직원들 해이해질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태양전기 시절 팔다리 다 잘렸을 때 빼고는 한결같은 통솔력으로 현장 직원들 관리하는 공장장이 있으니.
“오늘은 회의라기보다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작년에도 똑같았으니, 무슨 얘기 하실지 아시겠죠?”
우리 회사를 이끄는 중역들이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첫 번째로 분사계획은 전에 결정된 그대로입니다. 유재준 사장님, 김신우 사장님, 회사 잘 이끌어 주세요. 김희철 사장님, 황미연 사장님도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설비제작부가 유재준 사장을 선장으로 독립했다. 과장으로 들어와 상무급으로 초고속 승진한 재준이 형님.
누가 보면 가족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유전자적 공통점은 없지만, 가족 맞다. 가족에게 그 개고생시킨 것도 미안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근데 사장 됐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나 싶은데요? 아직도 만들 것이 태산인데…….”
“우리 재준이, 아니 유 사장 말은 저렇게 해도, 아주 얼굴이 폈어? 하하.”
“그러게요. 피부 탱탱한 것 좀 봐요. 구리스가 피부에 좋은가 봐요.”
“혼자만 좋은 거 바르지 말고, 이참에 화장품도 하나 만들어 봐.”
유 사장의 부끄러움 가득한 볼멘소리에 죽마고우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오피스 와이프 같은 이 브로맨십. 축하에 진심이 묻어 나왔다.
“사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얼마든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장으로 승진한 김신우 이사가 입을 열었다.
원래 설비제작부와 코아제작부를 합쳐 맡길 생각이었지만, 둘 다 너무 커져 버려 주특기대로 코아제작부만 맡겼다.
김 이사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감을 내뿜으며 감히 어떻게 그러냐고 마다했지만, 나와 공장장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제가 여기 들어온 지 이제 1년 됐는데, 이래도 되나 싶고, 부담도 큽니다. 저보다 더 능력 있고 고생한 분들 계시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 소리네. 김 사장!”
“네, 공장장님!”
“희철이 너 말고 인마! 하, 이 자식을 진짜.”
또 다른 김 사장인 김희철 사장이 막간을 이용해 치고 들어왔다. 공장장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연초부터 웃으며 살아야지. 회사 꼬라지 아주 좋다. 자알 돌아간다, 아주.
“김 사장이 여기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도 2년밖에 안 됐어.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맞아요. 우리 김 사장님 여기 와서 진짜 일 많이 하셨잖아요. 오디아이가 코아로 떼돈 번 것이 누구 덕입니까? 김 사장님 안 계셨으면 코아며 설비며 이렇게 잘나가기 어려웠을 거예요. 부담 되시면 앞으로 잘해서 회사 더 키우면 되지 않겠어요?”
공장장의 한마디에 황 사장이 거들고 나섰다.
분사로 ODI 매출이 크게 줄어들게 생겼지만, 그런 건 신경도 안 쓴다는 표정이다. ‘따로 또 같이’라는 원팀 취지에 가장 잘 부응해 주는 사람이다. 이제 SPRD만 맡게 됐지만, 올해 어떻게든 ODI를 키워 낼 것이란 강한 믿음이 생긴다.
“감사합니다. 부담이 크다고 얘기했지만, 이런 격려가 듣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코아 잘 만들어서 많이 팔겠습니다. 여기 황 사장님께서 코아 수출도 추진하겠다고 하셨었는데, 그것도 잘 이어받아서 올해 성사시키겠습니다.”
김신우 사장의 포부를 끝으로 분사 공지를 끝냈다. 민수, 관수, 수출을 담당할 변압기 3사와 외함제작사는 내가 맡기로 했다. 공장장의 고집을 도무지 꺾을 수가 없더라.
분사를 계획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회사 이름이었다.
설비제작사는 뛰어난 아이디어로 파란을 일으킨다는 의미인 ‘아이디어 포켓’과 명불허전이란 의미인 ‘프레스티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이디어 포켓으로 결정했다.
코아제작사는 최고의 코아 제작 업체라는 의미로 ‘원코어’로 지었다. 코아의 C를 따서 ‘C1 No.1 Style’을 생각했다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서 포기했다.
이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은 덕준이었다. ODI만 얘기해도 좋아 죽던 덕준이가 아이디어 포켓에서는 절정을 맞이해 버렸다.
대체 왜? 회사 이름이 그리 웃긴가? 그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나와 덕준이만의 비밀로 하자고.
다른 회사들도 ‘무난한’ 이름을 선물했다.
민수변압기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 ‘무디즈 블루스’에서 따 와 ‘무디즈 트랜스퍼’, 줄여서 MT로 했고, 수출변압기는 치고 오르라는 뜻에서 ‘로켓 트랜스퍼’로 지었다. 외함제작사는 변압기 근원이 외함이기에 ‘Deeps Case’로 명명했다. 참 무난한 이름들이다.
이름이 뭐 중요한가. 어차피 다 프라임일렉트릭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야.
“자, 다음으로 승진 공지입니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어서 급작스런 승진은 지양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절차대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중소기업이 인플레가 심하기도 하고, 우리 회사가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승진인사가 남발됐던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해도 좋지는 않지요.”
최윤근 상무가 준엄한 목소리로 회사의 안정을 염원하고 나섰다.
인사 적체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올라간다는 원칙대로 가야지. 재벌 3세처럼 아침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점심에 과장이 되고 퇴근할 때 상무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이니 과장이니 하는 직위가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면서도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인플레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느껴졌다.
중소기업들 보면 부장 아니면 이사인 경우가 많다. 대우는 그대로인데 가오 세우랍시고 직위만 올려 주는 것이다. 승진의 기쁨은 대우의 달라짐인데, 직위만 올려 주면 누가 일에 매진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급여를 파격적으로 올려 버렸다.
처음 회사 세울 때 2,500만 원, 작년에 3천이었던 신입 사원 연봉이 올해는 4천으로 시작한다. 기존 직원들도 작년 대비 80퍼센트 이상 뛰었다.
덕분에 연간 인건비가 100억 이상으로 올라가지만, 전혀 걱정이 안 된다. 돈이 너무 넘쳐 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공장장님, 맘에 드십니까?”
작년 억대 연봉의 시작을 알린 공장장은 2억으로 껑충 뛰어 버린 영수증을 받았다. 이제 공장장도 소득세 걱정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하. 고맙네. 내가 뭐 한 게 있어서 이렇게 많이 받나 싶은데, 뭐 우리 회사 돈 잘 버는데 까짓것 받지 뭐. 하하하.”
“실제론 더 받으실 거니까 명세서 보고 놀라지 마세요. 이제 세무사랑 세금 상담 좀 하셔야겠습니다. 하하.”
이사까지 전부 억대 연봉이 됐으니, 나주 일대 세무사들 전화기 불나는 모습이 상상된다.
“우리 임원 형님들 축하드립니다. 전 부장이라 아쉽게 억대 연봉을 못 받는데, 앞으로 진짜 미친 듯이 해서 우리 형님들 따라잡겠습니다. 다들 화이팅입니다!”
덕준이가 전투력을 불사르며 임원들의 억 소리 나는 월급 명세서를 축하해 줬다. 부장 연봉 9천이래도 실제로 받는 거 계산하면 똑같이 억 소리 나는 놈이 아쉬운 소리는 원.
솔직히 덕준이는 더 많이 받아도 된다.
43억이었던 재작년 민수 매출을 150억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키워 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업계의 생생한 소식도 곧잘 전해온다. 최 상무가 회사 규정이나 시스템이 기대 이상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 칭찬한 것도 덕준이 덕이다.
성과급과 별도로 인센티브를 챙겨 주긴 했지만, 더 주자니 눈치가 보였다. 친구라는 원죄가 나를 엄격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몇 년만 더 고생해라. 떼돈을 벌게 해 줄 테니까.
“어머, 한 부장님! 나도 형님 된 거예요?”
“아! 황 사장님은 누님이죠!”
“한 부장아. 아무리 그래도 누님은 좀 그렇지 않냐? 누님보다는 이모가 낫겠어. 하하하. 아얏!”
황 사장으로부터 시작된 만담이 김희철 사장의 비명으로 마무리됐다. 황 사장의 매서운 손맛에 허벅지 어딘가가 멍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하하. 저는 이제 할 얘기 다 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일하기 수월해질 겁니다. 공장도 크게 늘어나고 도연테크도 곧 내려오니까 자재 수급도 나아질 겁니다. 일하는 환경을 계속 개선하고 있는데, 불편한 점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해 주세요.”
“예썰! 사장님한테 할 말 못할 말 다 해서 문제지, 얘기 안 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하. 그나저나 사장들이 이리 많아졌는데, 우리 사장님도 사장 타이틀 떼고 회장님 소리 좀 들어야 하지 않겠어?”
“공장장님, 얘기 한번 잘했어. 프라임일렉트릭 그룹을 이끄는 회장. 딱이네!”
공장장의 제안에 김희철 사장이 쌍수를 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추대될 분위기다.
“하하. 제가 올해로 서른넷인데 회장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차도 나름 젊은 감각으로 뽑았는데, 회장이라고 그러면 에쿠스 타야 할 것 같네요.”
공장장의 황소고집이 발동됐다.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데, 이를 어쩌나.
“우리 사장님이 회장으로 불린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자수성가해서 회사 이렇게 키운 것 다 알고, 젊은 것도 다 아는데 말이야. 누가 어리다고 뭐라 그러면 나한테 데려와. 내가 아주 혼구녕을 낼라니까!”
“아휴, 공장장님 또 흥분한다. 자꾸 오바하지 말라니깐. 그러니까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
김희철 사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저 양반도 은근 고집 있는데…….
“사장님, 내가 정리할게. 뭐 회장 소리가 안 맞는 옷일 수 있는데, 직원들 편하게 해 주는 게 먼저 아니겠어? 당장 김 사장만 해도 두 명이야. 그것만 해도 직원들 헷갈려 할 텐데, 사장까지 이리 많으니 어쩌겠어?”
“그래서 큰사장이니 왕사장이니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직원들도 그렇지만, 외부에서 오는 사람도 되게 헷갈려 한다고. 사장들은 우리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할 테니까, 사장님은 직원들 편하게 회장님으로 하자고. 아, 왜 좋잖아? 뽀대도 나고. 우리 회사도 이제 회장님 생겼구나 하면, 얼마나 뿌듯하겠어?”
“그래. 희철이 너 인마. 말 잘하네. 역시 영업하던 놈이라 말빨이 나랑 레베루가 다르구만. 하하.”
이건 뭐 왕이 천하를 제패해 제위에 올라서는 기분 같다. 삼국지 보면 왕이 황제 자리에 올라설 때 신하들이 반대하더니만, 여긴 그런 것도 없네.
“자, 자. 회의도 끝난 마당에 오래 끌 것도 없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사장님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우리끼리라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그만 아닙니까? 반대하실 분은 말씀하시고, 아니면 다 같이 박수로 추인하시죠.”
부장 나부랭이 덕준이가 바람잡이처럼 박수를 유도했다. 그렇게 난 회장으로 추대됐다. 아휴, 올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