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6)
236 선전포고
1월 초의 맹추위는 따뜻한 남쪽 나주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무조건 추운 군부대처럼 공단도 유독 더 춥다.
찬바람 쐬며 흡연하느라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자 안성파워 회의실로 서둘러 들어갔다.
회의실은 열기가 끓어오른다. 난방 덕도 있지만, 대한전력 지역본부 입찰에서 이겨야 한다는 의욕이 불타오른 덕이기도 했다.
이제 곧 경기북부본부 입찰이 시작된다. 4,080대나 걸린 42억3천만 원짜리다.
의욕을 보이는 강호창 사장과 달리 이미 내 몸은 식어 버렸다. 이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저놈들이 얼마나 덤핑을 칠지 이미 알았으니 밥맛이 떨어졌다. 84퍼센트라도 충분히 남긴 하지만, 그 헐값에 차지하고 싶진 않다.
“강 사장님, 경기북부본부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강 사장이 고민이 많은 얼굴이다. 계륵을 보고 먹을지 말지 고민한 조조의 심정 같다.
“아시아전기 컨소시엄이 서울 것을 89프로에 가져갔으니, 이것도 비슷하게 지르지 않겠나? 이 단가라도 남을 만큼 남으니, 좀 무리해서라도 가져왔으면 싶은데…… 지 사장 생각은 어떤가?”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죠. 저나 사장님이 고작 40억짜리로 고민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최 상무님 말씀대로 저쪽에서 단가 떨어트려서 가져가도 좋은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또 넘겨줘? 이거 참. 일단 90프로까지 낮춰 보겠네.”
입찰 개시와 함께 강 사장이 90.1퍼센트 단가를 입력했다. 강 사장은 될 가격이라고 생각하며 기대 섞인 표정이었다. 짐짓 모른 척했다.
5분 뒤 결과가 나왔다. 전우산업 90.8퍼센트, 아시아전기 컨소시엄 84.3퍼센트.
“어이쿠야. 84퍼센트? 저것들이 아주 미쳤구만. 아니 89프로도 자원 봉사나 마찬가진데, 84프로로 가져가? 제정신들이 아니야 아주.”
결과를 알고 있었던 나와 달리 강 사장은 기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헐값을 던지더라도 우리를 잡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느낀 만큼, 저놈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84.3퍼센트면 만들고도 손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습니까?”
최 상무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전기조합 윗대가리들이 우리 조합에 가지는 원한의 깊이를 모르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손해 볼 각오까지 하는 저놈들을 누가 이해하랴.
“손해까지는 아니라도 남지 않는 것은 확실합니다. 변압기 업계의 암적인 존재들이라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업계 정화하겠다는 우리가 아주 못마땅하겠지요.”
“지 사장, 경기본부까지 내줘서는 안 되지 않겠나? 이거 얼마나 후려쳐야 되나…… 이거 참.”
오늘 마지막 입찰이 곧 시작된다. 5,100대가 걸린 53억 7천만 원짜리. 오늘 세 입찰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버리긴 좀 아깝다. 문자님이 알려 주신 ‘89.8퍼센트’라는 수치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 정도에 먹어도 무난하긴 하다. 저놈 컨소시엄과 달리 우리 컨소시엄은 원가 경쟁력이 아주 뛰어나니.
문자에서 봤던 수치는 저쪽 제시가일 것이다. 우리 응찰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 천하의 문자님이라도 어찌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89.7퍼센트로만 들어가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인데, 단가가 참 많이 아쉽다. 예정가에서 5억 5천만 원이 그냥 날아간다. 치킨 3만 마리인데…….
그래도 먹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저놈들이 제시한 응찰가 바로 밑에서 먹으면 정신적 데미지도 줄 수 있고 말이다. 저놈들 의사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저놈들 죽이는 데 매진할 때다.
“강 사장님. 우리 체면도 있는데, 다 내어 줄 순 없죠.”
“그렇지. 그렇긴 한데, 얼마에 들어가야 할지 이거 감이 안 잡히네. 솔직히 전우산업은 포기했다고 봐야 하고, 저놈들이 문젠데…… 경기북부 때처럼 후려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고 말이야. 마지막 입찰이라 더 후려칠 것 같기도 하고. 이거 모르겠네.”
30년 입찰전문가 강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나설 차례군.
“이번은 제가 입력해도 되겠습니까? 제 감 한번 믿어 보시죠.”
의자에 앉았다. 계산기를 두들겼다. 이왕 이기기로 했으니 줄 수 있는 데미지는 최대한으로 주자.
경기본부 입찰창이 열렸다. 침착하게 숫자 패드를 눌렀다. 예정가의 89.8퍼센트에 해당하는 입찰가에서 살짝 빠진 가격을 입력했다.
“어디 보자. 됐구나! 됐어! 하하하. 지 사장 잘했어. 얼마에 들어간 거야?”
소소한 승리에 기뻐하는 강 사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와 저쪽의 퍼센트는 동률. 내가 입력한 가격이 18원 더 낮다. 강 사장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치킨 3만 마리가 날아갔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중전기조합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한판 제대로 붙어서 빨리 소멸시켜 주자고.
네놈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덤벼 봐라. 난 내 방식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얼마든지 붙어 주겠다.
일주일이 지났다. 대한전력 지역본부 변압기 구매 프로젝트의 마지막 공고가 나왔다.
인천본부와 경남본부는 경쟁 입찰, 남서울본부와 강원본부는 수의 계약의 뜻을 밝혔다. 수의 계약 두 곳은 팔이 안으로 굽어 전우산업에게 총 2,720대의 물량을 안겨줬다.
이제 남은 것은 총 6,460대가 걸린 73억짜리 입찰. 치트키 문자신이 있으니 우리의 승리가 분명하다. 이번에도 18원 신공을 발휘해 데미지를 줄 생각이다. 나중에 시비 걸릴 것에 대비해 자릿수만 좀 바꿔 주지 뭐.
이미 결과가 나온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실적을 따져 봤다.
총 15개 지역본부에서 쏟아낸 물량은 401억 원 어치 34,000대. 이 중에서 수의 계약으로 6,120대를 64.9억 원에 먹었고, 입찰로 15,890대를 166억 8천만 원에 차지했다.
우리 회사 몫은 14,110대에 148억 3천만 원. 중전기조합이 지랄한 것치고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개지랄이 아니었으면 200억도 거뜬했을 것이다. 결전을 앞둔 상황이니 저놈들한테도 쥐약 탄 음식 정도는 먹게 해 줘야지.
다시 안성파워 회의실에 모였다.
“어서들 와. 이번 것은 내주지 말자고. 저놈들한테 한 푼도 줘서는 안 돼.”
“강 사장님. 혹시 저쪽 움직임에 대해서 뭐 나온 것이 있습니까?”
나와 강 사장은 2차 입찰 이후 열흘 동안 정보망을 풀가동했다. 딱히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다. 저놈들이 할 수 있는 짓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감이 커졌다.
“뭐 별 얘기가 없어. 일단 전우산업 배 상무는 만나고 왔네.”
“긍정적인 답을 들으셨습니까?”
강 사장 표정만으로도 이미 답을 들었다. 긍정적이었던 모양이군.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라고. 요즘 배 상무가 위에서 압박을 받는 모양이야. 연간 입찰에서 2년 연속으로 물량이 줄어 버렸으니 말이 좀 많겠나?”
수익 대부분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회사라, 대주주인 대한전력 전우회의 불만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긴 하다.
“긍정적인 답변으로 들립니다. 하하.”
“근데 배 상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더라고.”
강 상무가 절단 신공을 자랑하며 호기심을 잔뜩 부추겼다. 추임새도 안 넣을 테니 제발 한 번에 쭉 말해 주면 안 됩니까?
“어떤 것 말씀입니까?”
억지로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주며 한없이 궁금한 표정을 지어 줬다. 이리 판을 깔아 줬으니 신명 나게 놀아 보세요.
“작년 입찰 앞두고 사장단 회의를 하는데, 최웅민 그놈이 대한전력에서 일반형주상변압기 재고 처리해 줄 수 있으니 준비를 해 두라고 했다는 거야.”
“역시 예상대로였네요.”
강 사장이 정색하며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차, 실수했군. 뜸 한번 제대로 들이네 아주.
“재미있는 얘기는 그게 아니야.”
“뭐가 또 있습니까?”
“그래야 재미있는 얘기지. 배 상무도 대한전력에 끈이 좀 있지 않나? 그 뒤로 별 얘기가 없어서, 어떻게 돌아가나 싶어 대한전력에 슬쩍 물어보니까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는 거야.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무 말 안 했다고 하더군. 왜일 줄 아나?”
“글쎄요.”
“배 상무가 그 정도로 남 일에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야. 근데 내가 봤을 땐 모른 척하면서 내비둔 것 같어. 그러다 망하면 자기한텐 좋은 일 아니겠나?”
조합이라고 해도 어차피 경쟁사끼리의 모임일 뿐이다. 그래도 그 얄팍한 동료 의식에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배 상무도 그렇지만, 진짜 나쁜 놈들은 중전기조합 윗대가리들이다.
“그런데 재고품 만든 회사들이 최웅민 한마디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데요?”
“허허. 그게 끝이 아니야. 마저 들어 봐.”
강 사장의 뜸들이기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바닥에서 생존하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공식석상에서 나온 말은 최웅민이 한마디 한 거, 그게 다였다고. 이상하지? 배 상무도 이상하다 싶어서 알아본 거지. 알고 보니까 김익환 그놈이 업체 돌아다니면서 설치고 다녔던 거야. 돈 벌 기회라면서 재고품 능력껏 만들어 두라고 했다는 거지.”
“최웅민이나 김익환이 그 계획 나가리된 것 알면서도 그랬다는 거죠? 결국 영세한 업체들 망하게 하고 그 물량 나눠 가져서 재미 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경쟁사라고 해도, 같은 조합인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내가 말했지? 최웅민이 그놈이 아주 악랄하다고. 이제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잘 지켜봐야 해. 웃긴 것이 김익환 그놈이 전우산업에는 안 왔대. 왜 그랬겠어? 배 상무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그러지 않았겠어?”
최웅민과 김익환. 중전기조합을 이끄는 그 대가리들의 악랄한 짓에 그저 실소만 나왔다. 그놈들은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 죄책감도 안 느낄 것이다.
“배 상무가 그런 얘기까지 한 걸 보니, 우리 조합으로 오려는 생각이 확실한 모양입니다?”
“조만간에 입회서 쓸 거야. 저쪽 조합이야 입찰 전에 탈퇴하면 그만이니까. 배 상무가 한편으론 좀 그랬나 봐. 그 짓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 참에 내가 가서 우리 조합으로 넘어오라고 하니까 귀가 움찔움찔한 것이지.”
따지고 보면 배 상무도 공범이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우리 조합으로 온다는 것이 썩 달갑지 않다.
“전우산업이 우리 조합으로 넘어와야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 조합에 어울리는 업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배 상무야 조합 일은 신경도 안 쓰고 조용히 있는 사람이니까 이해해 주자고. 돈 벌어서 전우회에 갖다 줘야 하는 월급쟁이가 어쩌겠나.”
강 사장이 확인한 재고보유 업체들은 공교롭게 덕준이가 재고품 수거하겠다고 부지런히 찌르고 다니는 곳이었다. 심각한 자금경색으로 봄을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란 업체들 말이다.
내가 그 재고를 헐값이라도 사들여 줬으니, 나를 구세주처럼 받아들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쪽에서 평판이 좋아지겠군. 후훗.
이제 타깃은 확실해졌다. 중전기조합 죽이겠다고 해 봐야 영세업체들만 죽어 나갈 것이다. 나한테 지랄했을 때 침묵으로 동조한 그놈들도 나쁜 놈들이지만, 더 나쁜 놈을 죽여야 한다.
“오늘 입찰에서 일단 매운맛을 느끼게 해 줘야겠군요. 오늘도 감이 좋은데, 저에게 한번 맡겨 주시죠?”
“하하. 자네,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 겐가? 우리 지 사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데, 기꺼이 자리를 내어 드려야지. 참! 전우산업은 오늘 입찰 참여 안 한다고 하더라고. 수지가 안 맞아서 안 되겠대. 저놈들 아주 제대로 밟아 주자고. 하하.”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쁜 놈에겐 응징의 몽둥이만 있을 것이란 의사를 밝히는 자리다.
오후 2시. 인천본부 입찰이 개시됐다. 예정가 28억 1천만 원의 93.7퍼센트. 거기서 1,818원을 뺀 입찰가를 입력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지 사장! 자네 진짜 신내림이라도 받은 거야? 하하하.”
입찰 결과가 나오자마자 강 사장이 괴성을 질러 댔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오후 3시. 44억 8천만이 걸린 경남본부 입찰이 시작됐다. 저놈들 제시가가 92.3퍼센트였지? 그렇다면 나는 92.259퍼센트! 181만 8,186원이 빠진 금액이다. 정신이 아련해질 것이야.
어디선가 프테라노돈의 짝짓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강 사장님, 그런 소리도 내실 줄 아십니까?
“우하하하.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내가 입찰만 30년을 했는데, 이런 결과는 처음이야. 하하하.”
연말 이벤트로 시작된 대한전력 지역 본부 입찰이 새해 선물로 끝이 났다.
계산한 대로 15,890대를 166억 8천만 원에 차지했다. 3천억 돌파라는 올해 매출 목표가 아주 순조롭다. 이건 이것대로 즐기고, 앞으로 있을 중전기조합과의 결전에도 최선을 다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