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5)
235 이차전
연말이 가고 새해가 왔어도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다. 연말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했던 대한전력 지역본부 입찰이 해가 바뀌자마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무님, 가시죠.”
“네, 회장님.”
최윤근 상무와 안성파워로 향했다.
새해 첫 대한전력 지역본부 입찰이 있는 날이다. 이번 입찰은 서울본부, 경기북부본부, 경기본부, 세 건인데 총 130억 짜리라 꽤 규모가 크다.
다 먹고 싶다.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최 상무는 이미 기대감을 저버린 표정이다.
“이번 입찰은 쉽지 않겠지요?”
“네, 상무님. 아무래도 그렇겠죠?”
수의 계약은 물론이고 입찰도 우리와 안성파워의 컨소시엄 차지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해가 바뀌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오늘 입찰에 앞서 지역본부 세 곳의 수의 계약이 있었다.
수의 계약은 대부분 우리 차지가 될 것이란 최 상무의 기대는 무참히 어긋났다. 17억짜리 경북본부 하나만 먹고, 나머지 두 곳인 충북본부와 대구본부 물량은 두성전기로 넘어갔다.
혁신산단의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최 상무가 속상하다는 말투를 내비쳤다.
“충북본부야 예상을 하긴 했는데, 대구본부가 전우산업도 아니고 두성전기랑 계약할 줄은 몰랐네요.”
“전과 달리 신청 조건이 완화됐으니 다른 업체를 염두에 뒀다는 뜻이겠죠, 뭐. 근데 대구본부장이 혹시 김성호 본부장 라인입니까?”
아무래도 대한전력 해외사업본부장인 김성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글쎄요. 라인이라고 하기도 뭐한데…… 춘배랑 성호랑 둘을 놓고 누구랑 더 친하냐고 하면 성호이긴 하죠. 새해 인사도 할 겸 여기저기 전화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네, 수고 좀 해 주세요. 김성호 본부장도 그렇고, 중전기조합 쪽도 그렇고, 올해 뭔가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네요.”
“그래서 이번 입찰 결과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동안 개별 입찰에 안 들어왔던 회사들이 이번에 참여한 것도 그렇고, 영 찝찝하네요.”
가장 먼저 김성호 주의보를 내렸던 최 상무이기에, 해가 바뀌면서 달라진 양상에 걱정의 강도가 깊어진 것 같다. 그깟 공기업 본부장이 뭐 대단하다고, 겁을 먹을쏘냐!
걸어서 3분 거리인 안성파워에 도착했다.
입찰은 강호창 사장이 담당하기로 해서 우리는 지켜만 보면 된다. 지역본부 입찰 1차전 때처럼 좋은 가격에 받았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큰 기대는 저버리기로 했다.
“지 사장, 어서 와. 어이쿠, 최 상무! 오랜만이야. 하하.”
강 사장이 새해에도 변함없이 호방한 모습으로 반겼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젊어 보이는 것은 웃음을 아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새해에는 웃는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입찰은 오전이면 다 끝나니까 깔끔하게 끝내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최 상무는 아직도 골프엔 취미가 없어?”
“허허. 주변에서도 그렇게 난린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가네요. 이제 와서 배우기도 그렇죠.”
“사장님. 골프는 제가 부지런히 배우고 있으니까 상무님은 놓아주시죠. 하하.”
강 사장의 골프에 대한 열망은 올해도 변함없다. 아직 입찰 개시까지 여유가 있긴 한데, 골프 얘기로 빠지기 시작하면 오늘 하루도 모자랄 것이다. 봄 되면 필히 필드 가 줘야겠다.
“사장님, 오늘 입찰은 저번처럼 무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낙찰 받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하시죠?”
양상이 달라진 만큼 강 사장에게 살짝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강 사장도 감 잡기가 힘들다는 표정이다.
“아시아전기가 중전기조합에 붙는 것은 확실해졌어. 연체 먹고 있다면서 물량 더 먹겠다고 입찰 들어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예상대로 그렇게 팀을 먹겠다 이 말인데…….”
“저쪽에서 컨소시엄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단가를 후려치더라도 챙겨 가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물량 확보하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그 농간에 휘말리진 말자고요.”
“우리야 시나리오대로 가야지. 문제는 저것들이 얼마나 후려칠 것인가야. 이거 감이 안 잡혀. 이번 물량 넘겨주면 저것들 회생할 기회를 주는 건데 말이야. 거참.”
이번 입찰은 삼파전으로 치러진다. 우리 컨소시엄과 전우산업 그리고 저놈들 컨소시엄.
아시아전기는 결국 중전기조합 핵심 멤버들과 손을 잡았다.
조합을 이끄는 광진변압기, 조합 이사장 꼬붕이자 개차반인 김익환이 이끄는 동서변압기, 내가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하면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두성전기, 땅 장사로 크게 재미를 봐 탄탄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해원중전기. 거기에 이들이 만든 위장 회사까지.
그렇게 아홉 곳이 컨소시엄을 꾸려 입찰에 뛰어들었다. 작년 연말부터 신경 쓰이게 만든 중전기조합 놈들.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겠다.
남 주기 아깝다며 낙찰을 강력히 바라는 강 사장과 달리, 난 굳이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입찰 실패한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단가 떨어트리면서까지 먹기는 싫다.
“일단 서울본부 입찰 결과 나오면 감이 잡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시나리오대로 가되, 저쪽이 너무 세게 지르면 그냥 포기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기엔 이번에 걸린 물량이 너무 많지 않나? 저놈들 살려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야. 최 상무 말대로 김성호가 중전기조합의 뒷배 노릇을 한다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야.”
“그것도 저쪽에 득이 돼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90프로 초반 대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걸 제치려면 80프로 대까지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걸로는 절대 안 남습니다.”
“저쪽 컨소시엄이 무리해서 가져가는 것이 우리한테 오히려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최 상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강 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최 상무, 그건 무슨 소린가?”
“네, 방금 회장님, 아니 사장님 말씀처럼 우리가 적정 마진 보는 금액으로 들어가도 저쪽은 그 가격에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낙찰가가 90프로 밑으로 내려가면 저쪽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강 사장이 회장님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말았다. 아버지뻘 앞에서 회장님 소리 하는 것이 참. 이 나이에 회장이 웬 말이냐고.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게 볼 일이 아니네. 뭐 일단 마저 들어 보자고.”
나와 최 상무는 저놈들이 덤핑 쳐 봐야 저들만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강 사장은 그렇지 않다는 눈치다. 운을 띄어 놓았으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해 주겠지 뭐.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요. 저쪽이 성호랑 연관이 있다고 해도 성호한테 딱히 득 될 것은 없지요. 성호한테 득이 안 되면 우리한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상무님. 그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됩니까?”
이번엔 내가 되물었다. 강 사장도 여전히 의문인지 입을 열려다 말았다.
“자, 보시죠. 낙찰률 떨어지면 지역본부장들이 예산 절감했다고 점수 좀 받습니다. 그 성과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국내사업 총괄하는 춘배가 재미를 보지요. 해외사업본부장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자기 성과로 돌리겠습니까?”
이번엔 강 사장이 한발 빨랐다.
“그렇지! 일리 있어. 내가 그 생각을 못했구만. 역시 최 상무야. 자네 퇴직한다고 했을 때 내가 먼저 가서 스카우트했어야 하는데, 아쉬워. 하하하.”
최 상무 말에 강 사장 표정이 환해졌다. 강 사장도 참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야. 아주 얼굴에 다 드러나.
중전기조합이 김성호 본부장과 손을 잡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손을 잡았더라도 이번 입찰에서 이익을 볼 여지는 낮다.
낙찰 단가 떨어지면 저들이 손해고, 대한전력이 재미 봐도 이춘배 부사장의 업적이 된다. 우리야 높은 단가로 낙찰받으면 좋지만, 저들이 가져가도 나쁠 것은 없다.
“참, 사장님. 아까 저쪽이 덤핑 쳐도 손해가 아닐 수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내 질문에 강 사장이 대답하려는 찰나에 알람이 울렸다. 벌써 입찰 시작할 시간이 됐군.
“자, 시작했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첫 입찰이니까 세게 가는 걸로 해서 92프로에 들어가겠네.”
2,720대가 걸린 29억 4천만 원짜리 서울본부 입찰이 시작됐다.
서울답게 전봇대에 달리는 주상변압기보다 인도에 설치되는 패드변압기가 더 많다. 주상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패드변압기인지라, 높은 단가가 아니면 안 먹어도 그만이다.
입찰 단가를 입력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5분 뒤 결과가 나왔다.
“아니, 이거 뭐야? 저놈들이 89프로에 가져갔네? 전우가 94프로로 들어갔고. 저놈들 아주 이를 악물었구만.”
패배라는 결과지를 받아 든 강 사장이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물량 뺏긴 것은 아쉽지만, 저놈들에게도 좋은 성적은 아니다.
“괜찮습니다. 패드가 많은데, 89프로면 얼마 남지도 않을 겁니다. 자재비만 70프로를 넘을 텐데요.”
“내가 보니까 저놈들은 얼마 남느냐가 목적이 아닌 것 같아. 아까 얘기하려다 말았는데, 저놈들은 손해만 안 보면 그만인 것이야. 어차피 사장들이야 매출만 높아지면 그만 아닌가?”
“아…….”
저놈들이 덤핑 쳐도 손해가 아닐 것이란 강 사장 말이 순간 이해가 됐다. 공작비 마련을 위한 몸부림이란 말로 들렸다.
“이건 저놈들이 덤핑으로 먹더라도 뒷돈을 챙기겠다는 뜻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 단가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 저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지 원.”
“그건 그러네요.”
말을 길게 하고 싶었는데 그냥 참았다. 좆소기업의 현실을 얘기하다 흥분해 욕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좆소기업 사장은 회사 경영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적자 안 날 정도로 만들어 놓고 매출 키우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직원들한테 ‘내 돈 내고 세운 내 회사’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회사 내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 놓고 영업이익이 안 좋아 월급인상이 어렵다고 지랄한다. 본인 월급에 온 가족을 직원으로 등록해 가져가는 돈이 그리 많으니 영업이익이 높게 나올 수가 없다.
매출이 높아지면 또 빼먹는 것이 많아진다. 거래업체와 짝짜꿍해서 받아먹는 백마진, 불량품 처리로 받아먹는 뒷돈, 구라세금계산서 판매 등 무궁무진하다.
우리 회사 초기에도 자재업체들의 백마진 제안이 많았다. 100원짜리를 110원에 사면 9원 정도 빼 준다는 것이다. 꺼지라고 했다. 사업을 제정신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결국 중전기조합 놈들은 회사 이익이 아니라 윗대가리들 이익을 위해 이번 입찰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무상 배임ㆍ회령으로 콩밥 먹을 새끼들. 그래서 그렇게 챙긴 돈을 공작비 삼아 나를 죽여 보겠다?
띠링.
난데없이 문자가 왔다! 발신 번호가 없는 것이 문자님이 확실하다. 새해 인사 문자는 아닐 것이다.
갑자기 급 기분이 좋아져서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다. 일단 사무실을 나왔다. 담배 한 대 피우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경기북부본부 84.3퍼센트, 경기본부 89.8퍼센트, 인천본부 93.7퍼센트, 경남본부 92.3퍼센트. 확실한 반격을 고민할 것.
후하. 이젠 아예 결과를 알려 주는구나! 아직 공고조차 안 나온 지역본부 결과까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확인해서인지 이제 대놓고 미래 일까지 알려 준다. 속 시원하게 얘기해 주지 않지만, 이게 어딘가!
흥분하지 말자. 잘 생각해야 한다. 문자님의 암시가 무슨 의미인지를 말이다. 늘 툭 던지듯 뭔가를 주셨지만, 거기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 깊은 뜻을 잘 캐치해야 한다.
나와 문자님이 2년 반 동안 쌓아 온 우정에 비춰 보자면, 숫자보다 경고 메시지에 힘이 실린 것 같다.
반격을 고민하라는 것은 예상대로 중전기조합 놈들이 발악을 할 것이란 의미이다. 그 발악이 별것 아니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가벼운 발악 따위를 거뜬히 이겨 내고 제대로 밟으란 뜻. 내 그리하리다.
그렇다면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담배꽁초가 2개가 되고 나서야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