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7)
237 임변
1월이 되면 헬스장이 도떼기시장으로 변하듯, 저마다 꿈과 희망에 부푼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의지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반성과 무엇이 옳은 삶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의지와 밝은 미래를 약속할 이 시기에 나는 중전기조합 놈들을 죽여야겠다는 섬뜩한 생각에 빠져 있다. 희망과 미래를 꿈꾸는 기쁨을 방해했으니, 가중 처벌도 내릴 참이다.
저놈들은 이미 선전포고를 했다. 중전기조합 핵심멤버인 두성전기가 SPRD를 개발했다는 소식, 대한전력 지역본부 입찰에서 핵심멤버들이 아시아전기와 손잡고 뛰어든 것만으로도 확실히 확인했다.
새해가 되어도 끊지 못하는 담배를 물며 저놈들이 어떤 지랄을 할지 따져 봤다.
우리 회사와 우리 조합에 똥물을 먹일 방법은 대한전력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있지도 않은 문제를 걸고넘어지며 입찰참가자격에 대한 시비를 걸 생각일까?
이러나저러나 준엄한 법 치료가 불가피할 것이다. 쟁송 자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왔다. 소송 때문에 경찰, 검찰, 법원을 들락거리는 일은 하루 벌어 먹고사는 민초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문득 사법기관에 찍혀서 누명을 쓴 채 몇 년씩 법조타운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 이 나라 사법 체계이지만, 주변엔 억울한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지.
내가 그렇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잡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야.
대한전력을 통한 시비. 솔직히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 중전기조합 윗대가리들의 목적은 확인됐는데, 행위가 예측되지 않는 상황. 좀 답답하다.
이 정도 머리를 굴리면서 고민하고 있으면 문자님이 뭐라고 암시라도 해 줄 법한데, 반격 준비하란 얘기 말고는 없다. 별것 아닌데, 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춥긴 한데, 머리 좀 식히자. 테라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여지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새해에도 여지없이 이럴 때만 걸려오는 전화!
“박 사장님!”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 전화다. 이제 여름이 찾아오면 박 사장과 전화할 일도 없을 것이다. 공장 이전을 위한 토지 분양은 끝났고, 사용승인 떨어져서 공장만 지으면 이웃사촌이 된다.
“자꾸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아휴, 새해 인사랑 이번이랑 두 번인데요, 뭐.”
“사장님께서 저번에 알아봐 달라고 하신 것 말인데요.”
새해 인사차 전화를 걸어 온 박 사장에게 중전기조합 회원사들 동향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2주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왔으니 쓸 만한 정보를 얻어 왔으리라.
“우리랑 거래하는 업체 몇 군데가 있는데, 요즘 많이 어려운 모양이에요. 저번 달에 대금결제 미뤄 달라고 해서 한 달 미뤄 주긴 했는데, 이번 달도 받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어렵습니까?”
“재작년 입찰 때 물량이 조금 줄어든 걸로도 타격이 컸는데, 작년 입찰에서 아주 죽을 쒀서 그런가 봐요. 은행에서 대출연장 안 해 준다는 얘기도 나오는 거 보면 심각하다는 얘기겠죠.”
“미수금은 괜찮으십니까?”
“걱정은 되죠. 거래량이 많지 않아서 얼마 안 되긴 해도 그 몇 푼도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달부터는 현금 결제해 주는 조건으로 돌렸고, 미수금도 어떻게든 받아 내야죠.”
“별일 없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골치가 아프시겠습니다. 그나저나 위험하다는 업체들이 어딥니까?”
“세원이랑 동아, 철산, 해돋이, 지파워. 이렇게 다섯 곳인데, 다른 회사들도 뭐 썩 좋은 형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름 들어 보니 망해도 진즉 망했어야 할 회사들이다. 특히 철산중전기와 해돋이변압기는 위장회사 차려 놓고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조차 못해서 개망신을 당한 회사다. 저런 회사 연명하게 해 주겠다고 재고품 처리해 주고 있는 나도 참.
일단 부도 예약을 걸어 놓고 있는 일곱 곳을 제외하면, 중전기조합 나머지 회사들이 가져가는 몫이 45억에서 62억으로 늘어난다. 위험하다는 곳이 몇 곳 더 있다. 윗대가리 놈들은 빨리 망하라고 고사 지내고 있을 것이다.
경쟁자였지만 한식구처럼 지내던 동료들을 죽이고, 죽은 자들이 흘리는 피를 자양분 삼아 체력을 회복할 것이다. 체력 회복한 놈들이 할 짓이 대체 무엇일까?
생각나지 않는 걸 억지로 생각하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하자.
“사장님,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는데요.”
“하하. 우리 사이에 실례가 어디 있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시죠.”
박 사장이 편하게 얘기하라는데 잘 대답해 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민감한 질문이기에.
“중전기조합 회원사들과도 거래하는데, 혹시 그쪽에서 백마진 요구한 곳이 있습니까?”
“백마진요? 하하. 아이고.”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범죄행위이기에 쉽사리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난 정보가 필요하다. 그놈들 죽이려면 어쩔 수 없다.
“제가 사장님께 악감정 없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거 참. 하하. 사장님도 아실 겁니다. 관행 아니겠습니까? 요구를 응해 줘야 거래가 가능하니 저라고 뭐 별수 있겠습니까?”
“네, 저도 잘 알지요. 제가 중전기조합이랑 한 따까리 해야 할 것 같아서 여쭤 봤습니다. 사장님께 피해 갈 일 없도록 할 테니 나중에 장부 좀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핸드폰이 먹통이 된 줄 알았다. 잠깐의 침묵. 박 사장이 아무 말도 못하는 심정을 알고 있다. 백마진 제공으로 처벌됐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도, 그게 불법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아. 뭐 사장님께서 부탁하시면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근데 이게 참…….”
“네네. 어떤 말씀인지 잘 압니다. 우려하는 일은 당연히 없도록 해야죠.”
“사장님. 제가 다른 쪽으로 뭐 도와 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도와줄 일이야 아주 많지! 말 나온 김에 박 사장에게 부탁을 빙자한 임무를 부여했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통화가 끝났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 머리 식히러 나왔다가 오히려 머리가 더 뜨거워질 판이다. 공격은 자신 있는데, 방어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멍하니 핸드폰 액정을 바라봤다. 미동도 없는 까만 화면.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문자가 오지 않을까?
띠링.
절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직원들이 혼자 크게 웃고 있는 나를 봤다면 솟아오른 소름을 긁어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임필성 변호사.
뭐야, 이 생뚱맞은 문자는? 변호사를 고용하라는 말인가? 뭐가 됐건 법적인 분쟁이 될 것이란 뜻일지니라. 아후, 골치 아파. 중전기조합 개새끼들.
생각은 차차 하고 일단 임필성 변호사가 누군지 알아보자.
요즘은 검색이 워낙 좋아서, 특히 법조인들은 검색만으로도 대략 정체가 드러난다. 광주지검 부장 출신인데도 로펌에 안 들어가고 혼자 사무실 꾸려 가고 있군.
검색을 이어 가다 보니 예전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똑같은 내용인데 신문사 성향에 따라 확연히 다른 기사. 정권에 밉보여 탄압을 받았다는 기사와 검찰 조직의 안정을 해쳤다는 기사.
뭐가 됐건 징계 좀 받다가 제 발로 나간 사람이다. 회사 생활에서 미움을 받았으니 나가서도 평탄치 못한 삶을 사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다 보니 우리 회사 최형택 부장이 떠올랐다. 마이웨이만 부르짖는 외골수. 그런데 일은 잘하는 사람 말이다. 왠지 그럴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일 잘할 사람인지 면접을 보러 가자.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광주로 냅다 달렸다. 법조타운 근방에 있는 5층짜리 빌딩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지하주차장이 위험천만했다. 내 간지 폭발 붕붕이를 이곳에 둘 순 없지.
근방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다시 빌딩으로 왔는데, 사무실은 5층. 엘리베이터가 괴기한 소리를 내며 천하태평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변호사 만나기 참 힘드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파티션에서 미어캣처럼 머리를 내민 직원이 용무를 물었다. 카드나 보험 영업이 아니라면 변호사를 보러 왔겠지.
“임필성 변호사님 뵈러 왔는데, 자리에 계십니까?”
“약속 잡고 오신 건가요?”
“아니요. 그냥 왔습니다.”
“네, 잠시만요.”
수임 의뢰가 많을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바쁜 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웹소설 재밌게 읽고 있는데 방해하면 신경이 예민해지는 법이지. 이해한다.
“자, 들어오시죠.”
변호사실에서 나온 50대 아저씨가 안내했다. 사무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흔히 알던 변호사 이미지가 무참히 깨져 나갔다.
많이 부족해 보이는 머리숱과 피곤에 절어 보이는 얼굴. 입고 있는 와이셔츠는 못해도 일주일은 돼 보인다. 노트북 살 때 사은품으로 준 백팩 메고 법정에 갈 것 같은 이미지이다.
“앉으시죠. 형사입니까, 민사입니까?”
소파에 앉기 무섭게 타이머를 누르는 저 변호사. 묘한 매력이 있다.
문자님 때문에 좋게 봐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예상치 못할 실력을 보여 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옷은 자주 갈아입었으면 좋겠다. 방에서도 퀴퀴한 냄새가 나네.
“저는 나주에서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조그마한 변압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정수입니다.”
“아, 네. 기업이면 특허 소송입니까? 특허 소송은 비용이 좀 더 나가는 것 아시죠?”
오자마자 타이머부터 누르더니, 몇 마디 나누기 무섭게 돈 얘기부터 꺼낸다. 돈을 밝히게 생기진 않은 사람이 그러니 색다르긴 하네.
“하하. 소송은 아니고, 회사 자문변호사를 의뢰할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회사가 커지다 보니 법적인 문제가 많아질 것 같아서 말이죠.”
안경을 고쳐 쓰기만 했을 뿐 표정에 변함이 없다. 모 아니면 도인 사람 같은데, 문자님이 보증했으니 모일 것이다.
“그렇습니까? 자문은 대면이나 전화나 똑같습니다. 부가세 포함해서 시간당 11만 원입니다. 비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변호사협회에서 정한 기준 만큼만 받습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뭐 계약서는 안 써도 됩니까?”
“사업자등록증 하나 보내 주세요. 자문료 청구하면 바로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직원한테 얘기하면 잘 설명해 줄 겁니다.”
이 사람 쿨하다.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시간 좀 때우려고 했는데, 얄짤 없다. 말문을 막히게 하는 놀라운 대화술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저기요, 근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엉덩이가 소파에서 떨어질 찰나에 쿨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사람만의 밀당인가?
“마음 가는 대로 찾아왔습니다. 그냥 느낌이 우리 회사 일에 대해서 잘해 주실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뭐 아시고 찾아오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소송 건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죠.”
“아, 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수임료가 비싸단 소리를 하려나?
“미리 말씀드리면, 내가 부장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전관예우니 이런 거 기대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혹시나 그거 믿고 오셨다면, 그냥 자문만 받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 과거가 중요하겠습니까? 현재 변호사로서 제 역할 다해 주신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저는 법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도 그렇고요.”
“네, 혹시나 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알겠습니다. 언제든 자문 구할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특이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저런 캐릭터는 또 처음이네. 괜히 기대된다.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쿨저씨가 마중이라도 해 주려는지 같이 일어났다. 착각이었다.
“아영 씨. 15분!”
27,500원을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나왔다. 개그 캐릭터인가? 뭐가 됐건 저 사람은 우리 회사를 지랄질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줄 사람이다.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