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0)
240 50만 4천 원
나주에 내려온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많은 식당을 다녔지만, 육회비빔밥집이 주는 임팩트에 비할 곳은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이곳만 오면 뭔가를 얻어 간다.
임필성 변호사와 가진 점심 식사. 이 자리에서 어떤 것을 얻어 갈지 기대된다.
“변호사님, 육회비빔밥 괜찮죠? 이 집은 이게 최고입니다.”
“아, 좋죠. 아침부터 쌔빠지게 왔는데 기운 보충 좀 하고 가야겠군요.”
주문하기 무섭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졌다. 아침부터 기운 뺐더니 시장기가 확 밀려온다. 찬으로 나온 육회를 한입 먹고 나서 중전기조합과 악연을 들려줬다.
말이 많아졌다. 내가 왜 중전기조합을 밟아야 하는지를, 이 바닥을 좀먹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악랄한 짓과 함께 설명하다 보니 꽤 시간이 흘러 버렸다.
“사장님도 고분고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네요. 하하.”
“네, 뭐. 안 건드리면 조용히 있지만, 건드리면 가만 안 있죠.”
“이거 은근히 내 과인데요? 하하. 그래서 중전기조합이 이제 돈 못 벌게 생겼으니까 사장님 회사를 족치겠다 이거군요?”
임 변호사가 흥미 가득한 표정이다. 나를 보는 눈빛도 예전과 확실히 다르다. 이 사람도 내 자수성가 스토리에 빠진 모양이군. 후훗.
“이번 일 벌인 회사들이 좋은 일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아주 악랄한 것들입니다. 돈 버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죠.”
“뭐 중전기조합이라는 데만 그러겠습니까? 진짜 우리나라 기업들 징글징글하죠. 뭐 하나 그물에 걸려서 잡아 보면 아주 한도 끝도 없이 나와요.”
“변호사님도 잘 아시네요. 제가 그래서 이 바닥 청소 좀 하겠다고 하니 저렇게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짓 할 시간에 기술 개발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임 변호사가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더니 말을 이어 갔다. 아까부터 말할 때마다 밥알이 튀어나오던데, 이번 건 많이 나올 것 같다. 제발.
“그래서 그냥 놔둘 겁니까?”
“설마요. 싸움을 걸었으니 반격해야죠. 안 그래도 지금 뭐라도 걸릴 만한 것들 수집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쌓이면 다 고발할 생각입니다.”
임 변호사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흥분하려는 전조로 느껴진다. 이번엔 밥알이 몇 알이나 튀어나오려나.
“증거 수집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직원 명부만 보면 와꾸 다 나옵니다. 사장님, 저한테 한번 맡겨 보렵니까?”
이건 또 무슨 고마운 소리람? 임 변호사 입에서 튀어나오는 밥알이 문자님이 내려 주신 은총처럼 느껴진다.
“맡겨 달라고요? 그건 자문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수임료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수임료가 대략 오백 정도 하는데, 저는 딱 일한 시간만큼만 청구하니까 얼마 안 나옵니다.”
나를 그깟 푼돈 걱정하는 사람으로 보다니!
“하하. 수임료 걱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변호사님께서 그런 궂은일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요새 일도 없는데 그거라도 하죠 뭐. 내가요, 기업 범죄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라, 그런 놈들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대마불사도 문제지만, 피래미들 날뛰는 것도 문제가 큽니다 아주. 맡겨 주면 고발까지 말끔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흥분하는 임 변호사를 지켜보며, 머릿속에서 검색 기록을 재빨리 떠올렸다.
여당 정치인의 정치자금을 건드렸다가 부당한 수사라며 접으라는 지시에 반발한 것이 결국 징계로 이어졌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더 깊이 들어간 기사에서는 기업인들 수사를 막으려는 검찰 수뇌부와 여러 차례 부딪힌 것이 불화 요인이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송사리 같은 중전기조합 놈들 잡는 데 아주 제격인 인물을 만났네그려. 우리 임 변, 육회비빔밥 많이 먹으소.
임 변호사가 대뜸 자신이 중전기조합을 밟아 주겠다고 하니,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의지를 확인할 시점이다.
“변호사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저야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런데 지저분한 일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릇을 싹 비우고 된장 국물로 입가심까지 마친 임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지저분한 일이니까 나서서 해야죠. 그리고 뭐 대단한 일 하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조사 좀 해 보고 고발장 몇 개 쓰겠다는 것이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조사할 것도 없어요. 그냥 수사만 들어가면 바로 징역형 나옵니다.”
“근데 검사가 기소 안 하면 그만 아닙니까? 솔직히 기업들 들쑤시면 법 위반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죠. 검찰도 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하하하.”
임 변호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너무 때 묻은 생각을 얘기한 것인가?
“잘 보셨습니다. 사장님 가만 보니까 때가 많이 묻으셨네요. 하하. 내가 그 나이 때는 세상 물정 모르고 검사가 마냥 정의로운 줄만 알고 있었죠.”
칭찬인지 비난인지 아리송하다. 내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는 것이 칭찬은 아닌 것 같다.
“제 나이 때라면…… 검사되기 전이었습니까?”
“막 임관돼서 한참 정의감에 불타오를 때였죠. 근데 부장까지 달아 보니까 똑같은 사람입디다. 사장님이 보시기에 저 몇 살이나 됐을 것 같습니까?”
다음 대화로 넘어가기 위한 호구조사일 것이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살짝 고민하다가,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오십 대 중반 같습니다.”
“어허. 나는 그래도 사장님 좋게 봤는데 이거 실망이네요.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입니까?”
누가 봐도 액면가가 그렇게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저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 앞자리를 잘못 말한 것 같은데, 도저히 그렇게 안 보인단 말이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변호사님 뒷조사라도 해서 나이 정도는 알고 있을 걸 그랬습니다.”
“나요, 그렇게 안 먹었어요. 올해 마흔여덟입니다. 그래요, 겉늙어 보이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검사 생활 시작할 때는 파릇파릇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진심이었다. 고생을 많이 하지 않고서는 40대가 저리 늙어 보이긴 힘들 것이다.
“고생 많았지요. 승진도 동기들보다 2년 늦었고, 승진하고 나니까 매일같이 들들 볶아서 대판 싸우고 ‘에라 이, 더러운 놈들’ 하고는 나와 버렸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상급자랑 충돌이 많았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습니다.”
“검사가 말이죠. 다 있는데 딱 하나 없는 것이 돈이죠. 그럼 돈을 언제 버냐? 딱 15년만 버티면 부장 단단 말이죠? 부장만 달고 나와도 사방에서 돈 싸 들고 옵니다. 누구겠어요?”
“기업들?”
“그렇지요. 기업들이! 그러니 기업들 제대로 수사하겠습니까? 파 보겠다고 하면 위에서 난리를 치니 스트레스를 안 받겠습니까?”
“변호사님도 모른 척 눈 감으면 지금 아주 부유하게 사실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말도 진심이다.
권력에 순응하며 살면 팔자 좋은 삶이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존재이니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왜 그리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지, 남들처럼 편하게 살면 안 되는지. 하긴 나도 그러지 못해서 가래침 걸쭉하게 뱉고 회사 나왔으니 뭐.
꽝.
어머, 씨발. 깜짝이야.
임 변호사가 밥상을 내리쳤다. 상 위에 빈 그릇들만 있어서 소리가 더 요란했다.
“이거 사장님 오늘 여러 가지로 실망입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입니까?”
“하하. 아닙니다. 그럴 분이 아닌 걸 아니까 그리 말씀드렸던 것이죠.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도 그걸 걷어차고 나오신 분이니까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워서 말입니다.”
흥분한 상대방을 급히 진정시켰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진정할 테지.
“이거 말이 많았네요. 얘기하다 보니까 예전에 당했던 것이 생각나서. 하하. 여튼 중전기조합요? 한번 조져 봅시다. 차근차근 조져야 재벌도 조질 수 있죠. 그나저나 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까 무슨 얘기 했었지요?”
“검찰에서 기소 안 하면 그만 아니냐고…….”
“아, 맞네요. 그래서 사장님도 할 일이 많아요. 검찰이 언제 움직이는지 압니까?”
질문이 이어진다. 이러다 또 딴 길로 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글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아닐까요?”
“맞아요. 그놈들은 먹잇감을 던져 줘도 관심 못 받을 것 같다 싶으면 힘을 안 써요. 그래서 여론이 중요하다 이거죠.”
오윤경 기자가 떠올랐다. 그 사람이라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못된 기업들의 못된 행동 알리는 것이니 명분도 있을 것이고.
조만간에 덕준이 커플에게 맛있는 것 사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임 변호사가 말을 이어 갔다.
“한편으론 다행인 것이 그래서 사장님이 별일 없이 넘어갈 겁니다. 보세요. 신문에 기사 한 쪼가리라도 나왔습니까? 검사장이나 차장급에서 시킨 것 같긴 한데 그냥 요식 행위로 했다고 보면 됩니다. 뭐 엮을 만한 사건도 아니고.”
그래서 의문이다. 지금 시국이 걸린다. 새로운 이슈가 조성되기 어려운 시기인데, 과연 관심을 가질까?
“그런데요. 지금 시끌시끌하지 않습니까? 탄핵 심판 결과 나와도 그 뒤로 한참 시끄러울 것 같은데요.”
“여기가 어딥니까? 여긴 서울이 아니에요. 여긴 여기만의 이슈가 작동합니다. 나도 좌천성으로 광주지검 부임 받아 내려와서 여기 눌러앉긴 했는데, 여기 몇 년 살아 보니까 그렇습디다. 이 지역 언론에서만 조명해 줘도 충분히 움직입니다.”
“이 지역 여론이 얼마나 움직여 주냐에 달렸단 말씀이시죠?”
딱 그림이 나온다. 나주의 성장동력이 될 대한전력과 혁신산단 기업들을 시샘하는 수도권 기업들. 그럴싸한 제목과 내용으로 포장될 것이다. 그림 나쁘지 않아.
“그렇죠. 여기 지검, 고검 검사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여기서 뭐 하나 건져서 끗발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거지요. 나 같으면 경제 범죄를 주로 맡았으니까 서울남부지검으로 가는 식으로 말이죠. 아니면 여기서 신망 좀 얻고 바로 정치권으로 갈 수도 있고.”
의욕을 보인 임 변호사를 보니 자꾸 질문거리가 생긴다.
“변호사님, 제가 고발하려는 업체들이 전부 수도권에 있는데, 이 지역 여론이 그렇다고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하하. 나요, 그 정도 끗발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광주지검만 움직이면 아무 걱정할 일 없어요.”
결론이 났다. 이번 일 무혐의 받으면 바로 반격에 나서기로 말이다.
그동안 부지런히 증거자료 수집하고, 기삿거리도 물어다 언론사 갖다 주고. 분위기 조성됐다 싶을 때 임 변호사가 정성스럽게 쓴 고발장으로 확 옭아맨다.
좋아. 중전기조합 놈들. 이 작은 하마 건들린 대가를 제대로 만끽해 보려무나.
임 변호사를 태우고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는 오전에 있었던 일은 잊은 듯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는 모습.
“어디 보자. 어이쿠야, 시간이 벌써 이리됐습니까?”
정산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은 몇 시간짜리입니까?”
“8시 25분에 전화 받고 내려왔으니까, 4시간 40분이네요.”
“그럼 5시간으로 해서 55만 원 보내겠습니다.”
“돈 계산은 철저하게 해야죠. 우수리 떼고 51만 3천 원에 밥값 9천 원 제하니까 50만 4천 원 청구하겠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됐는데도 여전히 질문거리가 많다.
“변호사님, 이렇게까지 계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이게 제일 궁금했다.
“내가 일하는 만큼 청구하는데 문제 될 것 있습니까? 뭐 야박하고 쪼잔해 보일 수도 있지만요, 이래야 내가 편해요. 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해야 할 일을 못합니다. 나만의 의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때 캐릭터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저런 모습이 정상이 아닐까 싶다. 비정상에 익숙해져서 정상을 비정상으로 오해하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참! 오늘 일은 신경 안 써도 될 겁니다. 영장 보니까 혐의를 업무상 배임으로 해 놨던데, 사장님은 처벌 대상도 아니에요. 아마 참고인 조사 정도는 하겠지만, 그냥 묻는 것에만 잘 대답하면 됩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방금 말씀해 주신 것도 1분 추가해서 계산할까요?”
“하하하. 그냥 서비스로 하죠 뭐.”
구형 슴파이브가 앞으로 10년은 거뜬하다는 듯 묵직한 기운을 자랑하며 회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