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1)
241 준비 태세
임필성 변호사와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회사는 평소의 느낌이 아니었다. 공장 천장에는 직원들의 궁금함이 쌓여 파오운이 만들어졌다.
압수수색이 끝나자마자 밥 먹으러 나갔기에 직원들이 여전히 걱정 가득하면서도 궁금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묵음으로 돌려놓은 핸드폰을 보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도 걸려 와 있었다. 익숙한 이름들. 나를 걱정하는 전화였을 것이다. 걱정은 전화로만 전달된 것이 아니었다.
가장 걱정이 많을 공장장을 찾아갔다. 보자마자 타박을 냄비 하나 가득 끓여 내놨다.
“아니, 뭐 어찌 됐는지 말이라도 해 주고 밥 먹으러 가야지. 이거 원. 애 타 죽는 줄 알았어!”
“황 사장님이 아무 말 안 해 주셨나요?”
“황 사장도 영문을 모르는데 무슨 얘기를 해 줘!”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습니까? 별일 아니니 밥 먹으러 간 것이죠.”
공장장의 걱정 가득한 얼굴이 한결 완화됐다. 저 얼굴 보니 오전에 일도 제대로 못했을 것 같다.
“변호사가 별일 아니라고 그래? 그래도 변호사 말만 믿고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압수수색한 혐의가 진짜라고 해도 제가 처벌 받을 일이 없대요. 그리고 진짜로 뭐가 있어서 들쑤시는 거였으면 집도 압수수색했을 거고 핸드폰도 가져갔을 텐데 안 그랬잖습니까? 요식행위로 보면 됩니다.”
공장장이 이제야 환한 얼굴을 보여 준다. 마음이 평온해졌으면, 이제 같이 일을 시작하셔야지?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일을 벌인 놈들에게 얼마나 잘못된 짓을 했는지 보여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중전기조합 놈들 가만둬서는 안 되지. 오전 내내 걱정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구만. 썩을 놈들.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 제대로 못하셨어요? 공장장님, 저한테 혼 좀 나셔야겠는데요? 하하. 걱정 말고 일하시라니깐, 아주 세상 걱정 다 하셨습니다?”
“아이고, 너무 그러지 마러. 압수수색한다는데 일이 손에 잡히기나 하겠어? 내가 확실하게 벌충해 놓을 테니까 모른 척해 줘. 하하.”
말 몇 마디 나눈 정도지만, 웃음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좋아졌다. 공장장의 나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믿음이 유지되도록 복수전을 제대로 해 줄 필요가 있겠다.
“이번 기회에 중전기조합 확실하게 밟을 생각이에요. 공장장님도 인맥 총동원해서 힘 좀 써 주셔야겠습니다.”
“말만 해. 내가 뭘 하면 되나?”
걱정만 많았던 60대 노인이 ATT 훈련 첫날 준비 태세에 나서는 의욕 넘치는 20대로 변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준비 태세 와중에 MOPP 4단계 걸려도 호흡이 가뿐할 것 같다.
공장장에게 우리의 타깃을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공격이 중전기조합 전체에 대한 폭격이었다면, 이번은 정밀 타격이다. 광진변압기, 동서변압기, 두성전기, 아시아전기, 해원중전기. 이 다섯 곳을 무너트려야 한다.
“그러니까 힘 좀 쓰는 업체들을 잡아넣자 이거군? 좋네, 좋아. 거기에 아는 애들 한둘 있으니까 이것저것 캐물어 보지 뭐.”
“공장장님. 좋은 정보 주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원한다면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겠습니다. 짬밥 있는 기술자들은 언제라도 환영이니까요.”
“그거 좋지. 안 그래도 우리 회사 오겠다고 서로 난린데, 이왕이면 도움 주는 사람이 좋겠지. 우리야 중간급 많아지면 좋은 것이고.”
공장장이 완전군장에 방독면까지 쓰고도 탄약고에서 탄약 분출 거뜬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현장으로 돌아갔다. 공장장에게 임무를 부여했으니, 다음 칼잡이를 고용할 차례다.
역시 칼잡이는 덕준이가 제격이지.
“한 부장님아! 추운데 찬 바람 쐬면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
“담배 끊었습니다.”
“이제 곧 민족 대명절 설 아니냐. 설까지만 피우고 끊어.”
“아휴, 저 진상. 가자, 가.”
테라스에 나가니 1월 맹추위가 확 느껴진다. 이 추위, 곧 사라지리라. 중전기조합 놈들과 함께.
“아따, 추운그.”
덕준이가 제법 익숙해진 사투리를 선보였다. 사투리 익숙함이 진해질수록 덕준이 결혼이 머지않았음이 체감됐다. 이놈도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넌 안 궁금하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덕준이를 보고 있자니, 괜히 심술이 났다. 공장장은 아침부터 걱정을 들통에 넣고 끓이고 있었는데, 뭐 이리 태연해?
“압수수색? 딱 봐도 요식행위더만. 저번에 내가 그랬잖아. 그게 범죄구성요건이 안 될 거라고. 나도 나름 전문가 아니겠냐? 하하.”
며칠 전 강호창 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덕준이에게 해 줬을 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긴 했었다. ‘졸라 어처구니없다’가 덕준이의 평이었다. 역시.
“그럼 인마, 공장장님한테 가서 얘기 좀 해 주지 그랬냐.”
“아이고야. 공장장님이 그런다고 걱정 안 할 사람이냐? 우리 회장님 아니면 그 걱정 잠재울 사람 없습니다요.”
“그건 맞는 말이네…….”
덕준이가 담배를 깊이 빨더니 살짝 휘청댄다. 나름 굳은 의지로 안 피우고 버틴 모양이다.
“이거 오랜만에 피우니까 알딸딸하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중전기조합 그놈들 가만 놔둘 거야?”
“내가 그럴 사람 아니란 거 알면서 물어보냐? 우린 우리대로 칼을 휘둘러야지!”
“그렇지! 가만있어서는 안 되지. 그 새끼들 다 꼰지러 버려! 걸릴 게 한두 개가 아닐걸?”
역시 덕준이는 나와 일심동체이다. 친구들이 제법 많았지만, 꾸준히 만나고 연락한 친구가 덕준이뿐인 것은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럴 생각이야. 저 새끼들 가만두면 안 되지. 우리가 중전기조합 죽인다고 조합 자체를 밟은 것이 작전 미스였어. 이번엔 상위권 업체 몇 군데만 정밀 타격해야지. 그래서 넌 무슨 일을 해야 할 것 같냐?”
“글쎄다. 난 옆에서 팝콘이나 튀기고 있을까?”
“저놈들 잡아 죽이려면 우리 한 부장님께서 고생 좀 해 주셔야겠어.”
세상에 비밀은 없다. 공공연한 비밀만 있을 뿐이다.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는 물증이 필요하다.
비밀 없는 세상에서 물증 확보야 인맥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 이제 덕준이의 능력을 믿을 차례다.
“오호라. 증거를 수집하라? 이거 좀 빡세긴 한데? 뭐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진 않지만, 술 엄청 마셔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다 영업의 일종이니까 법인카드 아끼지 말고 팍팍 써. 난공불락도 잘 찾아보면 구멍이 있기 마련 아니겠어?”
덕준이가 신 나면서도 못 미더운 표정을 짓는다. 뭐가 그리 못 미더운가? 말만 해! 다 들어 줄게.
“근데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이야 그냥 거래처 관리한답시고 돌아다니면서 차나 마시고 오는 게 다긴 해서, 차질 생길 것은 없긴 해. 그건 그렇다 쳐도, 거래처도 아닌 변압기 회사 돌아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지. 내가 뭐 인맥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내가 우리 한 부장님께 다 떠밀어 놓겠냐? 이미 박민창 사장한테는 얘기해 놨어. 아마 지금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뭐라도 모으고 있을 거야. 좀 전에 공장장님한테도 임무 부여해 드렸다야. 희철 사장님도 한몫 단단히 할 사람이고.”
“이야, 벌써 시작했단 말이지? 그럼 내가 질 수 없지.”
염탐꾼에서 간첩으로 임무가 격상된 덕준이가 스트레칭을 하며 의욕을 불사른다. 이 새끼야, 담뱃재 날리잖아!
“그런 자세 아주 좋아.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은 총동원할 테니까 넌 그냥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뭐든 수집해 봐.”
“오케바리, 오케바리. 뭐 이것저것 걱정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해 보자고. 쥐새끼들한테는 쥐약을 먹여야 제 맛이지. 근데 김 사장님은 왜 이름 불러 달라고 그러지?”
“몰러. 이름 불러 주는 게 더 좋대.”
김 사장이 2명이 되면서, 두 김 사장이 호칭을 정리했다. 새로 사장으로 올라선 김신우 사장이 김 사장이 됐고, 김희철 사장은 희철 사장으로 부르는 것으로.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싶다나 뭐라나.
뭐가 됐든 덕준이가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돌리는 것을 보니, 새로 맡은 임무가 미션 임파서블은 아닌 모양이다. 횡령, 탈세, 각종 법 위반. 수두룩하게 나올 것이다. 개새끼들, 어디 한번 죽어 봐라.
“근데 회장님아.”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직 담배 끊을 때는 아닌 것 같어. 굳이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끊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 하아, 이 악랄한 놈. 내가 너 땜에 이걸 끊을 수가 없네.”
자아가 분열하는 덕준이의 일갈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맘 편히 살자고. 이 좋은 걸 왜 끊어!
“맘 편히 피우고, 맘 편히 증거나 수집해 와.”
“내가 딱 이 일까지만 피우고 끊을 거야. 그땐 진짜로 끊는 거다. 옆에서 바람 넣지 마라.”
“예썰! 한 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다음 칼잡이를 만나기 위해 태인산업으로 달려갔다. 이미 희철 사장이 망부석이 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제발 오늘 같은 날엔 밖에서 밥 먹고 오지 말자 쫌!”
“하하. 어째 공장장님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사실 나 하나도 걱정 안 됐어. 뭐 별일 아니니까 밖에 나가서 밥 먹고 왔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고. 안 그래?”
여전한 희철 사장에게 우리의 칼부림을 설명했다. 30년 가까운 영업맨 짬밥이 희철 사장을 든든한 칼잡이로 재탄생시키리라.
“그놈들 아주 발가벗기겠다는 거네? 그거 아주 좋지.”
“쉽지는 않겠죠?”
“그건 그렇지. 뭐 공공연한 비밀이라 다 알고 있어도, 증거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경리들하고도 친하게 지낼 걸 그랬어.”
희철 사장이 임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나섰다. 일에서만큼은 자신만만한 사람이 그럴 정도이니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다못해 불체자라도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횡령하고 탈세가 젤 좋긴 한데, 이건 시간 좀 걸리겠죠.”
“딴 데는 몰라도 광진변압기는 확실히 잡을 수 있어. 거기다 권선 납품하는 사장이랑 친하거든. 내가 잘 구슬려 볼게. 뒷돈도 엄청 받아먹었을 거야.”
권선 외주. 그건 직접생산 위반으로 대한전력 납품 자격 백프로 박탈이다.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대한전력 납품으로 먹고 사는 회사에게 자격박탈은 회사 문 닫으란 소리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란 놈은 만족을 모르는 자이다.
최소한 사장 놈들 콩밥은 먹이고 싶다. 벌금이나 집행유예 받더라도, 최소한 구치소에서 알몸 신체검사는 받게 하고 싶다. 사업을 잣같이 하면 잣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진리를 몸으로 느끼게 해 줘야지.
“바쁘시겠지만, 힘 좀 써 주세요. 이번 기회에 중전기조합에서 알짱거리는 놈들 확 밟아 주자고요.”
“아휴, 당연하지. 우리 회사 죽이겠다는 놈들인데 내가 가만있으면 되나! 근데 이건 어떨까?”
희철 사장 표정이 좋은 아이디어가 확실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잔뜩 궁금한 척해 주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이지.
“뭐 말입니까?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왜 그, 이번에 재고품 만드는 통에 업체들 죽어 나간다면서? 안 봐도 중전기조합에 불만 장난 아니지 않겠어?”
“그렇죠. 덕준이 말로는 이를 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최웅민이나 김익환 때문에 회사 망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뭐 그러다 망하면 별수 없고. 그래도 버텨 내는 회사들 있을 거란 말이지? 살짝 바람만 넣어 주자고. 조합 하나 새로 만드는 걸로.”
중전기조합을 쪼개 제3의 조합을 만들게 하자? 너무 좋은 생각이니,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
“좋죠. 안 그래도 중전기조합 나와서 우리 조합 오겠다는 회사 몇 군데 있었거든요. 심사 떨어져서 못 들어왔는데, 아예 저들끼리 새로 만들어 보라고 바람 좀 넣죠. 중전기조합이란 이름을 아예 지워 버릴 수 있겠네요. 하하.”
최전방 전사들이 맹활약을 해 주면 꽃피는 봄에 시원한 결과가 있으리라.
의욕을 내비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내가 직접 임무를 부여한 사람 말고도 다른 변압기 회사에 아는 사람들 있는 직원들은 뭐라도 하나 캐 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들이 물어 온 정보와 증거가 쌓이고 쌓여 넘칠 지경에 달했을 때, 그놈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작은 하마와 프라임일렉트릭을 건드리면 정말 좆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