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2)
242 똥개훈련
회사는 여전히 바쁘다. 이 바쁜 와중에 나는 광주로 차를 몰았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오늘 참고인 조사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뭐, 가 주지.
광주지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흡연 구역을 찾아 담배 한 대 꺼내자, 임필성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담배 좀 피우겠다고 하면 걸려오는 전화. 여전하네 진짜.
“네, 변호사님. 저 광주지검 도착했습니다.”
“출입구 쪽에 서 있습니다.”
“네, 금방 가겠습니다.”
담배에 불조차 붙이지 못하고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지금 못 피운 담배는 참고인 조사 개운하게 받고 와서 피우겠다!
참고인 조사가 시작됐다. 검찰청 몇 번 들락거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긴장이 되질 않는다.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아니 더 그렇다.
“이게 누구신가! 필성이 형 얼굴 보기가 그리 어렵더니, 여기서 만나네?”
“내가 최 프로 봐서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래. 이제 형사는 포기했어. 이혼이나 파산 맡아서 먹고살아야지 뭐.”
“형도 참. 여전하네.”
검사가 조사실에 얼굴을 비추자마자 임 변호사와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 서운하기보다 좋은 신호로 읽힌다.
“최 프로,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별것도 아닌 걸로 오라 가라 똥개훈련시키는 느낌인데?”
“하하. 형이야 자영업자니까 그렇게 얘기하지, 나 같은 월급쟁이가 별수 있어?”
검사가 임 변호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온 신경을 두 법조인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어서 인지 대화가 희미하게 들린다.
“경찰로 넘기자고 했는데도 굳이 나보고 맡으라는 거야. 와꾸가 안 나와도 그림이 이쁘게 나와야 한다는데 뭐 어쩌겠어? 시늉이라도 하라고 하니까 그리해야지.”
“너, 이런 거 맡아 봐야 도움 되는 것 없다. 말 잘 듣는다고 점수 좀 받겠지만, 나중엔 허무해져.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면 진짜 만만하게 본다니까.”
“이 형 또 시작이네. 형이나 되니까 때려치우고 나오지. 여기에 그럴 사람 몇이나 돼? 잔소리할 시간에 돈이나 좀 벌어. 남들은 개업하면 차도 바꾸고 집도 사고 그런다더니만…….”
두 법조인의 대화로만 참고인 조사를 끝낼 셈인가 싶다. 아직 인사조차 안 나눴는데 다 끝나 버린 분위기다. 시늉하겠다고 불렀으니 시간이나 때우고 가란 소리인가?
“최 프로. 내가 돈 벌면 나한테로 올 거야? 그렇다고 하면 돈 한번 제대로 벌어 보지 뭐.”
“아이고, 됐습니다. 나는 형처럼 살 자신 없수다. 자, 이제 시작해 봅시다. 이거 사람 불러 놓고 잡담만 하고 있었네.”
검사가 이제야 나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지정수 씨죠? 최형식입니다. 뭐 문제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 절차상 부른 겁니다. 그냥 묻는 말에 편하게 대답 잘해 주면 금방 끝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그게 다였다. 검사는 다시 임 변호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 나는 방에 가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하고.”
“월말이라 한참 바쁠 땐데 이것까지 맡아서 고생이 많네.”
“말도 마. 이번 달에만 200건이 넘었어. 이거 마감하려면 설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까 모르겠네.”
“어휴야. 뭐가 그리 많어? 연초부터 곗돈 사기 좀 터진 모양이네? 하하.”
“내 팔자가 그렇지 뭐.”
검사가 한숨을 쉬며 조사실을 나갔다. 나는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소리만 했을 뿐이다.
“변호사님. 잘 아는 분인가 봅니다?”
“우리야 뭐 다 한 식구죠. 그중에서도 저 최 프로는 아끼는 후배긴 했죠. 여튼, 아까 들었죠?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대답해 주면 됩니다.”
임 변호사가 검사 시절을 회상하던 얼굴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본연의 임무라고 해 봐야 걱정할 것 없다는 말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변호사님 부르지 말고 저 혼자 올 걸 그랬습니다.”
“나도 먹고살아야죠. 하하. 이것까지는 자문료로 청구하겠습니다.”
옆에 앉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시간당 11만 원씩 받아 가니, 꽤 짭짤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것까지 계산하면, 어영부영 돈 꽤 깨졌다. 중전기조합 놈들, 이 돈에 고리 이자까지 쳐서 청구하리라.
수사관이 들어왔다. 간단한 호구 조사를 시작으로 참고인 조사에 들어갔다.
질문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대한전력과 계약 당시 부정한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물어보나 마나였다. 역시나 별것 없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수사관이 나가고, 다른 수사관이 들어왔다. 다시 시작되는 질문들.
몇 명이 돌아가면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한다는 덕준이의 말이 생각났다. 곰탕 먹여 가며 하루 종일 반복하다보면 대답이 달라지고, 그게 범죄혐의로 드러난다는 얘기였다.
나는 실수할 것도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그만이다. 제품을 개발했고, 대한전력에 채택해 달라고 건의했고, 규정에 따라 계약했다.
“네, 잘 알것습니다. 솔직한 말로다, 이런 걸로 이렇게 시간 뺏어블믄 안 되는디. 사장님이 이해 잠 해 주시요잉. 부장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조사를 마치자 사투리가 진한 수사관이 나와 임 변호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임 변호사가 화답했다.
“이젠 부장 아니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러.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그나저나 수사는 이제 시작이지?”
“내일까지 참고인 조사 끝내고, 설 지나서 피의자 조사 들어가는디, 이게 조사하고 말 것도 없지요. 고발남용죄 같은 거 만들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걸로 고발하면 처벌하게 해야 한당께요. 처리할 사건도 많은디 이런 걸로 허비하고 있응께 깝깝합니다.”
“위에서 하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부지런히 해. 연금 받아먹을라면 예스맨 노릇해야지, 별수 있어? 하하.”
“하하. 나가 진짜 20년 채워서 연금 수급조건 되면 바로 퇴직해서 등기나 해 주면서 편하게 살랍니다.”
“법무사나 따고 얘기해.”
임 변호사와 수사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잡담으로 흘러갔다. 먹을 것 없다는 소문난 잔치임이 확실하다. 사투리가 진한 수사관의 말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었다.
나와 공권력을 똥개훈련시킨 중전기조합아, 세상 일이 니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니깐? 설 지나고 보자고.
9시에 시작된 참고인 조사가 12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3시간이나 일을 못했고, 소중한 점심시간이 30분 날아갔다. 중전기조합에 보낼 청구서에 다 적어 놔야겠어.
“변호사님, 식사하러 가시죠.”
“여기 온 김에 얘기 좀 하다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요. 내일 오디아이 황미연 사장 참고인 조사 있다던데, 내가 굳이 안 와도 될 것 같네요.”
“안 바쁘시면 조사할 때 같이 있어 주시면 좋긴 하겠는데요. 황 사장님이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할 것 같아서요.”
“긴장할 일이 뭐 있습니까? 방금 경험하셨잖습니까? 그냥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하면 됩니다. 아까 사투리 진한 사람 있지요? 그 수사관한테 잘 얘기해 놨으니까 긴장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임 변호사의 쿨내 가득한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하나도 안 중요한 질문거리가 떠오르는 것이 그 증거다.
“변호사님, 요즘은 수사관 해도 법무사 자격증 안 줍니까?”
“하하. 별게 다 궁금한 걸 보니까 사장님은 참 여유가 넘치네요. 근데 너무 옛날 얘기를 물어보는 거 아닙니까? 그거 없어진 지가 언젠데요.”
“옛날에 검찰에 있다가 퇴직하면 법무사 한다고들 해서 지금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럼, 시간 잘 체크해서 비용 청구해 주세요. 전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마음속 아주 작게나마 불안감이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조사를 끝냈는데, 갑자기 피의자로 전환되고 구속영장 청구되는 그런 반전 말이다.
겉늙은 임 변호사의 얼굴에서 품어져 나오는 태연함이 그 작디작은 불안감마저 싹 씻겨 준다. 광주지검 온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자. 앞으로 경찰서나 검찰청은 오는 일 없도록 하자.
회사로 복귀하자 걱정쟁이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내일 출두해야 하는 황미연 사장이다.
“회장님, 어땠어요? 아휴, 걱정돼 죽겠어요.”
“그냥 가서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잘 얘기해 주면 됩니다.”
이 정도로는 안심이 안 될 것 같았다. 역시나 얼굴에 가득한 걱정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참고인 조사라 별일 아니라고는 하는데, 혹시 조사 받다가 바로 구속되고 그러진 않겠죠?”
“하하. 사장님답지 않게 왜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업무상 배임은 그걸로 이득을 얻은 상대방을 처벌 못한대요. 그러니까 걱정할 일 없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무 죄도 없지 않습니까?”
“뭐 그렇다고는 하는데, 혹시나 해서요. 살면서 검찰청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까 오만 생각이 다 드네요.”
소시민이 공권력과 맞닥뜨리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전세사기 당하거나, 계주가 돈 들고 튀었을 때 말고는 없을 것이다. 소시민의 첫 경험. 걱정이 많을 수밖에.
“제가 얘기한다고 걱정 안 하실 것 같지는 않고, 내일 경험해 보세요. 왜 쓸데없이 그렇게 걱정했나 할 겁니다. 하하.”
“다른 걸 떠나서 제가 괜히 잘못 얘기해서 회사에 피해 가면 어쩌나 싶기도 해요.”
그 와중에 회사 걱정하는 마음씨가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니 이런 경험도 하는 것이 좋겠지.
“이럴 때 한 번쯤 경험해 보면 좋을 겁니다. 걱정은 그 정도만 하시고요, 올해 진행하기로 한 사업들은 잘 추진되고 있습니까?”
말로 안심을 못 시킬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황 사장 눈빛이 다시 반짝거리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 네. 일단 공구상가는 바로 추진하려고요. 상가분양 받고 이것저것 준비하면 두 달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명판이랑 스티커도, 지금 설비 알아보고 있어요. 이건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좋네요. 탭절환기랑 방압변은요?”
“그건 김신우 사장님이랑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제품은 어려울 것 없는데, 설비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하더라고요. 지금 있는 설비들 잘 응용하면 자동으로 찍어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설계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봐야죠.”
좋다, 좋아. 모진 바람이 불어도 우리 회사는 제 갈 길을 똑바로 걸어가고 있구나. 문자님께서 주신 신통방통한 설비들이 다양하게 응용되면서 황금알 낳은 거위를 듀얼 자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개당 5천 원짜리 탭절환기와 2천 원짜리 방압변의 원가 절반이 인건비인데, 이걸 줄이겠다고 하니 좋고말고. 기존 제품보다 몇백 원이라도 싸게 내놓으면 판매도 수월할 것이다.
“탭절환기는 관수용으로만 하시는 건가요?”
황 사장 얼굴이 언제 걱정했냐며 시치미를 뗐다. 화제 돌리길 잘했군.
“관수가 대량생산하기 편해서 우선 그것부터 할 생각이에요. 민수야 들어가는 부품도 많고, 일일이 조립해야 해서 천천히 생각하려고요. 일단 설비만 제대로 만들면 바로 전기연구원 성적서 받고 대한전력 등록해야죠.”
“제가 조합에다 미리 얘기해 놓겠습니다. 이거 올해도 오디아이 엄청 성장하겠는데요? 하하.”
“에이, 어림도 없어요. 코아가 빠져나갔는데, 그거 메우려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돼요. 올해는 그냥 욕심 안 부리고 태인산업만 제치는 걸로 만족하려고요.”
희철 사장은 ODI 제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하고, 황 사장은 태인산업이 못 넘보게 만들겠다고 한다. 난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자식으로 둔 엄마 노릇만 하면 되는 것인가?
걱정쟁이 황 사장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끝으로 물러났다.
이제 나도 좀 한숨 돌리자. 걱정 안 한다고 해도 오전 내내 긴장했더니 피로감이 장난 아니다. 이 피로감까지 고스란히 청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