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9)
239 요식 행위
아침부터 회사 앞에 못 보던 차들이 여럿 서 있다. 회사 정문 열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올 것이 왔군.
전화도 빗발친다.
“네, 강 사장님!”
“지 사장! 대한전력 압수수색 들어갔어! 자네 회사도 곧 들이닥칠 거야.”
“이미 와 있습니다. 별일 아닐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의 걱정 어린 전화를 마냥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전화가 계속 온다. 압수수색은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더니, 아침부터 아주 시장통을 만들어 놓는구나.
“네, 황 사장님.”
“회장님! 지금 사무실로 검찰 수사관들 와서 압수수색한다고 그래요. 변호사한테 바로 연락하긴 했는데,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나 봐요. 어떡하죠?”
“여기도 와 있습니다. 정중하게 잘 설명하세요. 괜히 컴퓨터나 서류 손대지 말고 최대한 협조해 주세요. 그리고 사장이 흔들리는 모습 보이면 안 됩니다. 평온함을 유지하세요.”
“아, 네, 알겠어요.”
일단 본사로 찾아온 수사관부터 처리하자.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추운데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해 보이는 수사관에게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괜히 이 사람들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
“광주지검에서 나왔습니다. 압수수색에 협조 바랍니다. 여기 영장 확인하시고요.”
“죄송한데, 변호사가 급히 오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오느라 4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집행을 조금 미뤄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수사관이 보여 주는 영장을 대충 확인하고는 시간 끌기에 나섰다.
영장에 혐의를 적는 칸에 ‘업무상배임죄 및 기타의죄’라고 쓰여 있다. ‘기타’라는 글자에 요식행위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압수수색이 너무 빨리 왔다 싶더라.
“뭐,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절차 밟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일단 진행하겠습니다. 변호사 입회가 의무사항은 아니니까 너무 오래 걸리면 저희는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관이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을 시작으로 한참을 설명한다. 미란다 원칙처럼 압수수색할 때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증거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어수선한 분위기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슨 일인지 추리하는 모습이다. 중전기조합 놈들이 이걸 노렸을 것이다. 일단 들쑤시면 싸해지는 분위기를 기대했으리라. 어림없지.
“공장장님!”
이제 막 출근한 공장장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둘러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압수수색 들어왔는데, 별일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무실만 뒤적거리다 말 테니까 직원들 동요하지 않게 잘 잡아 주세요.”
“압수수색? 아니, 별일이 아닌데 왜 압수수색이 들어와! 중전기조합 놈들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뭐가 있으니까 이런 것 아닌가!”
안 그래도 걱정 많은 공장장이 세상 모든 걱정 다 하는 얼굴이 됐다.
당연히 걱정하는 것이 맞지만, 나는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상대가 멍청하기 그지없는 중전기조합이라서 그런가?
“고발 들어가서 사건 배당되면 기본으로 하는 것이에요. 압수수색한다고 죄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절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걱정 그만하시고 평소처럼 일해 주세요. 공장장님이 이러고 계시면 직원들이 제대로 일이나 하겠습니까?”
“이거 참. 뭐 우리 회장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그리 알겠지만, 걱정이 안 될 수 있나?”
“하하. 여긴 이따 변호사 오기로 했으니까, 일단 현장 가서 직원들 동요하지 않게 해 주세요. 2월 되면 관수 물량 터지잖아요. 미리미리 만들어 두셔야죠.”
“그래, 알겠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공장장이 여전히 걱정 많은 얼굴로 생산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장장 덕분에 시간이 꽤 지연됐다. 수사관들이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표정인 것을 보니 변호사가 올 때가 된 것 같다.
“아, 저기 오십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택시기사들이 극찬했다는 구형 슴파이브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임필성 변호사일 것이다. 자문료 분 단위로 꼬박꼬박 챙겨 가는 양반이 차나 좀 바꾸지. 저 옛날 차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어? 부장님!”
“어, 그래. 오랜만이야. 추운데 고생들이 많네.”
임 변호사가 사무실 앞으로 오자마자 수사관들과 인사를 나눴다. 같이 한솥밥 좀 먹었던 사람인가 보네. 이 상황 나쁘지 않다.
“뭐, 대한전력 사건 때문이야?”
“네. 바빠 죽겠는데 이러고 있습니다.”
“아니, 일 같지도 않은 걸로 이리 판을 키워?”
수사관 하나가 임 변호사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소머즈 귀라도 된 것처럼 내 귀에 아주 잘 들린다.
“위에서 체면 좀 세워 달라니까 뭐라도 하는 시늉은 해야죠.”
“하여간 최 프로도 겁이 많아. 여전해 아주. 만날 대한민국 검사라고 하면 뭐 해? 위에서 지랄하면 들이받을 줄도 알아야지.”
“하하. 부장님도 여전하십니다. 너무 지체됐는데, 일단 진행하시죠. 다 들어왔는데, 저희만 늦게 가면 눈치 보입니다.”
수사관들이 온 지 1시간 만에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됐다.
영화에서처럼 사무실 헤집지는 않더라. 계속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는데, 사무실 들어갈 때 신발 벗어야 하냐는 물음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앞으론 사무실 청소 살살 하라고 해 놔야겠군.
임 변호사가 다가왔다.
“이게 형사2부로 배당됐는데, 보나 마나 혐의 없음으로 나올 겁니다. 와꾸가 너무 안 나오는 거라 뭐 만들 것도 없어요. 수사관들 고생하니까 따뜻한 차나 한 잔씩 타 주세요.”
“와꾸도 안 나오는데 압수수색까지 합니까?”
“위에서 시키면 하는 거죠 뭐. 나같이 막 사는 놈이나 대들지, 대부분은 밥줄 걱정에 얼마나 순한 양인데요. 하하.”
임 변호사가 제법 말이 많아졌다. 나나 우리 회사, 혹은 이 사건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거 얘기도 슬쩍 내비친다. 기소하겠다는 걸 위에서 막았다고 대들다가 징계 먹고 사표 쓰고 나왔다는 과거사.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전관예우’ 기대하지 말라고 했겠지?
조직에 순응하지 않았던 반항아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꼴통 냄새가 나는 것이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참 변호사님, 옆 공장이 자회사인데 거기도 압수수색한다고 왔거든요. 가서 확인 좀 해 주세요.”
“아까 전화했던 여자분이 얘기하던 게 거긴가 보네요? 거참, 일 크게도 만드네 진짜. 사장님은 여기서 지켜보다가 다 끝나면 목록 확인하고 압수물 반환요청해 두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임 변호사가 투덜거리며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멈추고는 다시 다가왔다.
“핸드폰은 압수대상도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저 희망 회로 돌린 것에 불과했던 생각이 사실로 굳어졌다. 별것도 아닌 걸로 이 사단을 만든 중전기조합 놈들 가만 안 둔다.
“자, 다 됐습니다. 압수물 목록 확인하세요.”
2시간가량 진행된 압수수색이 끝났다. 컴퓨터로 키워드 검색해서 나오는 파일 몽땅 옮겨 가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 채우려고 굼뜨게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네, 다 확인했습니다. 아침부터 고생 많으셨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하시죠.”
“아휴, 큰일 납니다. 요즘 어떤 세상인데요.”
수사관이 손사래를 친다. 그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차 한 잔도 함부로 받아먹어서는 안 되지. 그런 강직함을 이번 일에서도 잘 발휘해 주길!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쁜 임 변호사가 복귀했다. 압수목록 다시 확인하고, 서류 체크하고, 수사관들과 악수하고. 그렇게 마무리됐다.
수사관들이 커다란 파란 박스가 엄청 무겁기라도 한 듯 들고 나갔다. 압수수색 별거 아니네!
“여기 온 김에 얘기라도 들어 봅시다. 그 중전기조합이라는 곳이 왜 이런 짓까지 하는 겁니까?”
한숨 돌리겠다며 소파에 앉은 임 변호사가 내막을 궁금해했다. 말하자면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데…… 이번엔 얼마짜리일까?
“점심시간 다 됐는데, 같이 식사하면서 얘기하시죠? 괜찮으십니까?”
“네, 뭐 시간은 괜찮은데, 밥 먹는 시간까지 청구하기는 좀 그런데…….”
“하하. 부담 없이 청구하시죠.”
“그럼 밥값은 빼는 걸로 하죠.”
계산 확실한 사람이다. 규정 지키는 것에 노이로제라도 걸린 사람 같지만, 뭐든 확실히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정이란 미명 아래 행해지는 온갖 부조리보다, 법과 규칙 지키며 깔끔하게 사는 것이 좋지.
나의 아지트 육회비빔밥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먹었으면 질릴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묘한 마력을 가진 집. 늘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내 차에 타자마자 임 변호사가 차 안을 여기저기 둘러본다. 차부심에 어깨에 살짝 뽕이 차오른다.
“차 좋네요. 이게 미국에서 난리라던 그 차입니까?”
“네, 맞습니다. 일만 하고 살았는데, 주변에서 좋은 차 좀 타라고 성화여서 큰맘 먹고 장만했죠.”
“돈 잘 버시는 모양이네요. 회사는 뭐 물려받은 겁니까?”
이런 불성실한 사람을 봤나! 자문변호사로 위촉했는데, 나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았다니!
나같이 젊은 놈이 큰 공장 운영하면서 비싼 차 끌고 다니면, 부모 잘 만나 팔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하. 이래 봬도 저 자수성가입니다. 회사 세울 때 주변 도움을 받긴 했어도, 맨 바닥부터 제 힘으로 키운 회사입니다.”
“아, 그래요? 많이 젊어 보이는데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해가 바뀌었으니까 올해 서른넷입니다. 만으로 하면 서른둘이죠.”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만 나이를 꼭 첨부했다. 한 살이라도 덜 먹어야지, 뭐 좋다고. 아직 3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임 변호사를 놀라게 했는지 모르겠다.
“젊은 사장님이네. 사업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회사를 이렇게 키웠습니까? 대단하네요.”
운전하면서 옆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차의 장점이다. 자율주행 기능 일부만 켜 놔도 아주 편하다. 맘 편히 임 변호사를 바라보니, 눈빛이 달라진 것 같다. 나이 얘기 때문인가?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한테 물려받았거나, 뭔가 문제 있는 방법으로 회사 키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정말 FM대로만 했습니다. 누가 와서 들쑤셔도 쫄릴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회사가 우리나라에 존재하긴 합니까? 하하.”
임 변호사가 못 믿겠다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못 믿겠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나.
“변호사님께서 한번 우리 회사 털어 보시겠습니까? 뭐라도 나오면 자문료 10배 더 올려서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거 솔깃한데요? 사장님 회사가 진짜 그렇다면, 자문료 안 받겠습니다. 하하.”
왠지 나를 테스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자님이 보증한 인물이라 확실한 내 편으로 알고 있지만, 임 변호사는 내 편이 되기 전에 간을 봐야겠다는 느낌이다. 시험 얼마든지 해 보시라. 난 자신 있으니까.
“그나저나 벌써부터 검찰 눈에 들어가면 앞으로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내 자신만만한 눈빛을 봤는지 임 변호사가 화제를 돌렸다. 자문료 안 받겠다는 소리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법기관과 언론은 멀리하면 할수록 좋다고 하는데, 이거 큰일입니다. 변호사님께서 많이 도와주시죠.”
“뭐 도와줄 게 있습니까? 대가를 지불하면 그에 맞게 서비스 제공하면 그만이죠.”
자본주의적 마인드 맘에 든다.
나도 중전기조합에 복수하겠다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지 말아야겠다. 도끼로 마빡을 찍든 식칼로 배때지를 쑤시든, 고깃값을 번다는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가야지.
“변호사님. 아까는 자문료 안 받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건 확인해 봐야지요. 사장님 말만 듣고 어찌 그러겠습니까?”
테스트는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임 변호사 말에서 꼬리 내리는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육회비빔밥이나 먹으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