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3)
253 염탐꾼
출근과 동시에 전화벨이 고막을 강타했다.
어젯밤 취중 고백한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이다. 속은 좀 나아졌으려나.
“사장님 어젠 죄송했습니다. 술을 좀 줄여야 하는데 이거 참.”
“하하. 괜찮습니다. 사장님 전화는 언제라도 받을 테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기억하는 걸 보니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진 않았나 보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 떳떳하게 살겠다는 다짐만 잊지 않으면 된다.
“어제 집사람이랑 간만에 좀 마셨네요. 집사람한테 많이 혼났습니다. 하하.”
“사장님처럼 성실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혼이 납니까?”
“하하. 은인에게 보답을 못할망정 잇속 차리겠다고 그러면 되냐고 말이죠.”
그래그래, 와이프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더라. 사모님 말씀 새겨들으면서 나한테 잘하라고. 후훗.
“그나저나 얼마 전에 갑자기 생각난 건데 말입니다. 광진변압기요…….”
광진변압기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뭐 또 기가 막힌 정보라도 있는 것인가!
“네, 말씀하세요.”
“계속 거래하지는 않고, 물량 많을 때나 급할 때 주문을 주거든요. 근데 이게, 세금계산서를 광진변압기가 아니라 서광전기라는 곳에 발행합니다. 자재 대금도 거기서 들어옵니다.”
“오호라. 뭔가 냄새가 나네요?”
“네, 맞습니다. 다른 업체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마도 매출 팔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네요.”
“매출을 판다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이 바닥의 기상천외한 일들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싶다.
“대기업들이 매입이 너무 낮으면 세금계산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 용산은 그런 게 많아서 세무서에서 수시로 감시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핏 알 것 같다. 용산 전자상가 일부 업체들이 조립 컴퓨터를 현금으로 팔고 나면, 대기업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컴퓨터 대량으로 산 것처럼 세금계산서 끊어 간다는 소문.
변압기업체도 그 짓을 한단 말이지?
“광진변압기가 민수도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매입가 올려놓고 매출로 안 잡은 것들 모아서 넘기면 못해도 10프로는 먹으니까 아주 짭짤하죠. 끽해야 이삼 프로 받는 백마진은 돈도 아닐 겁니다.”
“아휴,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알아볼 테니 사장님도 백방으로 알아봐 주시죠.”
“네, 물론이죠. 여튼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하하. 죄송하면 제가 부탁드린 것 열심히 해 주세요!”
막연하게 회사 돈 빼먹을 것이다 정도로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다. 정 없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라도 고발할 생각이었는데, 먹이거리가 꽤 많아졌다.
덕준이도 슬슬 정보를 가져올 때가 됐는데…….
“회장님아, 담배 한 대 콜?”
며칠 지나지 않아 덕준이가 담배 타임을 권했다. 오브 콜스지!
“요 며칠 회사도 안 들어오고 어딜 그리 뺀질나게 돌아다닌 거냐?”
“내가 팔자에도 없는 잠복 형사 노릇 하느라 바빴어.”
덕준이가 풍찬노숙이라도 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고에 대한 칭찬을 요구하고 나섰다. 패를 보고 결정하겠다.
“그래서 뭐라도 얻어 낸 게 있어?”
“확실히 맨땅에 헤딩이 쉽지 않아. 잡상인인 척 업체들 찾아가서 거기 직원들이랑 수다 좀 떨었는데, 뭐 별거 없더라. 근로계약서 교부는 당연히 안 했고, 뭐 그 정도?”
“근로기준법 위반이야 수두룩하게 나오지. 그거 끽해야 벌금 정도로 끝날 텐데. 아쉽네.”
노고에 대한 칭찬은 없던 걸로 하겠다. 이걸로 칭찬해 주면 내가 너무 손해 보는 장사야. 내 칭찬이 얼마짜린데.
“그치? 아쉽지? 그래서 내가 잠복근무하면서 하나 건져 왔지. 유후.”
덕준이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얼굴에 내뿜었다. 이 새끼가 진짜! 사랑한다.
“뜸들이지 말고 말하라고, 이 자식아.”
“후훗. 직접생산 그거 걸리면 대한전력 입찰 못한다면서? 그래서 내가 광진변압기랑 동서변압기 두 군데를 팠지. 뭐 별수 있어? 무작정 기다려야지. 씨댕. 날은 추운데 시동 걸어 놓고 대기 타면 의심할까 봐 벌벌 떨면서 감시했다니까.”
“그래서 증거 잡았어?”
저 의기양양한 표정.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나도 칭찬의 의미로 담배 연기를 얼굴에 내뿜어 줬다. 휴우.
“하여간 진짜. 우리 회장님 대체 언제 철들라고 그러냐?”
똥이 묻었어도 겨 묻은 친구를 나무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지. 하려던 말이나 계속하셔.
“자, 봐 봐. 트럭에 뭐 이빠이 싣고 들어가지? 이게 다 권선이야. 파렛트로 싣고 와서 금방 내리더만. 트럭 쫓아갔지. 무슨 공장이 간판도 없더라.”
덕준이가 핸드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재생해 보여 줬다. 누가 봐도 권선 싣고 움직이는 트럭이다. 빼박 직접생산확인제도 위반이다. 대한전력 입찰자격 박탈!
“권선 하청하는 곳이 다 그렇지 뭐. 그래서 거기 들어갔어?”
“당연하지! 사장 만나서 권선 외주 의뢰하려고 왔다고 하니까 아주 술술 얘기하더만. 자기가 광진이랑 동서에 권선 다 공급한대. 대한전력이 품질이 좋다고 칭찬했다는 거야. 신 나서 얘기하더라고. 대한전력까지 거론했으면 빼박 아니냐?”
“당연히 다 녹음해 놨지?”
“녹음이 뭐야, 아예 동영상으로 다 찍어 놨지. 트럭 왔다 갔다 하는 거는 블박에 찍힌 거 빼 놨어. 근데 이놈들이 자재 공급해 주는 조건으로 대당 7만 원을 달라고 하데?”
“프라임일렉트릭의 우리 한 부장님께서 호구로 보였나 보네. 하하하.”
이 바닥 업체 상당수가 변압기에 들어가는 권선을 외주로 돌리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권선은 두 명이 하루 종일 감아도 6~7대 정도밖에 안 나온다. 대한전력의 변덕스러운 발주를 감당하려면 권선공만 최소한 20명은 필요할 것이다. 인건비가 아까워 대당 5~6만 원 주며 외주를 맡기는 것이다.
업체 사장들이 우리 회사의 자동권선기를 보면서 입을 쩍 벌리며 틀니를 떨어트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자동권선기 하나가 열 명 몫을 해 버리니 얼마나 대단한가! 후훗.
직접생산확인 실사를 담당하는 전기진흥회도 이 바닥의 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 준다. 그저 공장에 권선기만 있으면 별문제를 안 삼았을 뿐.
이젠 다르다.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이 이를 빡빡 갈고 있으니, 전기진흥회도 불시점검으로 호응할 것이다. 덕준이가 며칠 잠복해 얻어 낸 결과물을 잘 전달하면 끝이다.
“우리 한 부장, 고생했다. 고생했으니까 담배 마음껏 피워라. 근데 더 내밀한 자료는 얻기 힘든 거냐?”
“이번 일 마무리하면 진짜 끊을 거라니까. 그리고 좀 더 기다려 봐. 내가 해원중전기 영업맨 공들이고 있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 중인 덕준이. 복부를 강타하면서 싸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오호. 술 좀 먹였어?”
“술만 먹이냐, 안주도 먹여야지. 대충 들어 보니까 해원중전기에서 위장 회사 차린 걸로 불만들이 있나 봐. 거기 사장 아들이 위장회사 사장으로 앉아 있는데, 말이 많대. 위장회사로 넘어간 직원들이 부글부글한 모양이야.”
“그렇지. 그런 불만을 잘 활용해야지. 아주 잘하고 있어.”
“그 영업맨도 직원 수 채울라고 위장회사로 넘어갔는데, 저번에 만났을 때 슬쩍 짜증 난다고 했거든. 잘 구슬려서 뭐라도 얻어 내야지.”
이참에 인재 영입도 해야겠다. 영업직도 한 명 더 늘릴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어때? 일 잘해?”
“사람까지야 모르겠지만, 일은 부지런히 하지. 그래도 해원중전기면 꽤 덩치 좀 있잖아? 혼자서 그 많은 매출 다 책임지고 있으니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맞지. 왜? 여차하면 데리고 오라고?”
“뭐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구만. 괜찮은 사람이면 좋지. 앞으로 대기업 영업도 해야 하는데 인원들 미리 채워 놔야 하지 않겠냐?”
“그거 좋지. 나랑 혜원이만으론 좀 벅찰 때가 됐지. 일단 몇 번 더 만나 보면서 옥석 구분해야지.”
덕준이가 영업 부사수인 이혜원 얘기를 할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다.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 이 바닥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다.
“혜원이는 힘들단 소리 안 해?”
“이게…… 뭐랄까. 좀 그렇더라고. 인사하러 거래처 가잖아? 첨엔 이 새끼들이 여자라고 아주 귀빈 받들 듯이 모신단 말이지. 근데 시간이 가도 깊어지지가 않아. 결국 술 아니야? 노래방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그걸 못한다 이거겠지.
“뭔지 알아. 혜원이도 스트레스 좀 받겠네. 실적으로 압박할 일 없으니까 맘 편히 생활하라고 해. 안 그런 놈들하고만 만나면 되지 뭐.”
“그래서 웬만하면 내가 돌아다니잖아. 그 열심인 애를 내근직으로 두는 게 아까운데, 어쩌겠어? 나가 봐야 걔만 스트레스 받으니 뭐.”
남자들만 가득한 이 바닥의 군대식 문화. 그 속에서 여자는 그저 꽃으로 취급 받는 일이 많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남자들끼리 해야 한다는 법칙이 작동하는 곳이다. 준희 누나도 이 바닥에서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설움을 많이 얘기해 줬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일상의 문화까지 바뀌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
“여차하면 입찰 전문으로 돌리지 뭐. 이제 슬슬 조달청이랑 철도공사 입찰도 시작해야 하니까 그거 준비나 시켜.”
“아따, 진짜. 시키는 일도 많네. 염탐꾼 노릇이나 끝내고 합시다. 진짜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고 고생했구만.”
덕준이에게 담배 한 대 더 권하는 것으로 칭찬하며 대담을 끝냈다. 준희 누나가 건네준 USB 분석하려면 나도 바쁘다.
USB 안에는 그냥 컴퓨터 한 대가 들어 있었다. 정리도 안 된 수많은 폴더와 파일. 업무용 컴퓨터의 파일정리 정도가 그 회사의 수준을 얘기한다는데, 이거 광진변압기는 엉망이다.
며칠 동안 뒤지다 보니 걸릴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박민창 사장이 의심한 매출 팔아넘기기 정황도 꽤 보였다.
준희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 이 바닥 짬밥 더 먹은 사람이니 조언을 해 줄 것 같다.
“네,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 푸하하.”
“보고 싶어서 찾아가려다 꾹 참고 전화했습니다.”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광진변압기 자료 보다가 애매한 것이 좀 있더라고요. 특이하게 동성건설이랑 태평건설, 이렇게 두 곳이랑 직접 거래를 하더라고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 뭔지 알겠어요. 저도 그거 봤어요. 그거 백프로 허위 거래예요.”
누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박 사장이 말한 그거란 뜻이지?
“허위 거래라면 세금계산서 끊어 주고 뒷돈 받은 거란 얘긴가요?”
“그럴 거예요. 우리도 직접 거래 못해서 대리점으로 넘기는데, 광진변압기가 무슨 능력으로 그러겠어요? 광진이 거래처에 현금가라고 변압기 싸게 넘기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거 어떻게 처리하겠어요?”
“이거 파면 꽤 큰 건이 되겠는데요? 탈세는 기본이고 건설회사 비자금까지 줄줄이 나오겠어요.”
판이 커지는 느낌이다. 건설회사 비자금이면 정치권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임필성 변호사의 의욕 넘치는 표정이 떠올랐다. 꽤 좋아하겠는데?
“저도 많이는 못 봤는데, 몇 개 보다 보니까 대충 보이더라고요. 자재 비싸게 들여와서 매입 높이고 백마진 챙겨 먹겠죠. 매입이 높으니까 그만큼 매출로 팔아넘기고 또 뒷돈 받아먹고.”
“그 느낌이 들었는데, 확실치가 않아서 혹시나 하고 전화해 봤어요. 진짜 최웅민 그놈은 사장이 아니라 회사 등골 빼먹는 놈이네요.”
최웅민이 악랄한 것은 돈 벌겠다는 욕망으로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안 내도 될 부가세며 법인세를 내게 만들면서 자기 배 속을 채우고 있다.
직원들은 최저임금보다 몇만 원 더 주는 것으로 고생시키고, 자신은 금으로 치장하며 웃을 때마다 금이빨 반짝이는 삶을 산다. 나쁜 놈. 그런 놈이 나를 죽이겠다고 설쳤으니, 금이빨 몽땅 빼 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이다.
“제가 말했잖아요. 최 사장이 보통이 아니라니까요. 최 사장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동서변압기도 똑같이 하고 있을 거예요. 거기도 좀 파야 하는데…….”
“누나, 걱정 마요. 내가 싹 뒤엎어 줄 테니까.”
“하하. 기대할게요. 그런 의미로 이따 저녁에 밥 먹을래요?”
매일같이 보는데도 또 보자니! 나도 오브 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