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4)
254 손님들
회사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올 것이 왔다.
“이윤석입니다.”
“네, 어서 오세요.”
이윤석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명함을 건넸다. 대한전력 기술품질처 이윤석 차장. 동승자는 광주전남본부 강윤식 대리.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이 드디어 칼을 뽑았다.
일주일 전 꽤 끌었던 검찰 수사가 예상대로 무혐의로 종결됐다. 강호창 사장 말로는 이 부사장이 무고로 집어넣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더라. 이 부사장의 선택은 처절한 복수였다.
그 선택을 이윤석 차장과 강윤식 대리가 수행하러 찾아왔다. 대한전력 입찰 유자격자 2년차 중간 실사가 시작됐다.
특이 사항이 없으면 실사 면제로 처리하고 끝났던 것이 이제는 달라졌다.
전날 퇴근 즈음 해서 실사 실시하겠다고 전화가 왔는데, 바로 다음 날 나와 버렸다. 준비할 시간을 안 주겠다는 뜻이렷다.
우리 회사야 아무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다. 4년짜리 유자격자 기한 만료로 갱신 실사를 받아야 하는 수두룩한 업체들만 죽어 나갈 것이야.
“일단 서류 심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이 차장이 준엄한 얼굴로 실사 시작을 알렸다. 지금보다 더 준엄한 표정을 지어도 전혀 무섭지 않다.
안경을 쓰고 서류 오타라도 찾겠다는 의지로 꼼꼼하게 살펴보던 이 차장이 자세를 고쳐 앉은 것은 최윤근 상무의 등장 이후였다.
“아이고, 처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하시죠?”
“허허. 퇴직한 지가 언젠데 처장이에요. 차장님, 잘 지냈죠?”
“네네, 그럼요. 여기 오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인사하러 오지도 못하고 이렇게 뵙네요.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할 것도 많습니다. 아무튼 뭐 하나도 빠진 것 없이 잘 준비했으니까 실사 잘 부탁해요.”
실사 나온 대기업 차장과 실사 받는 중소기업 상무.
누가 봐도 갑을 관계이지만, 이들의 인사는 달랐다. 그저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 이 차장은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입소한 사람이 됐다. 최 상무의 파워, 아직 죽지 않았군.
오전 내내 이어진 실사가 점심시간을 코앞에 두고 끝이 났다. 서류심사는 완벽했고, 현장심사는 더 완벽했다.
이 차장이 채점표 상단에 숫자를 기입했다. 안 보이게 가렸지만, 손가락 움직임을 보니 세 자리 숫자다. 100점! 최초 실사 때 95점으로 합격했는데, 이번엔 만점이다!
이 차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실사 받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뭐 트집이라도 잡아 보려고 했는데, 완벽하네요. 이런 회사들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하.”
“고생은 차장님이 하셨죠. 대한전력에서 실사 강화한다고 했다던데, 앞으로도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뭐, 예전처럼 대충 하다 발각되면 징계위에 회부한다고 하니, FM대로 해야죠. 강 대리도 사진 찍느라 고생 많았어.”
대한전력이 본사와 지역본부에서 각 한 명씩 보낸 걸 보니 실사 제대로 하라고 엄포를 내린 모양이다. 봉건제같이 운영되는 대한전력답게 서로 견제하라는 의도로 구성한 듯싶다.
아주 좋아. 규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해야지! 우리 회사는 만점으로 통과했지만, 그놈들은 아주 죽어날 것이야.
“차장님. 식사 괜찮습니까?”
최 상무가 이들을 데리고 나가겠다며 나섰다. 한솥밥 먹던 동지들끼리 할 얘기가 많겠지. 나는 슬쩍 빠져 주자고.
입을 열기 전에 이 차장이 먼저 답을 했다.
“처장님, 그럼 제가 사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시잖아요? 얻어먹으면 큰일 나는 거. 사장님도 같이 가시죠?”
“아닙니다. 저희 상무님이랑 다녀오시죠. 모처럼 만났는데 할 얘기도 많지 않겠습니까?”
“허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이분들 모시고 식사하고 오겠습니다.”
작년까지 부하 직원이었던 이들에게 깍듯이 대하는 최 상무.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겸손함과 후배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인품이 느껴진다. 나도 저리 늙어야지.
한 시간이 지나 최 상무가 복귀했다.
“식사 잘하셨습니까? 계산은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내겠다고 하는데 안 된다고 난리여서 그냥 각자 계산했습니다. 대한전력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허허.”
김영란법의 위력이다. 알고 지낸 사이끼리 밥 한 끼 대접 못할 정도로 각박하긴 하다. 그래도 예전 대한전력 직원들이 월급보다 더 많은 부수입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좋은 변화다.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 좀 푸셨겠습니다?”
“허허. 뭐 한참 후배라 저를 많이 어려워하더군요.”
“어려워한다기보다 존경의 자세가 아니었을까요? 하하. 그나저나 실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이번 실사 대상업체가 변압기 쪽은 중간이랑 갱신 합쳐서 서른두 곳이라고 하더군요. 동시다발적으로 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는데, 인력이 부족하니까 3월 초까지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피바람이 불겠군요. 늦어도 3월 지나기 전엔 결과가 나오겠네요?”
“그러겠죠. 결과 나와도 이의신청 받고 재검토하면 4월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건 불합격하면 올해 입찰은 못한다고 봐야죠.”
32곳 중 몇 군데나 통과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피바람으로 업체들 확 줄어들면 8월에 있을 입찰에서 꿀 제대로 빨 것이란 기대감 말이다.
최 상무가 기대감을 증폭시켜 준다.
“전기진흥회 직접생산 실사도 곧 나올 겁니다. 얘기 들어 보니 수도권은 직접 하고, 나주랑 그 외 지역은 대한전력이 위탁받아서 대신 수행한다고 하더군요. 변압기 전 업체를 대상으로 한다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직접생산 실사. 말만 들어도 설렌다. 대한전력 입찰 못 들어오게 만드는 걸로는 저것만 한 것이 없다. 덕준이가 고생해서 확보한 증거자료는 최 상무를 통해 전기진흥회로 이미 넘어갔다.
그것만 넘기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희철 사장이 녹음파일 하나를 들고 왔다.
덕준이가 찾아갔던 그 외주업체 사장과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 안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직접 찾아가서 대놓고 물어보며 꿀 떨어지는 정보들을 담아 왔더라.
그 멍청한 사장은 뭐가 그리 신이 났던지, 거래했던 업체들을 줄줄이 불었다. 제 딴엔 이리 믿을 만한 업체니까 발주 달라는 뜻이었겠지.
다른 업체들은 몰라도 광진변압기와 동서변압기는 빼박이다. 내가 장막 뒤에서 네놈들 죽일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아니, 앞으로 통쾌할 것이다.
텐션이 높아진 걸 느꼈던지 최 상무가 부채질에 나섰다.
“직접생산 위반은 법 위반이라 대한전력이 고발조치도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걸로 처벌된 업체들도 꽤 됩니다.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니 벌금형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거 걸리면 기계약 건도 즉시 취소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그 물량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일단 납품계약 취소되고, 입찰자격도 정지 처분하죠. 금액이 크면 고발조치도 하고. 취소된 물량은 반납 처리되는데, 대한전력이 기존 업체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고, 다음 입찰로 넘기기도 합니다. 그건 그때 가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높아진 텐션이 극에 달했다. 제발 중전기조합 놈들 모조리 걸려라.
오후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저 멀리 북쪽 나라 시화공단에서 내려온 동아일렉트릭 이석균 사장이다.
새 조합 만들라는 뽐뿌질에 귀가 펄렁펄렁했으니, 듣기 좋은 소리를 건네주리라.
“사장님, 어서 오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같이 점심이라도 하려고 일찍 출발했는데, 차가 너무 막히네요. 이거 나주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하하.”
“식사는 중전기조합 사라지고 나면 그때 편하게 하시죠.”
“하하. 그거 좋지요.”
이 사장은 중전기조합이 이미 와해되기라도 했다는 듯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어차피 오래가기 힘든 회사, 싸움이라도 신 나게 해 봐라.
“우리 현장 둘러보면서 얘기 들으시고, 금성전기 가서 박준희 사장님과 같이 얘기하시죠.”
이 사장을 공장으로 안내했다. 기선을 제압하고자 처음부터 권선제작동으로 들어갔다. 다른 회사의 5배는 족히 큰 공장에도 놀란 이 사장은 생전 처음 보는 설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건 뭡니까? 권선을 저렇게 감는 겁니까?”
“하하. 우리 공장 와서 보시면 자동권선기가 뭔지 아실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게 바로 자동권선기입니다. 흔하디흔한 5천만 원짜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는 이 사장을 보니 이게 중소기업의 현실인가 싶다.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이 사장이라면 프라임일렉트릭이 왜 그리 잘나가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알아봤을 것이다.
이 업계에 자동권선기를 공개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이제야 실물을 영접하고 놀라 버린 이 사장. 맨날 남이 떠 주는 밥만 먹고 살다 그냥 식객이 돼 버린 걸까?
“와! 프라임일렉트릭이 엄청 잘나간다고 하더니 이게 그 비결입니까? 하하.”
“사장님께서 조합 설립 잘 마무리하시면 이거 한 대씩 회원사에 판매하겠습니다. 아! 물론 구매는 회원사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이게 판매도 특별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내가 대단한 시혜를 베푸는데도 전혀 이해를 못하는 이 사장이다. 돈을 벌어야 하니 참아 주자.
“하하. 그냥 대단한 설비가 아닙니다. 사장님, 1, 2차 권선 2명이 감으면 하루에 몇 대나 나옵니까? 많아야 대여섯 대 아닙니까?”
“그렇죠. 이건 몇 대나 나옵니까?”
“2명이 한 달 부지런히 감아도 백 대 남짓인데, 이건 한 달에 오백 대 넘게 뽑아냅니다. 자재만 걸어 두면 알아서 척척 감아 내죠. 그런데도 불량이 없습니다. 사람이 감다 보면 실수로라도 나오기 마련 아닙니까? 기름까지 채워서 변압기 완성했는데 불량 나오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오백 대요? 어휴야, 그 정도입니까? 그런 설비 하나 있으면 납품 걱정이 없죠. 근데 이 정도면 몇억 갈 것 같은데요?”
빙글빙글 돌아 이제야 본론에 들어왔다. 나야 한 달에 칠백 대씩 감는 자동권선기가 있으니 구버전은 한 대라도 많이 파는 것이 좋다.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에.
“이게 좀 비싸긴 합니다. 부품 값도 워낙 비싸고, 만들기도 어려워서 말이죠. 그래도 2년이면 본전 뽑습니다. 본전 뽑고 나면 회사 이익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대당 7억. 어떻습니까?”
뜸들이지 않고 바로 질렀다. 자라 보고 놀란 이 사장이 거북이 보고 더 놀란 표정이다. 우리 조합에 6억에 팔았으니, 이것들에게는 7억 정도는 받아 줘야지.
“치…… 칠억요? 하하. 엄청나네요. 뭐 그래도 2년 만에 본전 뽑는다면 당연히 사는 것이 맞겠죠. 근데 아시다시피 다들 형편이 안 좋아서…….”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회사에만 팔겠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리스해서 사용하다가 사정 나아지면 잔금 치러도 되고…… 그건 뭐 차차 얘기하시죠.”
한 대 더 안 되겠냐고 사정한 우리 조합 회원사들과 달리 이 사장은 짱구를 마구 굴리는 모습이다. 투자 없이 쉽게 돈 벌겠다는 사장한테 잘하고 있는 행동인가 싶다.
지금이야 중전기조합 죽인다는 대의명분으로 뭉쳤지만, 사업 파트너로 함께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중전기조합 괴멸임무나 잘 수행해라. 내가 몇 년 더 살게는 해 줄 테니.
이 사장을 데리고 공장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줬다. 이 사장은 큰돈이 나가는 자동권선기 구입보다 당장 돈이 되는 자재 구입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자재까지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조합 만들고 나면 우리 회원사한테 지 사장님과 거래할 수 있도록 힘 좀 써 보겠습니다. 그 혹시 외함 시험비용 제공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네, 물론이죠. 우리 자재를 전량 사용하겠다고 하시면 그깟 시험비용이 문제겠습니까?”
외함공급업체를 변경하려면 전기연구원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 비용이 품목당 400만 원 정도다. 타 업체보다 10퍼센트 싸게 공급하겠다는데도, 그것이 아까운 이 사장. 옜다. 받아먹어라.
공장 견학을 끝내고 금성전기로 넘어갔다.
조합 설립 노하우 알려 주고 나면 바로 보내고 싶다. 구질구질한 사람과 길게 얘기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뭐 토끼 잡는 사냥개가 그 역할만 잘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