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5)
255 적절한 동맹
분양률 60퍼센트를 넘긴 혁신산단은 여전히 황량하다. 공장들이 꽤 들어섰지만, 입주율이 30퍼센트에 그친 탓이다.
그래도 우리 공장이 자리한 구역은 제법 기계 돌아가는 냄새가 난다. 우리 조합 회원사들이 속속 내려오면서 변압기 클러스터가 만들어졌다.
시화에서 내려온 초대손님 동아일렉트릭 이석균 사장에게 한데 모여 있는 이웃사촌을 소개했다.
“길 건너편이 안성파워 공장이고, 금성전기는 그 위쪽에 있습니다. 그 주변에 있는 공장들도 다 변압기 회사들입니다. 서로 이웃사촌이죠.”
“변압기혁신조합은 회원사들이 다 나주로 내려온 모양입니다? 다들 가깝게 있어서 좋겠습니다.”
“네 곳만 더 입주하면 전 회원사가 여기에 자리 잡게 됩니다. 다 같이 몰려 있으면 좋은 점이 많죠.”
이 사장이 부럽다는 표정이다. 조합이라고 해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다인 것이 중전기조합이니 말이다. 우리는 툭하면 만나서 정보 교환도 하고 체육대회도 연다우.
금성전기에 도착하니 준희 누나가 환한 표정으로 손님맞이에 나섰다. 아무것도 없지만, 국빈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표정이다.
“어서 오세요. 프라임일렉트릭 갔다가 여기 오시니까 초라해 보이죠?”
“하하. 박 사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금성전기야 원체 대단한 회사 아닙니까? 뭐 여기도 굉장하네요.”
이 사장이 확실히 감흥이 떨어진 얼굴에 응대했다. 우리 누나 회사 무시하지 마라. 내 회사가 엄청난 거지, 금성전기가 후달리는 건 아니니까.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사장님 오신다고 해서 조합 설립 에이투지를 깔끔하게 정리해 놨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와중에 이 사장이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내 귀가 이상하게 밝아진 것인지 다 들린다.
“사장님도 자동권선기 들여놨습니까?”
“그럼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설비인데요. 그거 10대나 있어서 관수며 민수며 수출이며 문제없이 했죠. 사장님도 그거 꼭 구매하세요. 정말 돈값 하는 설비예요.”
“아, 네.”
이 사장 얼굴을 보니 7억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표정이지만, 자동권선기 사야겠다는 의지가 꽤 높아져 있다. 우리 누나, 영업도 잘하네.
금성전기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누나가 이것저것 자료를 챙겨서 이 사장에게 건넸다.
“준비할 것들이 꽤 있긴 한데요. 제가 정리한 대로만 하면 넉 달 정도면 조합 설립 가능할 거예요.”
“넉 달이라…… 올해 입찰 전엔 마무리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서류 반려만 안 되면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서류 작성만 꼼꼼하게 하시면 될 거예요. 혹시 새 조합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회사는 몇 곳이나 되나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누나가 먼저 물었다. 몸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렷다.
“지금 부지런히 연락 돌리는 중입니다. 우리까지 열두 개 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일단 일곱 곳은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입찰 전까지 마무리하려면 더 노력해야죠.”
29개 회원사로 이뤄진 중전기조합이 곧 있으면 17개 사로 줄어든다. 그 남은 회사들에게 내가 지옥불을 선사하리다.
내가 이 사장의 노력에 뜨거운 기름을 끼얹고 싶다.
“사장님. 지금 새 조합 오겠다는 업체들은 어떤가요? 부글부글하죠?”
“말하나 마나죠. 재고품 만든답시고 몇억씩 날아가 버렸는데, 속이 편하겠습니까?”
“조합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솔직히 조합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웅민이는 재고품 구매 확정됐다고 말한 적 없다며 오리발이고, 김익환 그놈은 자기도 손해 봤다고 난립니다. 사장 몇 명이 따지러 갔다가 한바탕 싸우고 온 모양이에요.”
“그 사람들이 도움 줄 것이란 기대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낫겠네요. 그나저나 혹시 조합에서 실사 대비하라는 얘기 있었습니까?”
“실사요?”
불쌍한 이 사장. 처음 들어 봤다는 표정이다. 살짝 안쓰러워졌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대한전력이 입찰유자격 실사 강화한다고 해서 우리 조합은 미리 대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 회사는 아까 오전에 중간실사 받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허허, 나 원 참. 이거 큰일이네.”
이 사장의 계속된 불쌍한 표정에 누나가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회사도 내일 실사 나온다고 연락 왔거든요. 동아일렉트릭도 곧 나올 거예요. 당장 오늘부터서 밤새워 서라도 준비하세요. 실사 FM대로 한다고 했으니까 서두르셔야 할 거예요.”
“아이고야. 신규실사 이후로 하나도 안 해 놨는데…….”
머리가 띵할 것이야. 매일 일기 쓰듯이 갖춰야 할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니. 부디 실사 잘 통과해서 7억짜리 자동권선기 꼭 사길 바란다.
“근데 조합이면 미리 좀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장님, 우리 한 부장 아시죠?”
“하아. 네, 한 부장님 잘 알죠.”
“한 부장한테 들어 보니까 광진변압기니 동서변압기니 이런 데는 실사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해서, 그래도 중전기조합이 할 일은 하는구나 싶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또 보나 마나 자기들은 아는 바 없다고 하겠죠.”
사업하다 보니 나도 연기자 다 됐다. 이 사장 속을 빡빡 긁어 놓는 이 혼신의 연기.
“아, 그렇습니까? 하아, 진짜. 이제 아주 지들끼리 먹고살겠다고 작정을 했네요.”
“사장님! 일단 급하니까 새 조합 오겠다는 회사들한테 빨리 연락 돌리고 사장님도 실사 준비하세요. 조합 준비 서류는 복사해 둔 거니까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
누나가 차도 안 식었는데 빨리 가라고 부추긴다. 명연기자 대열에 합류하셨군, 후훗.
“아휴, 이거 내려온 김에 사장님들 식사 대접이나 하려고 했더니 맘이 급해지네요. 잠시만요.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이 사장이 전화하겠다며 사장실을 벗어났다. 역시나 누나가 한마디 던졌다.
“정수 씨, 연기 아주 좋은데요? 하하. 새 조합에 합류할 회사는 살려 줄 생각이에요?”
“제가 신도 아니고 그 많은 업체들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습니까? 악질들만 죽이고 나머지는 갱생의 기회를 줘야죠.”
“잘 생각하셨어요. 이쪽에 업체가 너무 많긴 한데, 그렇다고 너무 줄어들면 진짜 개나 소나 다 들어올 거예요. 전 정수 씨 일에 무조건 찬성이니까 잘 마무리하자구요.”
나를 절대 지지한다는 저 말. ‘하고 싶은 거 다 해’로 들린다. 떡볶이 한 접시 먹은 것처럼 든든하다. 지지자들 실망하지 않게 이 바닥 청소 제대로 해야겠군.
“아이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급하게 연락 좀 돌리느라요.”
이 사장이 다시 복귀했다. 말만 복귀지, 계속되는 깨톡 소리에 대화를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새 조합 단톡방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아, 네. 하하. 대한전력에서 실사 나온다고 메시지 보냈더니 난리네요.”
이쯤에서 분에 넘치는 조언 하나 해 줘야겠다.
“사장님. 실사 대비해서 서류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은 맞는데, 규정대로 매일, 매주, 매월 체크하면서 서류 갖춰 두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맞아요. 처음엔 귀찮고, 할 시간도 없지만, 습관 들이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더라구요.”
누나가 맞장구를 쳐 줬다.
솔직히 조언해 줘 봐야 사무직이라고는 경리밖에 없는 회사가 따르겠나 싶다. 그래도 변압기 오래도록 팔아먹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잘하라고.
“네네, 그래야죠. 관수가 쉽게 돈 버는 거라고 해서 들어왔더니, 이거 점점 어려워집니다. 매년 입찰해야지, 서류 준비할 것도 많지. 허허.”
세상에 사업 쉽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소리쳐 주고 싶었다. 문자님 도움으로 거저먹고 있는 나도 개고생하고 있는데, 저런 나약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중소기업이 달리 중소기업이 아니다. 그래 놓고 현장 가서 직원들 들들 볶으면서 회사 걱정에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겠지. 소용없는 걱정 그만하고 내 일이나 하자고.
“사장님, 중전기조합이 새 조합 만드는 걸 알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알지 않겠습니까? 새 조합으로 데려올 회사들이 한두 곳도 아니니 소문이 나겠죠. 그래서 저도 좀 조심하고 있습니다. 최웅민 그놈이 보통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저나 여기 박 사장님께 언제든 전화 주세요. 저희도 적극 도와 드리겠습니다.”
대한전력 실사 걱정에 표정이 어두웠던 이 사장이 밝음을 되찾았다. 도움은 이번뿐이야.
“아이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진짜 조합 제대로 만들어서 최웅민이니, 김익환이니 그놈들 망가지는 꼴을 봐야 내 속이 시원하겠습니다.”
“이번 재고품 건 말고도 힘든 점 많으셨죠?”
“솔직히 그 전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죠. 근데 여기 박 사장님도 계시지만, 변압기혁신조합 생기면서 업체들 빠져나가고 나서는 좀 그렇습디다.”
이 사장이 그동안 쌓은 한을 풀어낼 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분노를 좀 더 자극하면 훌륭한 동맹군이 될 것 같다.
“또 물량 배정 가지고 장난친 모양이죠?”
“그것도 알고 계십니까?”
알기는. 그냥 때려 맞힌 거지. 이 사장이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냈다.
“제가 일심전기 유 사장이랑 친구이지 않습니까? 발주 나올 때마다 유 사장한테 확인하는데, 중전기조합이 입찰 말아먹었다고 해도 물량 차이가 너무 나더라 이 말입니다. 조합 박 상무한테 물어보면 똑같이 배분한다고 그래요. 알았다고 하고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요.”
“그거 다 뻥이에요. 광진변압기는 조합 업무 맡는다고 더 받아 가고, 동서변압기도 조합 감사라고 더 받아 가요!”
누나가 살짝 흥분하며 말을 받았다. 예전에 중전기조합에 있을 때 당했던 경험이 되살아났으리라.
“그렇죠? 내가 그래서 대한전력이 조합으로 발주한 전체 물량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계약기간 다 끝나면 정리해서 알려 주겠답니다. 그게 말인지 막걸린지 원.”
“최웅민 사장한테 따지지 않으셨습니까?”
“전화했더니 자기를 못 믿는 거냐고 되레 역성을 냅디다. 변압기혁신조합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인데 자기를 믿고 단합해야 하지 않냐고 하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못해도 조합 임원사들이 다른 회사보다 10프로씩 더 가져갈 겁니다. 박 사장님, 그렇죠?”
추정인 척 얘기하며 누나를 마무리 투수로 등판시켰다. 광진변압기에서 가져온 자료로 중전기조합이 대한전력 물량배정을 어떻게 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 잘 매조지할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예전엔 그 정도 더 받아 갔어요. 물량 더 가져가는 것만이 아니에요. 만들기 쉬운 용량 위주로 챙겨 가고, 심지어는 조합 수수료도 더 낮아요! 말이 좋아 조합이지, 일반 회원사들 등골 빼먹는 곳이라니까요.”
“뭐요? 수수료도 더 낮다고요?”
이 사장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조합 수수료로 납품 대금의 3퍼센트나 떼 가니, 그 돈이 무척 아까울 것이다. 1년이면 2~3억이다.
“네, 맞아요. 중전기조합 수수료가 3프로잖아요? 조합 임원으로 있는 회사들은 2프로밖에 안 받아요. 제가 조합이랑 많이 싸웠잖아요. 그러다 확인한 거예요. 우리가 괜히 조합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니까요.”
누나의 능숙한 연기가 이 사장의 흥분도를 더 높였다. 대화가 핵심으로 가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 사장을 빨리 안 보내고 붙잡은 목적을 꺼낼 때가 됐군.
“사장님. 저는요, 최웅민 같은 사람이 이 바닥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새 조합 만들어 보라고 권유드렸던 것이고, 또 적극 돕겠다고도 했죠.”
“하아. 그놈 진짜. 아니, 그렇게 몇 년을 해먹은 거 아닙니까? 그래 놓고 조합 일 하느라 엄청 희생한 척하고. 나 참.”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재고품 생산한다고 몇억 날린 건 돈도 아닐 겁니다. 이참에 최웅민부터 해서 중전기조합에서 한자리씩 해 먹고 있는 회사들 싹 날려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장이 작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그 눈은 나를 적극 돕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도 되겠지?
“뭐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 뭐든 얘기하세요. 뭐라도 해 보겠습니다.”
“하하. 별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아무래도 그쪽이랑 친분이 있으시니까 몇 가지만 알아봐 주시면 됩니다.”
책상 앞에 펼쳐진 동맹 계약서에 사인하는 이 사장. 그래, 앞으로 잘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