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6)
256 맹활약
“너 요즘 회사도 안 나오고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니냐?”
3일 만에 얼굴을 보인 덕준이에게 출근하자마자 격려의 한마디를 날렸다.
민수 변압기야 가만히 있어도 사방에서 주문이 몰리고 있다. 덕준이가 바쁜 것은 딱 하나일 것이다. 우리의 복수!
“요즘은 내가 회사 일을 하는지 심부름센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이젠 모텔이 내 집 같아.”
“너의 맹활약을 영원히 기억하겠도다. 그래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니까 뭐 성과가 좀 있어?”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하는 덕준이 모습에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오장육부가 뜨거워진다. 뜨끈뜨끈한 돼지국밥 원샷한 느낌이다.
“아시아전기가 연체 먹고 있다고 했잖아? 또 잠복근무 좀 했지. 여지없더라. 거긴 권선 외주를 두 군데랑 하더라고. 그 덕분에 이틀 날려 먹었네, 젠장.”
“아시아전기도 직접생산 걸리겠구만. 또? 또 없어?”
“우리 회장님은 욕심도 과하셔. 이 몸뚱이는 하난데, 또라니! 내가 그럴 줄 알고 두성전기랑 유원변압기도 잡았지. 후훗.”
만족을 모르는 나란 남자를 아주 잘 아는 덕준이다. 사설탐정 덕준이 레이더에 걸린 불법 하청만 벌써 다섯 곳이다. 아주 좋다.
“그거 좋군. 아주 그냥 죄다 외주로 돌리는 모양이구만.”
“이게 지들끼리도 하청을 주더라고. 핫바지 같은 업체들 있잖아? 대한전력 발주 줄었을 때 큰 업체들한테 외주 받아서 권선 감아 주나 봐. 어떨 때는 아예 완성품까지 만들어 준대야.”
“야, 그거 아주 글로리하고 홀리한 정보구만! 그건 내가 동아 이 사장 통해서 확인하고 자료 좀 달라고 해야겠다.”
“얘기 들어 보니까 대금 결제 가지고 말썽이 있기도 했나 봐. 석 달짜리 어음 돌렸다고 하더라고.”
“어음? 와! 아직도 어음 돌리는 곳이 있어? 진짜 남한테 줄 돈은 어떻게든 미루는 놈들이구만.”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속이 후련하다. 직접생산 위반으로 대한전력한테 호되게 당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일주일 변비에 시달리다 팔뚝만 한 놈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그래서 또 없어?”
“아오, 진짜. 이제 없어! 다음 주부터 직접생산 실사 들어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야. 부랴부랴 물건 당겨 받는 통에 잡았지, 이젠 힘들어. 실사한다는데도 권선 외주 돌리는 간땡이 부은 짓은 안 할 거 아녀?”
“그래. 뭐 그만큼이라도 잡은 게 어디냐. 증거자료 잘 정리해서 전기진흥회에 바로 보내자고. 근데 뭐 또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또 뭐 없어?”
덕준이가 징글징글하다는 눈빛을 발현했다. 저러니까 뭐가 더 있는 것 같다.
“하여간 독한 놈이야. 어째 뜸 들일 틈을 안 주냐? 그제 저녁에 해원중전기 영업부장이랑 진득하게 한잔하고 왔지. 우윤길이야. 이름 잘 외워 둬. 조만간 여기 한번 내려올 수 있으니까.”
“여기 온다고? 왜? 내부고발 시원하게 하고 여기로 오기로 한 거야?”
덕준이가 처음의 의기양양한 포즈로 돌아갔다.
중국 가서도 말도 안 통하는데 난징변압기 왕웨이 종징리와 호형호제한 그 실력으로 해원중전기 영업맨을 구워삶았다는 걸 얼굴로 얘기하고 있었다.
“해원중전기 거기도 엄청나게 해 먹고, 하라는 것은 하나도 안 했더만?”
“우윤길? 그 사람이 그런 걸 다 알고 있어?”
“그 사람이 빈정이 많이 상해 있더라고. 나름 사장 따까리 노릇 하면서 온갖 궂은일 다 했는데 빤하지 않겠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사장이 가족만 챙기고 드니 성질나지.”
덕준이가 전해 온 해원중전기 정보는 글로벌했다.
필리핀 수출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소문은 비리의 온상일 뿐이었다. 필리핀에 세운 자회사를 통해 회삿돈을 야무지게 빼먹은 것이다. 빼먹은 돈으로 발생한 손실은 세금 감면의 도구로 활용됐고 말이다.
“상장사는 분식하고, 좆소기업은 역분식한다더니 엄청 빼돌렸나 보구만?”
“사장 아들이 빼돌린 돈으로 필리핀에서 몇 년을 호화롭게 살았더라고. 그런 놈이 변압기 회사 하나 차려서 사장으로 앉아 가지고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니까 짜증 난 거지.”
“돈 빼먹던 사장 아들이 새 회사 사장이 됐다라…… 좀 냄새가 나지 않냐?”
“빙고! 해원중전기 사장이 위장회사로 이스트일렉트릭 차렸잖아? 그거 차리자마자 필리핀 자회사를 거기로 매각했어. 손실덩어리인 자회사가 넘어가자마자 이익을 내고 있어. 이상하지?”
냄새 정도가 아니라 악취 수준이다. 분식회계의 단골 메뉴인 수출로 실적 부풀려 대출 끌어당기기 악취가 난다.
대출로 신 나게 돈놀이하다가 회사 부도내는 사기 수법. 사기 규모가 크면 어떻게든 걸리지만, 짤짤이 수준으로 빼먹으면 잘 걸리지도 않는다.
“이 새끼들이 대한전력 입찰 때 재미 보려고 위장회사 차린 줄 알았더니, 크게 해 먹으려고 그런 거 아녀? 이스트일렉트릭 주주는 누구로 돼 있는 거야?”
“우 부장 말로는 해원중전기랑 전혀 관련 없는 사람으로 세워 놨다고 하더라고. 더 대박인 거는 그 사장 아들놈이 진짜 사장도 아니야. 명의는 딴사람인데, 지가 사장입네 하면서 앉아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
“이 새끼들 구린내가 여기까지 나는데?”
“왠지 느낌이 한탕 해 먹고 내뺄 것 같지? 대한전력 처음 실사 받을 때도 필수설비 다 해원중전기한테 빌려왔다는 거야. 그거 다 갖추려면 몇억 깨지는데.”
역시 구린 일을 하면 언젠가는 배신자, 좋게 말해서 내부고발자가 나오는 법이다.
“근데 그 우 부장이란 사람도 그거 알고 그렇게 한 거 아니야?”
“우 부장이야 임원 달게 해 준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대. 위장회사로 넘어갔는데 임원 안 달아 주고 계속 기다려 보라고만 하니까 불만 터지는 거지. 그것도 그거지만, 불길한 냄새가 나니까 불안하긴 한가 봐.”
“헛된 희망을 품다가 좌절하는 게 좆소기업 월급쟁이의 삶 아니겠냐? 그건 그렇고, 우윤길 그 사람은 괜찮아 보여?”
덕준이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일 잘하는 사람은 맞는데,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할 정도로 괜찮다고 말하기 그렇다는 표정. 회사 생각하는 덕준이의 마음이 갸륵하고만.
“조금 껄끄럽긴 하더라고. 얘기 들어 보니까 사장 따까리하면서 할 짓 못할 짓 다 했더라고. 말로야 나주 내려오면 생계 걱정 없도록 하겠다고 해 놓긴 했는데, 우리 회사로 데려오는 것이 맞는 건가 싶네.”
“오케이. 뭔 말인지 알겠어. 그건 걱정 마러. 안 그래도 수원중전기에서 영업 하나 뽑아야 하는데 쓸 만한 사람 없냐고 물어보더라고. 네 말대로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자료나 확실하게 받아 놔.”
광진변압기에 이어 해원중전기까지 제대로 걸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덕준이 이놈 자식, 또 있구나!
“뭐 또 있어?”
“하하. 뜸은 들일수록 제맛 아니냐. 이건 별거 아닌데, 돈 빼돌리는 것도 아주 혁신적으로 하고 있더라고.”
“또 뭐가 있는데 그래?”
좆소기업 사장들의 회삿돈 빼돌리기 수법이 어찌나 다양한지, 그 대범함과 광대함을 가히 가늠조차 못하겠다. 착실히 사업하라고 법인에 혜택을 주는데, 오히려 그걸 돈 빼돌리기에 최적화된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원.
“아마 다른 회사들도 비슷할 건데, 해원중전기가 더 할 거야. 거기가 땅장사로 돈 좀 벌었다는 곳이잖아? 우 부장 말 들어 보니까 부동산 임대업으로 신고한 회사가 따로 있나 봐.”
“아! 뭔지 알겠다. 광진변압기도 그렇게 하드라. 그러니까 공장 명의 거기로 돌려놓고 다달이 임대료 갖다 바치는 거지?”
“빙고! 사장 집도 그렇게 돼 있대. 임대료는 회사에서 내 주고. 대단하지 않냐?”
페이퍼컴퍼니 하나 차려서 부동산을 헐값에 넘겨받는다. 그걸 임대해 주는 방식으로 처리해서 다달이 임대료 챙겨 먹는다. 페이퍼컴퍼니에는 가족들은 직원으로 올려놓고 월급으로 수익 대부분을 빼돌린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중소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5퍼센트에 불과해 대출이자 갚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싶다. 꼼꼼하게 야금야금 빼돌리는 거 없애도 그럴까?
“최웅민 그 새끼도 공장 임대료로 한 달에 천만 원씩 가져가드라. 아주 꼼꼼한 새끼들이야.”
“해원중전기야 말로만 들은 거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제대로 쑤시면 어마어마할 거야.”
“증거자료 구할 수 있는지 그 우 부장 잘 설득해 봐. 그리고 또? 또 있으면 얘기해 봐.”
“이제 끝! 진짜 없어!”
“센따 까서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다?”
“아 진짜 없다고!”
덕준이의 맹활약 덕에 내 복수를 위한 올가미가 서서히 옥죄고 있다. 나라님이 제공하는 무상급식을 받아먹는 영광이 있을지니라.
동아일렉트릭 이석균 사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지 사장님!”
“잘 지내셨지요? 대한전력 실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안 나왔는데, 덕분에 준비 다 끝냈습니다. 사흘을 꼬박 새웠습니다. 하하.”
“부디 별일 없이 통과하길 바라겠습니다. 사장님, 혹시 외주도 하셨습니까? 대한전력 납품용 말입니다.”
“외주요? 권선 감아 주는 거 말입니까? 뭐 권선뿐이겠습니까?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죠. 돈 되는 것은 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을 들으니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중소기업인들의 이 투철한 준법정신. 진짜 박수를 보낸다.
“사장님. 중전기조합 잡는 데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관련 자료 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드려야지요. 그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우리 조합 들어올 회사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요.”
“그렇게 제품 받는 업체들이 문제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혹시 다른 업체들한테도 자료 얻을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다른 곳에 외주 주지는 않으시죠?”
“아이고, 그럼요. 우리같이 영세한 데가 그럴 여유가 있습니까? 권선 한 대당 6만 원씩 주는 것보다 필리핀 애들 시켜서 권선 감는 게 더 싸게 먹힙니다. 필리핀 애들 일 아주 잘해요.”
필리핀 예찬론이 나왔다. 전화를 끊을 때가 됐군.
좆소기업들한테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장들 말로는 한 달 월급으로 삼백씩 준다며 코이카 홍보대사처럼 군다.
월 삼백. 최저임금에 잔업 수당으로 그만큼 받아 가려면 대체 일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식비와 기숙사비로 몇십만 원 공제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눈 뜬 모든 시간을 일만 해야 할 것이다.
외노자들이야 그렇게 5년 빡세게 일하고 돌아가면 번듯한 집 한 채 지을 수 있다고 좋아한다. 말이 기숙사지, 허접한 컨테이너에서 살다가 고국 가서 좋은 집 살면 좋겠지.
그러나 하이에나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공장에 있다 보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잘 차려입은 외부인들이 온다. 외노자들한테 같이 기도하자며 유인물 돌리는 사람들. 한 달 내내 일만 하며 받은 월급을 조금이라도 뽑아 먹겠다는 하이에나들.
또 망상에 빠졌군. 코이카 홍보대사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난 내 일만 잘하면 그만이겠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동아일렉트릭 이 사장한테서 등기우편 하나가 날아왔다.
동아일렉트릭뿐 아니라, 새 조합에 참여한 업체들이 중전기조합 핵심 멤버들한테 외주 받아 제품 생산한 자료들. 스캔 떠서 메일로 보내 주면 될 걸 일일이 복사해서 서류 봉투에 잘 담아 놨다.
역시나 예상대로 상당수는 광진변압기의 페이퍼컴퍼니인 서일전기로 납품되는 것이었다. 이 새끼들 아주 매출 팔아먹으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네.
머리에 힘줘 가면서 이 자료와 광진변압기 자료를 비교하다 보니,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중전기조합에 남은 회사들이 매입을 높이는 방식으로 허위 매출을 만들어 건설사에 넘긴다. 건설사는 그걸 비자금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뿌렸겠지.
이거 꽤 큰 그림이다! 직접생산 위반으로 대한전력 입찰자격 정지 먹는 것이 초딩 그림일기라면, 이건 르네상스 시대 명화 정도 수준이다.
이제 내 할 일은 충분히 했다. 이번 전투에서 맹활약한 덕준이는 해원중전기 불법 자료들을 꽤 얻어 왔다. 덕준이도 할 일을 충분히 했다. 나머지는 임필성 변호사의 능력에 달렸다.
잘만 이빨 까면 검찰 수사를 중전기조합 전체로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개새끼들아, 오래 기다렸지? 조금만 더 참아. 곧 무상급식 받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