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58)
****************************************************
[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258화>258 미소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다. 그러나 우리는 3월을 맞이하면서 진짜 한 해가 시작됐다는 새로운 마음을 품기 마련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고 봄이 찾아왔다는 설렘과 방학 동안 살이 무럭무럭 찐 학생들의 소란스러움, 벚꽃이 피기 전에 연애를 해야 한다는 청춘들의 긴장감. 이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오는 3월이 시작됐다.
3월의 따뜻한 기운과 함께 이 변압기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월 내내 준비한 내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알려 주는 바람이다.
“한 부장님아!”
“네히, 회장님!”
일 아닌 일로 바빴던 덕준이가 3월이 되자 한가로운 전화상담원으로 변했다.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을 때가 자주 불러서 괴롭힐 때다.
“요새 사무실 죽돌이 됐다잉? 영업이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되겠냐?”
“우리 회장님, 또 시작입니다요. 바쁘니까 바로 본론 들어갑시다잉.”
친구 사이에 갈굼과 욕설로 인사를 나누는 미풍양속이 이젠 안 통할 나이가 된 것 같다. 이십 대의 순수함과 과격함을 잃고 싶지 않은데…….
마땅히 치러야 할 티격태격 의식을 생략하고 원하는 대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 기자 맛있는 것 좀 사 줘야겠어. 날 한번 잡아. 내가 제대로 대접할게.”
“후후. 내가 말했지? 윤경이가 한다고 하면 확실하게 한다니깐. 기획기사로 제대로 나가고 있으니까 여론에 푸시 좀 갈 거야.”
덕준이가 뿌듯한 표정을 안면 가득 내비쳤다.
덕준이 피앙세 오윤경 기자가 ‘중소기업, 새로 태어나다’라는 캠페인성 기획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광주시민일보도 일면 상단과 경제면 절반을 할애해 힘 좀 쓰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근데 좀 민망하더라. 우리 회사라고 대놓고 쓰진 않았어도 혁신산단 아는 사람이면 딱 우리 회사 얘기인 거 알잖아? 너무 빨아 주니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더라고.”
“빨아 줄 때 고맙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낼부터는 광진변압기랑 동서변압기랑 몇 군데 찍어서 신랄하게 까는 기사 올라갈 거래. 혁신산단에 내려온 기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기업들 비교 확 될 거야.”
“와꾸 짜느라 고생 좀 했겠어. 기사 보니까 취재 엄청 다녔더만. 우리 최 의원님도 한마디 해 주시고 말이야. 그나저나 다른 언론들이 좀 따라와 줘야 하는데…….”
덕준이가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고, 담배나 피우러 나가자고?”
“이젠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네. 내가 얘기했잖아. 짜잘한 것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다 알아서 한다니까.”
“하하. 뭐 준비가 다 돼 있나 봐?”
“윤경이가 취재한다고 그렇게 바쁘게 돌면서도, 기자들 부지런히 만나고 다녔으니까 성과가 나올 거야. 맘 편히 기다려 보셔. 담배나 피우러 갑시다.”
“그래! 개운하게 빨고 오자. 근데 너 2월까지만 피운다고 하지 않았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과감히 패배를 선택한 덕준이와 끽연의 기쁨을 나눴다. 앞으로 다가올 기쁨을 미리 만끽하는 흡연이었다.
담배 냄새가 채 빠지지 않았는데 회사로 손님이 찾아왔다.
“바빠 죽겠는데 이것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도 검사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진짜 프라임일렉트릭은 검사하러 안 오고 싶습니다.”
“어서 오세요. 미리 연락 주셨으면 귀빈대접 준비라도 했을 텐데요.”
“말도 마세요. 사전에 연락했다가 적발되면 징계위 회부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프라임일렉트릭이야 뭐 다 아는데. 거참.”
대한전력 이신웅 과장이 찾아왔다. 전기진흥회를 대신해 직접생산 실사를 하러 온 것이다. 얼마든지 확인하시라.
“뭐 다 알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까 현장 좀 돌겠습니다.”
이 과장이 현장 안내를 요청했다. 이번엔 다르긴 다르군.
그전 실사는 별것 없었다. 와서 믹스커피 한 잔 마시면서 노가리나 까다가 시간 되면 서류 대충 휘갈겨 쓰고는 가는 것이 다였다.
“여기는 저걸로 권선을 감는 것이죠? 대당 하루에 몇 대나 나옵니까?”
“네. 용량이나 품목별로 차이가 있긴 한데, 하루 평균 25대 분량 정도 생산합니다. 총 27대가 하루도 안 쉬고 돌아가니까 한 달에 2만 대 분량은 나옵니다.”
“2만 대요? 와,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뽑는 회사는 없는 것 같은데요?”
이 과장이 잠시 본분을 잊고 벌어진 입을 다물기 바빴다. 대한전력 납품물량 시험하러 와서 그 많은 물량에 한숨만 쉬던 이 과장이 이제는 탄성까지 추가했다.
직접생산 실사를 꽤 꼼꼼하게 한다는 생각을 금세 잊어버렸다. 우리 회사 찾아온 손님들이 놀라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 이게 사업하는 재미지!
“와, 진짜. 대단하십니다. 제가 검사하러 여러 번 오긴 했어도 생산현장 보는 건 처음인데, 다들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하면 놀라는 이유가 있네요. 아니, 언제 이런 걸 다 마련했습니까?”
“먹고살려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하하. 이 정도 역량이 있어야 대한전력 그 많은 물량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꼼꼼하게 살피면 살필수록 입이 더 벌어진 이 과장이 완성품 조립부까지 다 보고 나서 진득한 심사평을 쏟아 냈다. 대한전력 시험관이 훑어보고 갔으니 방방곡곡에 소문 좀 나겠군.
“실사야 하라니까 하긴 했는데, 뭐 실사랄 것도 없네요. 그나저나 대기업들 조심 좀 하셔야겠습니다. 제가 울산도 가고, 부산, 창원 다 다녔는데, 이런 기술 보면 탐나서 몸이 간질간질할 겁니다.”
이 과장이 소문 날 것에 대한 우려를 먼저 꺼냈다. 처음 우리 회사 왔을 때 냉기 어릴 정도로 까칠하게 나왔던 사람이 이제는 걱정까지 해 준다. 이것도 우리 회사가 가진 힘일 것이다.
“염려까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 중소형 변압기만 하는데, 초고압 만드는 대기업이 신경이라도 쓰겠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 없죠.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배전용 변압기가 올해까지 아닙니까? 빅쓰리들이 재지정 막으려고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어요.”
변압기 회사들이 꿀 빨게 된 계기가 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그 혜택이 올해로 종료된다.
대부분은 재지정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대기업이 힘을 발휘하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역시 관건은 다음 주에 있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달렸다.
“그래도 탄핵 선고돼서 정권 바뀌면 아무래도 재지정 쪽으로 힘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게도 연결이 되겠네요. 사장님도 믿는 구석이 있으시군요. 대통령 탄핵돼서 대선 다시 하면 선거운동 좀 하셔야겠습니다? 하하.”
중소기업 먹고살게 해 주겠다는 후보라면 삭발을 해서라도 당선되도록 밀어야지, 암.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도 중소기업의 탈을 쓰고 있을 시간이 얼마 안 남긴 했네. 중소기업일 때 최대한 재미 좀 보자고.
직접생산 실사가 예상대로 밋밋하게 끝났다. 자재까지 직접생산 하는 회사가 실사에서 걸릴 건더기가 나올 리가 없으니.
“과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3월 2차분 시험하러 또 오시겠군요?”
“시험만 해도 바쁜데, 직접생산 실사까지 하라고 하니 아주 죽겠습니다. 다음 주 시험은 미리미리 준비 좀 해 주세요. 빨리 끝내고 일찌감치 퇴근하렵니다.”
“최단 시간에 끝내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과장님, 혹시 다른 업체들은 실사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아십니까?”
진짜 궁금했던 점을 이제야 물어봤다. 제발 중전기조합 쪽 회사들은 날벼락을 맞았다는 얘기를 해 다오.
“지금 부지런히 실사 중이라 뭐 결과 나온 곳은 없어요. 여기 혁신산단 쪽은 문제없이 통과할 것 같고, 경기 쪽에 있는 업체들은 이번에 제대로 걸릴 것이란 말들이 있더군요.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다 알면서 넘어가 줬던 거.”
“대한전력에서는 규정 위반으로 걸린 업체들한테 입찰자격 정지처분 내릴 거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사장님도 본사 분위기 알면서 물어보십니까? 하하. 어이쿠야! 이거 큰일 나겠네요!”
이 과장이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웃으며 대화 잘하다가 난데없이 가스 불 켜 놓고 출근한 사람 같은 소리를 한담? 왜 그래, 이 과장?
“왜 그러십니까? 뭐 문제 될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8월 입찰 때 참여 회사 줄어들면 프라임일렉트릭이 가져갈 물량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죽겠는데, 지금보다 물량 더 많아지면…… 어휴, 이거 내년엔 애자류 쪽으로 옮겨 달라고 로비라도 해야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달콤한 소리를 이리 훌륭한 연기력으로 내뱉다니! 기분이 좋다, 좋아. 내년에는 관수 매출로만 999억을 찍어 보자고!
그렇게 기분 좋게 3월 첫 주를 보내고 나니, 이 나라와 변압기 업계에 시원한 토네이도가 불어닥쳤다.
작년 이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았고, 이 업계를 요란 떨게 만든 업체들도 대한전력의 꿀밥 먹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회장님!”
최윤근 상무가 볼일 있다며 대한전력에 다녀오더니 황급히 나를 찾았다.
“네, 들어오세요.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으셨습니까?”
“전기진흥회 직접생산 실사 결과가 곧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벌써요? 실사인원 부족해서 한두 달 걸릴 거라고 하더니 엄청 속도를 낸 모양이네요?”
한발 빠른 정보를 가져오는 최 상무가 서산삼존마애불 같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이 분명하렷다!
“상생협력처장 하는 후배를 만나고 왔는데, 이번에 중전기조합 업체들이 꽤 걸렸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실사결과 발표하기로 했는데, 이의신청 받고 그러면 4월 중엔 최종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어디가 걸렸는지도 들으셨습니까?”
최 상무가 익숙한 이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내가 듣고 싶었던 광진변압기, 동서변압기, 아시아전기 등이 담겨 있었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그놈들 드디어 걸렸네요!”
“회장님께서 원하는 바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압수수색이니 검찰 조사니 고생 많으셨는데, 그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허허.”
동화에서 읽었던 권선징악이 이것이라는 인자한 목소리다. 동화책 읽어 주는 할아버지 목소리에 꿀잠에 들 것 같은 기분이다.
회사 일만 하겠다며 한발 물러나 있을 수 있었던 최 상무가 적극 나서 주며 함께 기뻐하는 것이 고맙다. 중전기조합이 우리를 이리 단결시켜 줬으니 고맙다며 무덤에 가서 소주나 한 잔 따라 줘야겠다.
“기분이 좋긴 한데, 이번에 걸린 회사들은 준비를 어떻게 했기에 그랬답니까? 직접생산 실사한다고 소문이 날 대로 다 나지 않았습니까?”
“이게 이번 실사를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이에요. 설비랑 생산량 조사해서 관수 납품 수량이랑 맞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 버리면 실사 나온다고 준비한들 걸릴 수밖에 없지요. 허허.”
생산공정을 외주로 돌리는 것은 인건비도 줄이고 싶고, 자재업체로부터 받는 백마진도 포기할 수 없다는 욕심의 결과다. 그 탐욕이 나에게 백제의 미소를 안겨 준다. 멍청한 것들.
“최종 결과가 나오면 대한전력도 바로 입찰자격 정지 때리겠죠?”
“당연히 그러겠죠. 8월 입찰 못 들어오게 6개월 정지는 확실합니다.”
최 상무가 물어보는 족족 기분 좋을 대답만 내놓았다. 아첨이 아니라 예지력이다. 그걸 알기에 기분이 좋아서 살짝 몇 방울 나온 것 같다.
“정지 먹은 회사들이 죽기 살기로 덤비지 않을까요? 가처분소송부터 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 같은데요.”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대한전력이 부당이득 환수조치에 나서거나, 판로지원법 위반이나 사기로 고발할 수도 있지요. 더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내년 농사는 망했다 생각하면서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 아니겠습니까? 허허.”
“하하. 올해 입찰은 아주 쾌적하게 진행되겠습니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유격훈련 끝나고 황금마차로 달려가 아이스크림 하나 빨아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아직 만세를 부를 때는 아니다. 이건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의 복수이지, 내 복수가 아니다.
기다려라 이놈들아. 엎친 데 덮친다는 것이 뭔지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