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1)
261 산낙지
진해를 시작으로 벚꽃이 서서히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며칠만 참으면 전국에서 볼 텐데, 그거 일찍 보겠다고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왔다.
“공장장님! 내장산 어땠어요?”
“아휴, 말도 마. 벚꽃 보러 갔다가 사람만 잔뜩 보고 왔어.”
벚꽃 피기 한 주 전부터 꽃구경 간다고 사춘기소년처럼 설렘 가득했던 공장장이 사람들에 질렸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최 원장님이랑 같이 가니까 좋으셨죠?”
“좋을 게 뭐 있어? 해마다 피는 꽃이 뭐 다를 게 있나. 운전만 힘들었지 뭐. 허허.”
백지원 최봉숙 원장 생각만 해도 얼굴이 상기되는 공장장. 이럴 땐 살 통통하게 오른 돌 지난 아이처럼 귀엽다.
3년 가까운 그 고생이 끝나고 이제 회사가 안정되니, 공장장도 살이 제법 올랐다. 이대로 건강 유지하면서 저랑 같이 아흔 살까지 일해 봅시다요.
“회장님, 그나저나 저쪽은 움직임이 어때? 나도 여기저기 전화 돌려 보는데 속 시원하게 아는 사람이 없으니 원.”
“저쪽이라 하면 중전기조합요?”
“그래. 그놈들 말고 신경 쓸 놈들이 누가 있다고 그래. 그놈들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미리미리 계획 좀 짜 놓지. 우리 회장님이 돈 걱정하지 말랬으니까 내년엔 지금보다 더 편하게 해 볼라고 하는데, 그놈들이 자꾸 걸리적거리네.”
사춘기소년 공장장이 60대 초슈퍼울트라베테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중전기조합 업체들의 생존 여부가 내년 농사의 성패를 결정하니 귀가 움찔움찔할 것이다.
“8월 입찰은 아주 널널할 겁니다. 직접생산 위반으로 열다섯 군데 정도는 입찰자격 정지될 것 같다고 하고, 대한전력 실사로도 그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구요. 중복된 것 제외해도 스무 곳 정도는 빠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거 잘됐네. 회사 얼렁뚱땅 하는 놈들이 관수한다고 하면 안 될 일이지. 그놈들 아주 쌤통이야. 근데 올해 입찰 못해도 어찌어찌 버티면 내년에 다시 들어올 것 아닌가?”
공장장이 내년 일까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쌀농사 짓는 줄 알았더니 인삼 농사를 하고 있었군.
“하하. 뉴스 나온 지 며칠 됐는데 못 보신 모양이네요.”
“무슨 뉴스?”
“그놈들이 좀비처럼 살아나도 확실한 애프터서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걸린 업체들 문 닫게 할 생각입니다.”
영문을 몰라 하는 공장장에게 이젠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흘 전 임필성 변호사를 통해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됐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오늘부터 피의자들 줄 소환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들려오는 소식에 귀만 기울이면 된다.
“아, 그래? 이거 내가 벚꽃놀이에 빠져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등한시했구만. 하하.”
“소환되면 바깥 공기 마시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그래. 내가 우리 회장님 철석같이 믿어야지. 그놈들 밟아 준다고 바빴을 텐데 내가 못 도와줘서 미안해. 나도 좀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했는데, 현장에서 깡통 두들기는 놈들이 뭘 알겠어?”
아주 많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 공장장. 나름 비리를 캐 보겠다고 동분서주했지만, 근로기준법 위반 같은 경미한 것들만 들고 왔다.
크고 확실한 것 못 물어 왔다고 저리 미안해한다. 좀 전엔 귀여웠지만, 이젠 사랑스럽다. 벌써부터 내년 얘기 하기는 그렇지만, 내년엔 돈을 더 많이 드려야겠다.
“노력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공장장님은 지금처럼 현장 관리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참! 다음 달에 공장 완공되니까 정리 좀 부탁드려요.”
“그건 걱정 마러. 내가 공장바닥 먼지까지 신경 쓸라니까. 공장이 확 커져서 일하기 아주 수월해지겠어. 진짜 처음에는 지금 공장도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말이야. 하하.”
태양전기 시절 공장 현장에 딸린 다락방 같은 공간에 처박혀 돋보기 쓰고 설계 뽑던 공장장 모습이 떠올랐다.
손발 다 잘려 속상한 상황에서도 내가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최소한 30분씩 붙잡고 얘기를 쏟아 내던 공장장. 맘 편하게 회사 생각만 하는 지금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기분 좋게 현장 사무실을 나와 봄바람 맞으면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불을 붙이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네! 박준희 사장님!”
“아휴, 놀래라. 오늘은 또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하하.”
“담배 한 대 피우고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늘은 난징변압기 왕웨이 종징리가 오는 날이다. 공장 보러 오겠다고 몇 번을 얘기하더니 꽃 피는 봄이 돼서야 찾아왔다. 꼭 바쁠 때 오더라. 그것도 2박 3일 일정으로…….
금성전기로 넘어가 누나 차를 타고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정수 씨, 검찰에 고발한 건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압수수색했다는 기사는 보긴 했어요. 근데 단신이라 뭐 설명도 없고…….”
왕 종이 찾아왔어도, 우리의 관심사는 중전기조합이 언제 망할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오윤경 기자가 부지런히 후속 취재를 하고 있지만, 법조팀이 없는 언론사라 정보 제공이 많이 부족했다. 누나가 엄청 궁금해할 수밖에…….
“오늘부터 소환조사 들어간다고 하네요. 피바람이 불 겁니다.”
“수사 제대로 하겠죠? 대한전력 사건 때처럼 하는 척 시늉만 하진 않겠죠?”
“그러진 않을 거예요. 이게 그저 푼돈 빼먹거나 벌금 받을 정도로 경미한 범죄가 아니거든요.”
임필성 변호사가 그랬다. 사건이 커서 검사 한 명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투입되는 검사가 5명으로 수사 규모가 꽤 커졌다고. 중전기조합에 남아 있는 그 회사들 죽을 일만 남았다는 소리렷다.
“저는 광진중전기나 동서변압기 정도로 끝날 줄 알았지, 그 패거리 전체가 다 얽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랬으니 이사장 선거할 때마다 똘똘 뭉쳤겠죠. 그 카르텔 속에서 계속 당하고만 있었으니, 저도 참 멍청했어요.”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죠. 이제라도 그 못된 짓에 대한 정당한 벌을 받게 됐잖아요. 존버가 이기는 법입니다. 이제 검찰 수사 들어가면 온갖 것이 다 터져 나올 테니까, 팝콘 먹으면서 구경이나 하면 됩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최웅민이나 김익환은 사람 자체가 미워요. 그동안 한 짓을 생각하면, 어휴…….”
이 복수는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누나에 대한 복수이자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우리 조합 회원사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개새끼들!
중전기조합에 대한 응징으로 몇 마디 주고받았더니 금세 무안공항에 도착했다. 차 시원하게 잘 나가네.
입국장 앞에서 왕 종과 에이전트 케이를 기다리는데 누나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정수 씨, 점심 정말 괜찮을까요?”
“그럼요. 무안으로 왔으면 이 동네 특산물로 대접을 해야죠. 우리도 오리 혓바닥도 먹고 개구리도 먹었잖아요. 하하.”
오늘 점심은 갓 잡은 싱싱한 세발낙지다. 입천장에 쩍쩍 붙는 낙지의 힘을 느껴 보시라. 그거 먹고 힘내서 저녁에 홍어 먹으러 가자고.
“아! 저기 왔어요!”
입국장에서 중국에서 날아온 초대 손님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중국의 돈 많은 사업가 부부 냄새가 물씬 난다. 왕 종은 변함없는 육중한 몸매와 포마드 바른 헤어스타일을 자랑했다. 금목걸이도 여전하네.
“어서 오세요.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석 달 만에 다시 만난 네 사람이 서로 얽히며 악수를 나눴다.
“잘 지내셨죠? 미스터 왕이 한국은 처음이래요. 가이드 좀 잘해 주세요. 호호.”
나와 누나 덕분에 돈 잘 벌고 있는 에이전트 케이가 왕 종을 부탁하고 나섰다. 오냐, 내가 제대로 대접해 주마.
“자, 차로 가시죠.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회사 방문하는 걸로 하시죠. 한국의 맛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왕 종이 좋다고 ‘하오하오’ 소리친다. 내가 중국 갔을 때와 달리 오로지 놀러 온 목적이라 얼굴에 여유가 넘친다.
“점심은 낙지 탕탕이입니다. 괜찮은지 여쭤봐 주세요.”
“어머. 하하하. 기겁하겠는데요? 호호.”
에이전트 케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왕 종에게 뭔가를 한참 설명한다. 여유 넘치던 왕 종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간다. 마!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맛을 봐야지!
차로 무안 읍내로 가는 내내 왕 종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불안에 찬 목소리로 들린다. 에이전트 케이가 왕 종의 시끄러움을 설명했다.
“요즘 세대는 안 그렇지만, 중국 사람들은 날것을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왕 종이 낙지 요리인 줄 알고 좋다고 했다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하니까 놀라는데요? 호호.”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울 정도로 스테미나에 좋다고 해 주세요. 하하.”
“이게 웃긴 게, 미스터 왕이 허세 부린다고 못 먹겠단 얘길 안 해요. 호호.”
가오가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중국도 똑같군. 한국의 살아 있는 맛을 즐겨 보도록.
무안에서 유명하다는 산낙지집에 당당히 입성했다. 손님 대접이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주문했다. 중국 사람은 손님 접대할 때 접시 바닥이 보이게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그렇게 해 줘야지.
종이가 깔린 테이블에 각종 낙지 요리가 올려졌다.
단연 백미는 육회와 산낙지 잘게 다져 버무린 육회탕탕이였다. 싱싱한 빨간색을 자랑하는 육회와 다져졌어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산낙지. 절로 군침을 부른다. 살아 있네!
“낙지 싱싱한 것 좀 봐요. 잡은 지 오래되면 꿈틀거리지도 않는데, 이건 갯벌에서 바로 잡아 온 것 같네요. 이거 진짜 오랜만에 먹네요.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살아야 해요. 호호.”
이 자리에서 가장 신 난 에이전트 케이가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왕 종에게 한 입 권한다.
화생방실에서도 방독면 없이 버틸 것 같은 가오를 선보이는 왕 종이 머뭇머뭇하면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것만 잘 넘기라고. 홍어는 먹을 만할 거야. 취두부도 먹는데 홍어 정도야 뭐.
“하오하오.”
왕 종의 평가가 나왔다. 말과 달리 표정은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은 듯하다. 나도 중국 가서 온갖 것 다 먹었다고.
“김 사장님, 이따 공장 가서 놀라지 말라고 미리 얘기 좀 해 주세요. 프라임일렉트릭 공장 보면 진짜 많이 놀라실 거예요.”
낙지 호롱구리를 정성껏 잘라 앞접시에 올려 주는 서비스를 끝낸 누나가 왕 종의 소화불량을 걱정하고 나섰다.
“아이고, 우리 공장은 그냥 원두막이죠. 뭐 공장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예의상 겸손 떤 내 대답에도 왕 종은 기대된다는 표정을 아끼지 않았다. 산낙지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미스터 왕이 권선 자동으로 감는 설비가 너무 궁금했다네요. 맘에 들면 자기도 몇 대 사고 싶을 거라고요.”
왕 종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금 당황했다. 자동권선기를 사겠다고? 한 20억 정도에 팔면 될까 생각도 했다가, 이내 접었다. 말도 안 되는 신기술을 중국에 팔 수는 없지.
유민희가 해 준 얘기가 생각났다. 중국은 중화사상의 영향 때문인지 모든 것을 다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
그래서인지 저작권 개념도 희박하고, 기술을 빼앗는 것도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더라. 적국의 기술을 훔치는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유독 열광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하. 일단 식사 마저 하시죠. 참, 왕 종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자동권선기 사겠다는 얘기가 더 나오지 않도록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네, 오늘은 여기서 공장 구경하고 저녁엔 쇼핑을 좀 하고 싶다고 해서 광주로 갈 생각이에요.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서 123타워 보여 줄 생각이에요. 중국인들이 마천루 보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저랑 박 사장님이 오늘까지는 확실히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그래 주셔야죠.”
푸짐하고 살아 있는 식사를 끝내고 나주로 입성했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공단 크기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혁신산단. 겉은 미약하지만, 속은 창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