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3)
263 맥주병
또 광주로 올라갔다.
어제는 난징변압기 왕웨이 종징리 대접하는 기쁜 광주행이었고, 오늘은 광진변압기 최웅민 사장 놈 만나러 가는 기쁘지 않은 광주행이다.
최웅민 그 자식, 지금 똥줄이 탈 것이다.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회사는 발칵 뒤집혔고, 함께 검은 돈 빨아먹던 동료는 소환조사 이후 봄기운 가득한 사제 공기를 마실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전날 검찰에 소환된 해원중전기 사장은 밤샘 조사 끝에 구속영장이 청구돼 법원의 구속적부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임필성 변호사 말로는 영장이 무조건 발부될 것이란다. 벚꽃은 볼 수 없다는 뜻이지. 후훗.
임 변호사가 기대하라고 한 말이 씨가 돼, 수사가 아주 커졌다. 일부 변압기 업체들의 비리를 넘어, 규모가 있는 건설사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건설사와 친분이 있는 정치인들 몇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대선 레이스라는 빅 이슈에도 중전기조합의 비리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 거대 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정치인의 한마디가 오히려 불을 질렀다. 자기 당 국회의원들이 거론되는 것을 두고 검찰이 벌써부터 줄서기하고 있다며 정치권 수사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검찰은 오히려 곤조를 부리며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다 내가 대선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약속 시간에 맞춰 광주에 도착했다. 유흥천국이라는 상무지구. 여기가 라스베이거스인가 싶다.
만나기로 한 장소도 술에 금테를 둘러 파는 곳이었다. 돈 엄청 빼돌려서 그런지, 돈 쓰는 것도 거침이 없군. 구치소 가서 신체검사 받기 전에 이런 곳에서 술 한잔 마시고 싶겠지.
“어서 오세요, 사장님. 회원 번호가 어떻게 되실까요?”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마담이 기품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맞이했다. 여기가 소위 물 좋다는 곳이군. 살다 보니 이런 곳도 와 본다. 최웅민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일행이 있습니다. 최웅민 사장인데요.”
“아,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박! 여기 사장님 안내해 드려.”
최웅민이 있다는 방에 들어가자 이미 주지육림이 펼쳐져 있었다. 이 새끼가! 김익환도 있었으면 말을 해야지! 2대 1이라. 겁날 건 없지만, 벌써부터 심기가 불편하다.
“지 사장, 어서 와. 너네들은 일단 나가 있어. 다른 데 가면 안 된다. 이따 부르면 꼭 와야 한다. 알았지?”
여기가 방송국 대기실인가 착각할 정도로 연예인 뺨치는 접대부 2명이 화려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칙칙하게 남자 셋만 남은 자리. 자, 하고 싶은 얘기 마음껏 해 보시라.
김익환은 계속 똥 씹은 표정이다. 접대부가 나가서 그런지, 내가 들어와서 그런지 모르겠다. 똥을 씹든 돌을 씹든 알아서 짜져 있어라.
“지 사장이랑 진작 술 한잔할 걸 그랬어. 일단 한 잔 받게.”
“죄송하지만, 술 안 마십니다.”
“그래? 뭐 그래. 요새는 술 강요하면 꼰대라고 한다지? 하하.”
최웅민이 김익환을 바라보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그런 말 자체가 꼰대란 증거가 아닐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듣던 대로 성질이 급하군. 하하. 왔으면 술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는 거 아닌가? 뭐 술 안 마신다니 질질 끌 필요도 없지.”
눈이 살짝 충혈된 최웅민이 한껏 여유를 부리며 술병을 내려놓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급똥이라도 온 듯 초조해 보이는데, 뭐 이리 허세를 부리는지 원.
“형님. 뭐 좋다고 웃으면서 그럽니까! 기분도 더러운데 할 얘기만 하고 보내자고. 어차피 대화가 될 놈도 아니고. 이 지경까지 왔는데 무슨 대화야! 걔들 다시 불러서 술이나 마시자고.”
내 맞은편 자리에서 반려견이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내 신경을 건드리겠다고 작정한 효과음인가?
김익환 저놈 면상 자체가 이미 신경을 건드리고 있지만, 말 몇 마디에 흥분하는 건 신사가 아니지. 신사답지 못한 개에게 개껌 하나 던져 주고 싶다. 그거 하나면 1시간 정도는 조용할 텐데 말이야.
“하하. 아직 초저녁인데 오자마자 보내면 되나. 이봐, 지 사장.”
“말씀하시죠.”
“그래그래. 내가 말이야, 변압기혁신조합 생겼을 때 그랬지만, 싸우는 걸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우리 입찰 앞두고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가지자고 한 걸 자네는 잘 알 거야.”
짖어 대는 개가 한 마리가 아니었네? 내가 애견카페에 왔던가?
“입찰 때 나눠 가지자는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이좋게란 말을 그럴 때 쓰는 것이 맞습니까?”
“허허. 업체 수대로 공평하게 나눠 가지자는 게 뭐 잘못된 건가? 욕심은 그쪽에서 부린 것 같은데? 그렇게 욕심 부리는 것까지 내가 다 이해해 주지 않았나?”
최웅민이 개껌 따위에 미동도 없다. 역시 짬밥은 짬밥이다.
“중전기조합에서 위장회사 차린 것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합은 룰대로 했으니, 남의 가르마 신경 쓰지 말고 최 사장님 가르마나 잘 타시죠.”
“너 이 새끼야!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하아, 나 참.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반려견의 울부짖음을 무시했다. 날 이 자리에 부른 사람은 최웅민이니, 김익환 저놈과 말 섞을 필요도 없다. 짖든지 말든지.
몇 마디에 쉽게 흥분해 버린 김익환과 달리 최웅민은 적어도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제삼자가 있었다면 ‘오빠야, 쫄았제’라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위장회사? 하하. 그쪽에서는 그렇게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정당하게 투자해서 실사 다 마치고 입찰 자격 받았는데 뭐가 문젠가? 이래서 피해 의식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김 사장, 안 그래?”
“우리 조합에 있다가 나간 회사들 보면 뻔하잖수? 맨날 조합 찾아와서는 징징거리기나 하고. 맘에 안 들어 나갔더라도 상도의는 지켜야지. 형님, 내가 말했잖아요. 잘해 주면 기어오른다니까.”
누가 자꾸 이 자리를 유기견 보호소로 만드나 했더니, 김익환 저놈이로구나. 날 흥분시켜서 동귀어진이라도 하자는 속셈 같은데, 술 마시는 신기한 개는 그냥 무시하자고.
“대한전력 실사랑 직접생산 실사 때 수두룩하게 걸렸다고 하던데, 그 말씀은 어폐가 있는 듯합니다. 필수설비 안 갖추고 임대로 갖다 놓은 거 다 아는데, 정당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웅민이 살짝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옆에 앉은 개 한 마리도 주인 보호본능을 보이는 것 같다. 개는 계속 무시하자고.
“이놈 말하는 거 봐라? 어이, 지 사장. 어린놈이 오냐오냐하니까 아까부터 아주 눈에 봬는 것이 없어?”
“김 사장! 넌 좀 그러지 마러. 그 성질머리 좀 고치라니깐. 내일 가서도 그딴 식으로 할 거야?”
“에이, 진짜.”
최웅민이 ‘먹지 말고 기다려’를 명령하니 개가 아무 말 없이 술만 들이켰다. 주인 말은 잘 듣네. 부디 조용히 있거라.
“지 사장. 이런저런 말 다 집어치우고…… 우리 이제 그만 싸우자고. 내가 얘기했잖아? 난 싸우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8월 입찰까지 한참 남았는데 싸울 일이 뭐 있습니까?”
“방금 자네 입으로 다 알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그래서요?”
최웅민이 묵직한 금반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구치소 들어가면 금반지도 빼야겠지? 만질 수 있을 때 많이 만져 둬.
“자네가 대한전력 일 때문에 앙금을 가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앙금은 호빵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개드립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이 자리는 무게 잡으면서 신경 건드릴 곳이다.
“앙금은 우선배정 양보하라고 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진변압기가 실사 불합격 맞은 것이 제 탓이라는 겁니까?”
“하하. 그렇게 고백하는 건가? 지 사장. 나도 이 나라에 세금 내는 국민이야. 내 세금 들어가는 대한전력이 몇천 원씩 비싸게 사 주는데,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그렇습니까? 그럼 그 사건 무혐의 났으니까 이제라도 사과하시겠습니까? 우리 회사 피해 입은 것까지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김익환이 마시던 술잔을 벽을 향해 던졌다. 양주잔이라 안 깨질 줄 알았는데 시원하게 깨졌다. 개가 술잔 던질 줄도 아네. 근데 내 비싼 시계에 술이 튀었잖아!
“김 사장님. 제가 예의 지킬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딱 이번까지만 참겠습니다.”
“뭐? 나 참. 니가 안 참으면 어쩔 건데? 형님! 이런 싸가지없는 새끼한테는 말로 해 봐야 소용이 없다니깐? 어차피 깜빵 갈 거, 이 새끼 묵사발을 만들어 놓고 가자고.”
도발에 응해 주니 김익환이 날뛰기 시작했다. 날뛰는 와중에도 구치소 들어갈 것은 아는 것이 대견스럽군.
개새끼한테는 서열을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서열상 위라고 인식해야 개 짖는 소리를 안 내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병을 하나 집었다. 망설임 없이 테이블에 맥주병을 내리쳤다.
빠샥.
“자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최웅민의 놀란 괴성을 무시하고, 깨진 맥주병을 김익환에게 들이밀었다.
“어이 김 사장.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어디서 개아리를 틀고 있어!”
“너 이 새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가 예의를 지키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 귀 안 들려? 잘 들리게 귓구멍 좀 넓혀 줘? 예의 지키면서 좋은 말 할 때 얌전히 있읍시다. 볼썽사나운 꼴 만들지 말자고.”
“허어, 나 참. 이거 원. 나 참. 거참.”
잔뜩 쫀 김익환이 안 쫀 척 ‘나 참 메들리’만 읊어 댔다. 할 말 없을 때 나오는 그 말, 나 참. 구석에서 조용히 참참거리면서 바둑이나 두고 있으라고.
“이봐, 지 사장. 진정하라고. 우리 얘기하자고 여기 있는 것 아닌가! 차분하게 말로 하자고.”
“최 사장님. 원하는 대로 대화하시죠. 저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전 눈 돌아가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원한 욕설로 구설수에 올랐던 한 배우가 화끈한 연기를 펼쳤다는 얘기에 혹해서 봤던 그 망한 영화가 생각났다. 혼신의 발연기를 펼친 남자주인공이 영화 내내 보였던 그 사이코틱한 눈빛을 선보였다.
술은 안 마셨지만, 약을 빨았을 수 있다는 그 눈빛으로 분위기를 제압하고 다시 차분하게 대화에 들어갔다.
“그래서 원하는 게 대체 뭡니까? 싸운 적도 없으니 싸우지 말자는 말씀은 그만하시죠.”
“하하. 일단 테이블 좀 정리하자고. 이거 술자리에 위험하게 병 조각 돌아다니면 술맛이 안 나는 법이지.”
최 사장이 종업원을 호출했다.
이 새끼 더럽게 뜸들이네. 그래, 마음껏 뜸들이면서 할 얘기 다 해 봐. 맥주병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1부 공연이 끝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인터미션이 찾아왔다.
종업원이 깨진 술잔과 맥주병을 치우고 나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한마디 건넸다.
“사장님들 화끈하게 노셨네요. 다치시는 일 없도록 깔끔하게 치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의 한번 시원하게 보여 주시죠.”
“이 새끼가 어디서 주둥이를 알랑거려! 청소 다 했으면 조용히 나가, 이 새끼야!”
팁 달라는 소리에 김익환이 쌍소리를 퍼부으며 지랄을 시전했다. 광견병이라도 걸린 건가? 저 종업원이 무슨 잘못이랴. 맥주병 깨게 만든 저 새끼 잘못이지.
“삼촌, 여기요.”
“아이고, 사장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얼마 전에 산 비싼 지갑을 꺼내 신사임당 한 장을 줬다. 허세를 부릴 때는 확실히 부려 줘야 한다. 만 원짜리 하나도 아까워 쌍욕을 퍼붓는 저놈 보란 듯이.
문득 어제 누나의 걱정이 떠올랐다. 나를 해코지하려고 불렀을 것이란 그 걱정.
내가 저놈들 말을 들어준들 바뀔 것이 없는 상황이다. 김익환 말대로 나를 밟아 버리겠다는 의도인가 싶다.
2 대 1. 둘이 작정하고 덤비면? 차분하게 생각하자. 일단 소화기 위치부터 확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