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4)
264 밤길
장내가 수습되고 2부 공연이 시작됐다.
좀 못마땅하다. 이런 비싼 곳에 왔으면 밴드마스터 불러다 ‘내게도 사랑이’ 정도는 불러 주면서 단란한 분위기여야 하지 않나?
띠링.
이건 문자 소린데? 내가 분명 진동으로 해 놨는데도 문자 소리가 들린다면, 이건 문자님이다!
“급하게 전화할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그래. 머리 좀 식히고 오라고. 할 얘기는 머리 식히고 나서 하자고.”
허락을 구한 것도 아닌데 관대하게 허락하는 최웅민. 관대해서 좋겠다.
-경호 필요. 1시간 이내로.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덕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직관적이라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덕준아, 지금 집이냐?”
“진작 퇴근했지. 왜 그래? 목소리가 급똥이라도 온 것 같은데?”
“그럼 최대한 빨리 상무지구로 와라. 문자로 주소 보내 줄게. 회사 기숙사 들러서 홍철이랑 애들 좀 데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갑자기 뭔 소리야? 휴지가 없어?”
“급하니까 애들 최대한 많이 끌고 와. 1시간 내로!”
“일단 알았다. 갔는데 별일 아니면 회장이고 나발이고 가만 안 있는다.”
내 급똥을 걱정하는 고마운 덕준이. 말은 저렇게 해도 지금 바로 회사 기숙사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문자님께서 1시간 내로 경호원을 구하라고 했으니, 시간을 끌어 줘야겠다. 어차피 할 얘기도 없으니, 시간 끄는 데 담배만 한 것이 없지.
니코틴 기운이 몸에 스며드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최웅민같이 악랄한 놈은 분명 플랜B를 세워 놨을 것이다. 어차피 감방 갈 거 밟아 버리자던 김익환의 개소리가 힌트다.
초저녁인데 벌써 보내냐는 최웅민의 말도 생각났다. 10시인데 초저녁이라니. 인적이 뜸해지는 시간까지 끌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디 심부름센터에서 사람 두어 명 고용한 것일까?
협상이랄 것도 없지만, 협상이 결렬되고 난 이 가게에서 나온다. 야밤에 차에 타려는 순간 괴한이 덮친다? 생각만 해도 진부하지만, 최웅민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변압기혁신조합장배 체육대회 우승한 우리 직원들의 힘을 믿자. 17 대 1로도 싸울 수 있는 임창정이 오지 않는 이상 쪽수에 장사 없다.
담배를 다 피우고 개 두 마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너구리 새끼도 아니고.
니들이 피우면 나도 또 피워 주마. 그로테크스한 문양이 새겨진 소파에 앉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예의 차린다고 좋게 볼 놈들도 아니고, 이 동네 말로 ‘니자구’ 없는 캐릭터이니 뭐.
“휴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려던 얘기 마저 하시죠.”
최웅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내가 빙다리 핫바지도 아니고, 지 사장 자네가 일으킨 사단인 거 다 아네. 일 더 이상 키우지 말고 이 정도에서 끝내자고. 자네가 우리한테 왜 그러는지 알겠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저는 말귀가 어두워서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면 못 알아먹습니다.”
말을 끝내면서 김익환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불행히도 맥주병 깬 것이 위력을 발휘한 모양이다. 슈나우저처럼 날뛰던 김익환이 골든리트리버가 됐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이지만, 주둥이는 한니발 렉터처럼 지퍼가 채워져 있었다.
“이봐, 지 사장. 우리 서로 번거롭게 하지 말자고. 내가 다 알고 있어. 자네가 대한전력 이 부사장이랑 친분이 있으니, 가서 잘 얘기 좀 해 주게. 그리고 임필성 변호사? 그 사람한테도 고발 취소하라고 얘기하게. 일단 그렇게라도 수습을 하자고.”
“왜죠?”
최웅민이 반지 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많이 참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데 불러다 얘기하면 다 없었던 일이라도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 사업에 도움 되는 일인데, 내가 미쳤다고?
“그래. 뭐 자네가 젊은 혈기로 그러는 것이야 이제는 이해하네. 그래도 회사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내가 뭐 사업 법대로 한 것은 아니니, 쑤시면 걸리겠지. 그건 그거고. 열심히 일만 했던 직원들이 무슨 죈가? 자네 원하는 대로 회사 문 닫으면 직원들이 피해를 본단 말이네.”
저놈 개인 줄 알았더니 악어였네. 이제 와서 악어의 눈물 흘리며 직원 생각하는 척하는 모습이 무척 가증스럽다.
“하하. 얘기 듣자 하니, 직원들한테는 최저임금 주면서 회사 돈 엄청 빼돌렸다고 하더군요. 진짜 직원들이 무슨 죄를 졌길래 그러신 줄 모르겠습니다.”
“이봐.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야!”
“함부로 하다니요. 얼마나 모질게 굴었으면 같은 조합인 회원사들이 조합 새로 차린다고 그러고 있겠습니까? 직원이나 조합 회원사들에게나 참 한결같으십니다.”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끄며 성질을 돋웠다. 어차피 협상 따위야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저놈들 혈압이나 올리지 뭐.
“하아. 김 사장아. 내가 참아야 하는 거냐?”
최웅민이 김익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꼴값들 떤다, 진짜.
“지 사장! 내가 진짜 듣자 듣자 하니까 참기가 어렵네. 어른이 얘기하는데 어디 못돼먹은 버르장머리야!”
주구가 다시 지퍼를 열었다. 내 경고도 무시할 정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너 이 새끼야. 할 말 없으면 나이 타령이냐? 왜, 나랑 한판 붙게? 서로 깽값 안 무는 걸로 하고 한판 할까? 자신 없으면 아가리 좀 닥치고 있어라.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익환에게 쏘아붙였다. 연기 티가 살짝 나긴 했지만, 저런 개한테는 이 정도로 세게 밀어붙여야 한다.
“뭐 이 새끼야? 너 이 호로새끼 말 잘했다. 어디 씨발, 한판 해 보자. 나와! 이 싸가지없는 새끼야.”
이번엔 김익환도 객기를 부렸다. 두 번 쫄지 않겠다는 각오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미안하지만, 체급이 깡패다. 머리 하나 차이 나는 작은 키를 가진 김익환이 막상 내 앞에 서니 움찔한다.
이 상태에서 머리 잡고 니킥을 날리면 딱일 것 같지만, 참자. 도발에 넘어가지 말자. 내 바지만 더러워질 뿐이다.
“둘 다 진정해. 아니 뭐 싸우러 왔어? 하아, 진짜.”
김익환 구세주 최웅민이 나를 끌어 자리에 앉히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익환이 그제야 개 짖는 소리 성대모사에 나섰다.
“아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내가 형님 체면 생각해서 봐준 줄 알아라. 알았냐!”
“봐줘서 고맙네, 씨발놈아. 제발 아가리 좀 다물고 있자. 아까 조용하고 좋더만. 조용히 술이나 마시고 있어라. 알았냐?”
“둘 다 그만해! 지 사장! 아무리 화가 나도 어른한테 무슨 짓인가! 자네도 회사 이끌어 가는 사장인데 할 말 못할 말 구분할 줄 알아야지!”
내가 좀 과했나? 최웅민의 고함에 살짝 진정이 됐다. 이 정도까지만 하자. 더 나가면 나까지 추해질 것 같다.
“나이를 벼슬로 아는 사람한테는 못 참는데, 오늘은 최 사장님 봐서 참겠습니다. 김 사장님, 저는 오늘 최 사장님 만나러 왔으니까, 옆에서 시비 걸지 말고 조용히 계셔 주시죠.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하아. 나 참. 아오 진짜.”
김익환이 ‘나 참 메들리’를 다시 틀며 담배를 피워 댔다. 그거 한 갑 다 피울 때까지 찌그러져 있어라 제발.
“최 사장님. 하던 얘기 마저 하겠습니다. 제가 배후에서 대한전력이며 검찰이며 조종했다고 치죠. 뭐가 됐건 경쟁사들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은 저한테 큰 이익 아닙니까? 사장님 말대로 한들 저한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허허. 사업을 눈앞의 이익만 보고 하면 되나?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당하는데, 자네라고 나중에 안 그럴 것 같나? 이럴 때 힘을 합쳐서 이 변압기 업계를 무너트리려는 외부 세력을 제압해야지!”
악어의 눈물에 이어 뱀의 혓바닥까지. 아주 현란하다, 현란해.
“좋습니다. 제가 그럴 힘도 능력도 없지만, 사장님 원하는 대로 이번 일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게 한다고 칩시다. 그 대신 관수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약조하실 수 있습니까? 새 조합 만들겠다고 움직이는 업체들 빼고 나머지 중전기조합 회원사들 모두 말입니다.”
“하아. 진짜 이렇게 나올 건가?”
“그럼 사장님께서 저한테 이익이 되는 조건을 제시해 보시죠.”
최웅민의 금반지가 멈췄다. 반지를 돌리던 손이 술잔을 향했다. 최웅민이 시원하게 원샷 하고서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자네랑 좋게 말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착각이었네. 지 사장 자네 뜻을 잘 알았네. 나도 더 이상은 할 얘기가 없어.”
핸드폰이 계속 울려 댔다. 덕준이다.
“어, 그래. 금방 가니까 1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다니까. 금방 간다고.”
무슨 일이냐며 온갖 소리를 퍼붓는 덕준이에게 아무 말이나 던져 주고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할 얘기 없다고 하시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오래 있을 수도 없겠군요.”
최웅민이 아무 대꾸도 없이 나가라는 손짓만 했다. 할 얘기 없다더니 진짜 아무 말 안 하네. 짜식.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고 문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개소리가 또 났다.
“너 밤길 조심해라.”
“아, 네. 늘 조심해야죠. 사장님들도 검찰 조사 잘 받으세요. 해원중전기 박 사장님은 구속될 것 같던데, 사장님들도 미리 준비 좀 하시죠. 갓 블레스 유.”
개 두 마리에게 축성을 내리고 술에 금테 두른 술집을 나왔다. 1층으로 올라가 밖에 나오니, 자동차 동호회 정모라도 열린 분위기다.
“정수야!”
덕준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상무지구의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기숙사 애들 다 데리고 온 것 같다. 굉장하네.
“오느라 고생했다야. 최웅민 그 새끼 만나고 왔어. 밤길 조심하라길래 혹시나 해서 불렀지.”
“뭐? 아오. 고작 그거 땜에 이 난리를 친 거냐? 영문도 모르는 애들 끌고 여기까지 왔구만. 아나, 진짜.”
“별일 아니면 다행 아니냐? 일당 두둑하게 챙겨 줄 테니까, 드라이브했다고 생각하자고. 일단 차 좀 빼러 가자.”
벚꽃이 피었지만, 아직 밤엔 꽤 쌀쌀했다. 추위를 이기고자 덕준이와 사이좋게 담배 한 대씩 나눠 피우며 주차타워로 몸을 옮겼다.
건물 뒤편에 자리한 주차타워. 늦은 시간이라 관리하는 사람도 안 보이고, 전등 3개도 하나만 켜져 있다.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덕준아. 주위 잘 살펴봐라. 갑자기 사람 튀어나올 것 같지 않냐?”
“아이고, 회장님요. 21세기입니다요. 오늘 뭐 최웅민 그놈이랑 트루 디텍티브라도 보고 왔냐? 트루 디텍티브하니까 또 생각나네. 그 다다리오 장난 아니었는데. 그치?”
덕준이가 다다리오를 거론하는 통에 집중이 흐트러질 뻔했다. 아오, 이 새끼.
“야야. 조용해 봐. 저기 누구 있는 것 같지 않냐?”
“지정수!”
어둡고 외진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 멀리서 두 놈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나를 확인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눈치 빠른 덕준이도 가만있지 않았다.
“집합! 이홍철! 박태영!”
나를 향해 다가오는 두 놈보다 덕준이의 외침에 반응한 우리 직원들이 훨씬 빨랐다. 이게 다 몇 명이냐.
그림자 두 개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부산히 움직였다. 쪽수에 장사 없다는 눈치라도 있는 놈들이군.
“부장님! 무슨 일입니까!”
“일단 저놈들 잡아! 아씨. 도망간다. 저 새끼들 잡아라!”
도망가는 속도는 두 놈이 직원들보다 더 빨랐다. 일지매 같은 놈들.
허겁지겁 담벼락을 넘어 도망가는 두 놈이 그리 허접해 보일 수가 없었다. 허접하다, 허접해. 최웅민 이 새끼, 그 와중에도 돈 아낀다고 아마추어를 고용했나 싶다.
“야야. 내비 둬. 괜히 힘 빼지 말자.”
“정수야. 저 새끼들이 너 배때지라도 찌르려고 한 거 아니냐? 아니, 최웅민 그 새끼 짓이야?”
정신 차린 덕준이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간담이 서늘했어야 맞지만, 가슴이 너무 태연하다. 나를 지켜 주는 문자님의 존재에, 이 늦은 밤에도 전화 한 통에 달려오는 우리 직원들이 있기 때문일까?
“어차피 물증도 없으니까 내비 두자고. 그놈들 곧 깜방 갈 거니까 명복이나 빌어 줘.”
“아따, 그 새끼들 씨발 새끼들이네. 애들 다 끌고 가서 한 따까리 해 줄까?”
“우리는 법 지키면서 살자고. 오늘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일당 20만 원씩! 근데 씨댕아, 너무 많이 데리고 온 거 아니냐?”
일당으로 내 돈 760만 원이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최웅민과 김익환은 검찰에 소환됐고, 그날 이후로 벚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