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5)
265 마무리
화려한 봄날을 장식했던 벚꽃이 봄비와 함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봄비와 함께 떠난 것은 벚꽃만이 아니었다.
대한전력으로부터 입찰 자격을 얻은 53개 업체 중 무려 22곳이 6개월짜리 입찰자격 정지처분을 받았다. 올해 입찰을 단순 계산하면 업체당 58억을 가져갈 것이 100억으로 늘어난다. 살아남은 자에게 개꿀을!
우리 조합도 3곳이 실사 불합격으로 정지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준비 철저히 하라고 일렀건만, 답 없는 회사는 아무리 밥을 떠먹여 줘도 답이 없다.
제대로 타격을 받은 곳은 중전기조합이다. 우리 조합이 받은 타격이 캔커피라면, 중전기조합이 받은 가격은 그야말로 루왁커피 수준이었다.
직접생산 위반으로 자격정지를 받은 12곳 모두 중전기조합 소속이었다. 대한전력으로부터 판로지원법 위반과 사기죄로 고발조치까지 당했다.
대한전력뿐 아니라 공공기관 자체에 납품을 못하게 됐으니, 얌전히 은행에 회사 돌려줄 일만 남았다. 자기 돈 들여 사업하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은행 자금회수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대한전력 실사도 맹위를 떨쳐 중전기조합에서는 3곳이 추가로 정지 처분을 받았다. 17곳이었던 중전기조합에서 살아남은 회사는 단 2곳뿐. 그냥 깡그리 망했다.
이 기쁜 사실에 축포라도 터진 듯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네, 상무님. 들어오세요.”
최윤근 상무가 따끈따끈한 소식들을 들고 찾아왔다. 잔챙이 섬멸전에서 정보사령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준 사람이다.
대한전력 사람들을 어찌나 만나고 다녔던지, 나주 일대에서 최 상무를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질 정도였다. 최윤근 분신술사 소문까지 퍼졌다.
“상무님 덕분에 올해 입찰이 아주 기대됩니다. 하하.”
“아이고, 별말씀을요. 제가 한 것이 뭐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입찰자격 정지 먹은 업체들이 바로 가처분소송 냈던데 별문제 없겠죠?”
최 상무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그럼 그렇지. 대한전력이 허술하게 했을 리가 없지.
“가처분소송은 별거 없습니다. 판사가 그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봅니다. 예전에도 그것 때문에 가처분이 인용되고 본안 소송에서도 패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춘배 부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회장님도 잘 아시죠?”
“절차적으로 문제될 일을 만들지 않은 분이죠.”
“맞습니다. 전기진흥회 결과 나오고 나서 대한전력도 자체적으로 따로 조사까지 했지요. 증거는 차고 넘치고, 절차는 아무 문제없고. 결과가 바뀔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본안소송도 6개월 이후에야 결론 나니까 의미 없습니다.”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중전기조합 박희태 상무 그놈이 독수리타법으로 ‘폐업 정리’를 검색하며 한 푼이라도 더 주겠다는 폐업처리업체 찾고 있는 모습 말이다.
“하하. 기분이 좋네요. 올해 입찰 때 물량 크게 늘어나니까 생산 차질 없도록 잘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잘 준비하고, 전력용 변압기 준비도 차질 없게 하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더 말씀드리면, 지금 생산설비 설계는 끝났고, 자재만 갖춰지는 대로 제작 들어갈 것입니다.”
최 상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 회사 미래 먹거리를 설명했다.
내가 룸빵에서 욕지거리 날리고 맥주병을 깨부수는 동안 직원들은 흔들림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월급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
“시험설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일단 독일이랑 중국 업체 컨텍해서 자료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금액이 크다 보니까 조만간에 직접 가 보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재가해 주시면 유민희 씨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물론 잘 아시겠지만, 싸다고 좋은 게 아니니 성능 우수한 것과 AS 확실한 걸로 선택해 주세요. 설비로 돈 아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전기짬밥 30년이 넘은 사람에게 조언하는 모양새가 살짝 민망하다. 어이없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최 상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명심하겠다는 말뿐이다.
저런 사람을 사자성어로 ‘좋은사람’이라고 한다.
기분 좋게 회사를 나와 광주로 달려갔다. 임필성 변호사 만나서 또 기분 좋은 소식 좀 들어 보자고.
“어서 와. 전화로 해도 될 걸 뭘 굳이 여기까지 왔어?”
“형님 보고 싶어서 왔지요. 싸구려 커피 한 잔 주시죠.”
“커피는 셀프!”
처음 봤을 때 이상한 캐릭터인 줄 알았던 사람이 제법 친해지니 웃으면서 농담도 던진다. 알고 보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딱히 틀리진 않네.
한 개에 85원쯤 하는 믹스커피 하나 야무지게 타고는 소파에 앉았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다.
“지 사장. 오늘 보니까 귀태가 나네? 몸치장에 돈 좀 썼나 봐?”
“하하.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사장인데 허접하게 하고 다니면 무시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주 살짝 힘 좀 줬습니다.”
“정당하게 벌어서 잘 쓰고 살면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지. 앞으로 자문료나 잘 챙겨 줘.”
여전히 후줄근한 임 변호사를 보고 있으니, 살짝 속이 상한다. 낼모레 오십 줄에 접어들 사람이 다림질 제대로 안 한 와이셔츠는 좀 그렇다.
“형님. 옷 한 벌 해 드릴까요? 이제 좀 말끔하게 하고 다니세요. 머리는 매일 감습니까?”
“아, 진짜. 당연히 매일 감지! 사람을 뭘로 보고. 겉이 번지르르해 봐야 뭐 해. 속이 꽉 차 있어야지. 대충 하고 다녀도 난 속이 꽉 찬 사람이야. 겉만 번지르르하면 사짜라고. 그래서 옷은 뭘로 해 주려고?”
“하하. 오늘 일정 없으면 백화점 한번 가시죠. 형님한테 옷 한 벌쯤이야 일도 아니고.”
“하하. 됐어.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 내가 말했지? 사람이 물질에 혹하다 보면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된단 말이야.”
오늘의 바른말 고운말이다. 수첩에 적어 놓자. 돈을 멀리할수록 더 많이 벌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으니, 잊지 말자고.
사담만으로 커피가 동이 나 버렸다. 맹물이나 마시면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나저나 형님, 수사는 어찌 돌아가고 있습니까?”
임 변호사가 거만한 포즈로 소파에 앉았다. 칭찬해 달라는 뜻일 테다.
“냄새가 나긴 했는데, 역시나 파헤치니까 사건이 너무 커져 버렸어. 최 프로가 요새 집에도 못 들어가서 죽겠다고 난리야. 지검에서도 힘 제대로 실어 주는 모양이야.”
“수사 담당한 검사가 죽겠다고 하면 피의자들은 진짜 죽어나겠군요.”
“관심이 잔챙이들에서 큰물로 넘어간 것이 좀 그렇긴 한데, 잔챙이도 확실하게 기소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이놈들 아주 돈 알뜰살뜰 빼돌리고 시원하게 상납했더라고.”
수사가 건설사 비자금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양상이 달라져 버렸다. 중소기업들의 흔한 비리수사에서 건설사들의 정관계 로비사건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변압기 회사들이 허위 거래로 길을 만들어 줬고, 건설사들은 그 길에서 야무지게 빼먹었고,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대충 거론되는 건설사들만 해도 도급순위 100위권 안에 드는 업체들이었다.
건설사들이 인허가 특혜를 노리고 여기저기 돈 뿌린 사실들이 드러난 데다, 연루된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에서 검찰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며 오히려 판을 키워 버리기까지 했다.
작은 하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형 애드벌룬으로 바뀐 셈이다. 작은 하마를 건드리면 좆 되는 거라고.
“근데 최 프로가 아쉬워하더라고.”
임 변호사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말을 던져 놓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 이 빤한 패턴! 좋은 소식을 전할 모양이로군.
“수사가 잘되고 있는데, 아쉬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게 맘먹고 파헤치면 아주 대형 스캔들이 되는 건데, 사건이 된다 싶으니까 서울남부지검에서 싹 가져가 버린 거야. 최 프로가 고작 잔챙이들만 상대하게 생겼으니 힘이 나겠냐 이 말이지.”
“서울남부지검이면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허허. 어디서 좀 들었나 봐? 거기가 정치인 비리나 경제범죄에 아주 강점이 있지. 그 말인즉, 이 사건을 제대로 조지겠다는 뜻이지. 우리야 좋긴 한데, 최 프로는 대어를 뺏겼으니 속상할 만하지.”
사건이 커졌다는 것은 클릭 좀 될 것이란 냄새를 맡은 언론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 사건을 보도하는 중앙언론들의 힘인지, 대검찰청이 나서서 건설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서울남부지검으로 내려 보냈다. 광주지검은 그저 중소기업들이 코 흘린 돈 빼 먹는 것이나 수사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 사건 출발이 중전기조합 업체들의 비리였으니까, 수사 잘해서 성과 내면 그 공을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래서 최 프로가 잔챙이들 확실하게 잡아넣겠다고 이 악물고 있더라고. 여기에다 사건 뺏긴 분풀이를 하겠다는 거야. 하하.”
대한민국 검사님께서 이 악물고 잡아넣겠다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최웅민을 필두로 한 쩌리들은 구치소 이튿날 눈을 떴을 때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의정부 306보충대 입소했을 때 그 기분 다시 한 번 느껴 봐. 변비도 걸려 보고.
“최 검사님이 우리가 준 자료에 대해서는 뭐라고 합니까?”
“아주 땡큐지. 수사 잘하라고 밥상 잘 차려 줬으니 말 다 했지. 내가 고발한 거랑 대한전력 고발까지 합쳐서 가고 있는데, 수사가 수월하니까 얼마나 좋아하겠어? 아주 신 났지.”
임 변호사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살짝 읽힌다. 현직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지 못한 아쉬움일까?
“형님이 현직에 계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많이 아쉽겠습니다?”
“팔자가 이런 걸 어째. 내가 현직에 있었으면 지 사장 너 만나 주기라도 했을 것 같어? 하하.”
“하하. 맞습니다. 제가 인복이 많아서 그런지, 이렇게 형님을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가끔은 궁금하긴 하다. 이 인복이 어디서 온 것인지 말이다. 이것도 문자님의 덕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은퇴하면 풍수 좋은 곳에 사당 차려 놓고 핸드폰에 꼬박꼬박 제사 지내야겠다.
먼 훗날 언젠가 핸드폰을 바꿔도 될 때가 찾아올 것이다. 나와 문자님의 이별…… 그때가 되면 기분 좋게 보내 줄 수 있겠지.
다시 정신 차리고 대화에 들어갔다. 물도 다 마셨고, 이젠 빈 종이컵만 물어뜯고 있다.
“근데 언론이 로비 쪽으로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쉽긴 합니다. 이 더러운 기업문화를 중소기업부터 차근차근 바꾸자는 것이 우리 목적 아니었습니까?”
“언론이야 신경 쓰지 마러. 그놈들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뭐. 최 프로 말이 근로기준법 위반같이 짜잘한 것까지 다 기소하겠다고 하니까 믿고 기다려야지. 이번에 호되게 당하면 좀 나아지지 않겠어?”
임 변호사는 내가 마실 것 다 마시고 종이컵 뜯어먹고 있는 걸 모르는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종이 맛도 나쁘지 않네 뭐.
“지 사장, 다른 업계에 아는 사람 없어?”
“다른 쪽도 뒤집어 보시게요?”
“이걸로 끝내면 안 되지. 차근차근 밟다가 재벌들도 제대로 밟아 줘야지 않겠어? 내가 간만에 일다운 일을 했는데, 이 기분 좀 이어 가자고.”
“하하. 레이더망에 걸리는 즉시 전보 치겠습니다. 일단 먹고살아야 사무실도 운영하고 헌터 일도 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회사 자문변호사 일에도 신경 써 주시죠.”
“아이, 그거야 당연히 성심성의껏 해 줘야지. 초 단위로 자문료 주겠다는 말 기억하고 있어. 잊지 말라고.”
종이컵이 습자지처럼 얇아질 정도가 돼서야 대화가 끝났다.
중전기조합의 몰락을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는 임 변호사. 문자님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나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신 문자님. 감사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서 동서남북 사방에 90도 인사를 올렸다. 문자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니 이렇게 하면 한 곳 정도는 들어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