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201
4.
며칠 동안 분주하던 대동보에 고요가 들어찼다.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적막함이 오히려 이상스럽다. 언제나 대동보 무사들의 매서운 눈빛과 기세로 가득 차 돌아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는 텅 비어 허무하기만 하다.
“정말로 갔네……”
빈집이 되어 버린 대동보의 한가운데서 두이는 복잡한 감회를 씹었다.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두렵고 마주치기 힘든 위세로 존재하던 대동보는 이제 사라졌다. 여기 있던 자들은 모두 항주로 갔다.
무림맹이다. 항주에 본거를 둔 그곳으로 이동했다. 대동보를 지키던 백사단주 위덕환이 남아 있던 무사들을 모두 이끌고 가 버렸다. 가기 전에 이곳을 연강막에게 양도했다. 이곳은 이제 대장장이들의 터가 됐다.
“대호검이 그렇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탄식인지 뭔지 모를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동보의 우두머리로서 온주를 쥐락펴락하던 자다. 그는 이제 없다. 허무한 이름만 남기고 갔다.
그가 온주를 떠나 항주에서 무용을 펼친 일들은 물거품이 됐다. 남궁세가과 혁리세가를 격파하고 항주무림맹을 만들고, 녹림과 해남파와 싸워 백혈맹과 혈천과의 전쟁까지…… 물론 그러한 결과를 만든 건 목계백이다.
“잘 있는 건지 모르겠구만……”
대동보의 전각 지붕들을 더듬던 두이의 눈길은 정문 넘어 남쪽 하늘을 더듬었다. 가을을 넘어가는 시간이 하늘가에 드리웠다. 온화하면서 찬바람을 머금은 하늘이다. 겨울 걱정이 없는 온주에서만 보는 풍경이다.
두이는 새삼 실소를 흘렸다.
“훗,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겠나.”
상념을 털어낸 두이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대장간의 화로불로 옮겨갔다. 뭐가 잘못됐는지 요새 불 색이 좋지 않다. 그걸 손봐야 한다.
* * *
불길이 무섭게 산을 태우고 있다. 무당의 역사와 뿌리는 이제 한 홉의 자취도 없다. 무림맹과 당문과의 격전으로 흉악한 모습으로 불탔던 무당산, 그곳을 이제는 주변 민가의 사람들이 다가 와 불을 지르고 있다.
부관승은 허망한고 쓸쓸한 시선으로 불타는 무당산을 보며 도호를 읊었다.
“원시천존.”
그 소리를 들었는가? 가까이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던 민가의 사람들이 경직한 얼굴로 물러났다.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다급히 멀어져 가는 행색은 두려움과 염오다. 혹시라도 흉사에 휘말릴까 저어하는 자기방어다.
‘누굴 탓하랴. 자업자득인 것을……’
참담한 심정으로 부관승을 불타는 무당산을 바라봤다. 민가의 사람들이 불 지른 산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우는 중이었다. 산의 동서남북, 모든 곳에서 지른 불이다. 산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재로 변하고 있다.
당문의 무형지독으로 오염된 산이다. 그 위험을 알기에 사람들이 불을 질렀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막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곳이 무당의 성지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무당은 이제 사라졌다. 이곳에 무당의 무엇이 남아 있다고 해도, 사람들의 저 마음을 이길 수는 없음이다.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뤄낸 저 행동이 무당의 얼굴이다. 진심으로 경외했다면 저럴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염오하고 경원했다는 거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한 무당을 저들은 지우는 거다. 그렇다. 이건 누가 만든 일이 아니다. 무당이 불러들이고 만든 일이다.
“원시천존……”
겨울을 알리는 바람 속으로 도호를 던진 부관승을 돌아섰다. 무당산을 등지고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사람들이 모여 바라보며 소근거렸다.
* * *
“아미타불……”
회한과 한탄이 담긴 불호를 흘려낸 현인은 소림사의 폐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무돈 것이 사라진 소림사를 보고 있노라니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복받쳤다. 이것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다. 그보다 더한 무엇이다.
“사형……”
자신을 부르는 사제들의 숨소리를 등 뒤로 느끼며 현인은 큰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숨에 가슴속에서 차오르던 것들을 담아 뱉어냈다. 이젠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소림사가 남긴 것은 이제 자신들뿐이다. 불구가 사대금강이다.
녹림신군 종패에게 받은 통한의 선물이다. 소림사의 상징과도 같은 사대금강이 그에게 당했다. 한 명은 손목이 잘려 없고 한 명은 다리가 잘려 없으며 한 명은 어깨가 갈라졌다. 현인 자신은 지독한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모두가 목숨을 부지했다. 의생각에 부상자가 넘쳐나 소림사가 아닌 개봉에서 치료 중이었기에 이렇게 살아있다. 아니 그보다는, 광일과 함께 전장에서 돌아서 버렸기 때문이다. 당문의 침공 당시 이곳에 있었다면 결국 죽고 말았으리라. 차라리 그랬다면 눈물은 없었을 텐데……
‘치욕이니 패배니 승리니…… 모두가 헛된 욕망이 만들어낸 망상인 것을……’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하늘로 현인은 시선을 올렸다. 높고 파란 하늘을 눈에 담고, 그 아래 선 자신을 담고, 세상을 담고 작게 중얼거렸다.
“선인선과요 악인악과라…… 비롯함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을……”
고개를 내린 현인은 죽어간 이들 모두를 생각했다. 자신들을 이어 사대금강이 됐던 현범사형제들과, 장문방장과 사숙들, 소림사의 형제들 모두를 떠올렸다. 그들의 기억과 자취를 지나가는 바람 속으로 털고 돌아섰다.
“가자.”
사대금강은 소림사를 등지고 바람 속으로 멀어져 갔다.
* * *
“공자, 기억하셔야 합니다.”
강렬한 시선으로 열한 살의 당일로를 응시하는 당욱현(堂旭現)은 뜨거운 심정을 담아 이어 말했다.
“본가가 어떻게 멸문지화를 당했는지, 우리의 원수가 누구인지, 가슴에 새기고 뼛속 깊이 각인하셔야 합니다. 장차 원한을 갚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셔야 합니다. 공자를 위해 본가의 남은 가솔들은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흰 수염이 가득한 가로 당욱현이 백부뻘이 된다는 걸 당일로는 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가문의 마지막 적통 후계자이고, 당욱현은 가문의 신하로서 말한다는 것도 알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당욱현은 수림 너머 붉은 절벽을 가리켰다.
“적벽입니다. 하북 땅에 있는 적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천 땅 안에 있는 적벽입니다. 본가의 적벽입니다.”
적벽을 바라보는 당일로의 눈을 응시하면 당욱현은 뜨거운 숨을 거듭 토했다.
“이곳을 아무도 모릅니다. 여길 들어올 사람도 없습니다. 독충과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사천원시림을 뚫고 들어올 자는 없습니다. 이 원시림은 길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이곳은 본가의 성지입니다. 가주께서도 이곳에서, 저 적벽 아래에서 힘을 키우셨습니다. 공자도 여기서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원수들을 깨부술 힘을 갖추시고 여기를 나가셔야 합니다.”
당욱현만큼이나 뜨거운 시선을 던지며 당일로는 결의를 뱉었다.
“그렇게 하고 말 것입니다.”
심중의 격정을 다스리기 힘든지 당욱현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 끝에 하얀 자기병을 내놓았다. 그걸 사발에 대고 내용물을 부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와 사발을 가득 채웠다. 섬뜩하게 찰랑이는 피는 한 가득이다.
미간을 좁히는 당일로에게 당욱현은 말했다.
“천강독인의 정화입니다. 방학천에게 주었던 것을 회수한 것입니다. 본래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그가 독정에서 흡수한 힘을 걸러낸 정화입니다. 방학천은 애초부터 그러한 용도로 쓸 자였습니다. 이젠 공자의 것입니다.”
당욱현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던 당일로는 천천히 눈길을 내리고 사발을 응시했다. 열한 살의 어린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이를 악물더니 손을 뻗었다. 사발을 들고 적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들이켰다.
당욱현은 당일로를 향해 부복하는 그때, 하늘은 파란빛으로 출렁거렸다.
* * *
“나, 난, 모르오! 아는 것이 없소!”
사색이 된 하오문주는 어떻게 해서든 목에 드리운 칼로부터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처지다. 조금이라도 허튼 움직임을 보였다간 목이 잘릴 터다. 이 칼에 갈라진 수하들의 시체가 사방에 가득하다.
표정없는 얼굴로 장도 끝을 살짝 움직인 목계백은 다시 물었다.
“기억해 내, 그가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못하면 너는 죽어.”
두려움에 파랗게 질린 얼굴의 하오문주는 거듭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주시오! 나는 그자가 내 밑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오! 그저 유능하고 탁월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들어 총애했을 뿐이오! 그가 뭔가를 했다면 하오문이 하는 모든 일이라고 할 수 있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내 밑에 스며들었는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아는 바가 없소!”
발악처럼 변명하는 하오문주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목계백은 알았다. 그래서 가슴이 무거웠다. 목응신라가 하오문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혈사를 일으키기 위한 사전 준비로 정보수집 등의 작업을 한 것인지, 그게 아니고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던 목계백은 다시 하오문주를 직시하며 말했다.
“운이 없구나.”
누가 운이 없다는 건지 모르지만, 하오문주에게 그 말은 사형선고였다.
“자, 잠깐!”
다급히 외쳐 목계백의 이후 행동을 제지한 하오문주는 마지막 몸부림처럼 자신이 아는 것들을 토해냈다. 쓸모없는 정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어, 언젠가 그와 술자리를 하며 들은 기억이 나오! 그의 고향이 유구국이라는 것이었소! 그래선지 유구국과 관련한 소문이나 정보에 관심을 보였소! 그러한 정보들을 수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소! 그자에게 특별했던 것은 그것뿐이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오직 그것뿐이외다!”
절박한 외침처럼 토해낸 하오문주의 말에서 목계백은 희미한 느낌을 받았다.
‘고향…… 돌아갈 준비를 했던 건가? 다 끝내고?’
알 수 없다. 이것이 짐작이듯 이 이상도 짐작에 불과하다.
느릿하게 칼을 거둔 목계백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누구나 돌아갈 곳을 찾는 모양이야……”
돌아서는 목계백을 하오문주는 경직한 모습으로 지켜봤다. 들어올 때 갈라버린 수하들의 시체가 쌓인 곳을 지나 멀어져 가는 자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후에야 무너지듯 주저앉아 딸꾹질했다.
* * *
망치질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 두이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잠시 고개를 들었다.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하얀 조각들이 휘날려 내리고 있었다.
“첫눈인가?”
반가운 마음으로 두이는 눈을 바라봤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평안을 찾은 미소, 대동보도 사라진 지금의 마음이 만드는 미소다.
“이런 날 술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눈을 보고 아쉬움을 달라며 두이는 그를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찾아왔던 젊은이다. 대동보를 항주로 몰고 갔던 사내다. 무림맹이란 이름으로 강호를 뒤집어엎은 남자다. 목계백이란 이름의 그가 보고프다.
아스라한 시선을 휘날리는 눈발 속으로 던지던 두이는 문득 미간을 좁혔다.
“음?”
눈 속에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말을 탄 사람 모습이다. 그런데 말의 체구가 작다. 저건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나귀나 노새라고 해야 맞을 크기다.
‘나귀?’
좁힌 미간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며 두이는 기억해 냈다. 그 사내의 나귀를.
‘설마?’
눈을 크게 뜬 두이의 시선 안으로 그가 다가왔다. 검은 무복의 그 모습 그대로 왔다. 검은 나귀는 뭐가 못마땅한지 푸릉거린다. 그게 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그가 왔기 때문이다. 술 한 잔 같이 하고팠던 그가.
“자네……!”
망치를 내리고 반가운 미소를 함박 얼굴에 피워내는 두이, 그를 향해 목계백은 인사했다.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목계백은 술잔 두 개와 술병 하나를 들고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두이는 반가운 웃음만 머금고 있다가 얼른 자리를 마련했다. 쇳덩이들을 치우고 망치를 치운 자리에 숨겨놨던 육포를 꺼내 놓았다. 그 위에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그저 미소만으로 이야기하며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웠다.
흐뭇한 미소로 서로 응시하며 술잔을 들려던 두 사람을 누군가 제지했다.
“나도 한잔 주겠나?”
두 사람이 술잔을 넘기려는 순간에 들려온 목소리, 그 주인공을 목계백은 알아봤다. 남악권사 무천룡이다. 그와 함께 무금이 눈 속에서 다가왔다.
대장간 앞으로 다가 와 말을 내린 무금이 환한 미소로 물었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나요?”
남악권사의 푸근한 미소를 뒤로 두고 선 무금을 응시하며 목계백은 대답했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았소.”
그게 뭘까 궁금 해하는 얼굴의 무금에게 목계백은 잔을 내밀었다.
“우리 한 잔 하기로 하지 않았소?”
목계백이 내민 잔을 받으며 무금은 활짝 웃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 중에서 가장 기쁜 마음으로.
“잔이 더 필요하겠구만!”
왜 그런지 흥분한 얼굴의 두이는 숨겨둔 잔을 더 꺼냈다. 그 잔을 남악권사에게 넘겨주다가, 서로 바라보는 목계백과 무금을 보고 헤벌쭉 웃었다.
“으허허허, 보기 좋구만 아주 좋아.”
남악권사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두이의 대장간에는 망치소리 대신 웃음이 퍼져 나왔다.
[완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