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200
3.
무림맹이 들썩이도록 연무장의 진각 소리가 우렁찼다. 비격의 구령에 맞춰 전진과 후퇴와 밀집과 분산을 연속하는 흑호단의 힘찬 기세다. 등패와 요도를 들고 가상의 적을 베고 후리고 박살 내는 총합훈련이다. 그 모습을 녹림대호과 장강수룡들이 눈에 힘을 주고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흑호단은 그 자리에 서서 쉬어라!”
강렬한 음성으로 지시를 외친 비격은 녹림대호들과 장강수룡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 봐서 알 것이다! 그동안 흑호단의 전력을 겪어서 모를 수 없을 테니 핵심만 말하겠다! 등패와 요도의 수련은 흑호단의 요체다! 거기에 명왕도법을 더한 수련으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았다 할 수 있다!”
긴장한 무사들을 향해 엄정한 눈빛을 던지며 비격은 거듭 외쳤다.
“명왕도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절기인지는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일심의 수련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피땀 흘려 훈련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전장에서의 죽음이다! 승리는 땀으로 만드는 거다!”
녹림대호와 장강수룡들에게 최고조의 긴장과 투지를 고취 시킨 비격은 바로 명했다.
“지금부터 명왕도법의 전수를 시작한다! 흑호단의 시범을 먼저 보아라!”
제일 먼저 명왕도법을 배웠고 가장 오랜 시간 수련해온 흑호단 대원들, 목계백과 생사를 함께하며 싸운 흑호단 특별대 이십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과 함께 조승과 하대구와 태웅이 섞여 명왕도법의 바람을 일으켰다.
무시무시한 칼바람을 일으키며 녹림대호들과 장강수룡들의 감탄을 만들어내는 자들, 목계백의 최측근 수하인 태웅 등과 흑호단 특별대의 시범을 종패는 감탄과 안타까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바로 옆에 선 함윤도 마찬가지다. 명왕도법과 흑호단엔 감탄하고 맹호의 부재엔 한숨 쉬었다.
“한가지 물어봐도 되나?”
나직한 한숨 뒤로 나온 함윤의 음성에 종패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매처학자, 너에게는 글선생이 되는 것 아니냐?”
질문의 요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런 사람이라면 각별한 심정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맹호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가도록 방관하는 심정이 복잡하지 않겠냐는 거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이건 그 이상의 일이다. 강호혈란을 조장한 배후인을 맹호가 찾아가는 거다. 그래서 기꺼이 알렸다.
종패는 다시 훈련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대답했다.
“매처학자, 그는 나와 사부님들에게 분명 은인이지만 글선생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가 바란 것이지. 사부님들도 그의 목숨을 살려주고 정강산에 기거하게 해주는 대신의 반대급부로서만 그를 대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지. 그와 칠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함윤은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매처학자, 그가 목응신라라는 인물이 맞는다면…… 목계백과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종패는 바위 같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강호의 사연이겠지.”
대답이 아니지만 대답이 되는 대답, 그 음성의 흩어짐 속에서 무림맹 무사들의 함성은 커져만 갔다.
* * *
띠풀로 이은 초가지붕은 모옥이 이렇다 하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겨울로 흘러가는 가을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처마의 끝은 쓸쓸함과 처량함을 자아냈다. 통나무 기둥에 나무로 덧댄 벽체는 갈 빛이 더께로 쌓였다.
모옥 앞에 선 목계백은 잠시 주변을 돌아봤다. 매화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잎 하나 없이 가지들만 우는 소릴 내는 정경이다. 그 뒤와 옆으로 정강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겨울을 예비하는 산은 사뭇 소슬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옥으로 다시 시선을 고정한 목계백은 입을 열었다.
“북천에서 왔다.”
대답 대신 스르르 문이 열렸다.
목계백은 가만히 서서 열린 문을 노려봤다. 형용치 못할 것들이 내부에서 들끓었다. 눈동자로 터져 나가는 가슴속의 분노와 원한의 열기가 몸을 태울 것만 같았다. 가혹했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큰 숨을 들이마신 목계백은 내부의 들끓음을 내리눌렀다. 그리곤 발을 내디뎠다.
모옥 안으로 발을 들인 목계백은 그를 봤다. 중년인이다. 나이가 마흔 중반은 됐을 듯한 사내다. 짙고 검은 눈썹이 인상적이고 우뚝한 콧대가 시원하고 눈빛이 심유한 자다. 서탁에 앉아 시선도 돌리지 않고 붓을 놀리고 있다. 화선지에 지나가는 붓끝은 정강산의 매화를 그리고 있다.
“매화를 다시 보기는 힘들겠어.”
혼잣말처럼 나지막한 읊조림을 흘려낸 중년 사내, 그의 앞으로 목계백은 다가갔다. 서탁을 마주한 자리에 놓인 통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중년 사내의 붓은 이제 매화를 그리고 있었다. 점 하나하나로 시작해서 만개한 매화꽃의 천지로 화선지는 변해갔다. 채색을 넣은 그 화려함에 목계백은 정신이 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장도를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어느새 매화꽃의 천지는 완성됐다. 붓을 내린 중년 사내는 엷은 미소를 지은 얼굴로 그림을 바라봤다. 그 미소와 표정엔 한점의 다른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만든 매화군락을 보는 만족과 행복뿐이었다.
목계백은 가슴 속에서 튀어나오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 그림처럼 천하를 그렸다고 생각하나?”
그림을 들여다보던 중년 사내는 시선을 들어 처음으로 목계백을 응시했다. 여전히 미소가 걸린 얼굴이다.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이 없다.
“세상에 누가 그런 걸 할 수 있겠나?”
모호한 듯하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은 중년 사내는 일어섰다. 아무 살기나 기세를 느낄 수 없는 그 움직임을 목계백은 앉아서 바라만 봤다. 중년 사내는 돌아서서 침상 옆의 작은 화덕에 올린 찻주전자를 잡았다.
“매화 차 한 잔 하지. 내가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것이야.”
매화 꽃잎이 들어간 찻종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낸 후 다시 찻물을 걸러 차 한잔을 완성한 중년 사내는 서탁으로 돌아와 목계백에게 내밀었다.
“이산에서 매화를 키우며 산 보람이 이 차를 마실 때라네.”
미소 지으며 차를 권하는 중년 사내의 표정과 음성과 눈빛은 형제나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도, 목계백이 방문한 목적과 사연도 다 잊게 만드는 미소와 살가움이었다.
찻잔을 잡은 목계백은 주저 없이 차를 마셨다.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고 음미했다. 매화향이 넘쳐나듯 입안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목으로 넘기자 매화꽃밭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참으로 황홀한 차맛이다.
“좋군.”
진심을 담은 목계백의 말, 짧은 한마디지만 더함도 덜함도 없는 답사, 그 말을 무엇보다 값진 찬사로 받아들인 중년 사내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매화를 키운 보람이 있어.”
찻잔을 내린 목계백은 중년 사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요지가 무엇인지 명확치 않은 물음이다. 직전에 던진 질문을 재차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한 말에 대한 물음인지 모를 물음이다. 그 두 가지 질문을 합한 것인지도, 이면의 참뜻에 대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중년 사내는 대답 없이 목계백의 시선만 받아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군.”
찻잔을 들어 다시 매화차를 한 모금 넘긴 목계백은 그 말을 따르듯 물었다.
“그대가 매처학자인가?”
“맞아.”
“목응신라인가?”
“맞아.”
찻잔을 다시 내린 목계백은 그대로 일어서서 장도를 뽑았다. 더는 대화가 필요치 않다는 행동, 찾아온 목적을 행하겠다는 의지는 너무 담담했다. 일체의 살기나 분노도 드러나지 않는 그 행동을 목응신라가 제지했다.
“듣고 싶지 않나?”
툭 튀어나온 목응신라의 음성을 목계백은 고개 저음으로 잘랐다.
“아니.”
장도를 뽑는 목계백을 목응신라는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봤다. 직전까지 보이던 담백한 미소는 사라졌고, 여유롭던 시선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이제까지 생각대로 잘 가꾸던 매화나무가 벼락 맞는 걸 본 눈이다.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건가? 내가 왜 북천을 궤멸시켰는지, 해남파를 왜 멸문케 했는지, 강호를 혈란에 빠뜨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아?”
도갑을 버린 목계백은 장도를 두 손으로 잡고 미간 앞에 세웠다.
“내가 그리던 그림을 완성 시킨 후에 다시 보겠다.”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목응신라는 처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는…… 내가 그리고 키운 게 아니로구나.”
장도에 마음을 담으며 목계백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거다.”
태양이 터지듯 기세가 터지는 목계백의 앞에서 목응신라는 바람처럼 물러났다. 모옥의 벽까지 물러난 그의 손에는 어느새 칼 한 자루가 잡혀 있었다. 그 칼이 뽑히며 내는 도명(刀鳴)은 다름 아닌 북천의 울음이었다.
목응신라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흥분으로 들뜬 미소였다.
“해보자, 너와 나, 누가 진정한 북천의 후계자인지.”
목계백은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용악대연무의 흐름을 따라서 용악폭전도의 포효를 분출해냈다. 칼이 내는 울음과 소리를 들으며 하나가 됐다.
목계백과 목응신라의 칼이 부딪쳤다. 그 순간 모옥은 폭발하듯 산산이 흩어졌다. 지붕을 얹었던 띠풀들은 휘말리며 정강산의 하늘을 수놓았고, 벽을 이뤘던 나무들을 수많은 비수가 되어 매화나무들을 휩쓸었다.
목계백과 목응신라, 두 사람의 그림자는 정강산을 휘저었다. 뒤흔들었다. 둘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곳은 폐허가 됐다. 거목과 수림이 갈라지고 암석과 절벽이 쪼개지고 무너졌다. 산은 비명을 지르고 피를 토했다.
공전절후의 대격전, 산을 뒤집어엎는 그 싸움은 밤낮이 지나도록 이어져갔다.
“쿠웩!”
치밀어 오른 울혈을 토악질 한 목계백은 휘청거리는 몸의 균형을 가까스로 잡았다. 그래도 다리에 힘이 풀어져 장도로 땅바닥을 찔러 바로 섰다.
“흐으……”
후들거리는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바로 섰다. 온몸이 갈라지고 피투성이지만, 목응신라의 칼이 왼쪽 아랫배를 관통해 등 뒤까지 날을 내민 상태지만, 주저앉지 않고 칼을 들었다.
“이제 알겠지……?”
목응신라에게 다가가며 목계백은 뒷말을 던졌다.
“……북천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질문을 받은 목응신라, 다가가는 목계백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암울함과 회한과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물들어 있었다. 전신이 피웅덩이에 빠진 자처럼 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물들었다. 정신을 난자됐다. 갈가리 찢기고 갈라져 바위에 기댄 육신처럼 마음과 영혼이 갈라졌다.
“너는…… 상관홍이…… 잘…… 키웠…… 아니, 그것도 아니야……”
힘겨운 숨을 몰아 내쉬며 말하려는 목응신라 앞에 목계백은 섰다.
“이건 당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야…… 내가 그린 그림이지.”
장도를 들어 올렸다. 뭐라고 더 말하려는 목응신라의 머리를 장도로 후려쳤다.
쩍 갈라진 목응신라의 머리가 어깨를 타고 양편으로 떨어졌다. 목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흔들렸다. 어깨 아래의 몸은 마지막 경련을 보였다.
최후의 경련이 잦아들고 미동을 멈춘 죽음, 그 앞에서 목계백은 칼을 뿌렸다.
도신에 맺힌 피를 털어낸 목계백은 도갑을 주워 갈무리했다.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겨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격전으로 무너진 산의 바위와 흙더미들이 냇물을 메웠다. 그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을 움키어 마셨다.
“하아.”
거푸 물을 마신 후 아랫배에 박힌 목응신라의 칼을 잡아 뽑았다. 하루 밤낮을 싸워서인지 검에 관통된 경험을 이미 해서인지 고통은 크지 않았다. 칼을 집어 던지고 옷을 찢어 상처를 동여맸다. 그 후에야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린 목계백은 목응신라의 죽음을 다시 바라봤다. 이젠 듣고 싶다고 해도 저자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젠 상관없다. 안다. 깨달았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목응신라의 계획이란 것도 결국은 강호의 숨결이다. 그 속에서 이뤄진 일이다. 그림은 강호가 그린 거다. 그 역시 강호가 놀린 붓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목계백은 그대로 누워 하늘을 봤다. 파랗게 드높은 하늘은 시린 빛을 머금었다. 머지않아 겨울을 대지로 내려보낼 전조다. 북풍이 몰아치면 눈보라도 칠 것이다. 차가운 그 계절은 엄혹하지만 봄을 위한 예비다.
‘세상일이 다 그러한 것인가……’
알 듯 모를 듯한 섭리의 끝자락을 붙잡고 목계백은 지난날을 더듬었다. 겪고 각인한 모든 날, 수많은 시간을 붙잡아 섭리의 자락에 넣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받고자 한 답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털어냈다. 마음속에 든 모든 것을 풀어헤쳤다. 다가온 바람에 날렸다.
그러나 한가지는 남았다.
‘이제 돌아가자.’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킨 목계백은 정강산을 내려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