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6)
046 따거
“사장님! 호외입니다!”
“또 뭔데 호들갑이십니까, 한덕준 과장님.”
덕준이가 호외라고 표현했으니, 심각하긴 한데 뭔가 웃픈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조합 놈들 다음 주 금요일에 대한전력 본사 앞에 와서 집회한대! 아주 좋은 구경거리 생기겠는데? 삭발식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네. 아주 그냥 다들 싹싹 밀어 버리는 거야!”
역시나 웃픈 일이다. 별 볼 일 없는 중전기조합이 결국 별 볼 일 없게 집회나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전력의 두터운 벽을 뚫을 수 없으니 저렇게라도 하겠다는 것인데, 나한테는 그저 최후의 발악으로 보일 뿐이다.
“구경 가고 싶긴 한데, 괜히 갔다가 구설수 오르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동네 마실 나가는 것 가지고 뭐랄 사람이 누가 있어! 뭐라고 지껄이는지 지켜나 보십시다.”
조합 놈들 어디까지 발악할 수 있나 해 보세요. 일본 놈들이 그러다 핵폭탄 두 방이나 맞았지? 난 굿 보면서 떡이나 먹을 랍니다.
만에 하나 조합의 발악이 발작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바삐 움직여야지.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 만남이 그 시작이다.
* * *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반가워요. 강호창이요.”
시원시원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딱 봐도 좋은 사람 같다. 달마부장하고 싱크로율이 너무 높은데?
관상은 과학이니, 성격은 얼굴에 드러나니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느니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일면 맞고 일면 틀린 얘기이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이 내 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저 인상은 사기꾼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좋은 인상이라고 생각할지 지켜보자. 항상 인사는 공손히.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곧 있으면 나주에서 자주 볼 이웃인데 말입니다.”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지 사장이 양보해 준 덕분에 1호 투자기업 타이틀을 땄는데, 내가 사례도 못하고 그냥 넘어갔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한참 젊어 보이는데 아들이라 생각하고 말 편하게 하겠네.”
“네, 편하게 말씀하시죠.”
64세이니 내가 아들뻘은 맞다. 인사하기 무섭게 말 놓겠다고 하니 성격이 화끈하긴 한 모양이다. 사실, 이 자리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언제 봤다고 말 놓냐면서 불쾌해 했을지도 모른다.
기대감이 있으니 성격이 화끈하니 하면서 포장해 주는 나.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잖아?
그나저나 가오가 안 산다고 1호 투자 기업 타이틀을 안성파워에게 양보하라고 했던 일. 고맙게도 먼저 언급해 준다. 당신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싸움은 걸지 않겠다는 뜻인가?
솔직히 호의랄 것도 없다. 아무 의미 없는 1호 투자기업 타이틀을 내줬지만, 덕분에 가장 먼저 공장을 세웠으니 엄청 남는 장사다.
“오늘은 내가 사례다 생각하고 살 테니까 맛있게 들자고. 그나저나 지 사장 말이야, 이렇게 바로 공장까지 지어 버리고 추진력이 대단해.”
“저야 뭐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몸이 가벼워서 그렇습니다. 나주 공장 하나 생각하고 창업한 것이라 속전속결로 밀어붙였죠. 사장님께서는 올해 입찰이 아쉽겠습니다.”
안성파워가 나처럼 속도를 냈다면, 우선 배정 20퍼센트를 나눠 먹을 상황이었다. 800억 원이 400억으로 줄어드는 것이지. 이건 정말 신이 보우하신 것이다. 아니지, 문자님이 보우하사!
강 사장도 400억 원이 아까운지 쩝쩝 소리를 냈다.
“허허. 많이 아쉽지. 나도 뭐 올해 완공해서 입찰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이래저래 걸리는 것이 많더라고. 사업이 뭐 내 뜻대로 되나. 하하. 올해는 우리 지 사장 독식하라고 내드려야지.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까 이미 사례를 했네? 이거 자네가 밥값 내야겠는데? 하하하.”
“내년에는 사이좋게 나누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허허. 가르침이랄 것이 있어? 사업이 뭐 별거야? 부지런히 돈 벌어서 직원들 월급 따박따박 챙겨 주고, 돈 남으면 공장 늘리고 그게 사업이지 뭐. 근데 자네, 20프로 받으면 물량 엄청날 텐데 그거 문제없이 처리하면 내가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야겠는데? 하하하.”
초반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하다. 당연히 보자마자 왜 찾아왔냐고 따지고 물을 리 없지만, 말에 담긴 뉘앙스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으니 얘기 잘 풀어 보라는 함의가 담긴 듯했다.
“저희는 월 5천 대 생산 체제를 구축해 놨으니 크게 염려는 안 합니다. 그렇게 해 놨는데 그만큼 가동할 수 있을지는 약간 걱정되긴 합니다.”
“조합에서 의견서 낸 것 때문에 그러지?”
역시 노련한 사업가답다. 적당히 알아들으라고 살짝만 흘렸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사장님께서야 대기업이니 그런가 보다 하시겠지만, 저 같은 신생 기업들은 조합이 저렇게 반발하면 고민이 많습니다.”
강 사장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구라를 칠 때는 눈을 봐서는 안 되지.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대기업이라니. 하하. 우리 지 사장 말을 이쁘게 하는 재주가 있구만. 큰돈 들여 공장 차렸는데 걱정이 많긴 하겠어.”
아쉽게도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이 정도 운을 띄웠으면 우리 공동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약간이라도 드러내야 하지 않나? 아무래도 먼저 욕망을 드러내야 할 것 같다.
“기존 업체 사장님들도 뭐 다급하시겠죠. 다음 주에는 여기까지 와서 집회도 연다고 하더라구요. 저번 신년회 때 5프로만 받고 나머지는 양보하라고 하던데, 저는 우선 배정 하나 믿고 100억 가까이 투자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네요.”
제발 받아라. 올해야 나만 해당하지만, 내년에는 당신도 해당되는 문제라고!
“이봐, 지 사장.”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지그시 부르는 것이 단박에 분위기가 환기됐다. 매출 천억이 넘는 회사의 사장이 갖는 카리스마는 보통이 아니구나.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자네 그걸 아니까 나 찾아온 것이 아닌가?”
이제야 손을 내밀다니! 쩐다. 성냥개비 하나 물고 있다가 백 달러 지폐에 불 붙여 담배 피우는 따거 같다! 따거라고 부르고 싶다!
“그깟 매출 백억도 안 되는 회사들이 나를 죽이겠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겠냐고. 내가 조합 놈들 괘씸해서 신년회도 안 갔다고. 아니, 내가 나주 내려가는 것 뻔히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해?”
이건 확실한 아군 선언이다. 역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내년에 나보다 더 많은 꿀을 팔 사람이니 가만있어 주면 당연히 안 되지!
“지 사장, 생각해 봐.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품목들이 전부 우선 배정을 받는데, 그깟 변압기 만드는 것들이 들고일어난다고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겠어? 그놈들이 그딴 식으로 하니까 조합이 그 모양 그 꼴이지!”
“저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다고 들었는데, 사장님께서도 걱정이 되시겠습니다.”
“하하. 걱정? 내가 그놈들 무서워할 사람으로 보여? 지 사장, 실망인데?”
이거 움찔하게 만드는구만. 이미 넘어왔다 싶어서 더 북돋아 주겠다고 한 말인데, 괜히 했나 싶네. 이거 살얼음판이네.
“사장님 명성을 익히 들었는데,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웃자고 하는 소리야. 조합에서 설친다는 얘기 듣고 내 안 그래도 자네랑 밥 한 끼 하려고 했어. 이러나저러나 나와 자네는 한배를 탄 것이 아닌가?”
“저는 이제 막 창업해서 이를 어째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이리 말씀해 주시니 든든합니다.”
솔직히 걱정 안 했다. 걱정은 김 상무가 했지!
“자네는 걱정할 것 없어. 그냥 올해 혁신산단 터 잘 닦으면서 부지런히 변압기 만들어 내라고. 자네 돈도 돈이지만, 내가 벌어야 할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난 내 돈을 지켜야지. 그렇지 않아? 하하하.”
이렇게 든든한 아군이 또 있단 말인가! 한 상 거하게 차려진 한정식 상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미 배가 너무 부르다.
“올해 열심히 해서 혁신산단 입주 기업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안 나오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 생각 잘했어. 오늘 같이 점심할 때 대한전력 상생발전본부장도 오라고 했는데, 내가 그 사람하고 형 동생 하는 사이야. 오늘 시간이 안 돼서 자리를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절절 빌더라니까. 하하. 조만간에 같이 식사나 하자고.”
상생발전본부장이라. 빨리 머리를 쥐어짜서 기억해 내야 한다. 상생발전본부가 대한전력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 관리하는 부서이긴 한데…… 그래, 자재처가 거기 소속이군! 이거 확실한 끈을 가지고 있었군.
“그나저나 대한전력 사장님이 연임 때문에 그냥 넘기지는 않을 거란 얘기도 있던데요.”
“우 사장? 하하. 내년에 고향 가서 총선 출마하겠다고 맘이 콩밭에 가 있는데 연임은 무슨 연임! 업계 떠도는 소문 따위에 현혹되지 말어. 이 바닥에 어찌나 호사가들이 많은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리해 대는지 원.”
역시 이 바닥 대기업은 정보가 차원이 다르다. 알음알음 흘러나오는 얘기를 주워듣는 것이 아니라 대한전력이라는 확실한 정보 공급책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과 최대한 빨리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겠다.
“제가 업력이 짧아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사장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지 사장, 내가 대한전력 애들하고 하루 이틀 밥 먹는 사이가 아니야. 사업이라는 것이 뭐 머리띠 둘러매고 으싸으싸하면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내가 조합 그놈들 쓴맛을 확실히 보여 줘야겠어.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제 돈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지켜야 사장님 돈도 지켜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자네 말이 맞네. 올해는 아깝지만 자네가 대신 내 돈 좀 잘 지켜 줘. 아예 말 나온 김에 본부장 동생하고 시간을 잡지? 지 사장은 언제가 괜찮아? 내일 괜찮나? 그래, 내일로 하지. 나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일인데. 내일 좋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원하다 못해 이가 시릴 정도이다. 엄청 화끈한 사람이 분명하다. 덕분에 혹시나 흔들릴 뻔한 800억 원이 다시 확고해지고, 대한전력 본부장과 끈까지 이어지게 생겼다. 정말 따거라고 부르고 싶다.
“인사차 전화드렸는데, 제가 사장님께 아주 큰 도움을 받고 갑니다.”
“인사차 전화한 게 아닌 것 다 아는데 그냥 터 놓고 얘기해. 하하. 젊은 사장이 열심히 살겠다고 이리 노력하는데, 그깟 도움이 뭐 어려운 것이라고……. 이건 자네가 맘에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의미야. 직원들 월급 밀리지 말고 사업 잘하라고.”
어깨를 두들기는데 이거 힘도 장사네. 사장 대 사장의 만남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도발을 막아 주겠다고 호탕하게 선언하는데 태도 따위가 무슨 대수랴!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한테 크게 사례하셨으니까 염치 불구하고 제가 내겠습니다.”
“허허. 어른이 사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마는 것이야. 이러는 것 아니야.”
어차피 강 사장이 살 것 알고 있었지만, 계산대 앞에서 나름 가오 좀 세우고 싶었다. 이런 시늉이라도 하면 이 사람 생각보다 더 괜찮다고 여기지 않을까?
“참 지 사장, 태양전기 있다가 독립했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내가 최홍집이 그 사람이면 지금도 이를 가네. 뭐 세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 있을 때 하고, 자네 참 고생이 많았을 것 같네.”
“알아주셔서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그 딸까지 2대에 걸쳐서…….”
“하하하. 그 딸애가 맹랑하다더니만 아비를 쏙 빼닮았나 보구만. 지 사장 부지런히 크는 것이 최가네한테 되갚는 것이네. 잘 알아 두게.”
“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태양전기와 악연이 확실하다니 이보다 더 큰 아군이 있을까 싶다.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도 태양전기라면 이를 갈더니만. 이러다 태양전기한테 이 가는 동맹이라도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강 사장 말대로 매출 백억짜리 회사가 도발해 봤자겠지만, 그래도 감정의 묵은 때는 벗기고 싶다. 때를 싹싹 밀어서 그 연놈 부부한테 먹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의 만남으로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