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65)
065 바다 건너 일
날파리 1차 방역은 완전히 마무리됐다.
결과를 놓고 만족하니, 아쉽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감히 죽이려 한 죄! 그것이 인정됐으면 된 것이다.
나머지는 대법원까지 가서 알아서 잘해 보시라. 난 회사 일에 매진할 테다. 물량 터져 당장 죽게 생겼는데, 괜히 한가로이 감정 허비할 상황이 아니다.
검사과로 달려갔다. 첫 납품분은 다 준비됐으니 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납품이다. 이어질 2차 납품분이 골치 아프긴 하지만, 첫 타자 내보내는 것에 집중할 시간이다.
“과장님! 자체 시험 바로 들어가죠?”
우리 꼴통, 이규철 과장. 이마에 땀 송골송골 맺힌 것은 또 처음 보네. 그동안 민수 변압기만 내 보느라 설렁설렁 팔자가 좋긴 했지. 이제 대한전력으로 뺑이 치고 나면 토토로 같던 몸매를 다시 보기 어려울지도.
“이렇게 많은 양 시험하기는 처음이네요. 부하 설비가 견딜지 걱정입니다.”
“불량 없이 3년만 버티면 시험 면제니까 딱 3년만 고생해 주세요.”
“매번 양이 이렇게 많을 텐데, 시험 설비 추가해야 할 것 같네요.”
“네, 안 그래도 이번 납품 끝나고 대금 들어오면 시험 설비부터 추가할 생각이었어요.”
변압기 자체 시험은 대한전력 시험관 입회 시험과 똑같이 진행한다. 생산동에서 완성품이 넘어오면 기본적인 특성 시험으로 불량을 걸러 내고, 부하를 걸어 2일차 시험을 준비한다.
5,200대가 한 번에 부하가 걸리니 높은 층고로 냉랭함이 가득했던 검사동이 3초 삼겹살이 가능한 참숯가마로 돌변했다. 70~80도의 열기를 5,200대가 동시에 품어 내니, 대구 사람도 감히 무릎을 꿇을 정도의 맹렬한 더위가 찾아왔다.
이거 시공간이 왜곡될 것 같네. 내 눈이 다 녹아 버릴 지경이야!
검사부서 인원을 5명으로 늘렸음에도 턱도 없이 부족해 사무실 직원이 총출동했다. 이 과장 입사 이후로 검사는 손을 뗄 거라고 대내외에 선언한 상무도 별수 없이 끌려와 찜통 속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와. 이거, 내가 변압기 밥 20년을 먹었는데 이런 장관은 처음이네. 이걸 다 언제 시험해?”
“상무님, 대단하십니다.”
“나? 뭐가 대단해?”
“열기 때문에 말도 못할 정도인데, 상무님은 아주 술술이잖아요.”
“말이라도 안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이거 한여름이었으면 진짜 죽어났겠네.”
온도 시험 품질 문제로 검사동에는 공조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으니, 부하 열기가 사람을 화장해 가루로 만들 정도로 엄청났다. 상상 이상이었다. 공조 장치를 설치했다면 막대한 전기 요금으로 대한전력에서 번 돈을 고대로 갖다 바칠 뻔했다.
“유도 시험 들어갑니다.”
2세트 시험 설비가 동시에 사이렌을 울리며 전기를 뱉어 내니 아주 난리통이 따로 없다. 이거 미러볼 조명만 달려 있다면 외로운 중년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네버랜드인 백악관나이트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2일차 시험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생산뿐만 아니라 시험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시험 설비도 대폭 늘려야 한다. 시험 설비는 난이도가 높아서 자체 제작을 꿈도 못 꾸고 있으니, 이거 돈 벌어서 설비 사는 데 다 들어가게 생겼네.
“자체 시험 다 끝났습니다. 이상 없으니까 바로 입회시험 신청할게요.”
시험이 끝났음에도 이 과장 눈은 걱정이 한 가득이다.
5,200대 변압기마다 에너지 등급 스티커도 붙여야지, 명판도 달아야지,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변압기 1대당 스티커 3장을 붙여야 하니, 5,200대면 스티커 붙이려 허리를 15,600번이나 숙여야 한다. 이거 뭐 스케일이 대륙급이네.
“입회 시험 전에 시험 설비 점검 확실하게 하시구요. 아무 문제없이 바로 납품 보내 버립시다.”
납품 전에 포장은 어쩌나. 전 직원이 달려들어야 하니 이 과장도 빠지진 못할 것이다.
“시험관도 이렇게 많은 양은 처음일 텐데,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아직 포장 걱정이 안 된다 이거지? 포장도 우릴 좋아하지 않을 텐데?
“첫 만남이라 아마 엄청 까칠하게 굴겠죠. 원래 시험관들 처음에 그러잖아요. 뭐 어쩔 수 있나요. 규정대로 해서 문제 될 것 없으면 그만이죠. 시험관 온다고 연락 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네. 그나저나 이거 포장도 큰일이네요.”
역시 이 과장! 알고 있었구나. 변압기 포장의 신인 내가 시간당 30대 포장하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겠어! 사람이 기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겠다고!
찜통 속에서 하루 종일 시험을 거들었더니 몸이 녹초가 되어 버렸다. 마당에 나가서 한참 농염해지는 가을바람을 쐬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려니 공장장이 다가왔다. 찜통 열기가 무서워 차마 검사동에 오지 못하고 시험 끝나기만을 기다린 눈치다.
“사장님, 자체 시험은 다 오케이지?”
“그럼요. 불량 한 대도 안 나왔어요.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양이 이만하면 한두 대는 불량 나올 법도 한데 말이죠.”
“자동권선기가 문제없이 권선 뽑아 주지, 부싱체결기가 부싱 척척 조여 주지, 불량 날 일이 뭐가 있겠어.”
“다음 납품 준비는 잘되고 있죠?”
“죽을 똥 싸면서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인원도 부족하고 설비도 부족해. 아니,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막상 물량 뽑아내려니 쉽지가 않네. 민수도 계속 들어오고. 이거 원, 민수는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그런 말씀 마세요. 상무님 서운해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 먹여 살린 게 상무님 덕분 아닙니까? 하하.”
“그나저나 필리핀 수출은 무슨 얘기인가?”
지난 월요일이었다.
안성파워의 본사 이전 나주 공장 착공식. 강호창 사장이 이 바닥 거물이다 보니, 착공식 자체도 화려 그 자체였다. 총 150억 원의 투자. 추가로 100억 원 투자도 대기하고 있다고 하니 강 사장이 확실한 승부수를 건 것이다.
내로라하는 VIP들이 총출동했으니, VIP들한테 눈도장 찍으러 온 사람까지 달려와서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화개장터가 돼 버렸다.
이 많은 인파 속에서 인사할 사람은 확실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 의자에 앉아서 행사 언제 시작하나 시계나 바라보고 있으면 보릿자루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것이다. 그냥 보릿자루도 아닌 꿔다 놓은 보릿자루.
사장은 너무 촐싹대지도 그렇다고 너무 거만하지도 않은 적당한 안면 움직임으로 분주히 돌아다니며 손 내밀어 인사하고 명함 돌리는 딜러 노릇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얼마나 인사를 했는지 손이 얼얼하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다 자산이야.
“아이쿠! 이게 누구신가요! 이 과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장님 문법에 따라 어색하게 하하호호 웃으며 인사 나누다 친분 있는 사람이, 그것도 우리 회사 산파 역할을 해 준 이 과장이 나타나니 그리 좋을 수 없더라.
“사장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가끔씩 사무실에 놀러 오지 그러셨어요?”
“하하. 죄송합니다. 요새 좀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요즘 괜찮으시죠?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순풍 탈 일만 남았겠네요.”
“아직 멀었습니다. 하하. 제가 내년쯤에 또 분양 받을 생각이니 좋은 땅 잘 숨겨 두세요.”
고작 3천 평짜리 공장 하나로 만족할 수 없지. 지금 공장 용적률 꽉 채우고도 부족해서 더 넓혀야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이거 복부인 되신 것 같습니다. 하하.”
“아! 과장님 죄송한데, 제가 급히 인사드릴 분이 있어서요. 조만간에 찾아뵐게요. 맛있는 것 먹자구요!”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이 눈앞에 지나갔다. 저 멀리 지나갔어도 그 특유의 상큼한 향수 냄새로 체취를 느꼈을 것이다. 이 과장과 인사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박 사장에게 달려갔다. 아니, 천천히 위엄 있게 걸어갔다.
“박 사장님. 나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저도 토지 분양 계약했어요. 내년 5월까지는 공장 세우려구요.”
“이거 축하를 드려야 하나, 경쟁자가 많아진 것을 우려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뭐예요. 하하.”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역시 사장님은 서론을 싫어하셔. 어차피 저희는 귀빈소개로도 안 올라가니까,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나 하시죠. 인사하실 분에게 인사는 다 하셨죠?”
조용한 데? 단둘이서? 라면이라도 끓일까? 자녀 계획은 1남 1녀가 낫지 않겠어?
정수야! 정수야! 정신 차리자. 내가 또 정신줄을 놨군, 이거.
금성전기 박 사장은 민수 시장에서 짱을 먹고 나서 수출에 눈을 돌렸다. 작년부터 준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출 물량을 늘리고 있다.
나도 처음에 놀랐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변압기가 일본을 뺀 전 세계에 다 팔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일본이야 지들끼리만 해 먹는 갈라파고스이니.
“필리핀 전력 회사를 확실하게 잡았어요. 가격도 괜찮고, 무엇보다 품질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구요.”
“축하드립니다. 박 사장님은 다른 분보다 늘 한 걸음 앞서시는 것 같네요.”
“여기까지 와서 입에 발린 말씀 하실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연간 계약을 맺었는데, 보니까 필리핀도 대한전력이랑 똑같아요. 물량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됩니까?”
“수출 안 해 본 회사에 덜컥 맡기기 그렇긴 한데, 제 사정도 급하네요. 뭐 사장님이면 충분히 믿을 만하니까요.”
조건을 알려 달라는데 자꾸 칭찬만 하네 이거. 칭찬은 좋긴 하다만.
“전화로 말씀하신 500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설계는 드릴 테니까 이달 말까지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자재 공급해서 제작비만 드릴까 했는데, 계산 복잡해지잖아요? 그냥 완제품 만들어 주세요. 저희 판매 단가의 80프로 드릴게요.”
“80프로라…….”
자재비가 많아 봐야 60퍼센트는 넘지 않을 테니 나쁜 조건은 아니다.
행여 손해를 보더라도 받는 것이 맞지. 우리도 수출 준비해야 하는데, 이렇게라도 경험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니 말이다. 대한전력 물량 터질 때라 걱정이긴 하지만, 이겨 내야 할 일이 분명하다.
“너무 박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운송비도 많이 빠져서 80프로면 제 나름으로 많이 챙겨 드리는 것이에요. AS도 저희가 책임지는 것으로 하구요.”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조건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맘에 들어서 표정 관리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 * *
그렇게 수출품 500대를 덜컥 받아 왔으니 공장장이 화들짝 놀란 것은 당연지사였다. 대한전력 다음 발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도리어 혹을 갖다 붙였으니 말이다.
“이른 감이 있지만, 저희도 수출 준비해야 하잖아요? 마침 기회가 됐으니 배운다 생각하고 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요.”
“사장님, 나야 공장장이니까 말 그대로 생산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니, 이런 말 하기 뭐한데…….”
언제나 내 말이라면 예스맨을 마다치 않던 공장장이 말끝을 흐리면서까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보니, 느낌이 살짝 좋지 않다. 엄청난 생산량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일까?
“그런 말씀 마세요. 말이 공장장이지, 우리 회사 사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큰돈 들여 투자까지 해 주셨는데 못할 얘기가 어디 있습니까?”
“뭐 일 많아지는 것은 좋지. 좋은데, 수출은 대한전력 변압기처럼 생각하면 안 돼. 대한전력이야 워낙 기술이 좋아서 변압기 만들기도 수월하지만, 필리핀 변압기는 만들기가 정말 지랄 같다고. 사장님도 잘 알 것 아냐?”
“저도 알죠.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시작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이래서 힘들긴 하겠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동남아가 대부분 그렇지만,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하다 보니 변압기가 아주 지랄 같다. 우리나라야 대한전력이 수십 년 공들여 220V로 승압을 끝내 놨으니, 22,900V를 받아서 230V로 낮춰 주면 그만이다. 그만큼 변압기 만들기가 쉽다.
그런데 필리핀은 어찌나 지랄 같은지, 어떤 동네는 13,200V가, 어떤 동네는 22,900V가 흐르고, 변압도 110V부터 440V까지 아주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수준이다. 대한전력 변압기가 순한 골드 리트리버라면, 필리핀 변압기는 악마도 포기해 버린 비글이다.
공장장이 왜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안 그래도 대한전력 물량 터져서 정신없는데, 만들기 힘든 필리핀 수출품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신경 쓸 일이 많은데 내가 일을 더 가져왔으니 고민이 많아졌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