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66)
066 60억 벌기
공장장이 수출 일감에 거부감을 표시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사장이랍시고 회사 중역들과 상의하지 않고 덜꺽 일거리를 받아 왔으니 말이다. 일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더 그럴 것이다.
문득 내가 그토록 욕하던 좆소기업 사장들 행태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고는 문제없이 처리하라고 윽박지르던 그 모습 말이다. 행여나 일이 잘못되면 직원들만 나무라던 그 모습.
그렇게 잠시 침묵과 함께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와! 더워 죽겠네. 어? 사장님하고 공장장님 여기 계시네요? 검사동 아주 찜통입니다요. 진짜 죽을 뻔했어요. 음…… 어? 뭐라고? 잘 안 들려! 들어오라고? 아이 참. 이거 쉬지도 못하게 하네.”
덕준이가 맑은 산소를 마시기 위해 찜통에서 뛰쳐나왔다. 눈치 빠른 덕준이답게 혼자 어색한 연기를 하며 다시 찜통 속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다시 들어가기 싫다는 내색이 역력했지만, 감히 낄 자리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깊은 생각에 빠진 공장장이 잠깐의 침묵을 끝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우리 사장님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건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드네. 행여나 만들어서 보냈다고 쳐. 문제라도 생기면 필리핀까지 날아가야 하는데,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잠깐의 침묵 동안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나야 늘 허물없이 대하라고 얘기하지만, 명색이 사장에게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으니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AS는 금성전기에서 맡는 것으로 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는 공장장님 믿는 만큼 우리 제품도 믿습니다. 공장장님. 제가 무리한 것은 맞는데요, 이번 일 잘 처리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신입들도 수출품 해 보면 실력 많이 늘어날 거구요.”
“음…….”
달리 방법이 없다. 공장장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어마어마한 물량을 뽑아내느라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을 풀어 주는 수밖에.
“내가 아무래도 생산 걱정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네. 나도 20년 넘게 이 일을 해 왔지만, 이렇게 많이 만들긴 처음이라 신경이 곤두섰네. 내가 주제넘었네.”
공장장이 먼저 손을 내민다. 행여 신경이 곤두서서 그랬을지라도 맞는 말, 충분히 할 말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반성하고 있는데, 이러면 내가 더 미안해지지 않겠습니까!
“주제넘기는요. 절대 아닙니다. 공장장님이면 당연히 하실 말씀 하신 것이 맞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힘들긴 해도 지금처럼 피치가 올라왔을 때 수출품도 해 봐야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장장님께 미리 말씀 안 드린 것은 제 잘못이죠.”
경험적으로도 요즘같이 바쁠 때가 학습 효과가 크다. 오히려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각오를 다지면서 시작하면 몸이 긴장해서인지 생산량이 떨어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그래도 공장장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 분명하다.
“아니네. 직접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도 하니 좋은 일임이 분명하지. 사장님 말도 맞고 말이야.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공장장님 고생하시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원이며 설비며 뭐 하나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가 그동안 태양전기 그놈들 일 때문에 충분히 신경을 못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으니까, 이번 고비만 잘 넘기자구요.”
사장도 똑같은 직원이다. 언제든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고개 수그리며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공장장이 수출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도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회사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회사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공장장을 위해서 고개 수그리는 것이 뭐 대수겠나.
“아니 뭐. 미안할 것까진 또 뭐 있나. 솔직히 나는 태양전기 생각이 살짝 났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늘 우리와 상의하던 사장님이 처음으로 혼자 결정하는 것을 보고 대견하다 싶으면서도 혹시나 초심을 잃지 않았나 싶어서 걱정이 됐네.”
이 귀신같은 공장장. 그토록 욕하던 사장 같던 모습은 아닌지 반성한 것을 어찌 알고 저렇게 꼭 집어서 얘기하나. 근데 태양전기 생각까지 했다는 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
“공장장님! 저 그럴 사람 아닌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초심을 잃었다 생각되시면 언제든 찾아와서 꾸짖어 주세요. 저는 충분히 들을 자세가 돼 있습니다. 저 믿으시잖아요?”
“당연히 믿지! 내가 우리 사장님 안 믿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하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 같어. 미안하네. 내가 평소 같으면 우리 사장님 잘했다고 하면서 으싸으싸했을 텐데 말이야.”
서로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상황. 자칫 감정이 격해질 수 있던 상황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무스하게 마무리됐다. 서로를 잘 알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일수록 더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고 고집 부려 봐야 갈등만 커지겠지. 이렇게 배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난 아직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니 많이 배워야 한다.
“공장장님, 저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 아시죠? 제가 공장장님 아드님 채용하겠다고 했잖아요?”
“응? 맞네, 맞아. 하하.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하네!”
“근데 아드님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하는 것 아닙니까?”
“말 나온 김에 나주 내려와서 살라고 할까?”
사춘기 소년 같은 공장장. 이래서 참 맘에 든다.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나저나 대한전력 첫 납품할 때 전 직원 다 투입돼서 포장해야 합니다. 아시죠? 공장장님이라고 해서 예외 없습니다. 하하.”
“이거 원. 살다 살다 변압기 포장까지 하게 생겼네.”
돈이 되지도 않는데 힘들기는 오지게 힘든 일이라 누구나 꺼리는 일이 포장이다. 포장 안 해 본 사장은 절대 모를 일이다. 이 바닥에서 포장해 본 사장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아마 시험 끝나면 바로 다음 날 성적서 나오니까 시험 끝나자마자 포장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변압기를 당일치기로 포장할 수 있을까? 이거 별 말 같지도 않은 것이 피곤하게 만드네.”
“제가 한참 폼 좋을 때 시간당 30대까지 해 봤거든요? 넉넉하게 시간당 20대 잡고 전 직원 다 감으면 4시간 정도면 되겠네요. 12시 전에는 끝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시험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12시도 장담을 못하겠다. 변압기 포장한다고 전 직원이 밤새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변압기 만든다고 밤새우면 또 모르겠는데, 포장 따위가 감히!
“사장님, 인간적으로 너무 늦게 끝나면 다음 날 휴식시간을 좀 주자고. 피로가 확실히 안 풀리면 일도 안 돼.”
“저야 당연히 그러고 싶죠. 못해도 오전 정도는 쉬게 할까 생각 중이었는데요. 근데 생산은 괜찮겠어요?”
“당연히 안 괜찮지. 그렇다고 눈 휑한 사람들 데려다가 일 시켜 봐야 안 시키느니 못해. 쉴 땐 확실하게 쉬게 해 줘야지.”
밤늦게까지 일하고 나서 아침부터 일하려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피곤한 몸으로 어설프게 변압기 만들어 봐야 일도 안 되고 사고만 날 뿐이다.
공장장이 하꼬방에서 막 굴러 가면서 일한 사람이지만, 현장 관리에서 관해서는 선진적이다. 그래서 좋다. 그냥 좋다.
“사장님, 그나저나 포장만 문제가 아니야. 실어 나르는 것도 일 같은데? 저 많은 변압기를 언제 호이스트로 떠서 트럭에 싣나? 트럭에 싣는 것만 며칠 걸리겠는데?”
5,200대면 실로 어마어마하다. 트럭 1대에 30대씩 실어도 총 트럭 170대가 들어와야 한다. 트럭 하나 가득 채우는 데 근 1시간은 걸리니 170시간이다. 검사동과 마당에서 트럭 4대씩 동시에 실을 수 있긴 하지만, 트럭 170대면 꼬박 이틀은 밤낮없이 싣기만 해야 한다.
지게차 3대를 총동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호이스트로는 변압기 2대를 고리로 걸어뜨지만, 지게차는 1대씩 슬링바로 걸어서 떠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포장이야 한다 치지만, 변압기 출하를 위해 트럭에 올리는 것도 꽤 문제네. 이거 참 또 걱정거리가 생겼군.
역사상 유례없이 한 방에 20퍼센트를 먹어 버린 우리에게 모든 변압기 업체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이 때문이겠지? 저 자식 어떻게 하는지 도끼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행여나 포장이나 하역 때문에 연체 먹었다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개망신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자꾸 밟힌다. 큰일뿐 아니라 사소한 일까지도 완벽하게 체크했어야 했다. 이건 명백한 내 잘못이다. 정신 차리자고 다짐하면서도 빼먹는 것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니 원. 사업 참 쉽지 않다.
“이거 물건 만드는 것도 일이고, 내보내는 것도 일이네요. 이 문제도 빨리 해결 짓도록 하겠습니다.”
돈이 원수다. 공장 지을 때 돈만 넉넉했다면 한 번에 트럭 10대씩은 하역할 수 있도록 했을 텐데. 부족한 돈에 나중에 하자고 미뤄 둔 것이 영 안타깝다.
문자님! 왜 2게임만 하라고 하셨습니까! 로또 1등 독식하게 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해 보니까 20억 원으로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겠습디다!
그래. 이건 문자님이 내게 주신 숙제일 것이다. 20억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이 정도로 걱정할 일이 아니지. 오기의 화신 지정수! 이 또한 이겨 내리라!
“그렇지 않습니까?”
“응? 뭐가? 또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너무 시간을 많이 보냈구만. 어서 가서 일해야지. 사장님, 아까 내가 한 말은 너무 담아 두지 말게.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미안하네.”
“아이고.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덕준이가 왜 고맙다는 소리 할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며 질색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뭐 굳이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족끼리는 그러는 것 아니지.
“사장님! 내일 오전 10시에 대한전력 시험관 온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이규철 과장이 우리 자식들 시집장가 보낼 상견례를 알려 왔다. 땀을 얼마나 흘렀는지 머리만 겨우 가릴 수 있는 우산 들고 고양이 버스 기다리는 토토로가 따로 없네.
“공장장님, 들으셨죠?”
“이거 첫 방문이니까 공장 청소라도 해야 하려나?”
“변압기 만들기 바쁜데 그런 것까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검사과 들러서 시험만 하고 갈 텐데요 뭐. 그냥 시험 잘 끝나라고 기도나 해 주세요.”
“자! 이제 일하러 가 봅시다!”
공장이 대한전력 시험관 맞이로 나름 분주했다.
검사과는 검사 사무실 미싱질로 시험관 맞이를 끝냈고, 황미연 대리는 나주 영산포 읍내에 출동했다. 편의점 하나 없는 허허벌판 사막이라 초콜릿에 그림 그려진 고급지기 이를 데 없는 과자라도 사 오려면 사람 사는 동네로 달려가야 했다.
“사장님은 사무실에 있다가 적당히 눈치껏 내려오세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너무 없어 보입니다.”
“위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적당할 때 문자 하나 보내 주세요.”
시험관 맞이도 은근한 신경전이 필요하다. 준비했지만 준비 안 한 것처럼 준비해야 한다. 첫 인상부터 밉보이거나 만만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준비. 잘못 걸리면 시험관이 교체되는 3개월 내내 시달릴 수 있으니 적당한 선에서 맞이해야 한다. 참 어려운 짓이지.
예전에야 시험관이 슈퍼갑인지라 시험관 오기 전부터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하듯 조아렸겠지만,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당당하되 너무 당당해 거만해 보이지 않을 정도면 된다.
띠링.
-시험관 들어왔습니다. 2분 후에 오세요.
긴장된다. 대한전력 발주가 시작됐으니 매달 두 번씩 겪을 일이다. 그래도 우리 회사 첫 시험이니만큼 여자 친구와 처음으로 인적 없는 곳으로 걸어가던 그 기분이다. 이거 뭔가 나오는 기분인데?
이 시험이 무사히 끝나서 60억 원이 통장에 팍 꽂혀야 한다. 이거 하나 믿고 있는 돈 없는 돈 쥐어짜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