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8)
008 꿀 나오는 사막
건물 입구에 나주혁신산단과 혁신산단 지원센터 두 개의 간판이 걸려 있다. 둘 다 같은 사무실인 것을 보니 그냥 들어가면 되겠군.
“저기요. 계십니까?”
라운드 티와 청바지 차림에 삼디다스 끌던 직원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서울 말투인 듯하지만 강한 억양에 누가 들어도 전라도 사람인 것을 알 것 같았다. 새초롬한 표정에 차가운 인상이지만, 여우과는 아닌 듯 보인다. 그저 처음 온 사람에게 경계심을 갖는 그 표정이랄까.
“어제 전화 통화했었는데요. 혁신산단에 공장을 신설하려고 하는데…….”
“아, 네! 저희 과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잠시만이요.”
어수선하다. 호기롭게 신장개업했는데 파리만 날리다, 손님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는 그런 느낌이랄까.
“안녕하십니까.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아직 명함이 없네요. 지정수입니다.”
“이제 창업하셨나 봅니다.”
“아니요. 아직 창업은 안 했고요. 여기 분양 받아서 하나 차릴 계획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일단 앉으시죠.”
반가움 가득했던 과장 눈빛이 살짝 차가워졌다.
적응해야 한다. 누가 봐도 20~30대로 보이는 놈이 공장 세우겠다고 찾아오면 기대하다가도 맥이 풀릴 것이다. 나이 들었어도 돈 없으면 사기꾼이고, 나이가 젊어도 돈 있으면 사업가 아닌가!
“일단 혁신산단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단지는 총 55만 평 규모로 조성되고 있고,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5년 내로 500개 기업이 자리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기업들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잘 오셨습니다.”
아직 공단 부지가 준공되지 않았다. 시작도 안 한 공단 땅을 분양 받아서 공장을 세우라? 이거 냄새가 난다. 설탕에 소다를 넣고 휘저어 끓인 달콤한 냄새란 말이지. 뜸 들일 필요가 없으니, 바로 직진하자.
“부지 분양은 어떻게 합니까?”
“더 설명 안 들으셔도 되겠습니까?”
“네. 여기에 공장 세우기로 결심했는데, 얘기 더 들어 봐야 시간 낭비죠.”
“젊은 사장님이 결단이 있으시네요. 분양가는 평당 62만 7000원인데요, 정부랑 지자체에서 주는 보조금이 있어서 평균적으로 평당 50만 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필지당 천 평이니까 5억 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필지당 5억이라…….
여러 생각과 고민 끝에 천 평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앞으로 회사가 엄청 커진다고 생각하면 3천 평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호기롭게 시작해야지! 문자님께서 20억 투자를 얘기했지만, 부족한 돈은 대출 받지 뭐. 이 정도 호연지기는 있어야지! 새로 태어난 나, 그 시작은 호연지기이다!
“3천 평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부지가 가능합니까?”
“어휴, 사장님 엄청 크게 하시려는 모양이네요. 부지는 남아돕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직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없어서 남는 것이 부지입니다.”
“예? 아까는 문의가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덕준이가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잘하고 있군.
“아! 문의는 많은데 아직 공단 조성이 안 끝났고, 인프라도 잘 갖춰진 것이 아니라서 투자를 확정한 기업은 없네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 설명회 들어가면 아마 부지가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아까 가 보니까 허허벌판이기에 과장님 입 터는 것이 장난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맞네요? 하하.”
바턴을 받은 덕준이 입 여는 것이 어째 불안불안하다. 바른말 고운말!
“하하. 저는 있는 그대로만 말씀드립니다.”
“저희가 여기에 공장 세우면 혜택이 좀 있습니까?”
“그럼요. 그게 아니면 누가 여기 오겠습니까? 우선 신생 중소기업이니까 공장 세울 때 최대 22퍼센트까지 나라에서 지원해 줍니다. 10억을 쓴다고 하면 2억 2천만 원을 국비로 쏴 준다 이 말이죠. 이것만으로도 엄청난데, 아까 시에서 분양가 지원해 준다고 했죠? 그것도 있고요. 세금 감면에 지자체 보증으로 대출도 알선해 줍니다.”
“좀 약한데요. 사장님 그렇지 않습니까?”
괜찮은 혜택이긴 한데, 어지간한 지방 산단들도 저 정도는 주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지방까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음……. 그게 다인가요?”
“아이고, 아니지요. 공장 세울 때 온갖 인허가 서류며 필증이며 해야 할 것 많지 않습니까? 저희가 다 해 드립니다. 계약금을 내시면 그때부터 저희가 원스톱으로 처리해 드립니다.”
“그건 좋네요. 그리고요?”
“혹시 하시려는 업종이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변압기 회사 차리려고 합니다.”
이 과장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래! 뭔가 더 있어야 한다고!
“그럼 잘됐네요. 대한전력이 산단 입주 기업들에게 납품 품목의 20프로를 우선 배정하기로 했습니다. 변압기 쪽으로 입주 의사를 밝힌 곳이 없으니까 서둘러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면 사장님 혼자서 20프로 먹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20퍼센트라! 대한전력에서 연간 구입하는 변압기가 4천억가량이니까 혼자 800억 원을 먹는 것이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한다. 800억에서 마진 20퍼센트만 잡아도 160억 원!
가능할까? 솔직히 이것 가지고 말이 많이 돌았다. 나주 입주 기업들에게 20퍼센트 배정한다는 것을 두고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기존 업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저도 그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진짜로 20프로 배정하는 것이 맞습니까?”
“물론이지요. 법에 규정돼 있으니까 이건 확정입니다. 그렇게 홍보하는데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더라고요.”
확정이란다! 우와! 허허벌판 사막이 꿀이 흐르는 옥토였다니! 왜 이리 달콤한 냄새가 나나 했더니, 꿀 냄새였군!
꿀 냄새를 맡았으니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다. 대한전력 입찰이 8월에 끝나니, 그 전까지는 모든 준비를 다 끝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빨리 올라가서 공장장과 상무에게 함께 나주로 내려오자고 설득하고, 창업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 * *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부지 계약을 하기로 약조하고 지원센터를 나왔다.
뜻대로만 된다면 창업과 동시에 꿀을 쪽쪽 빠는 것인데, 뜻대로 될지가 문제이다.
연매출 800억 원을 찍으려면 직원이 못해도 200명은 족히 넘어야 한다. 이쪽 업계가 자동화가 어려워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통에 직원 1인당 매출이 3억 넘기기가 어렵다. 좀 빡세게 해서 3억씩 찍는다고 해도 고용해야 할 직원이 너무 많아진다.
꿀이 매년 보장되는 것이 아니니, 그 많은 직원을 계속 거느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숙련공을 찾기도 어려우니, 신입으로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 먹지도 못할 떡을 급하게 먹다가 체해서 응급실 실려 갈 판이다.
그것보다 당장 공장 세우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3천 평을 꽉 채워도 모자랄 상황이니, 공장 건설비만 45억 원은 들어갈 것이다. 운영비, 자재비 등도 꽤 들어가겠지.
자본금 20억 원으로는 어림도 없겠구나. 어림도 없는 일을 해결하는 것도 큰 재미가 아니겠나.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야, 아까 들어 보니까 어떻든?”
“왜 나주곰탕 나주곰탕 하는지 알겠다야. 국물이 쥑이네 진짜.”
“어지간히 처먹고 얘기 좀 해 봐.”
“첨에 그 여직원? 키가 좀 작긴 해도 이쁘장하던데?”
“아오!”
“이거 국물이 묘한 매력이 있네. 난 첨에 평양냉면 먹을 때 이걸 이 돈 내고 왜 먹나 싶었거든? 근데 그 슴슴한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잖아. 이게 딱 그거네. 이건 진짜 간 안 하고 그냥 먹어야 해.”
“알았다니까. 니가 봤을 땐 어떨 것 같어?”
“하여간 밥 먹는데 진짜. 급할수록 여유를 가져야지! 사업한다는 놈이 여유를 가지고 멀리 봐야 할 것 아니냐! 자, 봐 봐. 너도 대충 예산을 짜 봤을 것 아녀? 3천 평이면 땅값이 15억 원이고. 거기다 공장 세우려면 못해도 10억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데?”
“평당 150만 원 잡고 45억이니까 땅값까지 총 60억 들어가겠네. 설비 사고 운영비까지 생각하면 70억 정도는 있어야 하지.”
이래서 문자가 나주로 가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주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이제는 될 것 같다. 내가 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어?
“콜록콜록. 뭐? 70억? 너 돈이 그렇게 많아?”
“쩐주가 일단 20억 투자하기로 했는데, 나머지는 대출 받아서 해결해야지. 사업을 자기 돈으로만 하는 사람은 없잖아?”
“와! 이거 생각보다 간 용량이 크신 분이네.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것 아니라지만, 누가 너한테 50억을 빌려 줘? 뭐 매출이 있어, 자산이 있어?”
“야! 그 정도 배짱도 없이 무슨 사업이냐! 걱정 마! 내가 그 정도는 맨땅을 파서라도 구해 온다!”
“지정수 씨, 약 빠셨습니까? 이거 내가 알던 놈이 아닌데? 너 인마, 왜 그래?”
“아까 사막 보고 나니까 호연지기가 길러졌어. 씨발, 인생 뭐 있냐? 이왕 하는 것 화끈하게 해서 화끈하게 벌면 되지!”
새롭게 태어나기로 다짐했으면 다짐대로 하는 것이 정답이지. 온갖 수모 당하면서도 노예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 과장은 죽었다. 이제 지정수 사장만 있을 뿐이다!
내가 회사 화끈하게 키워 보겠다. 민수로 유지하다가 관수로 빵 터트리고 업종 확대해 가면서 뚜벅뚜벅 가는 것이지.
“약 빤 것이 분명한데? 대충 계산 좀 해 보자. 은행에서 일반적으로 자산을 50프로만 인정해 준단 말이지. 주택 담보는 높게 잡아 주는데, 공장은 안 그래. 그래서 자산 20억이 다니까 10억 대출밖에 안 돼. 총 30억. 신보니 정책 자금 넉넉하게 10억 잡자. 솔직히 이것도 많다. 그래 봐야 40억이잖아!”
“뭐 솔직히 빚부터 질 생각하니까 겁이 나긴 하는데, 잘될 것이야. 걱정 말어.”
“야야. 드라마 보면 양복쟁이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빨간 딱지 붙이잖아? 자기 돈으로 하면 그걸 왜 붙여. 다 은행 돈 빌려서 하니까 딱지 붙는 거지. 사업이 원래 남의 돈으로 하는 거지만, 망하면 내리 3대가 망하는 거야! 잘 생각하라고.”
덕준이가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인데 나라고 걱정되지 않겠냐. 하늘 무너진다고 집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가 보지 않은 길이면 개척하면서 가면 된다.
“지금까지는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이것저것 잘 알아보고 잘 시켜야지. 한덕준 씨 어때? 내가 일 잘 시켜 줄게.”
“니가 그렇게 자신 있다면 질러야겠지만, 잘 생각하라고. 니가 망하지 내가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친구로서 어찌 걱정을 안 하겠냐.”
“내가 망하면 너도 망하는 거야. 사장과 직원은 일심동체 아니겠냐?”
“뭐야? 난 동의도 안 했는데, 이미 망하면 같이 망하는 경제 공동체가 돼 버린 거야?”
덕준이 영입도 이렇게 마무리됐군. 이제 직원 3명. 도원결의한 삼 형제가 손건을 얻은 격이랄까? 손건이 좀 그러면 미축? 아님 간옹?
“그래, 뭐 사장님 해라. 근데 사업자등록은 했냐? 법인으로 하는 것 맞지?”
“이제 해야지. 제조업 법인 세우려면 공장이 있어야 하니까 급하게 여기 왔잖아.”
“그럼 망설일 필요 있냐? 당장 계약부터 해. 그거 가지고 법인 세우고 세무서에 신고해야지. 근데 법인 대표가 너냐?”
“어.”
“쩐주는?”
“어? 그냥 돈만 대 주는 거지.”
“미친놈아. 그게 말이 되냐? 주식회산데 주식 다 먹고 간다고?”
이래서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시작했다 하면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다 스텝이 꼬이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지. 예리하게 파고드는 덕준이의 공격을 어찌 막을 것인가? 이럴 때는 대충 얼버무리고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한다!
“정체를 안 드러내려고 그러는 거지. 암튼 그런 게 있어 인마. 늦었는데 오늘 여기서 묵고 낼 올라갈까? 어디 맛있는 데 가서 술이나 한잔 할까?”
“술? 좋지. 어디 아는 데 있어? 이놈 이거 혁신산단인가 거기 사무실은 몰라도 이 동네 맛집은 다 조사해 봤나 보네. 역시 내 친구다워.”
거짓말의 대가로 난 비싼 술값을 치렀다. 사실대로 얘기했을 때 뜯길 것보다 훨씬 싸게 먹혔다고 자위하자.
덕준의 말대로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었다. 지르기로 했으면 빨리 지르고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야지. 이것저것 행정 처리에 공장 짓고, 설비 사고 제품 인증까지 생각하면 내년 입찰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자잘한 고민에 시간 뺏길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