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
007 희망의 땅 나주
내가 덕준이를 선택한 것은 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놈의 잡지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투를 틀고 난 이후 덕준의 삶은 온갖 시험으로 점철돼 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가, 법조인은 자신과 맞지 않다면서 회계사를 꿈꾸며 회계학 원론을 팠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서 않아 회계사보다 세무사를 더 쳐준다는 말에 세무사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저 혼자 레벨 업에 몰두하고 있다.
중간 중간 이런저런 온갖 자격증 공부도 있었지만, 일일이 나열하기 귀찮다. 우리나라 수험서 출판업계는 덕준이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난 덕준이의 얇지만 드넓은 지식이 필요했다. 중소기업을 다녀 보니 확실히 깨달았다. 중소기업은 정보가 취약했다. 정보라고는 호사꾼 몇몇이 전해 주는 소문이 전부다. 직원들은 법률이니 정책이니 관심이 없다. 주먹구구식으로 회사가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다.
돈 좀 있는 회사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퇴직자를 비싼 급여 주며 데려온다. 차려진 밥상을 찾아서 밥까지 떠먹여 달라는 의도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어제 김 이사랑 술 한잔 했는데 그쪽이 괜찮을 거라고 하던데?’ 정도이다. 그마저도 1~2년이면 연줄도 끝난다.
정보라는 것이 강남에서 온 제비가 박씨를 덥석 물어다 주듯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책과 사회 변화상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찾아내는 능력은 덕준같이 잡지식이 풍부한 자들의 전매특허이다. 온갖 지식이 융합되면서 빤한 보도 자료에서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불쑥불쑥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이었고 현실은 냉혹했다고 한다면, 현장 내려 보내서 조립이나 시키지 뭐. 잡일할 사람도 필요하니까. 친구 좋다는 것이 뭐겠어.
“어이~ 사장 나으리!”
약속 시간보다 ‘겨우’ 20분밖에 안 늦은 덕준이 나를 보자마자 공손히 인사하며 안부를 전한다. 덕분에 나주 가는 차편은 날렸다. 역시 친구가 맞다. 개…….
“니놈 덕에 나주 가는 버스 날렸으니까 편하게 우등 타고 광주로 가자.”
“휴게소에서 얼마 안 쉴 텐데 밥은 어떻게 하냐?”
“호두과자 처먹으면서 조용히 가자.”
“호두과자 좋네. 콜. 그런데 무슨 공장을 차린다고 그 난리야?”
“내가 뭐 뻔하지. 변압기 공장 하나 세울라고.”
“변압기? 그 도란스 말하는 거냐?”
“도란스. 아휴 구려.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냐. 내가 하려는 거는 전봇대 올라가는 거 있잖아? 그런 거야.”
예전에는 집마다 도란스가 필수로 있었다. 대한전력 승압 공사가 30년 넘는 대공사이다 보니, 110V 제품과 220V 제품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변압기가 트랜스포머이니, 일본식 발음으로 도란스라고 했었지. 이걸 알고 있다니, 덕준이 너도 이제 아재가 맞구나.
“가만있어 보자. 나주라……. 나주에 대한전력 내려갔잖아? 그래서 나주에 공장 차린다는 거야? 대한전력에서 무슨 혜택이라도 주는 건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잡지식 융합 결과물인 덕준의 뇌가 나주와 대한전력의 상관성을 추측해 냈다.
“맞아. 이런저런 지원책이 많다고 하더라고. 창업하는 사람에게 지원책이 많은 건 좋지 않겠어?”
“지원이라고 해 봐야 분양가 좀 할인해 주고, 세금 감면해 주고 그 정도 아니냐?”
“그 정도라니. 그게 얼마나 큰 혜택인데.”
“그나저나 그 쩐주라는 사람은 누군데? 너 괜히 사람 잘못 건드렸다가 팬티바람으로 산속에 묻히는 것 아니냐?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잡지식 융합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어휴 미친놈. 아는 거래처 사장인데 돈이 좀 있어. 변압기 회사 하나 차리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바람 좀 불어넣었지.”
나름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구라를 치기 시작했다. 믿거나 말거나. 그냥 강제로 믿게 만들어야지 뭐. 문자 와서 로또 번호 알려 줬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 받는다. 이건 나와 문자만의 비밀.
“아니, 그 아줌마가 널 뭘 믿고 창업 자금을 던져 주냐고? 내가 니 말이라면 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겠지만, 이건 못 믿겠다야.”
“아줌마 아녀. 아저씨야.”
“진짜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야 모르지 뭐.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지 말자. 차 들어올 시간 됐다.
사람 많은 터미널에서 이런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끄럽다.
“그냥 내가 로또 맞고 20억쯤 생겨서 그 돈으로 공장 차리는 걸로 하자.”
“푸하하. 그게 훨씬 그럴싸하다야. 근데 이 자식은 로또가 됐는데도 모른 척 쌩깔라고 했단 말이지?”
“엔간히 좀 해! 차 왔다. 빨리 타 미친놈아!”
희망의 땅이 될지 모르는 나주 가는 길은 험난했다.
다행히 덕준은 버스에서 조용히 잠만 잤다. 광주 내려가는 3시간을 부끄럽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야야. 일어나. 다 왔어.”
“으아아아아. 우등버스 좋네.”
앞니에 호두과자 팥 알갱이 하나가 붙어 있는 채로 일어난 덕준이 괴성을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다른 승객들이 다 내린 상태라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와, 여기가 동양 최대 헤어숍인 유숙헤어구나!”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
“광주 버스터미널이 유스퀘어라자나. 유스퀘어 크크.”
“하루 죙일 컴퓨터만 붙잡고 사니까 이리 구린 개그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구나. 너 그러다 아재 소리 듣는다고. 이제 바람 좀 쐬면서 사람답게 살자. 일단 어떻게 가는지 모르니까 택시 잡자.”
“밥은!”
“호두과자로 안 되겠냐?”
밥상이 기대는 됐다. 전라도에서 백반을 시키면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져 나온다는 도시 괴담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궁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이 먼저지.
“광주까지 왔는데 그깟 휴게소 호두과자로 때운다고? 그럼 안 되지. 예향의 도시 광주에 왔는데 조촐하게 한정식 한 상 받아야지!”
“예향의 도시는 전주 아니냐?”
“그런가? 광주도 예향의 도시일 텐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시간 좀 애매하니까 일단 나주로 먼저 가자. 공무원들 땡 하면 퇴근이잖아. 그 전에 가서 뭐라도 해야지.”
“오케바리. 그럼 나주 가서 나주곰탕을 먹어야겠군.”
살짝 고민이 됐다. 회사 세우고 나서도 이 지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그러지 않을 것을 아니까 덕준이를 영입 리스트에 올린 것이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지 않나?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덕준이 덕분에 머리 회전도 빨라지고 온갖 연상 결과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그것을 기대한 것이 맞지만, 저놈이 회사라는 조직 내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선택이니 믿자. 내가 또 사람만큼은 허투로 보지 않지.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나주 혁신산단 아세요? 거기에 지원센터라고 있는데, 거기 가려고요.”
“혁신산단이라? 거기 암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디. 뭐 사장님이 가자고 하신디 가야지라.”
“아무것도 없다고요? 혁신산단 지원센터 모르세요?”
“광주 택시 붙잡고 나주 어디 아냐고 하믄 내가 어찌 안다요. 저번에 한 번 갔을 때 뭐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가 보십시다.”
택시 기사가 길을 모른다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않는 것이 호구 잡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아직 공단 조성이 끝나지 않았다고 한 것 같던데……. 로또 맞고 나서 너무 들떠 있었나 싶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될 때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고!
“근디 사장님들은 나주는 뭐 하러 가신다요?”
“거기다 공장 하나 세울라고요.”
“아따 공장요? 젊은 사장님이 돈 좀 벌었는갑네요잉.”
로또 1등 두 번이나 맞았습니다! 입이 간질간질하네.
“뭐 자기 돈으로 공장 세우는 사람 있어요? 다 은행 빚이죠.”
“그래도 한참 젊어 보이는디 그것이 쉽지 않지라. 대단하시네요.”
“네, 뭐.”
택시 기사가 제발 눈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말을 더 이어 가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눈치채고 운전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다. 여기 와서까지 자기 아들이 삼광전자에 다니고, 자기는 그냥 운동 삼아 운전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근황 토크 하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이다. 잘 모르니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모르는 사람한테 주절주절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한국인의 정’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오지랖이 더없이 불편하다. 그래서 지금껏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택시를 멀리해 왔다.
물론!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나마 택시 기사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입과 귀가 아프지 않을 수 있었다.
“인자 나주로 들어왔습니다. 왼쪽에 쩌그 보이지라? 거기가 대한전력 본사요.”
“아, 그래요? 허허벌판에 저 빌딩이랑 아파트 몇 개 달랑 있네요?”
“노무현 때 공기업 내려 보내서 지방 발전시킨다고 했잖수? 근디 이맹박이가 그걸 그렇게 막았당께요. 원래는 저기에 아파트도 막 생기고 그래야 한디 계속 막아븐께 이 모냥 이 꼴이제라.”
택시 기사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가 제 기능을 하려면 적어도 3~4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공장을 세울 만한 곳은 아닌데, 여기에 어떻게 공장을 세우라는 소리일까?
“사장님이 얘기한 혁신산단은 여기가 아니고 한 10분 더 가야 나옵니다. 여기는 혁신도시라 인자 아파트 쭈욱 들어올 곳이지라.”
그렇게 10분을 더 가니 혁신도시보다 더 허허벌판인 곳이 나타났다. 사막인가? 사막 맞는데?
“쩌그 건물 하나 있는디 거긴가 보네요잉. 가 볼까요오오오.”
노인들 주특기가 나왔다. 알 수 없는 멜로디에 말을 붙여 노래도 아닌 창가도 아닌 이상한 소리 말이다. 참 노래 좋아하는 민족이다.
“자, 사장님. 다 왔습니다. 47,000원 나왔는데, 그냥 5만 원만 주시요.”
미터기 말 달리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더니, 많이도 나왔다. 그런데 저 기사의 말은 말이야 당나귀야?
“예? 47,000원 나왔는데 왜 5만 원이에요?”
“아따 젊은 사장님이 센스가 없네. 시외로 나왔응께 당연히 돈 더 받아야 하고, 갈 때는 빈차로 가야 하잖소. 그래도 젊은 사장님이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고생하는 거 봐서 3천 원밖에 안 붙였구만.”
“아, 네……. 여기 카드요.”
“현금은 없으신갑네? 현금이 좋은디.”
신사임당 하나 꺼내 주고서야 택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고 잠이 안 깬다야. 원래 같으면 지금까지도 자고 있을 시간인데.”
“덕준아, 일단 담배 한 대씩 피우고 정신 좀 차리자. 응?”
임시로 지은 티가 확 나는 가건물 앞에서 담배 한 대 맛깔나게 피웠다.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면서 폐 건강이 더 악화되는 기분이 짜릿했다.
“덕준아, 저기 들어가서 괜히 뻘소리 하지 말고 얘기 잘 들자. 알았지?”
“야, 택시에서도 호구 잡혔는데, 여기서도 호구 잡히면 안 되지. 기대하고 있어라. 개소리한다 싶으면 내가 확실하게 조져 줄 테니까.”
“그 말이 어째 더 불안하다, 불안해.”
가건물 입구로 다가갔다. 망했다.
“이거 뭐냐? 문 잠겨 있자나?”
“분양 문의는 본점으로 오라네?”
“이 새끼야. 오기 전에 전화해서 약속을 잡았어야 할 거 아녀!”
“그러게. 내가 무슨 정신이었나 몰라.”
정신 차리자! 이젠 한 달만 어찌 버티면 월급 나오는 월급쟁이 아니다.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어리바리하면 몇십 억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나를 믿고 따라온 직원들에게도 쪽박을 안겨 주는 것이다.
지정수! 새로 태어나자!
“시간 없어, 인마. 검색해 보니까 본점은 나주시청 건너편이구만. 빨리 가자. 배도 고프다고.”
흙먼지만 날리는 허허벌판. 당연히 택시가 있을 리 없다. 평소에 택시를 멀리했으니 콜택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초장부터 이러니,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빠방. 빵빵.
구세주 등장!
“사장님 일 보셨어? 내가 생각해 봉께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 거 같더라니까.”
욕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구세주가 분명했다.
“아휴, 고맙습니다. 나주시청 앞으로 가야 했었네요.”
왔던 길을 되돌아 20여 분을 달려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비 13,000원은 덤이었다. 택시비로만 63,000원을 날렸다. 기사님 오늘 운수 좋은 날이오. 집에 갈 때 꼭 설렁탕 한 그릇 사 가지고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