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81)
081 감동의 대미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기에 저녁 대접을 해 주십니까? 하하.”
“하하. 기분이 좋다마다요. 일단 앉으시죠.”
오늘 메뉴는 중식이다. 혁신도시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식당인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접대하기 좋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오늘 배 속에 기름기가 잔뜩 돌겠네.
“메뉴는 고르기 귀찮아서 코스로 시켰습니다. 괜찮으시죠?”
“그럼요. 전 뭐든 잘 먹습니다.”
대화가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 얘기로 시작하느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개가 달라진다. 나름 가격 좀 나가는 중식당으로 초대한 이유가 나올 것이다.
“얼마 전에 회사 찾아와서 윤준길 처장 만나고 갔다면서요? 오셨으면 저한테 전화라도 하지 그러셨습니까? 은근히 섭섭하더라구요.”
“제가 괜히 부담 드리는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습니다. 앞으로 대한전력 사장 되실 분인데 괜한 오해를 사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맞아요.”
맞다고? 일상 얘기로 운을 띄우는 줄 알았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혹시 승진? 뭐 내 날갯짓이 대한전력에 폭풍우라도 불러일으킨 것인가?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하하. 사장님 다녀간 뒤로 영업본부장이랑 처장이 부리나케 찾아왔더라구요. 아니, 대체 사장님은 언제 그렇게 신제품을 만들어 내셨습니까? 순간압력저감장치? 이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신제품은 부르기가 불편해서 제품명을 SPRD로 바꿨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리는군. 이춘배 본부장이 기분이 좋아 다른 테마는 꺼낼 생각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본부장이 들려준 얘기는 흥미진진했다.
대한전력 부사장 인사를 앞두고 상생발전본부장과 기술혁신본부장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다.
“부사장 자리 중 하나는 비발전 자회사 사장 중에서 한 명이 오기로 결정이 됐죠. 남은 한 자리는 본부장급에서 승진시키기로 했구요.”
“그럼 본부장님이 가장 유력한 것 아닙니까?”
“하하. 저도 내심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죠.”
대한전력 부사장은 발전자회사 사장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이다.
발전자회사 사장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발전자회사 사장은 대한전력 사장 후보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전력 부사장은 왕좌의 게임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중요한 한 자리를 놓고 이춘배 본부장과 기술혁신본부장이 물 밑에서 박 터지게 싸우는 중이었다고 한다.
“기수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제가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사고가 터지면서 판도가 요상하게 흐르더란 말입니다.”
“대한전력 사장님께서 변압기 폭발 방지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신다고 하던데, 혹시 그래서입니까?”
“기술혁신본부장이 그쪽으로는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 녀석입니다. 대한전력 출신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와 손잡고 변압기 폭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 빠르게 움직이더라구요.”
“본부장님도 뭐든 하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얘기 듣는 순간 아! 이번엔 물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한발 늦었다 싶더라니까요.”
그런데 내가 나타나 당장 적용이 가능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춘배 본부장 라인을 타고 있는 영업본부장과 배전계획처장이 우리 회사 제품을 당장 적용해야 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상생발전본부와 영업본부가 힘을 합쳐 밀어붙일 정도로 승부를 건 것이다.
“말도 마세요. 본부장급 회의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품은 나와 있고 바로 적용 가능한데 어찌 됐겠습니까? 하하. 제가 사장님께 이깟 저녁으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장님 정말 복덩이입니다, 복덩이. 하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문 밖에서 대기하는 종업원이 놀라 룸에 들어올 정도였다.
대한전력 부사장이라. 공기업이니 연봉이야 2억 조금 넘는 정도이지만, 벌 만큼 번 사람들이 돈이 중요하겠나. 권력과 명예를 손에 쥘 수 있는 자리이니 탐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잘만 버티면 발전자회사 사장을 거쳐 대망의 사장 자리도 가능하다.
그 자리에 이춘배 본부장이 올라갈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니, 그것이 내 덕분이라니, 웃다 지쳐도 모자랄 판이겠다.
“저야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이라 돈 버는 것만 생각했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하시니 저 역시 기쁘네요.”
“조금이 아니에요! 덕분에 전세가 역전됐단 말입니다. 하하.”
이춘배 부사장(진)은 계속 들어오는 음식에 손도 안 댔다. 안 먹어도 배부르겠지. 그런데 당신이 안 먹으니 내가 맘 편히 먹을 수가 없잖아! 깐쇼새우가 무척 맛있어 보인다. 저게 어향육사인가. 먹고 싶다.
“사장님, 이제 승인은 났고 예산만 확보하면 되는데, 아마 대규모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대규모 프로젝트요?”
“네, 승부를 걸 때 확실하게 걸어야지요. 왜 저번에 사장님 덕분에 변압기 포장 규정 폐지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본부장님 덕분에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걸로 환경에 힘쓴다고 평가가 아주 좋았어요. 앞으로 중요하게 떠오를 테마가 뭐겠습니까? 바로 환경과 안전이죠. 환경으로 점수를 땄으니, 안전으로 제대로 승부를 걸 생각입니다.”
“SPRD가 대한전력에서 승부를 걸 정도로 중요한 아이템이 될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제야 젓가락을 들어 깐쇼새우 한 점을 들어 맛을 본 본부장이 기대하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곧 발표가 나올 겁니다. 기존 변압기까지 전부 적용하는 대규모 사업이 될 거예요.”
“기존 변압기까지요? 다 해서 300만 대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노후 변압기 교체까지 포함해서 1조 원 가까운 프로젝트입니다. 사장님이 본의 아니게 저를 도와주셨으니, 저도 본의 아니게 도와 드려야죠. 하하하.”
시발. 아후 나도 모르게 감탄사로 욕이 터질 뻔했다. 진정하자.
300만 대면 얼마냐! 25,000원씩 잡아도 750억 원! 노후 변압기 교체 프로젝트라 했으니 변압기 발주 물량도 늘어난다. 깐쇼새우, 어향육사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부장님 계획이 그러시다면, 저도 서둘러 양산 준비를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예산 문제 때문에 본격적인 사업은 내후년부터 진행되겠지만, SPRD요? 이름이 맞습니까? 이거 입에 익지를 않네요.”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더군요.”
“네, 그거는 금액이 크지 않으니 예비비를 사용해서라도 바로 적용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부품이라 핵심 부품으로 등록돼야 하니 절차가 좀 걸리겠지만, 늦어도 내년 초부터는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사장님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사장님이 저를 도와준 것이라니까요? 하하하.”
서론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대화가 더없이 화기애애하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것이지만, 서로 본의 아니게 선물을 주고받은 격이다.
유착도 아니고 청탁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것이 이리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라니. 이 집 음식 잘 하네.
“사장님,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십니까? 왜 이리 안 드십니까? 그러고 보니까 살이 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닙니다. 본부장님께서 해 주신 얘기가 흥미진진해서 심취하느라 젓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고, 제가 말이 많았네요. 자, 어서 드십시다.”
깐쇼새우 역시 명불허전이다. 싼 집에 가면 튀김옷이 두툼해서 새우 모양 튀김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집은 적당한 튀김 옷 사이에 숨어 있는 쫀득하면서 부드러운 새우 살이 입안 가득 씹히는 것이 아주 좋다.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소스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분위기 좋고, 음식 좋고, 가볍게 얘기 좀 나누다가 마무리하면 완벽한 한 끼가 될 듯싶다.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적당하게 테마 몇 개 던져 주면 되겠네.
“본부장님.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한전력은 시끄럽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공기업들은 그런 이벤트 한 번 있으면 많이 시달리죠. 예전엔 몇십억 원은 우습게 뜯겼어요. 요즘엔 법이 무서워서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직원들한테 후원금 내라고 압박이 많긴 합니다.”
“정치 후원금 내면 10만 원까지는 세액 공제해 주니까 직원들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이 좋아 후원금이지, 반강제로 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뭐 대놓고 후원금 내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총선 즈음해서는 분위기가 좋지 않지요.”
나 같은 중생은 모르겠지만, 권력의 근처에라도 있는 사람들은 정치권 이벤트 한 번에 신경 쓸 것이 많아질 것 같긴 하다.
나는 앞으로도 모른 척하고 살아야지. 회사 일만 해도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닌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고관대작을 꿈꾸겠나.
“대한전력 전 사장님도 총선 출마하신다고 하던데요?”
“알고 계시네요? 고향이 경북 영주라 거기서 출마하겠다고 하는데, 그 동네야 공천 받기가 당선보다 더 어려운 지역 아닙니까?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장까지 했으면 편히 살아도 될 텐데, 사람이 권력욕이 있으면 나이 먹고도 편히 살기가 힘든 법입니다. 하하.”
“이 지역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혁신산단 최대근 사장이 부지런히 몸 풀고 있던데요.”
“지 사장님. 젊으셔서 정치를 모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주 관심이 많으십니다?”
“사업하다 보면 위정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관심 없다고.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고 적당히 시간 끌어 보려고 아무 얘기나 하는 것이야. 누가 국회의원이 되건 말건 난 내 갈 길 묵묵히 갈 것이니까.
“이 지역구가 화순이랑 합쳐져 있긴 한데, 나주 인구가 많으니 아무래도 나주 출신이 유리하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최 사장님께서 아주 자신만만하시더군요.”
“선거야 뚜껑 열어 봐야 아는 것이죠. 뭐 이 동네도 요새 시끌시끌해서 어찌 돌아갈지 몰라요.”
“저번 국감 때 대한전력 사장님 불러다 지역민 채용이 너무 적다느니 그러면서 호되게 혼내는 것을 보니까 선거가 코앞이구나 싶긴 합니다.”
“하하. 만만한 게 공기업 사장이죠.”
총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대한전력 신임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국회에 불려 가 호된 질타를 당했다. 이 지역구 현역이 총대를 멨다.
본부장은 총선 앞두고 몇 표 얻어 보려고 쇼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대한전력 사장으로부터 지역 발전을 위해 지역민 채용을 늘리고 투자도 늘리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으니 쇼치고는 짭짤한 장사였을 것이다.
이제 녹차까지 마셨겠다, 슬슬 일어나도 되려나.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제가 더 귀한 곳으로 모셨어야 하는데, 대접이 섭섭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제가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리 귀한 대접을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연구 개발 부지런히 해 주십시오. 저 도와주겠다는 그런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프라임일레트릭 잘되겠다는 생각만 하세요. 다 이렇게 서로 도움이 되는 법입니다.”
“네, 좋은 제품으로 회사와 대한전력에 득이 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제가 대한전력에 있는 동안은 아주 예의주시하겠습니다. 하하. 이거 시간을 너무 뺏었습니다. 다음에 형님 내려오면 그때 같이 식사하자구요.”
형님이라 하면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 안 된다. 아직 자동권선기 제작 시작도 못했는데, 강 사장 만났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대당 6억 원이란 거금도 거뜬히 받아 낼 정도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설비 제작이 자꾸 동맥경화에 걸리니 답답할 노릇이네.
회사 복귀했는데 야근이 없어 정적만 흐른다.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니! 미안하지만, 덕준이라도 불러내야겠네.
“와! 너만 어디서 좋은 것 먹고 와서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뭐야!”
“덕준아. SPRD 대박이야! 내가 오죽 자랑하고 싶었으면 이 시간에 불렀겠냐!”
“뭐 우리가 대박 아닌 적이 있었냐? 대한전력이 채택하기로 했잖아. 그거 말고 또 있어?”
“발주 물량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본 변압기 전체에 적용하겠대! 우리나라에 깔린 변압기가 몇 대인 줄 알어? 300만 대가 넘어!”
“헉. 300만 대면 얼마냐? 개당 2만 원씩 잡아도, 600억?”
“개당 2만 원은 너무 싸게 잡은 거고, 못해도 700억은 넘을 거야. 장난 아니지? 절반만 먹는다고 해도 350억이야. 마진 30프로는 족히 나오니까 100억이 떨어지는 거지.”
실적 시즌에 기사 보면 어떤 기업은 한 분기에 영업 이익이 몇 조를 기록했느니 하는 판이다. 100억 원이면 그냥 그러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남의 돈 100원 받아 내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이야. 우리 회사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것 아니야? 무서울 지경이네.”
“뒤도 돌아보고 옆도 봐야겠지만, 난 앞만 보고 달릴 테니까 네가 옆에서 부지런히 수습해 주라. 그런 게 팀워크 아니겠냐?”
“인생 뭐 있냐. 화끈하게 가 보자. 근데 말이야. 꼭 일 얘기를 이 시간에 해야겠냐?”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래. 늦가을 밤바람이 쌀쌀하니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