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80)
080 찐감동
훌륭한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웠으니, 이제 메인 요리를 선보일 때이다.
“저희가 준비한 것이 또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신제품 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번 것은 무엇인가요?”
대한전력 배전계획처장 표정이 터닝메카드 보는데 중간 광고가 나와 안절부절못하는 미취학 아동으로 돌변했다. 흥분하지 말라고. 흥분해서 TV 두들기다 액정 나간다고.
“얼마 전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요? 변압기 폭발 말입니다. 변압기 회사 이끄는 사람으로 저 역시 많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뉴스 보셨군요. 아이고, 장례식장 갔는데, 애가 이제 막 돌이 지났다고 하더라구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근데 보여 주실 것이 관련이 있습니까?”
누가 사계절에 단련된 성질 급한 한국인 아니랄까 봐. 메인 요리는 뜸을 들여야 제 맛이란 말입니다.
“네, 저희가 작년부터 변압기 폭발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사고 이후로 박차를 가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개발을 끝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이것 보시죠.”
있지도 않은 얘기가 술술 나온다. 인간 지정수, 리플리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이냐? 앞으로는 문자님 도움 없이 스스로 개발해서 당당하게 살자!
덕준이가 가방에서 시제품과 ‘순간압력저감장치’라고 크게 쓰인 성능 테스트 자료를 꺼냈다. 생소한 제품과 이름에 윤 처장과 송 과장이 놀란 표정이다.
“순간압력저감장치?”
“네, 맞습니다. 방압장치가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어서 확실하게 가스 배출을 돕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개발했습니다. 한 과장님, 설명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럽게 바턴을 덕준이에게 넘겼다. 나 혼자만 얘기하면 안 되지. 과실은 나눠 먹어야지.
“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순간압력저감장치는 지름 15센티미터의 구형 장치로, 변압기 커버 핸드홀 자리에 부착해서 압력 이상을 판별합니다. 압력이 기준치 이상으로 높아지면 내부의 알루미늄 막이 터지면서 가스를 빠르게 배출시킵니다.”
“방압장치와 원리는 비슷하네요?”
“네, 맞습니다. 다만, 방압장치는 먼지나 이물질이 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변압기 폭발 사고가 그래서 발생했지요.”
“맞습니다. 새들이 쪼아 대고 똥 싸고. 그렇다고 그 많은 변압기 점검하면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그걸 보완하고자 개발했습니다. 이 제품은 압력에 따라 작동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자체 시험으로는 5퍼센트 이상만 높아져도 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이제 변압기 폭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덕준이 녀석, 과실 나눠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 따로 예행연습도 안 했는데, 이렇게 술술 나오다니 말이다.
중간 광고가 끝나 터닝메카드 열심히 보던 윤 처장이 몹시 흥분한 표정이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네.
“아이디어가 기가 막힙니다. 이 순간압력저감장치. 이름 부르기가 힘들긴 하네요. 암튼 이게 작동하면 가스가 배출되고, 사후에 이것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네요?”
“맞습니다. 대한전력에서야 추가 장치를 달면 단가 상승 부담이 있겠지만,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니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압장치와 함께 이중으로 보완하니 가슴 아픈 사고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짝짝짝.
윤 처장이 박수까지 친다. 컴팩트 패드변압기 볼 때도 좋아하는 표정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게 박수까지 칠 정도로 대단한 제품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네.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이거는 검토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변압기 사고 이후에 안전 대책 수립하라고 엄포가 떨어졌는데, 아주 제격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 역시 전기연구원 인증 받고 상용화 준비를 하겠습니다.”
반응이 너무 즉각적이라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 정도로 시급한 것이었다니. 문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거 단가와 생산량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단가까지 물어볼 정도면 정말 서두를 생각인가 보다.
시제품이라 제작비가 3만 원이나 들었지만, 상용화해서 대량 생산 들어간다면 11,00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계산됐다. 인건비 등을 붙이면 14,000원이 제조 원가이다. 판매가 2만 원으로 방침을 정했으나, 함 질러 보자.
“저희가 급하게 시제품부터 만드느라 상용화 준비를 못했습니다. 대한전력에서 채택해 주신다면 물량 걱정 없도록 충분히 만들어 내겠습니다. 단가는 개당 3만 원으로 책정했는데,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서 2만 원 대로 낮춰 보겠습니다.”
“딱 봐도 원가가 제법 나가 보이는데, 그 정도 가격이면 괜찮네요. 그걸로 변압기 폭발을 예방할 수 있다면, 큰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죠.”
대박. 역시 대박 냄새가 난다 싶더니, 훌륭한 요리가 확실하군. 이럴 줄 알았으면 뻥카 좀 칠 걸 그랬다.
처음 책정했던 개당 2만 원으로도 마진 30퍼센트가 충분한데, 그 이상으로 사 준다면 얼마나 떨어지는 것이냐. 이거 갓 잡아 사후 경직을 보이는 신선한 한우를 참숯불에 굽는 기름진 맛이로구나. 업진살 살살 녹는다.
대한전력이 한 해 구입하는 변압기가 대략 35만 대 정도이니까, 순간압력저감장치로만 100억 원 매출이 가능하다. 모방하기 쉬운 제품이라 타 업체들이 특허를 피해 유사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선점 효과를 감안하면 짭조름하게 간이 잘된 먹거리가 아닐 수 없다.
투뿔 한우 구워 먹는 생각에 빠져 침 흘리고 있는데, 윤 처장은 계속 다급한 표정이다. 내가 대박인데 왜 당신이 그리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도 절차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안전에 관련된 것이니만큼 저희도 급하게 서두를 생각이 없습니다.”
“이건 변압기처럼 테스트 결과가 숫자로 딱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험 적용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이상 유무를 판별하고 나서야 확대 적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왜 또 말끝을 흐리나? 대체 절단 신공은 누가 만들었기에 이리 사람을 간 졸이게 하는 것인지.
“잠시만요. 제가 잠깐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두 번 연속으로 절단 신공. 이거 사람 미치게 만드네. 송 과장도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이라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과장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글쎄요. 처장님 금방 오실 테니까 좀 기다려 보시죠.”
회의실에 흐르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으니, 더 궁금하다. 처장이 절단 신공까지 쓰면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윤 처장이 3분 정도 전화 통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복귀했다. 공기업 고위직이라 그런지 표정만으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아휴, 궁금해.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 순간압력저감장치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저희가 작명에는 솜씨가 없어서 이름이 좀 그렇긴 하네요.”
“이건 제가 밀어붙이겠습니다. 어차피 전기연구원에서 제대로 점검할 테니까, 굳이 시간 오래 잡을 일도 아니죠. 그 정도로 시급하고, 이 제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휴. 이건 웬 떡이냐. 빨라야 내후년이나 가능할지 알았는데, 바로 밀어붙이겠다니! 대한전력 내부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덕분에 꿀 거하게 빨게 생겼으니 어깨춤이 절로 나는구나.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감사합니다. 저희가 개발한 제품이 실망을 안겨 드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사장님 겸손도 하십니다. 신제품 개발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가만있자…… 송 과장. 저번에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 비용 말이야. 사후 적용됐지?”
“네, 심사 거쳐서 2억 원 지급됐습니다.”
“순간압력저감장치는 어렵겠지만, 컴팩트 패드변압기는 가능할 것 같은데? 관련 부서에 얘기 좀 해 놔.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거 꿀을 너무 빨아서 충치 생기게 생겼다. 자기 돈 아니라고 선심 베푸는 것이겠지만,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 것이 어디냐! 내가 이럴 줄 알고 패드변압기 개발비용 적당히 정리해 놨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돌아온 처장이 몹시 안타까운 표정이다. 왜 또!
“사장님, 죄송합니다. 사장님께서 본부장하고 처장들 긴급 소집해서 오늘 점심 안 되겠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쩝니까? 제가 다음에 꼭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면담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송정길 과장도 따라 나온다. 뭐 또 할 얘기가 있나 보군.
“사장님, 아주 스타 되시겠습니다.”
“나주에 뼈를 묻을 생각이니, 대한전력 위해서 헌신해야지 않겠습니까? 하하. 과장님 담배 태우십니까?”
“아, 네. 제 것 있습니다.”
골프가 아니라면 커피라도, 커피가 아니라면 담배라도 피워 줘야 한다. 영업의 기본이지.
“과장님. 처장님께서 너무 좋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번에 변압기 사고 난 뒤로 대책 빨리 세우라고 압박이 컸거든요.”
“제가 들고 온 제품이 대책으로 적합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옆 본부 기술기획처에서 뭔가 준비한다고 해서 우리 본부가 물 먹는 것 아닌가 걱정이 많았는데, 사장님께서 아예 제품까지 만들어서 오셨으니 말 다 했죠. 안전 대책이면 당연히 배전계획처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내 정치질 속에서 내가 툭 하고 동아줄을 내려 줬다 이건가? 윤 처장이 내 덕분에 본부장으로 승진한다면 대박이겠네.
“대한전력이 조직이 커서 부서 간 경쟁도 장난 아닐 것 같습니다.”
“뭐 어느 회사나 다 마찬가지죠. 정치질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회사요. 정말로!
“사장님 새로 취임했으니 이제 곧 대대적인 인사가 있을 것이라, 다들 스트레스가 많아요. 월급쟁이가 승진하는 맛으로 버티는 것이니 별수 있겠습니까? 하하.”
“과장님도 처장으로 승진하시길 빌겠습니다.”
“하하. 전 아직 멀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끈을 만들어 가는 것인가.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뽑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대한전력 순회공연은 최소한 매출 200억 원 이상을 얻어 내며 성황리에 끝이 났다.
바쁜 와중에도 순간압력저감장치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도 나서야 한다. 그나저나 이름 좀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너무 길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덕준이가 송 과장 떠나자마자 한숨을 토해 낸다. 연기하느라 고생 많았다.
“사장님아.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는 거야? 난 솔직히 패드변압기는 기대했어도, 순간압력저감장치는 별로 기대 안 했거든?”
“그러게 말이다. 개당 2만 원짜리가 엄청 중요한 것이었나 봐. 당장 양산부터 서둘러야겠어. 공장 새로 세워서 분사시키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까, 그건 그것대로 하되, 양산도 빨리 끝내야지.”
“근데 이름 좀 어떻게 안 될까? 순간압력저감장치. 여덟 자야. 입에 척척 붙지도 않고.”
그래, 좋은 지적이야! 나도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어! 센스 충만하신 문자님이 이런 이름을 붙이다니, 이거 은근 실망이야.
“나도 이름이 계속 걸리더라. 영어로 붙여볼까? 순간압력이니까 서든 프레셔. 저감장치니까 릴리프 디바이스.”
“서든 프레셔 릴리프 디바이스? 숨넘어가겠다야.”
“약자로 SPRD! 어때?”
“줄이니까 그럴싸해 보이는데? 에스피알디. 세 글자나 줄었다야. 무슨 품번 같고 좋네.”
“회사 이름 지을 때도 그렇고, 우리는 참 즉흥적이야? 그치?”
품번이라고 하니까, 회사 이름으로 Soft On Demand가 두고두고 아쉽네. 프라임일렉트릭도 너무 맘에 들지만 말이다.
“덕준아. 분사할 회사 이름으로 온디멘드 어떠냐? 온디멘드인더스트리. 줄여서 오디아이.”
“온디멘드인더스트리?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냐?”
“역시 넌 내 친구야.”
“이왕이면 최고가 되라고 에스원은 어때?”
“거기까지만 하자. 점심시간 다 됐는데 곰탕이나 먹으러 가자. 한국인이면 응당 국밥을 먹어 줘야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회사로 복귀했다. 박씨를 주렁주렁 달고 들어왔으니, 다들 환호성을 질러 댔다. 이런 걸 두고 개선장군이라고 하는구나.
“공장장님, 이제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양산 체제부터 서둘러 준비해 주세요. 틀 찍어 내는 것은 유 부장님하고 상의해서 설비 직접 만들 수 있으면 더 좋구요.”
“사장님, 일 좀 그만 물어 오게. 이거 일복이 터졌네 터졌어. 허허허.”
“마라톤으로 치면 아직 반도 안 왔습니다. 갈 길이 멀다구요. 하하.”
“나는 공장 3천 평이면 너무 큰 것 아닌가 했는데, 이제 턱없이 부족하겠어.”
“안 그래도 생산동 층을 나누는 공사하려고 하는데, 지금은 물건 뽑는 데 정신없으니까 한가해지면 그때 공사 들어가려구요.”
“그려. 층 안 나누면 공간이 어림도 없겠어.”
“SPRD 생산이랑 코아 제작은 공장 따로 차려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공장을 또 세운다고?”
“그럼요. 이 공장은 변압기만 만들게 해야죠. 이것저것 다 섞여 있으면 복잡해서 정신만 없어요. 한 과장이 우리 공장 옆에 2필지 분양 받아 놨으니까 중도금 치르자마자 바로 공장 세웁니다. 공장 분주해져도 그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혁신산단 이 넓은 땅 다 먹겠다고 하더니 이러다 진짜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하하.”
야금야금 땅 따먹기 하는 재미가 쏠쏠하겠군. 혁신산단 빈 땅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순회공연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전력 이춘배 본부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 사람은 또 무슨 볍씨를 물고 왔기에 그러나.
“네, 본부장님!”
“사장님, 저녁 식사 한번 하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대한전력 본부장이 부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겠지만, 이거 원 영문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