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9)
079 감동은 일러
1년 만이다.
1년 전 그날, 나와 덕준이는 호기롭게 대한전력 본사를 찾아갔다가 몹시 기분 나쁜 수모를 당했었지.
1년 만에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사업하는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덕준아. 대한전력 오랜만에 가지?”
“그러고 보니까 딱 1년 전이었네. 그 꼴 당하고 주차장에서 줄담배 피웠던 것이 1년 전이라니, 진짜 시간 빠르네.”
“그때랑 지금 비교해 보면 장난 아니지? 넌 정말 친구 잘 둔 거야.”
“사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혼자 가도 되지만, 굳이 바쁜 덕준이를 끌고 갔다. 이젠 추억이 된 1년 전 대한전력 갑질을 기억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덕준이를 키워야겠다는 뜻이 더 컸다.
내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 덕준이는 충분히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자질이 있다. 나름 강철 체력이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회사를 위해서라도 덕준이는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
“도착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로비로 내려가겠습니다.”
1년 전과 달리 송 과장은 자리에 있었고, 전화 응대도 공손해졌다. 처음엔 스트레스가 쌓여 신경질만 가득한 월급쟁이로 보였다.
지금은? 퇴근하면 어린이집 들러 애 데리고 집에 와서 목욕시키고 밥 먹이는 평범한 아빠로 보인다. 애 재우고 나면 와이프 옆구리 찌르다 거부당해 침대에 누워서 웹소설이나 읽다 잠들겠지.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전에 뵀을 때보다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
“예리하시네요. 하하. 회사 일에 열중하다 보니 살짝 빠지긴 했습니다.”
“다른 사장님들은 얼마나 편한지 볼 때마다 살이 찌던데, 사장님은 많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자, 사무실로 올라가시죠.”
보자마자 덕담이라니, 정말 상전벽해로구나. 뽕나무 밭이던 혁신도시도 푸른 바다가 돼 버렸고,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한 대우도 푸른 바다가 됐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와중에도 송 과장 입이 쉬질 않는다. 첫 만남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렇지, 이 사람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니까.
“요즘 납품하느라 정신없으시죠? 회사 내부에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연체 없이 제때 잘 납품하시니 한시름 놨습니다.”
“납기 맞추려고 저희 정말 힘들었습니다.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예상 이상으로 나와 버려서 쉽지 않더군요.”
“한 회사에 우선 배정으로 20프로 주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자재처에서도 연체를 확실하게 보고 사업 계획 짜 놨더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사례가 없었으니까, 대한전력에서도 걱정이 많았겠죠. 더군다나 저희가 신생 업체니까요.”
“저희가 잘하면 본전이지만, 못하면 욕을 엄청 먹지 않습니까? 욕 안 먹으려다 보니 걱정이 과하게 많긴 합니다. 그래도 막상 발주 들어가니까 아주 잘해 주시고 계시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말 나온 김에 발주 균등하게 안 되겠습니까? 대한전력에서 발주 쏟아지면 정말 답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 얘기는 변압기뿐만 아니라 송전, 변전, 배전 납품업체들 다 얘기합니다. 전체 물량이 7만 대 넘죠? 아마 내년 1분기에 대부분 나올 것 같네요.”
“아휴, 이건 뭐 죽어지내란 소리네요. 하하.”
“업체들 죽겠다고 하니까 발주 균등하게 해 주면 좋죠. 근데 전력 운영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전 국민한테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해 좀 해 주세요.”
균등 발주는 요원한 일이로구나. 안 되는 일을 바꿔 보겠다고 용쓰지 말고, 상수라 생각하고 준비해야겠네.
매번 몇 대나 나올지 예측이 안 되니 조마조마하고 쫄깃한 마음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판로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다른 사업에 비해 이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여기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저희 처장님 모시고 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전에 인사도 못했다고 아쉬워하셨거든요.”
“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배전계획처장. 상무급이라 본부장보다 낮지만, 대한전력의 주요 업무인 배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 파워가 본부장 못지않다. 이 사람이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비 지원을 검토하라고 했으니, 심플하게 표현하자면 좋은 사람이다. 프롤로그는 나쁘지 않네.
향은 엄청난 기대감을 주지만 막상 마시면 맹물처럼 느껴지는 로즈마리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으니, 50대 아저씨가 다가온다.
“반갑습니다. 배전계획처 윤준길입니다.”
눈이 이글이글한 사람이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다부져 보이고 전신이 야망으로 둘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실적 쌓아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부사장을 거쳐 자회사 사장으로 갔다가 대망의 대한전력 사장까지 오르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프롤로그에 이어 1회도 나쁘지 않다. 저 야망을 잘 건드려 준다면 유료 연재도 가능할 것 같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을 이끌고 있는 지정수입니다.”
“네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혁신산단 처음 내려오셔서 승승장구하시더군요.”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라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장님께서 개발하신 고효율주상변압기에 대한 평이 아주 좋습니다. 개발 일정이 늦어져서 상부에서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사장님께서, 그것도 완제품을 가져오셔서 제가 점수 좀 땄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고효율주상변압기 적용은 예정대로 진행됩니까?”
“그럼요. 내년 입찰에서 일반형 주상변압기 대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효율이 크게 개선됐는데, 그거 안 쓰면 우리가 욕을 먹지요. 하하.”
기존에 비해 효율이 고작 0.4퍼센트 개선됐는데도 크게 개선됐다고 하네. 대한전력이 전력 손실에 극도로 예민하다고 하더니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군.
대한전력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도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면서까지 전력 손실을 줄이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런데도 송ㆍ배전 과정에서 날아가는 손실액만 매년 1조 원이 넘을 정도다.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갓 회사 세운 내가 크기를 줄이고 효율을 개선한 변압기 신제품을 들고 왔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내가 이럴 줄 알고 오늘 또 하나 들고 왔으니 기대하시라.
“고효율주상변압기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좀 있는데, 시범 사업 없이 바로 적용됩니까?”
“예전에야 그렇게 했죠. 요즘은 기술도 좋아지고 시험설비도 잘 나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요. 확실한 데이터가 나왔으면 하루라도 빨리 적용하는 것이 이득 아니겠습니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범 사업 안 하고 바로 적용하죠. 아마 내년 4월까지는 새 구매 규격이 나올 것입니다.”
“내년 4월이면 8월 입찰까지 복수 유자격자가 가능하겠습니까?”
“뭐 안 되면 사장님께서 혼자 다 납품하셔야지요. 하하.”
저번 입찰에서 일반형주상변압기가 28만 대가 나왔다. 이 많은 것이 전부 고효율주상변압기로 교체가 된다. 우리 말고 개발에 성공한 업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죽어나겠네. 행복한 죽음.
욕심 같아서는 다 먹고 싶지만, 욕심 부릴 일이 아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처리 못할 양이다.
이럴 때 인심을 베풀면서 재미를 보면 될 일이다. 충성을 맹세하거나 아군이 되겠다고 약속한 업체들을 미리 추려 놔야겠구만.
“우리 송 과장 얘기로는 신제품 개발하셨다고 하던데요? 이거 신제품 개발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 또 하셨습니까? 어떤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네, 두 가지인데, 아마 둘 다 흡족해하실 것입니다.”
“맘에 들면 제가 오늘 점심 대접 제대로 하고, 별로면 이 커피로 끝내겠습니다. 하하. 송 과장아. 식당 예약 좀 해 둬.”
오늘 맛있는 것 얻어먹겠군.
이렇게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로 커 가는 것이겠지. 대한전력에 잘 보이기 시작하면 변압기 시장에서는 탄탄대로를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것이야.
“요즘 대한전력에서 요구하는 변압기 추세가 효율 개선과 컴팩트화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효율주상변압기를 개발했던 것이구요. 이번에는 패드변압기를 개발했습니다.”
“패드변압기요?”
“네, 저희는 컴팩트 패드변압기라고 명명했는데, 기존 제품 대비 효율이 0.3프로 높아졌고, 체적도 일반형에 비해 33프로 줄어들었습니다.”
“슬림형보다는 얼마나 개선됐습니까?”
“효율은 마찬가지로 0.3프로 높고, 체적은 21퍼센트나 줄어들었습니다.”
“허허.”
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저 소리.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같다. 어때? 승진의 냄새를 맡았니?
“어디 특성 자료와 외형도 좀 보십시다.”
“여기 있습니다. 특성치는 저희가 제작 중인 일반형과 슬림형을 용량별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 봤습니다. 여기 보시면 100프로 부하 전손실이 기존에 비해 0.3프로 개선된 걸로 나와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자료를 넉넉히 준비한 것이 다행이다. 한 부였다면 지하철 의자에 앉아 옆 사람 핸드폰 훔쳐보는 볼썽 사나운 꼴을 재현할 뻔했다.
전문가들답게 한참을 들여다본다. 초조함이 졸졸 흐르는데, 덕준이가 난데없이 입을 열었다.
“지상변압기가 도심 지역 인도에 설치되다 보니, 크기 때문에 보행자 불편을 야기할 수 있고, 민원도 많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입니다. 단순히 체적만 줄인 것이 아니라, 높이를 키워 폭을 크게 줄였으니, 앞으로 보행 관련해서 민원이 제기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허. 이 자식 약장수 다 됐네. ‘내가 당신 고민을 다 알고 준비해 왔으니 이 약 한번 잡숴 봐’네. 대한전력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민원인데, 그 가려움을 기가 막히게 긁어 주니, 팀워크 최고로다.
윤 처장이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소감을 말할 차례다.
“잘 봤습니다.”
“보시니까 어떠십니까?”
“상용화했을 때도 이 데이터라면 더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체적 줄인 것도 아주 맘에 듭니다. 검토를 해 봐야겠지만, 이거 아주 좋습니다. 하하. 지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예상대로 합격이다! 공장장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콤팩트 지상변압기가 대한전력 배전계획처 윤준길 처장을 감동시켰다. 문자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 일궈 낸 첫 성과 말이다!
“감사합니다.”
“이거 이러다 우리가 프라임일렉트릭과 유착한다고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송 과장. 식당 예약했어? 내가 오늘 손님 대접 제대로 해야겠는데? 사장님, 오늘 점심 괜찮으십니까?”
효율 0.3퍼센트 개선이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송ㆍ변전 과정에서 생기는 전력 손실을 0.01퍼센트라도 줄이기 위해 매년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대한전력에는 아주 큰 선물이다.
지중화 비중이 높아지면서 패드변압기 사용이 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지. 나는야 감동의 연금술사.
“사실 크기는 더 줄일 수 있었는데, 온도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희가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진행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사장님,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뭘 또 더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자료 아주 잘 봤습니다. 검토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아마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될 것 같네요. 검토 끝나면 연락드릴 테니 바로 전기연구원 인증 준비해 주시죠.”
“고효율주상변압기도 채택해 주셨는데, 이것까지 채택해 주신다면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릴 판인데요. 안 그래도 저희 사장님 새로 취임하자마자 적자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이만한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물. 좋은 말이다. 선물을 줬으니, 대가가 언제 들어올지 가늠해 봐야겠군.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채택된다면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글쎄요. 저야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좋은데,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가 덩치가 좀 커서 말이죠.”
“내후년 입찰 때 적용돼도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저희가 좀 느리긴 하죠? 내년 4월에 고효율주상변압기 구매 규격 제정할 때 같이 처리하면 좋겠는데,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그게 안 되면 내후년으로 밀리겠죠.”
대한전력의 패드변압기 구매액이 연간 500억 정도이니, 개발 우선 배정으로 20퍼센트 받으면 3년간 100억 원 매출이 확정이다.
나주 내려와서 받는 전체 물량 20퍼센트에 비하면 작아 보이지만, 저거 하나만으로도 다른 변압기 회사 1년 매출이다.
제품 하나 개발해서 3년간 300억 매출을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면 선물 대가로는 충분하다. 일정이 밀려서 내후년에 된다고 해도 아쉬울 것 없다. 내년에는 욕심을 내 볼 생각이니까.
올해 입찰은 확정된 물량도 많고 처음이라 욕심내지 않고 지역 우선 배정 20퍼센트에 만족했다. 그러나 내년 입찰은 다르다. 우선 배정은 그것대로 받고, 일반 입찰에도 참여해서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먹을 생각이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기존 입찰 품목이 신제품으로 바뀌면,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나누는 파이가 커진다. 내년과 내후년에 매출이 얼마나 늘어날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감동하기는 이르다. 아직 메인 디시가 남아 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