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8)
078 기술이 돈이다
유재준 부장이 살다시피 하는 설비 제작동은 구리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처음에는 역한 냄새에 코를 부여잡지만, 계속 맡다 보면 본드 흡입하는 것처럼 몽롱해지고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공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안 좋다는 뜻이다.
“부장님, 이러다 얼굴도 못 알아보겠습니다. 얼굴 좀 닦아 가면서 일하세요.”
“우리 사장님 오셨네? 잘 왔어.”
“뭐 좋은 소식 있습니까?”
“그럼요. 아까 오전에 김신우 이사님이랑 코아 설비 얘기 좀 했는데, 이게 또 머리가 번쩍하는 것 있지? 하하.”
우리 호랑이 유 부장 또 날개를 달았네. 아주 천직이야 천직.
아무리 생각해도 설비 부서 만들어서 유 부장에게 맡긴 것은 회사 세우고 나서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 잘한 일이다.
“우리 부장님 또 무슨 생각을 하셨기에 그러십니까?”
“김 이사님이 아몰퍼스 코아 제작 설비 설계라고 보여 주는데, 조금만 수정하면 자동으로 뽑아내겠더라고.”
“그걸 벌써 생각하셨습니까?”
“그게 아몰퍼스 코아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원리가 똑같더라고. 우리 일반 코아 제작 설비 응용하면 될 것 같단 말이지. 어때, 잘했지?”
유재준 이사(진)께서 또 큰일을 하셨네 이거. 일이 너무 많다고 죽을 표정인데도, 이럴 때는 또 토렌트 걸어 놓고 다운로드 완료 기다리는 그 눈빛이란 말이지.
아몰퍼스 코아도 일반 코아처럼 자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또 있겠나! 아몰퍼스 코아 제작을 위해 영입한 김신우 이사가 제작 라인 하나에 4명은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척척 잡아 버리는 유 부장의 응용력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일반 코아에 이어 아몰퍼스 코아 제작 설비까지! 유 부장 혼자 얼마나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인지 원. 꼴 보기 싫으니까 내년에 이사나 다셔!
이 모든 것이 자동권선기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문자님께도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이다. 문자님의 하해와 같은 은총을 어찌 잊으리오.
“아! 너무 좋습니다. 바로 제작 가능하시겠어요?”
“공장장님하고 상의해서 설계 바로 수정하려고. 이제 설계하는 부장 형들 있으니까 설계 수정 금방 될 것 같어. 설계 끝내고 자재만 들어오면 바로 작업 착수할 생각이야.”
“제가 한 과장 닦달 좀 하겠습니다. 하하.”
“자재 바로 넣어 달라고 한 과장 좀 보채 줘. 이제 한 과장도 후임 하나 들어왔으니까 보채도 괜찮겠지?”
“그럼요. 그러려고 부사수 뽑은 건데요. 하하. 그럼 언제쯤 시운전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빠르면 시운전까지 한 달도 안 걸릴 것 같은데? 자동권선기 만들고 나니까 다른 설비는 설비 같지도 않아. 그거 만들 때 엄청 고생했잖아?”
“공장장님 도망가고 혼자 고생 많으셨죠.”
“뭐 그 고생하고 나니까 다른 것들은 하는 것 같지가 않아. 그러고 보니까 외함 제작기는 좀 힘들긴 했네. 참! 자동권선기도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 그것도 올해 가기 전에 5대 다 나올 것 같아.”
어디서 이리 시끄러운 소리가 나나 했더니 저 멀리서 돈다발이 굴러 오는 소리로구나.
변압기 제작은 떼돈을 벌고 있고, 설비 제작은 떼돈 버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코아만 제대로 터진다면 돈다발 굴러 오는 소리에 잠을 못 잘 지경이겠군.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상황. 사업하면서 가장 기분 좋을 상황 아닌가 싶다. 분명 분탕질, 시기질 등 온갖 방해 공작이 있겠지만, 방역 전문가인 내가 확실하게 처리하면 된다. 이제 회사 잘나갈 일만 남았다.
기분 좋게 사무실로 복귀하는데, 황미연 대리가 뭔가 터졌다는 표정이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뉴스 안 보셨죠? 변압기가 터져서 대한전력 직원 하나가 죽었대요.”
“예? 어디 봐요.”
부천에서 전봇대에 설치된 변압기가 폭발해 작업 중이던 대한전력 직원이 추락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정전 신고를 받고 변압기를 수리하다 변을 당했는데, 경찰은 변압기 내부의 가스 압력이 높아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며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기사를 보는 순간 문자님이 보내 준 순간압력저감장치가 떠올랐다.
혹시 이 사건으로 인해 직관적이고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 장치가 활용되는 것인가? 문자님이 그냥 보내 줬을 리가 없다. 희뿌옇던 시야가 밝아진 느낌이다.
“연식이 된 변압기라 우리랑은 관련 없는데요. 한 과장님이 순간압력 어쩌고 한 것이 떠올라서요. 돌아가신 분은 너무 안타깝지만, 우리가 뭔가 준비하고 있다면 대한전력에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미연 과장(진)도 귀신임이 분명하다. 냄새를 이리 기가 막히게 맡다니! 내 일 아니니 나 몰라라 했다면 저런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예사로운 직원이 아니라니깐.
“대리님. 사망했다는 대한전력 직원분 장례식장 찾아서 조화 하나 보내 주세요.”
안전은 돈이 된다. 몇 푼 더 벌겠다고 안전 무시했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몇 푼 아낀 것 몇 곱절은 날아간다. 인명 피해라도 생긴다면 억만금을 줘도 되돌릴 수 없다.
환경과 안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도가 높아지는 법. 이 지점에서 궁예질을 해 보자.
문자님께서는 순간압력저감장치를 신속히 상용화하라고 하셨다. 이번 변압기 폭발 사고로 대한전력에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은 아마도 순간압력저감장치 채택일 것이다.
대한전력이 대책 마련에 나선다면 예산 확보까지 석 달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넉넉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안한 기술을 검토하고 채택하는 데 적어도 한 달, 계획 수립 및 결재까지 한 달은 걸릴 터이니, 당장 준비해야 한다.
운 좋게 채택된다고 하면, 당장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준비도 해 놔야 한다. 사업 부서 분사하겠다는 계획이 이렇게 맞물리겠네.
코아 제작과 순간압력저감장치 생산을 묶어서 회사 차리는 것으로 추진해야겠다. 덕준이를 사장시키면 딱 좋겠는데, 보내자니 아쉽고, 이거 고민이네.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순간압력저감장치 시제품이나 확인하러 가야겠다. 지금쯤이면 시제품 나왔겠지.
“공장장님! 공장장님!”
“아이고, 우리 사장님. 숨넘어가. 왜 변압기 터진 것 때문에 그래?”
“기사 보셨어요?”
“아까 쉬는 시간에 이 부장이 보여 주더라고. 죽은 사람 불쌍해서 어쩌나. 엄청 고통스러웠을 건데 말이야.”
“우리랑 관련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저도 마음이 쓰여서 조화라도 하나 보내려구요.”
“잘했네, 잘했어.”
공장장한테 칭찬 받았다. 후훗.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죽은 이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은 마음 가는 대로 행하는 법이지. 비록 조화이지만, 그것으로라도 저승길 가는 데 외롭지 않을 노잣돈이 됐으면 한다.
“그건 그거고, 혹시 순간압력저감장치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곧 시제품 나와. 주물 떠서 찍어 내고 알루미늄 판만 씌우면 되니까 어려울 것은 없더라고. 아마 내일 정도면 나올 것 같은데, 테스트를 해야 하니까 시간 좀 걸리겠지.”
아직 안 나왔군. 괜히 마음이 초조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대한전력과 담판을 짓고 싶은 말이다.
“최종 테스트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미 만들어 둔 변압기로 테스트할까 했는데, 그것보다는 새로 만든 변압기에 테스트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오늘 건조로 들어가는 놈으로 할 생각이니까 넉넉잡고 일주일이면 되겠지?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잘만 만들어 주세요. 제가 이걸로 대박 하나 물어 오겠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일주일. 사람 쫄리게 하기 딱 좋은 시간이네. 마음 편히 먹어야 하는데, 왠지 모를 대박 냄새에 편히 있기 어렵다. 규모의 차이일 뿐 대박은 확실하다는 냄새가 난다.
특허는 신청해 놨고, 제품 최종 테스트만 끝나면 바로 대한전력 직행이다.
시제품이라 제작비가 3만 원 정도 들었는데, 양산 들어가면 1만 원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대한전력이 이 제품을 채택할지, 채택하면 얼마로 책정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저 감이지만, 문자님의 은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공장장의 약속대로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완성품이 나왔다.
방압장치가 외함 측면에 다는 방식이라면, 순간압력저감장치는 외함 뚜껑에 부착한다. 변압기 내부 압력이 일정 수치가 넘어가면 순간압력저감장치에 붙은 알루미늄 판이 찢어지면서 가스가 순식간에 배출되는 방식이다.
“질소 투입하겠습니다. 기준치보다 20프로 더 들어갑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세요.”
검사과 이규철 과장이 변압기에 질소를 넣기 무섭게 몰려든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혹시나 변압기 터져서 뚜껑 날아가면 어휴, 생각하기 싫다.
정적과 함께 초조함이 흘렀다. 예상대로면 순간압력저감장치가 변압기 내부의 과한 압력을 감지하고 작동을 해야 하는데, 아직 반응이 없다. 기다림에 지쳐 상무는 덕준이를 끌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펑.
터졌다! 질소 주입하고 10분 정도 지나서 검사동 안에서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변압기는 멀쩡하다. 성공!
“됐어요! 저거 뜯어보세요!”
급하게 너트를 풀어 순간압력저감장치를 들어내니 내부에 붙은 알루미늄 판이 쩍 갈라져 있다.
“성공입니다! 과장님, 시간 얼마나 걸렸죠?”
“10분 17초요.”
“좋습니다. 이제 질소 투입량 조절해 가면서 여러 가지로 시험해서 데이터 내주세요. 데이터 나오면 바로 대한전력 달려갑니다.”
“네. 오늘 중으로 다 끝내겠습니다.”
“과장님. 공장장님이 개발한 패드변압기 데이터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같이 주세요.”
고민을 했다. 순간압력저감장치만 덜렁 들고 가서 승부를 볼 것인지, 패드변압기 개발품도 같이 들고 갈지 말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리 회사의 기술력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밴드웨건 효과를 노려라.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내 능력에 달렸다.
대한전력 배전계획과 송정길 과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 거만함으로 일관했지만, 고효율주상변압기 채택을 이끌어 준 사람 말이다. 사후 지급 방식으로 연구 개발비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아주 고마운 사람이지.
이춘배 본부장에게 연락할까 했지만, 담당 부서가 아니라 청탁같이 느껴질 수 있어 관뒀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때와 장소를 안 가리면 검은 머리 짐승이 되는 것이야.
“네, 배전계획과 송정길입니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프라임일렉트릭요? 아아! 지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그게 까먹었다니 이거 서운한데? 우리 회사가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알 정도로 큰 회사가 아니니 이해하지. 몇 년만 더 있어 봐.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을 테니까!
“내년도 사업 준비하시느라 바쁘시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저희가 이번에 신제품 2종을 개발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설명을 드리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신제품 2종요? 아니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신제품입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별말씀을요. 저희 같은 작은 회사들은 기술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저희는 신제품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가까우니까 언제든 방문해 주시죠. 저는 이번 주 내내 본사에 있으니까 아무 때고 오시면 됩니다.”
“네, 그럼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예전에 덕준이가 했던 말이 맞다. 우리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회사가 크거나,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회사는 무럭무럭 크고 있다. 창업 3년차가 되는 내년에는 매출 천억 돌파가 확실하다.
기술력도 이 바닥에서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 기술력의 태반이 문자님의 도움이지만, 우리 스스로도 많이 성장하고 있다. 미래가 밝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그 기술력을 인정받으러 가자.